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북방여진
금의위는 새롭게 개편되었다.
하후도는 금의위 수장인 지휘사로 막풍을 천거했다.
황제는 하후도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곧바로 막풍을 금의위의 수장 지휘사로 임명했다.
막풍은 수장이 되는 동시에 동창을 상대하기 위해, 금의위의 입지부터 다졌다.
“동창이 창천의 명을 받는 게 확실하다면, 없애 버리면 안 되나요?”
팽유도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금의위를 눌러버린 것처럼 동창도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유도,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금의위는 직접적으로 하후 장군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어. 하지만 동창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무작정 칠 수 없단 얘기지.”
“명분이 없는 건가요?”
“맞아. 황궁 신하들은 동창의 힘을 싫어한다고 하지. 근데 웃긴 게, 동창도 황궁의 일이니까 무작정 없앤다고 하면 반발한다는 거야.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군부나 동창이나 같은 황궁, 같은 부류라는 것이지. 더구나 무림인이 나서는 건 더 싫어하고.”
“현천에서 나선다면요?”
“현천에 대해 아는 사람은 황제밖에 없어.”
“아항,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들을 치기 위해서는 동창과 무림의 창천이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서 알려야 한다는 것이네요.”
“정확히 봤어.”
“하림 형, 근데 동창에서 가만히 있으면 방법이 없지 않나요?”
“흐흐흥, 현천이 여기 지하에만 있는 건 아니더라고.”
“황궁에도 현천 소속의 인물이 있다는 말인가요?”
“당연히. 그러지 않고서야 황궁을 어떻게 관리하겠어. 안 그래?”
황궁의 주인은 분명 황제였다.
하지만 황제도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수명은 짧았다.
황제라 해도 영원히 살 수 없었다.
그는 황궁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스쳐 가는 객일 뿐.
황궁을 수백 년 동안 지키면서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고 사는 인물들은 따로 있었다.
환관.
수많은 황조가 바뀌어도 환관들은 변함없이 황궁에서 지냈다.
그렇게 본다면 황궁의 실질적 주인은 환관이라 할 수 있었다.
현천 또한 수많은 환관들을 모두 관리할 수는 없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환관들을 관리할 수 있는 조직.
동창처럼 눈에 띄지 않으면서 막강한 힘을 지닌 곳이 필요했다.
이번 황조에서도 이는 당연했다.
서집사창.
즉, 서창의 수장에 현천의 인물을 앉혔다.
* * *
동창으로 돌아온 유장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걸황 남하림.
중원 무림에서 최고의 인물로 부상한 젊은 개방도.
하후도의 곁에 그가 함께하고 있었다.
‘괜히 건드렸다.’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는 창천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구천마제는 황궁조차 얻고자 했다.
진정한 중원의 통일.
무림을 구천마성 아래로 꿇린 구천마제는, 마지막으로 황궁에 눈을 돌렸다.
물론 황제를 죽인다고 해서 간단히 황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가 될 수밖에 없는 명분이 충족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구천마제는 차선으로 황제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황궁에는 구천의 현천이 존재했다.
무림에 퍼져 있는 다른 구천과는 달리, 현천은 도저히 실체를 잡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창천은 현천을 잡기 위해 동창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개 환관이었던 유장을 동창의 수장까지 올려준 인물이 천령자였다.
유장 또한 처음에는 그들의 신분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가 무공을 익힌 후에야, 천령자는 자신이 창천의 전령이며 구천마제의 수하라 밝혔다.
그들이 유장에게 원하는 것은 현천의 존재를 밝혀내는 것.
그런데 유장이 현천의 존재를 찾는 동안, 구천마성이 무너졌다.
내심 잘된 일이라 여겼다.
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구천마성이 사라진 것이니까.
하지만 고작 일 년이 지난 후.
천령자가 다시 나타났다.
구천마성이 무너졌을 뿐, 창천은 건재하다면서.
여전히 그가 원하는 것은 현천의 행방.
하지만 수십 년을 찾아도, 현천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이 혹시 거짓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
유장이 의심을 품자마자, 천령자의 수장인 천령강령이 나타나 그를 협박했다.
그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동창 수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임에도 말이다.
창천에 반감이 들기 시작한 유장은 결국 몰래 구천신품의 비밀까지 풀어보고자 했다.
스윽-
목에 걸려 있는 붉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만졌다.
‘이건…….’
붉은 보석에 구천마제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구천신품.
동창의 수장이 되면서 황제에게 하사받은 선물이었다.
황제에게는 두 개의 구천신품이 있었다.
무너진 구천마성의 성터는 무림맹의 눈치 때문에 무림인들이 대놓고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던 도중, 나라에서 군사들의 병영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물건들이었던 것.
그중 하나는 하후도가, 다른 하나는 그가 받았다.
황제에게 들어간 두 개의 구천신품.
현천에서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하후도와 유장에게 넘어가지 않았을 터였다.
설마 그 물건들이 구천신품일 줄은 현천이라 해도 알지 못했다.
‘음…… 최선의 방법을 택해야 살 수 있다.’
유장은 현 상황에 대해 똑바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동창의 임무에는 황궁뿐만 아니라 중원 무림의 감시도 있었다.
황궁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 그였지만, 중원 무림의 상황은 똑바로 파악하고 있었다.
‘걸황은 양천의 전인이라 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현천의 전인이 되었다고 들었다.’
남하림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우겼지만, 당연히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스으으으-
그때,
차가운 기척.
천령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떡!
유장은 급하게 일어섰다.
다른 때와 달리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오셨습니까?”
“마치 나를 기다린 것 같군.”
“…….”
“걸황 때문인가.”
“맞습니다. 그자가 나타났습니다. 거기에다…… 그자가 현천의 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황제에게 직접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골치가 아프군. 걸황이 현천의 전인이라니.”
천령강령도 새로운 사실에 망설이듯 생각에 잠겼다.
‘음…… 어쩌면 잘된 것일 수도 있겠어.’
그들은 오랫동안 현천의 전인을 찾고자 했었다.
이제 걸황을 잡는다면 현천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
“우선 계획대로 하후도를 황궁에서 치우는 게 순서겠군.”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곧바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하후도를 처리하기 위한 계획.
그들은 북방의 여진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만…… 하후도가 황제의 명을 받을지 모르겠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황제를 믿지 않겠지만, 그는 나라에 충성하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조정의 많은 신하들이 나서고,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출군을 할 것입니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일은 없는가? 표정을 보니 뭔가 망설이는 것 같더군.”
“아닙니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유장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휴우……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겠어.’
* * *
천령강령은 황궁 밖으로 나왔다.
현천의 전인에 대해 보고하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때,
뚝.
순간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어떤 놈이지?’
미세하게 느껴지는 기척.
천령강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음.’
한 방향에서 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군.’
파앗!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이 정도는……!’
단 한 사람의 기.
느껴지는 기의 양을 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상대다.
타앗!
천령강령이 기가 흘러나온 장소에 내려섰다.
‘허어, 이놈이……!’
놈이 빠르게 도망을 가고 있었다.
마치 토끼 사냥을 하는 것처럼 재미있다는 듯,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훗, 내 앞에서 도망을 가겠다고? 얼마나 멀리 가는지 봐주지!”
긴장이 완전히 풀렸는지, 쫓아가면서도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심심했거늘. 잘 만났군.’
타앗!
천령강령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신법을 펼치며 도망가는 인물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휘이익!
그때,
‘뭐지?’
갑자기 양쪽에서 빠르게 다가와 함께 움직이는 기척이 느꼈다.
‘어떤 놈이냐!’
천령강령은 신법을 거두며 멈췄다.
그와 동시에 좌우에서 함께 움직이던 두 명의 인영도 신법을 멈춰 섰다.
‘이들은…….’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볼 수 있는 복장.
“일황사제……!”
“당신이 창천의 인물인가 보군요.”
“걸…… 황이오?”
“그렇소이다.”
천령강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앞서 도망을 가던 인물이 돌아와 모습을 드러냈다.
덩치가 큰 앳된 청년.
“궁아. 수고했어.”
“네, 대형.”
‘유인책에 당했다.’
함정에 빠진 게 틀림없었다.
“창천에서 동창에 볼일이 많은 모양이외다.”
“…….”
“웬만하면 황궁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했는데…… 창천은 욕심이 정말 많군요.”
황궁에서 창천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현천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만 황궁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면 물러갈 수 있소이까?”
“…….”
남하림의 물음에 천령강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흐음, 그럼 우선 당신을 잡은 뒤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겠군요.”
“걸황, 그대의 무공이 강한 줄 알지만,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타앗!
천령강령은 몸을 뒤로 날렸다.
상대가 세 명인 상태에서 힘들게 싸울 필요는 없다.
걸황의 무공에 대한 위명은 자자하게 들었다.
그 혼자 걸황을 오롯이 상대하기엔 실력이 모자랄 수 있지만, 신법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거 참. 재미있게 사네. 그럼 한번 달려볼까.”
휘리릭!
남하림은 곧바로 만리추풍신법을 펼쳤다.
앞서 움직인 천령강령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신법은 먼저 움직인 자가 유리하다.’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건만.
그는 이내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했다.
“왜 이리 늦소?”
남하림의 신형.
천령강령을 추월하여 앞을 막아섰다.
‘이렇게 빠르다니……!’
천령강령은 신법을 멈추고는,
파앗!
곧바로 검을 꺼내어 남하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쉭-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남하림의 목과 허리, 가슴을 향해 검기가 동시에 쏟아졌다.
번쩍!
남하림은 무단의 기를 단숨에 쏟아냈다.
터어어엉!
황금호신기가 천령강령의 검기를 밀어냈다.
삼 장 뒤로 밀러난 천령강령의 전신에 내력이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단전에 내력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무거운 기운에 의해 막혀 버린 듯했다.
그가 당황한 눈빛으로 세차게 흔들렸다.
“후후후, 당장 죽이지는 않겠소이다. 몇 가지만 알아본 뒤 결정을 내리지요.”
픽픽픽.
남하림은 천령강령의 혈을 눌렸다.
‘으…… 으…… 정. 신을…….’
온몸에 힘이 빠지며 정신이 사라지고 있었다.
* * *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회주님.’
서창 지휘사 신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천의 수장 남하림이 들어섰다.
그 뒤로 이휘연과 황보궁이 함께했다.
특히 황보궁의 어깨에는 정신을 잃은 사내가 업혀 있었다.
“회주님, 오셨습니까?”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아닙니다.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됩니다.”
“고맙소이다.”
황보궁은 여전히 천령강령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내려놔라.”
“네, 대형.”
툭.
황보궁은 짐짝을 바닥에 내리듯 사내를 떨어뜨렸다.
“회주님, 이자가 누구입니까?”
“창천의 인물이 맞을 겁니다.”
“창천……!”
신공은 다시 한번 더 바닥에 쓰러진 그를 쳐다보았다.
“단전을 막아놓았으니 무공을 사용할 수 없소이다. 이자를 조사하면 동창과 연관이 있을 것이외다.”
“회주께서 직접 수고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기회에 창천과 연결이 된 동창 놈들을 발본색원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신 지휘사께서 황궁에 계시는 한 허튼짓을 할 인물은 없을 것 같군요. 잘 부탁드리겠소이다.”
“회주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현천의 회주는 음지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신 지휘사께서 열심히 나서줘야 황궁과 무림이 편하게 지내겠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이놈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정보를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이다.”
“아 참, 그리고 방금 들어온 정보가 있습니다. 동창에서 북방의 여진에게 서신을 다급히 보냈다고 했습니다. 미리 중간에서 막아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동창에서 반역을?
서창에서 알아낸 게 사실이라면 명백한 반역의 행위였다.
“동창에서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증거가 있어야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조심스럽게 유장의 방을 조사하도록 시켰습니다.”
“고생이 많군요. 부탁하겠소이다.”
“아닙니다. 소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그럼 그만 가보도록 하지요.”
“증거를 찾는 즉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신공은 고개를 숙였다가 바로 하자, 집무실에는 정신을 잃은 천령강령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밖을 향해 소리쳤다.
“밖에 누구 없느냐?”
* * *
동창에서 북방의 여진에 서신을 보냈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만통자는 표정이 굳어진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서창에서 들어온 정보.
북방 여진에게 서신을 보냈다면…….
그들은 전쟁을 원하는 것이었다.
북방의 여진이 중원에 나설 때는 아직 멀었다.
“회주님, 그들이 나서기에는 아직 시기가 멀었습니다. 막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이기든지 그건 의미가 없습니다. 여진과 하후도 장군은 만나서는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나 또한 보았으니까.”
남하림은 현천주에서 황궁의 미래에 대해 읽었다.
“그들이 중원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는…….”
만통자는 중간에 말을 멈추었다.
“내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현천의 전인.
남하림이 해야 할 일이었다.
“현천도 많이 바쁘네요. 황궁 밑에서 놀고먹는 줄 알았거든요.”
“회주님. 왜 제가 만통자란 별호를 얻었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놀랐어요.”
“…….”
“아하하, 농담입니다. 앗, 혹시 그걸로 마음이 상한 것은 아니겠죠?”
스윽-
만통자는 자리에 일어나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었다.
“흥, 뭐 하십니까? 먼 길입니다. 빨리 움직여야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