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결전
당무독은 지형도를 한참 동안 내려 보았다.
마음 한편에 드는 생각.
‘혈군사 기성…….’
그는 우리가 온 줄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 정탐을 하고 갔을 게 틀림없어.’
천사회의 머리라 일컫는 인물.
무작정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었다.
“부장, 혈군사는 머리가 좋겠지?”
“멍청하지는 않을 거야.”
피식.
당무독은 순간 웃음이 나왔다.
혈군사를 두고 멍청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
세상에 그런 사람은 후개 남하림밖에 없을 것이다.
“혈군사는 현재 우리 진영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 거야.”
“음…… 그 정도로 머리가 좋을까?”
“…….”
“흐, 농담이야.”
“크흠, 아마…… 어쩌면 오행진을 준비한 걸 알지도.”
“하긴. 머리 좋은 사람이 틀림없다면 우리의 숨은 수를 알아차리겠지.”
남하림은 인정했다.
“혈군사가 오행진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우리도 그에 대해서 준비를 해야겠지?”
“당연히.”
슥슥슥-
당무독은 청기와 홍기가 꽂혀 있는 말들을 지형도에서 움직였다.
홍기를 오행진으로 맞춰놓고.
척! 척!
오행진으로 놓인 홍기에 대항하기 위해 청기도 하나씩 지형도 위에 놓았다.
“수쇄진(水碎陣)인가?”
“부장도 알고 있는 모양이네.”
“예전에 슬쩍 진법서에서 읽어본 적이 있어.”
“그럼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겠네?”
“대강.”
“좋아, 부장이 청기를 가지고 공격해 봐. 난 홍기로 막아볼게.”
“알겠어.”
남하림은 청기를 하나 잡은 뒤 화(火)의 위치한 홍기에 내려놓았다.
가장 정석적인 공격 방법.
스윽-
이번에는 또 다른 청기를 집은 후 수(水)에 해당하는 홍기 옆에 놓았다.
화와 수의 홍기가 순간 고립되었다.
강한 힘으로 뚫고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청기에 갇혀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남하림은 동시에 금(金)과 토(土)의 자리에도 각각 청기를 놓으면서 홍기를 치우듯 밀어냈다.
수쇄진의 삼강진항(三江進杭).
홍기의 오행진이 완벽하게 와해되었다.
“이렇게 되는 게 맞지?”
“맞아. 혈군사가 정확하게 움직인다면 우리가 당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
“이에 대항하는 방법은?”
“간단해. 오행역천지법진(五行逆天之法陣)을 펼치는 거지.”
당무독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슥슥슥.
다섯 개의 홍기의 위치를 조금씩 옆으로 옮겼다.
“부장, 다시 한 번 해볼까? 오행진처럼 공격해 봐.”
“그러지.”
남하림은 청기를 다시 그대로 천천히 올렸다.
위치가 변한 오행역천지법진에 들어선 청기.
당무독과 남하림은 첫 수에 바로 만족했다.
“부장, 어때?”
“음…… 위에서 내려다보면 변한 게 보이는데, 실제로는 알지 못하겠지?”
“예진으로 펼친 용병림에 막혀 혈군사는 보지 못할 거야.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이상.”
“흐흥, 정면에서는 오행역천지법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거군. 멋져.”
“분명 오행진으로 알고 생문인 금, 토의 방향으로 치고 들어올 거야. 하지만 그건 생문이 아닌 사문(死門)이지.”
당무독은 두 개를 청기를 하나씩 지형도에 밀어 넣었다.
직전과 다른 간격이 나왔다.
“후후후, 이건 생문 금토가 아니지. 사문의 토화.”
홍기가 꽂힌 두 개의 말을 붙이며 침입한 적을 밀어냈다.
스윽-
완전히 밀려 나간 청기의 말들.
당무독과 남하림,
오행역천지법진이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을 장식할 결정타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나머지는 부장이 알아서 해. 적을 죽이든지 살리든지.”
당무독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평사진의 선봉은 후개 남하림이 맡을 것이었다.
염성평야의 승패는 혈군사가 얼마나 완벽하게 속아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번 기회에 혈군사를 완전히 잡았으면 좋겠군.”
혈군사 기성.
그는 주천의 전인이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구천은 한 명씩 정리하는 방법으로 나갈 수밖에 없겠어.’
* * *
“크크크크-”
괴소를 터뜨리는 인물.
강소성 염성평야에서 들려온 소식에 그는 기분이 좋았다.
십천(十天).
한때 구천마제의 비밀호위가였던 세력.
그는 네 개의 절대무공을 중원에 던진 결과에 대해 크게 만족했다.
‘주천과 호천, 그리고 염천과 양천까지…….’
전면전은 아니지만, 구천의 네 세력이 염성평야에서 맞붙을 것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했다.”
중원 무림은 혼돈의 시기에 들어섰다.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이들 중 최소한 두 곳은 피해를 받아야 하겠지.”
여하튼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구천마제의 뜻을 조금이나마 완수한 셈.
아쉬운 건…….
‘그분의 종에서 벗어날 수 없군.’
주물주물.
십천주는 중얼거리면서 손에 든 서신을 만지작거렸다.
얼마 전에 갑자기 날아온 서신.
어느 날, 자신의 침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천하의 십천조차 며칠 전 그날을 생각하면 심장이 떨어질 듯했다.
#NAME?
이십 년 만에 연락하는군.
그날, 우리 한번 만나야지 않겠는가?
서신 끝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인장.
그분의 서신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날이라 했다.
‘오직 그분과 나만 알고 날이거늘…… 십천이 독립할 수 있는 기회였건만.’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침상 위에 놓인 서신은 그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구천마제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목이 잘릴 수 있다는 공포가 생생히 느껴졌다.
하나, 한 가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있었다.
시신.
과거의 그 시신은 그분이 확실히 맞았다.
시신의 의미는 곧 죽음이 아니던가.
‘이런…… 지금까지 보았던 그분이 가짜?’
유극지에 의해 죽은 그 시신.
그가 만약 진짜가 아닌 구천마제의 대역이었다면, 비밀 호위인 자신조차도 속였다는 뜻이 된다.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되면 결론적으로, 구천마제는 유극지에게 당한 것이 아니었다.
‘주군께서는 일부러 숨은 것이었어.’
이유가 무엇일까?
십천주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구천마제가 가끔씩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무림에 숨어 있는 구천의 모든 세력들을 정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십천주는 방금 든 생각이 맞을 것이라 확신했다.
구천마제와 싸워 이겼다는 유극지.
그 또한 구천의 일인이지만, 당시 구천마제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휴우…….”
십천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구천마제는 같은 명을 두 번 내리지 않았다.
명을 따르지 않으면 바로 죽음으로 제재를 가했다.
그는 죽기 싫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오래 살고 싶었다.
‘이 인물이 구천마제가 확실하다면…… 따를 수밖에…….’
* * *
두두두두두두두두-
염성평야로 다가서는 천사회.
혈군사 기성이 천사광명군과 천사수호군을 이끌고 도착했다.
거기에 오가련 소속의 무인들과 함께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이끌고 온 남궁강.
두 사람이 나란히 선 채 염성평야를 보았다.
상대의 진영은 백호진이 분명했다.
기성은 선두에 포진한 용병림을 보았다.
자신들이 그대로 달려들면 오행진으로 바뀔 터.
“멍청한 놈들. 난 네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전부 알고 있다.”
백호진은 서로 사상자가 다수 생길 수 있어 부담이 되는 진이다.
전적으로 힘의 세기에 따라 결정이 나는 생사진법이기도 했다.
하나 혈군사 기성이 원하는 것은 최소의 피해로 적을 완벽하게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백호진이 분명하군요.”
“일단 보기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공격을 하면 저들은 오행진으로 변화할 것이외다.”
“그렇군요.”
사전에 내용을 미리 전달받은 남궁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가련과 본 세가는 혈군사의 뜻에 따르겠소이다.”
“고맙소. 이번 기회에 남궁세가는 복수를 하게 될 것이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 않겠소이까.”
남궁세가는 천하제일세가라는 명성을 되찾아야 했다.
웅성웅성-
전방에서 수하들이 술렁거렸다.
반대편 진영에서 홀로 나오는 인물.
누가 봐도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후개.’
혈군사 기성과 남궁강의 시선이 남하림에게 고정되었다.
“대담한 녀석이지 않소이까.”
남궁강은 솔직히 개방이 부러웠다.
이미 그는 천하를 좌지우지할 인물로 자라나 있었다.
“이거…… 참. 본인도 나가봐야겠소이다.”
그동안 행동 하나하나 거슬렸던 인물.
혈군사 기성이 양천의 전인인 남하림을 직접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대평야에서 마주 선 두 사람.
눈앞에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돈 많은 집안에서 자란 놈답게 돈 자랑을 하는군.’
황금색 비단으로 만든 거지 복장.
아무리 봐도 거지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구려.”
“그러게요.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혈군사, 당신이 주천의 전인이라 들었소이다.”
“맞소. 그대는 양천의 전인이더군. 완전히 목숨을 끊었어야 했는데, 천주님께서 실수를 하셨지. 그것이 천추의 한이 될지도 모르겠소이다.”
“글쎄요. 실수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추의 한은 될 수 있겠지요.”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후개, 겨우 무극검신공 하나로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암중의 인물이 있으니까요.”
“역시 그대도 알고 있었군.”
“모를 리가. 그리 티 나게 구천마제의 무공을 중원에 뿌리는데, 모르면 바보지요.”
“하하하, 하긴 그것을 모른다면 머리는 장식품이겠지.”
“당한 줄 알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피 터지게 싸울 모양이군요?”
“맞다. 이렇게 좋은 판을 만들어주었으니 재미있게 놀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판에서 노는 것은 본 개방이 잘하지요.”
‘……현 상황을 즐기고 있다.’
남하림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자신 있는 모양이군.”
“없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아, 혹시 지금 마음속으로 망설이고 있다면 물러가도 좋습니다. 이번 한 번은 봐주지요.”
“크하하하!”
혈군사 기성은 대소를 터뜨렸다.
“누가 누구를 봐주겠다는 것인가?”
“내가, 당신을요.”
“크흐흐, 건방짐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다. 방금 한 말을 뒷받침할 실력이 있는지 봐주도록 하지.”
“보겠다고 하니 보여 드리도록 하지요. 그럼 이제 인사는 끝난 걸로.”
척.
남하림은 포권을 했다.
“무운을 빌겠소이다.”
“…….”
휘익!
남하림은 돌아서며 물러갔다.
혈군사 기성 또한 진영으로 돌아왔다.
‘……물러나지 못하게 했어.’
남하림은 도발을 했다.
하수이니 봐주겠다는 식으로.
아량을 베풀겠다고 했다.
이제 자존심의 문제다.
여기에서 물러날 수도 없었다.
현재 염성평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개미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저들은 여전히 백호진을 이루고 있다.
기성의 시선에 염성평야를 뒤덮은 살기가 강해졌다.
“우선 저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한 번 볼까?”
휙!
기성이 오른손을 들었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이차 염성평야 대전이 시작되었다.
혈군사 기성의 명을 받은 천사수호군의 삼군이 우측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백호진을 상대로 전면 공격은 자살 행위와 같았다.
삼군 소속의 천사수호군 무인들이 삼군장을 따라 우회하면서 내달렸다.
당무독은 진영의 뒤에서 적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행진으로 변화하는지 알고 싶겠지.’
펄럭!
당무독은 황색의 깃발을 흔들었다.
두두두두두-
황색의 기가 펄럭이자 백호진으로 뭉쳐 있던 무인들이 다섯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큭, 오행진이군.”
기성은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백호진에서 오행진으로 진법이 변하고 있었다.
“남궁 가주, 예상대로 오행진으로 변하고 있소이다.”
“알겠소이다.”
수쇄진의 형태로 선봉은 남궁세가가 맡기로 했다.
남궁강이 앞으로 나섰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들어라! 선봉은 우리들이 맡는다!”
“와아아아아-!!”
“중원 무림에 남궁의 힘이 어떠한지 보여주도록!”
남궁강과 함께 남궁세가 무인들이 달려 나갔다.
그들을 본 뒤 기성은 역천군장에게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여 군장은 남궁세가의 뒤를 따르면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시오.”
“알겠소이다.”
역천군장 여지홍은 수하들을 이끌고 남궁세가의 뒤로 바짝 달라붙었다.
오행진의 파훼법대로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금과 토의 오행 위치는 천사수호군과 천사광명군의 차례였다.
당무독이 예상했던 대로 오행진을 파훼시키기 위한 수쇄진을 유지하면서 움직였다.
두두두두-
네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적!
‘혈군사,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것이오.’
둥! 둥! 둥!
“궁아, 북을 울려라.”
당무독의 명에 황보궁이 북이 찢어질 정도로 힘차게 내리쳤다.
오행진법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무인들이 옆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오행 역천지법 진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상대방 무인들은 이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혈군사 기성마저도 호천의 무인들에 눈이 가린 탓에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남궁강은 검을 뽑으며 역위천을 향해 달렸다.
“역위천! 남궁세가의 검을 받아라!”
전방에 나타난 역위천.
타앗!
남궁강이 땅을 박차며 역위천의 앞에 내려섰다.
채애애앵-!
수십 개의 도검, 그리고 창이 남궁강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이놈들이 어디서 나타났지?’
휘리리릭-
남궁강은 빠르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숨을 곧바로 돌린 후, 내력을 올리며 역위천을 향해 검강을 뿌렸다.
슈우우우욱-
불사무강의 초식이 창천검을 막아냈다.
쿠쿠쿠쿠쿠-
꽈아아아아앙!!
두 개의 검강이 몇 번씩 부딪히며 서로를 밀어냈다.
스르륵!
역위천의 모습과 함께 호천의 진세가 예진에서 원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지?’
싸움에 몰두하던 남궁세가 무인들은 물러나는 역위천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때,
동문상국의 대상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뿌우우우우웅-
수십 마리의 대상 부대가 움직이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으악!!”
대상들이 부딪치며 밀어붙이자,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뒤로 물러나거나 옆으로 비켜 설 수밖에 없었다.
두두두두-
커다란 코를 휘두르는 공격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당황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혈군사 기성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이는 오행진에서는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공격이었으니까!
‘왜……! 왜 목진(木陣)이 거기에서 튀어나오지?’
쿠우웅!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이 찾아왔다.
“당했다. 오행진이 아니야.”
금진과 토진으로 달려간 천사수호군과 천사광명군.
‘위험하다. 함정에 빠졌어.’
재빨리 수하들을 물러나게 해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콰아아아앙!!
천사수호군과 천사광명군과 부딪쳐야 했던 금진과 토진은 수진과 화진에 있던 호천과 환영각의 협공에 당해 밀리고 있었다.
역천군도 마찬가지로 산동악가와 황보세가의 합공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혈군사 기성은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개방이 없어.’
가장 많은 인원을 가진 개방.
그들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