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여진을 만나다
여진의 여러 군벌들이 움직인다는 소문.
북방에서부터 불길한 소문이 흘러나왔다.
군부는 항상 그들의 움직임에 주의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현 상황에…….’
하후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궁의 일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그냥 동창을 친다면?’
동창에 동조하는 수많은 대신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동창을 친다는 의미는 황제를 치기 위한 사전 움직임이라 모함할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탄핵감을 스스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결국 동창을 칠 수밖에 없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는 도중 황제의 명이 내려온다면?
북방의 여진을 상대하기 위해 군부는 출진해야만 한다.
똑똑.
“대장군님, 검제께서 오셨습니다.”
‘검제가? 걸황이 아니고?’
하후도는 의문이 들었다.
“안으로 모시게.”
그는 안으로 들어서는 이휘연을 반갑게 맞이했다.
“검제, 어서 오시오.”
“늦은 시간에 실례가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게요. 언제든지 오셔도 괜찮소이다.”
“고맙습니다.”
“앉으시지요.”
하후도와 이휘연은 자리에 앉았다.
“대장군께서는 고민이 많은 얼굴이십니다.”
“허허허. 그게 눈에 보이는구려. 맞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볼까 생각 중이었소. 혹시 그 소문을 들었는지?”
“북방의 여진이 움직인다는 소문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소. 좋지 않은 상황에 하필이면 그놈들이 움직이는 것 같소이다.”
“아직 모르시군요.”
“무엇을……?”
“동창과 그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하더군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북방 여진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하후도의 눈이 커졌다.
‘검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역적질이 분명하다.’
동창을 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검제, 증거가 있습니까?”
“찾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인멸할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장, 이놈이…… 천인공노할 짓을 하다니……!”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대장군을 제거하기 위함이지요.”
“…….”
하후도도 모를 리 없다.
“혹시…… 이번 일에 황제도 관련이 있소이까?”
“없다고 볼 수 없겠지요.”
“그렇군요. 알겠소이다.”
하후도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변했다.
고민 속에서 미적거리던 것들을 정리한 듯 보였다.
‘북방의 여진까지 부른 황제라면 폐위를 시킬 명분이 되고도 남는다.’
문제는 증거였다.
“검제, 빨리 증거를 찾아야지 않겠소이까? 시간이 늦어지면 본인이 전쟁터에 나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제가 찾아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휘연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 궁금했다.
“부장이 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걸황이?’
“그들이라면?”
“북방 여진의 수장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
하후도는 순간 흠칫했다.
여진의 수장을 만나러 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위험한 일이 틀림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걸황이란 별호는 무림인을 지칭하는 것일 뿐.
하지만 하후도는 남하림의 진정한 신분에 대해 몰랐다.
“동창을 잡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며 급히 갔습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적진에 혼자서 갈 수 있습니까? 게다가 여진의 수장을 만난다고 해도 그들이 내려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지 않소이까?”
“부장에게도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는 무턱대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휘연이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자신의 몸을 아끼는 사람이 바로 남하림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만…… 왜 검제께서는 함께 가지 않았는지…….”
“만일을 위해 남아 있으라고 하더군요. 북방에는 유 소저와 함께 떠났습니다.”
“아, 미령과 함께라면…….”
먼 길을 남녀 둘이 간다면…….
하후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장이 떠나면서 대장군께 남긴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북방 여진이 물러난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핑계를 대면서 황궁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전했습니다.”
“알겠소.”
황궁을 떠나는 순간 황제나 동창에게 반격을 받을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잘 버티면서 새로운 황제에 오를 황족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
남하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새로운 황제.
현 황제는 폐위시키겠다는 뜻.
다만 무림인이 황궁의 일에 나서는 부분이 걸렸다.
“대장군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압니다. 하나, 부장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충분합니다.”
“걸황에게…… 본인이 모르는 신분이 있다는 말이오?”
“그건 나중에 부장이 직접 알려 드릴 것입니다.”
“……믿겠소. 그렇다면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후도는 결정을 내렸다.
‘현 황제는 물러날 수밖에…… 없다.’
* * *
두두두두-
붉은빛의 갈기가 휘날리는 여섯 마리의 말.
육두마차가 빠르게 움직였다.
마차 안은 거칠게 움직이는 밖과 달리 편안했다.
남하림은 유미령은 마차 안에서 마주 앉았다.
작은 공간에 둘만 남아 있는 것은 처음.
“내일 정도면 심양에 도착할 겁니다.”
“아…… 네.”
유미령의 목소리는 작았다.
“어디 아픈가요?”
“…….”
눈치도 없이…….
단둘이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혹시 생리 현상 때문이라면…….”
찌릿!
유미령은 곧바로 남하림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렇다는 거죠.”
“됐습니다.”
유미령은 고개를 창문 밖으로 돌렸다.
‘뭐야…….’
그녀는 밖을 보고 있어도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하림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아니, 옆을 보면 안 되나요?”
“밖을 보는 것보다 소저를 보는 게 더 재미있어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말 그대로 나를 신경 쓰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말입니다.”
“괜히 따라온 것 같군요. 심심하면 북방도 구경할 겸 같이 가자고 하질 않나…… 여진 한복판을 혼자 간다고 해서 왔더니…….”
“하하, 그러게요. 나도 해본 말이었는데 정말 따라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소이다.”
“……지금이라도 갈까요?”
“가긴 어딜 간다는 말입니까? 이왕 가는데 편안하게 가시죠.”
“지금 당신이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안 보이나요?”
“심심할까 싶어 그랬죠. 이제 조용히 있겠습니다.”
“그게 좋겠군요.”
마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반각.
아니, 반각도 되기 전이었다.
“유 소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소이다.”
‘반각도 안 가네.’
그녀는 다시 눈을 흘기며 남하림을 보았다.
“조용히 있는다면서요.”
“중요한 일이라서.”
“……좋아요. 말해봐요.”
“만일 은하성주인 그분과 내가 싸운다면 어떻게 하겠소?”
“……!”
유미령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문제였다.
이 자리에서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문제는 지금 말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우문현답이군요. 유 소저의 말이 맞네요.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죠.”
다가닥.
달가닥.
육두마차가 천천히 마을에 들어섰다.
심양 마을의 초입.
걸비의 정보에 의하면 여진의 군대는 심양 밖에 있는 심하에 주둔하고 있었다.
유미령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마을이 조용하네요.”
“여진들 때문일 겁니다. 긴장이 될 수밖에 없죠.”
두두두두두두-
멀리서 기마의 소리가 들려왔다.
육두마차를 모는 마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저어…… 공자님…….”
“마차를 멈추세요.”
히이이잉!
마차가 멈추었다.
덜컹.
남하림은 밖으로 나오기 전, 언제 준비했는지 마차 안에 놓인 서랍에서 백색의 모피 외투를 건넸다.
“밖은 추울 겁니다.”
“……고마워요.”
사실 내공이 강한 그들은 이 정도의 추위는 충분히 참을 수 있다.
‘언제 이것을…….’
유미령은 세심한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
“공자는?”
스윽.
남하림도 안에서 또 다른 백색 외투를 꺼냈다.
“내 것도 여기 있습니다. 나가죠.”
덜컹.
남하림은 문을 열고 마차 밖으로 나왔다.
여진의 기마대였다.
그들이 마차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기마대 수장 완두요가 백색의 모피를 걸친 두 남녀를 내려다보았다.
북방에서 보기 힘든 모피 외투와 육두마차.
그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우리 부부는 장사꾼이외다.”
스윽.
유미령은 고개를 돌려 남하림을 보았다.
‘부부?’
휙!
남하림은 익숙한 듯 모피 안에서 작은 호주머니를 사내에게 던졌다.
탁.
완두요는 호주머니를 낚아챈 뒤 끈을 풀어 속을 확인했다.
‘흐음.’
황금빛을 내는 금원보가 들어 있었다.
인상을 쓰던 그의 표정이 단번에 풀렸다.
휘익!
그는 말 아래로 내려섰다.
남하림과 유미령을 바로 앞에서 살폈다.
모피의 가격 또한 상당히 귀해 보였다.
그의 목소리가 편안하게 풀렸다.
“하하하! 심양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본인은 이번에 새롭게 북방삼성의 물류를 맡은 북방물상의 주인이외다.
북방에서 장사를 하려면 당연히 북방의 주인에게 인사를 드려야지 않겠소이까?”
“북방물상…… 의 주인?”
“그렇소이다.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북방상국은 조만간 망할 것이외다. 그 전에 본인이 북방물상을 인수했지요.”
“아하…… 그렇소이까?”
북방 여진은 상업을 위주로 한 무장군벌이었다.
북방물상의 주인이라면 그들에게는 최고의 손님이나 마찬가지.
“교창안이란 분이 계신 걸로 압니다.”
“아…… 네. 건주의 주인이십니다.”
“그렇습니까? 혹시 그분을 만나 수 있을는지요.”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당연히 만날 수 있었지만…….”
완두요가 말을 흐렸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혹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중원으로 내려온다는 게…….”
“벌써 소문이 났습니까?”
완두요는 깜짝 놀랐다.
중원에서 모르도록 극비에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아직 중원인들은 잘 모르고 있을 겁니다. 우리들 같은 장사꾼들에게는 소문이 돈줄이라서. 민감한 편이지요.”
“아…….”
남하림은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분께 여진의 세상을 위해서 거래를 할 게 있다고 전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
“그리고…… 그분을 만나게 해준다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
“…….”
완두요는 마음이 이미 움직였다.
“알겠소이다. 마을에 가면 객잔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기다리고 계시지요.”
“고맙습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남하림은 고개를 숙였다.
두두두두-
여진의 기마대가 마을 밖으로 사라진 후.
남하림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부부라고 했나요?”
“아, 사전에 말을 좀 맞출 걸 그랬나요.”
“왜 부부라고 했죠? 다른 사이도 많은데.”
“닮지도 않았고, 단둘밖에 없는데 남매나 친한 사이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싶어서. 추운데 빨리 갑시다.”
“…….”
반각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을 중앙에 객잔이 나타났다.
마차에서 먼저 내린 남하림은 문을 잡은 채 옆에 섰다.
“부인, 내리시지요.”
“…….”
남하림의 전음이 들렸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마워요.”
유미령은 남하림의 손을 잡으며 마차에 내려섰다.
스윽.
남하림은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섰다.
후웃.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붙은 작은 먼지를 입으로 불었다.
“이상한 게 묻어 있었소이다.”
“아…… 네에.”
“들어갑시다.”
남하림은 앞장서며 객잔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객잔 안에 많은 손님들이 시선이 모였다.
백색의 모피 외투를 두른 젊은 남녀.
한눈에 봐도 부유함이 느껴지는 두 사람.
남하림과 유미령을 보는 손님들의 눈빛은 가지각색이었다.
“부인, 저곳이 좋겠소.”
“네. 그렇게 하죠.”
두 사람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후다다다-
점소이가 달려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바빠서…….”
“괜찮네. 간단히 요기나 할 게 있으면 내오게.”
스윽.
남하림은 탁자 위로 은화를 한 닢을 내밀었다.
“여기가 왜 이리 더럽지?”
스으윽.
점소이가 걸레질을 하자 탁자 위에 은화가 사라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고는 입이 찢어질 듯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때,
스윽.
건너편 탁자에서 한 명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남하림과 유미령의 탁자 곁으로 다가왔다.
“두 분께서는 어디에서 오셨소이까?”
“누구신지?”
“모용세가의 모용진이오.”
그는 오가련 소속의 모용세가였다.
[심민에 모용세가가 있어요.]
심양에서 모용세가의 인물을 만날 줄이야.
“하북에서 왔소이다.”
“무슨 일로 먼 곳까지 오셨소?”
“장사꾼이 어딘들 못 가겠소이까?”
“어…… 상가의 인물이었소? 보기에 무림인인 줄 알았소이다.”
“그런가요?”
모용진은 슬쩍 유미령의 얼굴을 살폈다.
“그대의 부인께서 상당히 미인이군요.”
“맞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부인이지요, 하하하.”
남하림은 마치 팔불출처럼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유미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근데…… 이런 미인이신 부인과 단둘이서만 이 험한 곳에 왔소이까?”
“무슨 문제라도?”
“그게 아니라, 중원과 달리 이곳에는 이상한 놈들이 많소이다.”
“아…… 하하, 무슨 뜻인지 알겠소이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안 합니다.”
“그렇소이까?”
스윽.
모용진은 허락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장사를 한다고 하는데 무슨 장사를 하는 것이오?”
“장사꾼은 이것저것 돈이 되는 것이면 다 거래를 하지요.”
“그런가? 돈이 된다면 혹시 미인도 팔 수 있는지…….”
유미령이 차갑게 인상을 썼다.
“하하하! 농담이외다.”
“그만 가는 게 좋겠소이다.”
“허어…… 농담이라고 하지 않았나?”
“세상에는 농담을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소이다. 모용세가에서는 세가주의 부인도 돈이 필요하다면 팔 수 있나 보군요.”
“뭣이!”
모용진은 벌떡 일어나며 남하림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