225. 황궁 개편
스윽.
남하림은 겉에 입은 모피 외투를 벗었다.
“비싼 건데 얼룩이 지면 안 되지.”
“…….”
유미령도 따라 모피를 벗었다.
“유 소저는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저자는 내가 맡을 겁니다.”
모용진을 가리키는 유미령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 * *
‘저기 있군.’
육두마차 앞에 내린 두 명의 남녀.
그들과 가까워지자 외투를 벗은 남하림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비단…… 걸…… 복……?’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많은 소문을 들었는지 처음 보는데도 익숙했다.
모용진이 멈칫했다.
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오십 명의 수하들.
‘만일…… 정말로 걸황이 맞다면…….’
오십 명의 양백대로 걸황을 잡을 수 있을까?
‘만약 걸황을 내가 잡기라도 한다면? 당연히 오가련에 가서 좋은 자리에 설 수 있다.’
문제는 오십 명으로 걸황을 이길 수 있을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는 것.
“당신이…… 걸황이 맞소?”
“보는 바와 같이.”
곧바로 인정했다.
걸황이 맞았어.
오가련에서도 걸황은 주적이었다.
“…….”
“기세 좋게 왔으니, 그다음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모용진은 옆에 서 있는 유미령을 보았다.
‘걸황의 부인?’
휘익!
모용진이 유미령을 인질로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유미령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이 자식이…….’
모용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았다.
스륵-
유미령은 뒤로 돌아오는 모용진을 보면서 옆으로 물러났다.
휘익!
모용진의 손이 허공을 지나갔다.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자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이 여자도 무공을……!’
유미령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에 차가운 검기가 느껴졌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저어…… 부…… 인…… 왜 그러시오.”
“누굴 보고 부인이라고 하는 거지.”
“죄…… 송합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를 비는 사내.
유미령은 그 모습을 보며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
모용진의 소매에서 단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년! 죽어라!’
절명극독이 묻은 단검이 유미령의 허리를 향해 찔러갔다.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거리!
하지만.
타악!
단검의 끝이 유미령의 허리 한 치 앞에서 멈췄다.
‘언…… 제……?!’
남하림이 모용진의 손을 낚아챈 것이다.
“부인, 이런 놈들은 잘 변하지 않소이다. 항상 조심을 해야 하죠.”
“…….”
유미령은 화가 났다.
모용진의 목에서 검기가 번쩍거렸다.
스극-
“커어억!”
결국 그의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피가 흐르는 것을 손으로 막았지만 점점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털썩!
너무나 어이없는 죽음.
그 모습을 본 양백대의 모용세가 무인들은 망설였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무인의 정체가 걸황임을 도착해서야 알았다.
그들은 모용진과는 달랐다.
똑바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함께 있는 여인의 무공도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모용진을 너무 간단하게 제압하는 모습에 싸우고자 하는 의지는 사라진 지 오래.
남하림은 양백단을 노려보았다.
“싸울 생각이 없다면 돌아가시오. 굳이 가지 않겠다면 적으로 간주하겠소이다.”
“억……!”
감당할 수 없는 살기가 밀려왔다.
걸황의 무력에 숨이 막힐 지경.
양백대 부대주 모용백은 바닥에 쓰러진 채 죽은 모용진을 보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오십 명의 양백대로는 이길 수 없어. 상대는 걸황이다. 더구나 저 여인도 고수가 틀림없다.’
“물러나라.”
무림에서 목숨을 제대로 잇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잘 생각했소이다. 그래도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군요.”
“걸황. 물러가겠소이다. 하지만 그대는 모용세가의 원수가 될 것이오.”
“얼마든지.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하시오. 나를 건드린 이상 모용세가는 이미 내게 적이오.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소? 돌아가거든 그대의 가주에게 전하시오. 걸황의 이름을 걸고 모용세가를 지울 것이외다.”
“……!”
모용백은 뻗어 나오는 남하림의 기에 몸이 싸늘해졌다.
‘이런…….’
괜한 말을 한 듯했다.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자존심 때문에 일이 커진 게 아닌가.
타아아앗!
오십 명의 양백대가 뒤로 도망을 치듯 물러났다.
곧이어 그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협박이 장난 아니네요.”
“괜찮았나요?”
“개방은 협박도 가르치나 보군요.”
남하림이 싱긋 웃었다.
“유 소저, 그만 가시죠.”
“…….”
유미령은 움직이지 않고 남하림을 보았다.
“무슨……?”
“이제는 부인이라고 안 합니까? 일이 끝났다고 버려지는 모양이군요.”
“아…… 아, 그거요? 알겠소이다. 부인, 타시죠.”
남하림은 마차에 올라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 * *
하후도는 한 장의 서신을 받았다.
걸비를 통해 날아온 남하림의 전서.
“하하하하, 역시……! 걸황이구나!”
#NAME?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하십시오.
하루가 지난 후 군부에서도 북방의 소식이 전해졌다.
모여 있던 북방의 여진들이 각자의 터전으로 흩어진 후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도 황궁에 전해졌겠지.”
황궁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출군해야 한다고 닦달했지만, 하후도는 여진의 움직임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면서 미루어 왔다.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겠군.”
철컥.
황궁에 올라온 후 하후도는 군장을 벗지 않았다.
예로부터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그는 군장을 입은 채로 지내왔다.
여전히 그는 전쟁 중이었다.
똑똑.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대장군님, 오왕야께서 오셨습니다.”
오왕 주민.
황제의 다섯 번째 동생.
“안으로 모셔라.”
하후도는 일어나며 안으로 들어서는 오왕 주민을 반겼다.
“오왕야. 오셨소이까?”
“하후 대장군을 뵙소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도 여전하십니다.”
“하하하하, 오왕야께서도 전혀 예전과 다름이 없소이다.”
나이차가 많은 두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우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왕야께 실례가 되었소이다. 소장이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렇게 뫼시게 되어 말입니다.”
“아닙니다. 본왕은 대장군의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혀 실례가 아니니 그런 생각을 안 하셔도 됩니다.”
“오왕야께서는 여전히 너그러우십니다.”
“황제의 동생으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아니지요. 그것과는 별개입니다. 어릴 적부터 오왕야께서는 항상 아랫사람들에게 친절하셨소이다. 만약 소신이 그때 힘이 더 있었다면 왕야를 황제의 자리에 올렸을 것입니다.”
“이런, 이미 지나간 일이지 않소이까?”
항상 자신의 편에서 도움을 주었던 하후도.
이십 년 전.
주민은 황제의 자리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왕자라면 누구나 황제의 자리를 한 번쯤 꿈꾸게 마련이다.
하후도 또한 황후의 다섯 명의 왕자들 중 오왕자 주민을 가장 아꼈다.
어린 시절부터 아랫사람을 대함에 있어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봐도 덕(德)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위로는 네 명의 왕자들이 있었으니,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다.
황위는 다섯째인 그에게 돌아올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탁자에 앉았다.
먼저 하후도가 말문을 열었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왕야를 부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오왕야께서는 황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황궁의 소문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아도, 모시는 사람들이 항상 전해주었다.
항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황제의 동생 신분.
하루아침에 역적이 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황궁으로 갑자기 돌아온 하후도 천무대장군과 황제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후도 천무대장군이 황제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황제의 옆에는 동창이 굳게 버티고 있으니까.
대신들도 동창의 눈치를 많이 살폈다.
“하후 대장군께서는 무슨 의미로 묻는 것입니까?”
오왕 주민은 똑똑했다.
하후도가 이유 없이 부르지 않았을 것은 알고 온 것이었다.
그런 마당에 그가 황제에 대해서 물었다.
“오왕야께 사실대로 말씀을 하겠소이다.”
“…….”
“조만간 황제를 폐위할 것입니다.”
덜컹.
오왕 주민은 심장에 충격을 받았다.
군부를 떠났던 그가 갑자기 대군의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하후 대장군이 역모를?’
엄청난 일이었다.
“하후 대장군. 대체 본왕이 모르는 일이 무엇이기에 황제를 폐위시킨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까? 역모입니까?”
“오왕야, 그에 대한 대답은 소장이 아닌 다른 인물이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모는 아닙니다.”
“역모가 아니라면…… 그가 누구란 말입니까?”
“왕야께서는 만나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북방의 여진을 막은 뒤 내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오왕 주민 또한 북방 여진이 돌아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북방의 여진을 막았다니…….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소이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많은 세월을 기다리시지 않으셨습니까? 며칠이면 됩니다. 오왕야께서는 그의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내가 그의 마음에 들어야 황제가 된다는 뜻인가?’
황제까지도 정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 * *
유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체…… 어떤 놈이…… 중간에 방해를…….’
북방에서 날아온 소식.
중원으로 내려오기 위해 모여든 여진들의 군벌들이 각자 그들의 구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하후도를 황궁에서 몰아내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할 수 없군.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사중. 있는가?”
“곁에 있습니다.
공간에 소리만 들릴 뿐 기척을 찾을 수 없었다.
암살지신.
중원에 그보다 뛰어난 살수는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하후도를 죽여라.”
“알겠습니다.”
“할 수 있겠는가?”
“소인의 암살행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후후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당장 그를 죽입니까?”
“그렇게 해주면 좋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를 죽인 뒤 바로 오겠습니다.”
샤르르륵-
암살지신 사중의 신영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샤샤샤샷.
사중은 동창에서 나온 뒤 하후도를 죽이기 위해 군부로 향했다.
군부 옆 집무실에는 개인 침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후도는 수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여기다.’
침실 위 천장에 기척을 죽이며 다가섰다.
그리고 침실에서 잠에 빠져 있는 하후도를 발견했다.
‘죽을지도 모르고 잘 자는군.’
그는 허리에 찬 검을 잡았다.
단번에 아래로 내려가서 하후도의 검과 목에 검을 꽂아야 했다.
그때,
휘익!
갑자기 눈앞에 하얀색 물체가 지나갔다.
‘뭐지?’
순간 놀란 그는 얼굴을 뒤로 젖혔다.
‘하후도.’
헛, 이런!
사중은 빠르게 침실에 누워 있는 하후도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핏! 핏! 핏! 핏!
침실 아래에서 솟구치는 검기.
‘허억.’
사중은 지붕을 뚫고 몸을 피하며 옆으로 내려섰다.
휘익!
걸복을 입은 사내가 지붕 위에 따라 내려섰다.
“검…… 제.”
손에 든 검을 보면서 일황사제 중 검제임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내 기를 알아차렸지?”
“그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내가 실수를 한 것 같군. 오늘은 그만 가겠다. 다음에는 이번처럼 실수가 없을 것이다.”
“실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의미가 없다. 다음은 없을 테니까.”
“검제, 미안하게 됐군. 본인을 잡을 수 없……!”
부우우우웅-
허공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사중은 옆으로 물러나는 동시에 정확히 한 치 간격으로 공격을 벗어났다.
성철각은 절규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 아……! 아까워! 한 방에 잡을 수 있었는데!”
“헤헷! 철각 형, 저놈은 내가 잡은 것 같습니다!”
휘이이이잉-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묵흑반도가 회전하며 사중을 향해 날아갔다.
어기도비행술.
최근에 익힌 도법 중 하나였다.
사중은 전방 좌우아래위로 움직이며 날아오는 묵흑반도의 기세에 땀이 쏟아졌다.
‘어떻게 피할 방법이 없다!’
그가 움직이려고 하는 방법을 미리 읽기라도 하듯 묵흑반도가 허공을 날았다.
팟! 팟! 팟!
묵흑반도가 사중의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털썩.
사중은 그대로 지붕 위에 무릎을 꿇었다.
“당신, 왜 이리 약해?”
“…….”
당무독이 손에 든 옥병을 가방에 넣었다.
“에잉, 재미 좀 보려고 일부러 천천히 나섰는데…… 유도가 조금 더 살살해 주지 그랬어. 안 그래?”
“누가 이 정도로 약할 줄 알았나요? 난 잘난 체를 하기에 강한 줄 알았죠.”
사중은 어이가 없었다.
중원에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무림인들은 얼마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눈앞에만 해도 네 명이나 더 있었다.
슈우우우욱-!
장신의 사내가 성큼 다가오며 사중의 턱을 갈겼다.
“커어어억!”
사중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으으으-
사중은 정신을 겨우 차렸다.
눈앞에 환관이 보이는 듯했다.
‘다행이다. 유장 님께서……!’
툭툭.
발길질?
“이봐. 정신을 차렸으면 일어나야지. 빨리 안 일어나면 많이 아플 텐데…….”
스걱- 스걱-
머리 위에서 작두 소리가 났다.
사중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네놈들은……!”
환관은 환관이었지만.
그들 뒤로 서집사창의 커다란 글자가 보였다.
‘서창이…… 왜……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