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동창을 잡아라
밤하늘을 덮은 구름이 잠시 사라지고.
구름에 가렸던 달빛이 내리비쳤다.
그들 앞에 선 인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반짝.
달빛을 반사시킬 정도로 빛나는 비단 걸복.
그리고, 잠시 드러난 얼굴.
“걸…… 황.”
“내가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군. 단번에 알아보네.”
“당신이 왜 여기에…….”
상대방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걸황이 죽천소에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까.
“볼일이 있으니 온 것이지, 다른 이유가 어디 있겠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들이 찾는 물건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물러가는 게 좋을 거요.”
“걸황……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아시오?”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다고. 난 천하제일대개방의 후개, 걸황이오.”
걸황이란 한마디에 복면인은 다시 묻지 않았다.
“셋까지 세겠소.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그 뒷일은 알아서 하시오.”
“…….”
“하나, 둘, 셋.”
티이이이잉-!
피우우우웅-
‘뭐 이리 빨라!’
죽림 속에 숨겨져 있던 수십 발의 철궁들이 억수처럼 쏟아졌다.
퍽! 퍽! 퍽!
“컥.”
비명조차 나오지 못할 만큼 복면인들의 온몸에 철궁이 박혀들었다.
한 명도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이들이 이리도 쉽게 죽어버린 이유는 간단했다.
남하림의 기세에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철궁을 피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여긴 정리가 됐고…… 본 세력은 저기 뒤에서 넘어오겠지?”
남하림은 돌아섰다.
“걸황, 수고했소이다. 부탁하신 물건들을 준비했습니다.”
“마침 딱 움직이고 있군요.”
하후도는 최대한 집중하며 어둠에 잠긴 늪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끼이이익-
미세하게 들려오는 소리.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다.
“저기…….”
하후도가 목소리를 낮추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가리켰다.
“늪에 불을 붙이세요.”
화공(火功)을 펼치자는 뜻이었다.
하후도는 미소를 지었다.
늪은 완전히 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늪 주위와 위로 불에 타기 쉬운 풀들이 빽빽이 자라나 있었다.
“불을 질러라.”
“옙, 장군님.”
휙! 휙!
수하들이 불을 붙인 뒤 늪을 향해 던졌다.
죽천소의 늪은 단숨에 불이 붙어 타올랐다.
화르르르-
사방으로 점점 번져 나가는 불.
곧이어 비명 소리와 함께, 침입자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아악!!”
사방을 집어삼키던 불은 침입자들이 타고 오는 뗏목으로까지 번졌다.
“불이다!!”
침입자들은 함부로 늪에 뛰어들 수 도 없었다.
그저…….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불에 타서 죽는 일밖에.
휘이이이잉-
남하림은 바람을 일으켰다.
불꽃이 더욱더 강해지면서 열 대의 뗏목 전체로 번졌다.
“크아아아악! 불을 꺼라!!”
그들의 수장이 소리쳤지만 불을 끌 수 있는 물은 늪 중앙으로 가야만 했다.
‘후…… 쉽게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쏴아아아-
남하림의 양손에서 뻗어나간 바람에 뗏목 주위까지 거세게 화염이 솟구쳤다.
‘싸울 때는 과감하구나.’
하후도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적을 대할 때는 인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대단하고도 대담하다.’
남하림을 보는 하후도의 시선.
‘후후,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군.’
일각이 지났다.
죽천소 주위는 불에 탄 흔적으로 가득했다.
“횃불을 밝히세요.”
남하림의 명에 하후도의 수하들이 죽천소 주위에 불을 밝혔다.
살기 위해 늪 속에 뛰어들었던 침입자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저놈들을 때려잡아야죠.”
“알겠습니다!”
채애앵-
수하들이 검을 빼 들며 늪에서 나오는 복면인들을 한 명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스걱-
파아악!
침입자들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하반신은 온통 늪 속에 빠져 있었고, 검은 허리에 걸려 있었으니까.
“딱 한 놈만 살려두세요.”
* * *
따악!
마지막 일인.
복면인의 머리에 타구봉이 떨어졌다.
‘소리가 맑네.’
따다다다닥!
소리가 어찌나 맑은지 연이어 서너 대를 더 때렸다.
“…….”
복면인은 타구봉으로 장단을 맞추는 인물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정신도 없었다.
“걸황, 수하들이 주위를 꼼꼼하게 살폈소이다. 더는 없는 것 같소.”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자가 누구인지 심문을 해보도록 하죠.”
남하림은 마지막 남은 사내의 복면을 벗겼다.
점혈을 당한 상태.
사내는 말만 할 수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디서 왔소?”
“…….”
사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스윽.
남하림은 타구봉을 사내의 팔 사이에 밀어 넣은 뒤 들어 올렸다.
“말을 안 하는군요. 팔을 자르세요.”
“옙.”
양자웅은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스걱-
너무나 깔끔하게 한 팔이 잘려 나갔다.
“아아악!!”
사내는 비명을 질렀다.
툭툭툭.
남하림은 그의 팔에서 피가 멈추도록 곧바로 지혈시켰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하림은 이번엔 반대 팔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대답을 안 할 시 자를 겁니다.”
사내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죽음에 맞이하는 수많은 훈련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공포였다.
훈련에서는 직접 팔을 자르지 않는다.
“팔이 없어지면 여기 다리 하나씩 자르겠지요. 마지막으로는 스스로 죽지 못하게 만들어 길바닥에 버릴 겁니다.”
최악이었다.
차라리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더 낫다.
“다시 시작하겠소이다. 어디서 왔소이까?”
“황…… 궁에서…….”
“그렇군요. 흐음, 그런데 당신은 있을 건 있는 것 같은데. 동창이 일반인도 뽑는 거요?”
“동창이 아니라 금의위 진갑 소속입니다.”
“뭣이?! 금의위!”
하후도가 단번에 노기를 터뜨렸다.
금의위가 어떠한 곳인가.
황제와 황실의 친위 세력군으로 그들을 위해 죽음까지 바치는 자들이다.
그런 친위대에서 자신을 죽이고자 강서성까지 왔다?
하후도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분노에 몸을 떨었다.
더구나 금의위 수장은 한때 그의 부관이었던 인물이다.
“금의위가 미치지 않고서야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더냐?”
“죄, 죄송하옵니다. 그게…… 동창에서…….
“이놈들이 정신 줄을 놓았구나!”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금의위가 동창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말인가? 어허, 어찌 금의위가……! 말세로다!”
“저희들도 명령받은 대로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독동창, 그자를 단칼에 베어 버리고 오는 것을……!”
하후도는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군부에서 물러날 때 동창을 그대로 둔 일이었다.
항상 마음에 걸렸던 일이 눈앞에 나타났다.
“도저히 안 되겠어. 이것들을 전부 때려잡을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하후도가 부장 양자웅을 향해 명을 내렸다.
“양 장군, 전군의 수장들에게 나의 명을 내려라. 당장 황궁으로 집결을 한 뒤 역적 무리 놈들을 칠 것이다!”
“넵, 곧바로 연락을 띄우겠습니다.”
양자강은 아직 한창 일을 할 나이였지만 하후도의 곁을 떠날 수 없어 같이 낙향한 것이었다.
한동안 답답하게 지냈기에 이번 일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양자웅은 고개를 숙였다.
천무대장군 하후도가 군부에 다시금 복귀를 선언했다.
‘노여움이 장난 아닌데?’
남하림에게도 동창을 치겠다는 하후도의 결심이 여실히 보였다.
“다시금 복귀를 하시는 모양이군요. 일이 잘 되었으면 합니다.”
“걸황의 도움이 많았소이다. 이번에 황궁에 올라가거든 동창의 환관 놈들이 함부로 나서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주도록 하겠소.”
천무대장군의 복귀에 부복한 사내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네놈은 당장 금의위에 돌아가라. 그리고 그에게 조만간 내가 올라갈 것이라 알려라.”
‘큰일 났다. 천무대장군이 올라온다면…… 가장 먼저 금의위를 칠 것이다.’
“알겠…… 습니다.”
사내는 좌우 눈치를 보면서 몸을 일으켰다.
‘빨리 가서 알려야 한다.’
* * *
남하림은 유미령과 함께 포양호로 향했다.
“구천신품을 찾는 데 도움을 줘서 고맙습니다.”
“다행히 그분께 쉽게 얻을 수 있었네요.”
“유 소저 덕분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게 거짓말이네요. 세상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흐음, 주위에 거짓말하는 사람만 있었던 모양입니다.”
유미령은 걸음을 멈추고 남하림을 째려보았다.
남하림의 눈동자는 맑았다.
“알겠어요. 믿어드리죠.”
“믿어주겠다니 고맙네요.”
하후도의 일은 좋게 해결이 되었다. 이젠 그녀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유 소저께서는 검문으로 갈 생각이십니까?”
“…….”
유미령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검문에 가는 것보다 이들과 동행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검문에서 수련하는 것도 좋지만 무림을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하려고 해도, 어쩐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자존심이라기보다는 그에게 구차하게 보일까 두려웠다.
검문의 제자이자 차기 검후의 자리를 노리는 그녀이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흐음.’
남하림은 굳이 유미령의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아챘다.
스윽.
그래서 그녀를 뒤에 두고 먼저 걸어갔다.
‘……뭐야? 대답도 안 했는데…….’
무시당한 건가?
‘저게…… 나이도 나보다 어린 게 매번…….’
그러고 보니 항상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처럼 말하곤 했다.
앞서 걷는 남하림의 뒷모습이 보였다.
“…….”
당장 뛰어가서 뒤통수를 한 대 칠까 고민하던 유미령.
휙!
남하림이 갑자기 뒤로 돌아섰다.
“안 갈 겁니까?”
“알았어요.”
유미령은 갑자기 소원 하나가 생겼다.
다시 돌아선 남하림의 뒤를 보며 다짐했다.
‘꼭…… 성공하겠어.’
* * *
두 사람은 곧바로 포양호에 들어섰다.
일행은 정말로 이틀 동안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하림은 그들 옆을 살펴보았다.
“궁이가 제일 많이 잡았구나.”
“헤헤헤헤, 대형. 낚시가 너무 쉬워요. 그냥 던지면 잡혀요.”
“그래?”
황보궁의 옆자리에 앉은 탈혼마제의 주위를 살피자,
“잘한다면서요. 무슨…… 자랑은 혼자서 다 하더니 어떻게 된 겁니까? 잡은 물고기는 전부 어디에 있소이까?”
“…….”
탈혼마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진정한 낚시꾼은 저런 잔챙이는 잡지 않는다. 최소한 두 자 정도의 대물만 낚는 법이지.”
“오호…… 그런가요? 건투를 빕니다.”
일각의 시간이 지났다.
‘이놈의 물고기들이…… 당장 뛰어 들어가서 요절을 내버려야 정신을 차리겠군.’
탈혼마제는 속이 타들어갔다.
남하림은 생각 외로 집요한 성격이라 오랫동안 놀림받을 게 틀림없었다.
꿈틀.
‘왔도다.’
손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아…… 직이다. 좀…… 더……!’
호수 아래.
물고기는 미끼를 완전히 물지 않고 반응을 보는 듯했다.
온몸에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깔짝.
바늘 끝에 강한 입질이 온 순간.
‘지금!’
채애앳!
탈혼마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낚싯대를 사선으로 채었다.
긴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낚싯대.
팽팽한 줄이 수면 아래로 이어졌다.
“걸렸느니라!”
묵직한 무게가 낚싯대를 통해 전해져 왔다.
“크다…….”
일행 모두 탈혼마제를 보며 한마디씩 던졌다.
“조심하세요!”
힘으로 무작정 당겨서는 바늘이 빠지거나 줄이 끊어질 수 있다.
그러니 힘겨루기를 하며 수면 아래에서 놈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놈은 반각의 시간 동안 팽팽하게 상대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놈…… 영리한 놈이군!”
상대가 힘으로 잡아당기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하나 탈혼마제는 무리하게 당기지 않았다.
천천히…….
미세하게 내력을 올리며 당기자, 드디어 수면 위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대물이다.”
“마노…… 다 왔습니다.”
스스스슥!
긴 시간의 사투가 끝이 나는 순간!
“크하하하핫!”
탈혼마제의 대소가 포양호 전체에 퍼져 나갔다.
득의의 미소를 띤 그가 남하림을 찾았다.
척.
남하림은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펼쳤다.
“쪼옴 하시네요.”
* * *
포양호의 근처 객잔에 앉은 일행.
그들 앞에 검이 하나 놓였다.
“장식용이군.”
무인에게 장식용 검은 필요 없었다.
스릉-
이휘연이 검신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찾았다.
“구천신품이 맞군.”
“이걸로 세 개만 더 찾으면 되네요.”
열 개의 물건 중 일곱 개를 찾았다.
찾아낸 구천신품만으로 혹시나 알아낼 수 있을까 살폈지만, 무엇을 가리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론은 열 개 모두 찾아야 한다는 의미.
“부장, 세 개는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남은 세 개의 구천신품.
한 개는 동창의 수장이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얻은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행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뭐, 구하다 보면 나타나겠지. 우선 이것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뭔데?”
남하림은 죽천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려주었다.
“금의위에서 나왔다고?”
“동창의 사주를 받았다고 해서 대장군이 엄청 열받은 모양이더군. 전국에 퍼져 있는 수하 장수들에게 명을 내렸어.”
“천무대장군의 명이라면 거의 대부분 모여들 거야. 황궁이 시끄럽겠구만.”
“아마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부탁하더군. 함께 가주면 안 되겠냐고. 동창에 생각보다 무공을 강한 자들이 많대.”
“하림 형, 허락했어요?”
“당연히. 제독동창에게 우리가 찾는 물건이 있잖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잘됐네. 언제 떠날 거야?”
“한 달 뒤. 황궁에 들어가기 전에 만나기로 했어.”
당무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음으로 물었다.
[부장, 저 두 사람은?]
언제부터 일행과 함께 움직인 두 사람.
유미령, 탈혼마제와 계속 동행을 해야 할지 결정할 시간이었다.
“여기 두 분은 황궁에 가기 싫다면 안 가도 돼요. 여기서 계속 낚시해도 꽤 괜찮죠.”
“크크큭, 무슨 소리냐? 노부는 황궁이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했었지.”
탈혼마제는 곧바로 따라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저도 황궁을 보고…… 싶군요.”
“그래요? 그럼 함께 가는 걸로 하죠.”
남하림은 별일 아닌 듯 결정을 내렸다.
‘휴우…….’
유미령은 내심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