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현천의 전인
중원 무림의 새로운 희망.
정파 무림연합이 다시금 일어났다.
중원인들의 시선은 남양성에 들어설 신무맹의 장소에 모아졌다.
하남 남양성으로 향하는 여덟 명의 일행.
그들 앞을 막아서는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일황사제의 앞을 막아서겠는가.
게다가 마교의 전대 고수 탈혼마제까지 일행에 함께한다고 한다.
걸협오성 시절부터 익히 알려져 있었다.
걸협오성은 도전자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매섭게 대한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일황사제로 별호가 바뀌었다고 해도, 세상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미친 인물들이 존재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일황사제를 이용하려는 이들.
걸협오성은 목숨을 걸지 않는 이들은 비무 후 곱게 살려 보내진 않았다.
“유도 형, 뭐랄까? 맞기 전에는 아픈지 모르는 모양인가 봐.”
“맞아, 궁아. 가끔씩 그런 사람들 있잖아. 아닌 줄 알면서도 꼭 하는 사람들. 태생적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지.”
남하림은 어설프게 덤비는 인물들에게 분명히 경고를 보냈다.
#NAME?
심심할 정도로 따분한 날.
공사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일행은 현장의 규모에 감탄했다.
“이곳이 신무맹인가요?”
“와우…… 정말 크네.”
신무맹의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 완공되어 있었다.
주위에 마무리 공사만이 남아 있었다.
남하림은 일단 규모가 마음에 들었다.
‘정주에 있던 예전 무림맹보다 커서 좋아.’
황보궁은 한참을 보다가 궁금한 게 생겼다.
신무맹 주위에 있어야 할 게 보이지 않았다.
“대형, 성벽이 없지 않나요?”
황보궁의 말처럼 신무맹에는 높은 성벽이 보이지 않았다.
일 장 정도의 담만이 보였다.
“굳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신무맹에 올 정도로 간 큰 사람이라면 성벽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성벽이 너무 높아 보이면 폐쇄적이지 않을까 싶다.”
“아…… 하, 그런 뜻이 있었네요.”
신무맹은 중원 무림인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중원 무림에 도움을 주기 위한 곳.
때문에 항상 안과 밖을 볼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그만 내려가 볼까요?”
* * *
양삼과 동진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남하림을 반겼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오랜만이야.”
남하림은 양삼을 껴안았다.
그와의 관계를 잘 아는 네 명과 달리, 이보다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처음 본 유미령은 살짝 놀랐다.
남하림은 이번에는 동진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진부도 잘 지냈어?”
“공자님, 보고 싶었어요!”
“나도다.”
양삼이 이휘연을 포함한 네 명과 시선을 마주쳤다.
“네 분들도 오랜만입니다. 항상 소식들을 듣고 있습니다.”
“양 총관, 살이 빠진 듯하군요. 고생이 많소.”
“공자님께서 일을 계속 가져다주시니 쉴 시간이 없습니다.”
“못된 상관이군요.”
“검제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주인을 잘못 만난 모양입니다.”
남하림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려 준극남과 시선을 마주쳤다.
볼 때마다 예기가 점점 강해졌다.
“주군을 뵙습니다.”
“잘 지냈습니까?”
“소신을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북방상국을 상대로 큰일을 했더군요. 준 호위께서 수고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준극남의 등 뒤로 창이 보았다.
명장 전기에게 부탁하여 만든 창이었다.
“주군께서 하사하신 창을 며칠 전에 받았습니다. 소신에게 너무 과분한 물건입니다.”
“무슨. 좋아 보이는걸요.”
남하림도 그의 신창이 마음에 들었다.
스윽.
일행과 간단히 인사를 마친 양삼이 앞으로 나왔다.
“공자님, 들어가시지요. 신무맹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디, 한번 볼까?”
* * *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신무맹 맹주가 앞으로 지낼 장소에 들어왔다.
여기는…….
남하림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양삼도 은근히 재미있어.”
“감사합니다.”
눈앞에 정원이 보였다.
특별하게 별다른 정원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할 정도.
하지만 이곳 정원은 그곳과 똑같았다.
“뭐야, 이것들까지?”
정원을 꾸며놓은 작은 소품들이 눈에 익숙했다.
남천상국 삼 공자 시절.
그때 그 시절 정원 모습과 같이 재현한 것이다.
“마음에 들어. 앞으로 그곳에서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남하림은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정원 옆에 세워 놓은 작은 정자도 그때와 같았다.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 없습니다. 공자님께서는 중원 무림을 위해 고생하시지 않습니까.”
“후후후.”
양삼의 마음이 고마웠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주인을 잘못 만나서 고생만 하고 있다.
정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거…… 진짜 집에 있는 것 같군.”
양삼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둘은 잠시 동안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때였나? 내 말이 씨가 된 것 같아.”
“…….”
남하림은 예전 일이 생각났다.
“상무우 사부에게 무공을 배운 뒤 여기에 함께 앉아 있었지. 사부가 물으시더군.”
“사내가 무공을 배울 때는 한 가지 목표만이 있어야 한다. 너의 목표는 무엇이냐?”
“천하제일인이죠!”
“자신 있느냐?”
“제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걱정 마세요. 꼭 사부님을 천하제일인을 키운 분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아마 그분께서 공자님을 보시면서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하는데 말이야. 괜히 양천의 전인으로 만들어 줘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잖아.”
“아…… 네에…….”
양삼은 좋다는 말인지 싫다는 말인지 헛갈렸다.
“그리고…… 북방상국 일에 대해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아, 어떻게 되고 있어?”
“이번에는 완벽하게 증거를 잡았기에 중원에 유통되는 북방상국의 자금에 대해서 제재를 가했습니다. 현금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자금이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번 기회에 북방상국을 노리고 있겠지?”
“네 곳의 상국에서 모두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이번이 북방상국을 잡아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맞습니다. 당연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린?”
남하림은 양삼의 능력을 믿었다.
이미 행동에 들어갔을 게 분명했다.
“북방물상에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북방물상.
북방상국의 물류를 책임지는 업체였다.
“북방물상이라면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사업인데…… 좋은 생각이야.”
“맞습니다. 북방물상은 돈도 잘 안 되고 힘든 사업체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잡는다면 하북성을 비롯하여 북방 삼성까지 단번에 물류 유통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북방상국에서도 그것만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도록 방어를 하지 않겠어?”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백유진이란 인물이 상주입니다. 백진만의 사촌으로 오랫동안 북방물상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흐음…… 치고 들어가기 힘들지 않을까? 사촌이라면?”
“다행히 백진만에게 무시를 당한 듯합니다. 마약 사업에 주력이었던 그들 입장에서 북방과의 물류는 고생만 하고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긴 백진만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겠지.”
“우선 북방물상을 잡기 위해 그들과 거래를 하는 하청 물류부터 공략을 하고 있습니다. 북방상국에서 자금이 돌지 않으니 거래 업체들은 피가 말릴 정도로 힘들 것입니다.”
“좋은 방법이긴 한데, 거래처들이 너무 많지 않나?”
“공자님, 그들 업체 중에서 큰 업체로 서너 개만 움직이면 됩니다. 단숨에 밀어붙인다면 북방물상은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좋아. 이번 기회가 아니면 북방상국을 무너뜨릴 수 없어. 수고 좀 해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 과정에서 공자님의 이름을 조금 팔아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
“고맙습니다. 북방물상만 가져온다면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하림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북방상국, 이젠 네놈들도 끝이 보이는군.’
* * *
북방상국은 침울했다.
중원 상권에서 그들의 자금 유통을 막아내자 하나둘씩 아래에서 민원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타아앙!
백진만은 책상을 내리쳤다.
“망할 놈들…… 지금까지 누구 때문에 잘 먹고 잘 살았건만…….”
민원이 적힌 서신의 내용들은 하나같이 자금이 없으니 물건값을 보내달라는 독촉 요구였다.
“내금당주는 어디에 있지?”
북방상국의 재정을 담당하는 인물.
반시진 전에 불렀건만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후다다닥!
그때,
다급히 국주실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국…… 국주…… 님!”
“무슨 일이냐?”
“그게…… 내금당주가…… 황금을 싣고…….”
“똑바로 말을 하지 못할까?!”
“도망을…… 갔습니다.”
휘익!
백진만은 벼루를 잡고 던졌다.
“뭣이! 황금을 갖고 도망을……! 커어억!!”
그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 개…… 새…… 끼를 당장 잡아라!”
“저어…… 그게 무사들을 보냈지만…… 그놈들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
백진만은 어이가 없었다.
황금을 훔쳐 달아난 내금당주.
그놈을 잡으러 갔던 놈들도 함께 도망을 갔다.
망했어.
망했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북방상국 없이 중원 상권은 북방의 흑룡강, 길림 요녕성인 삼성과의 무역을 할 수 없다.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단 북방물상이 굳건하게 건재하여야 했다.
평상시에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체가 아니었다.
마약이 중점이었던 그들은 본래 북방 삼성의 물류 유통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현재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사업은 북방상국만이 가능한 북방물상이 유일했다.
“백유진. 내가 서운하게 했지만 같은 집안이니…….”
북방물상의 주인 백유진은 그와 사촌이었다.
“그를 한 번 만나 봐야겠어.”
백진만은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 * *
그 시각.
탁자 사이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그들의 앞에는 계약서가 두 장 놓여 있었다.
쿠욱.
쿡.
한 장씩 직인을 찍은 뒤 서로 교환을 하며 다시 찍었다.
“허허허, 백 상주, 끝났소이다.”
북방물상의 주인 백유진은 계약서를 보면서 시원섭섭했다.
북방 삼성의 물류를 책임지는 중요한 사업체이지만 다른 사업에 밀린 탓에 무시를 받은 적이 많았다.
최근 들어 갑자기 자금 사정이 좋지 않게 되자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믿고 있던 업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백 상주, 이젠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소이다.”
북방물상에 인생을 전부 바쳤던 그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본 총관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북방물상을 잠시 맡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총관께서 북방물상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시는 분이시라 하더군요. 특별히 부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중년인은 그에게 한 장의 서신을 전해주었다.
양삼이 보낸 서신.
백유진은 서신을 읽어 내렸다.
서신의 내용은 정중하게 적혀 있었다.
수장의 자리에 맡아 달라는 내용과 함께 북방 삼성과 중원 물류에 대한 청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것에서 북방물상이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었다.
사업 내용은 오래전부터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다.
“……알겠소. 그분의 뜻을 따르겠소이다.”
* * *
일행은 하남성을 넘어 하북성으로 들어섰다.
중간중간에 하후도 대장군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보름 정도면 황궁 근처에 도착을 한다는군.”
“하림 형, 동창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텐데.”
팽유도의 말이 맞았다.
대군을 끌고 황궁으로 오는 것만으로도 황제에 대한 불충이었다.
“그렇지. 함부로 황궁으로 군사를 끌고 올 수는 없지. 일단 대군을 근처에 주둔시킨 뒤 황제를 뵙겠다고 하더군. 우린 그때 대장군과 함께 움직이는 걸로 하자.”
“알겠어.”
이번 일은 무림의 일이 아니기에 조심스러웠다.
멈칫.
“어?”
앞서 가던 팽유도가 걸음을 멈추었다.
길가에 앉아 있는 노인.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하림 형, 만통자님이신데?”
“또 무슨 일이야?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군.”
앉아 있던 만통자가 다가왔다.
“걸황이라고 불러야겠지?”
“노인장 편할 대로 하세요.”
“허허허. 걸황이라고 해서 다를 줄 알았는데 변함이 없군.”
“변한 것은 노인장 같은데요?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고 하던데…… 그만 목소리에 힘을 푸시죠.”
“허허허.”
여전히 싸가지 없는 말투를 듣자 반가웠다.
“어휴…… 네놈이 양천의 전인이라니…… 아직도 안 믿긴다.”
“하하, 역시 지금 그 목소리가 노인장한테는 맞다니깐요. 괜히 무게 잡다가 내일 아침에 저기 태양을 못 볼 수도…… 으익.”
휘이익!
만통자의 손이 허공을 지나갔다.
“이놈이! 무공만 갈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싸가지도 더해지는구만!”
“노인장은 참을성이 예전보다 더 없는 것 같은데요.”
열불 내는 만통자와 실실거리며 피하는 남하림을 보면서 탈혼마제는 심각해졌다.
“미령아.”
“네?”
“혹시 나도 저들처럼 보였느냐?”
“…….”
유미령은 대답하기 곤란해졌다.
“어…… 저 정도는…… 아닙니다.”
“알겠다.”
저놈은 원래부터 싸가지가 없는 게 맞았다.
탈혼마제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