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강소성으로

역위천.

중원 무림은 그를 가리켜 용병들의 왕이라 하여, 용병왕이라 불렀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를 아는 인물들은 불사무혼(不死無魂)이라 했다.

스윽. 스윽.

옆으로 움직이는 역위천을 따라 남궁요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남궁요. 창천광검(蒼天光劍)이 그대군. 한 번 정도는 만나보고 싶었지.”

남궁요는 남궁세가에서도 신비인이라 할 정도로 외부의 일에 잘 나서지 않았다.

척!

역위천은 불사검을 앞으로 올렸다.

“한번 볼까?”

말이 끝나는 동시에 역위천이 불사검을 휘둘렀다.

가벼운 움직임.

불사무정(不死無情)의 초식이 바람을 가르며 남궁요의 가슴을 짓눌렀다.

채애애앵!

남궁요는 검을 세우며 불사검의 검기를 막아냈다.

휘청.

가벼울 것이라 여겼던 검기에는 천 근의 힘이 실려 있었다.

손목을 타고 흐르는 역위천의 내력에 남궁요는 검을 놓칠 뻔했다.

‘이것이 중원오대천의 수장이 지닌 힘인가?’

정파 무림인들은 용병이라 하면 은연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역위천의 진면목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강하다.’

남궁요는 인정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 않는다면 그에게 이길 수 없다.

차아앗!

남궁세가의 검은 강검이면서도 중검이었다.

‘무게로 따지면 본 가의 검을 이길 수 없다!’

피이이잇-

광검팔식 무구창화(無求昌化) 초식.

한 번의 초식에 육십네 개의 강검이자 중검이 서로 교차했다.

한 치도 피할 곳을 만들지 않겠다는 듯, 육십사 방위에서 역위천을 향해 검기가 무수히 쏟아졌다.

핏핏핏핏-

‘대단한 검법이다.’

창천무애검법의 위력을 보자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완벽하게 십이 성 내력을 대성한다면 이보다 뛰어난 검법은 없을 거라 여겨질 정도!

‘멋진 것을 보면 흥분이 되지.’

최고의 검은 최고의 검으로 상대해야 한다.

불사도우(不死道宇).

역위천은 불사검을 머리 위로 올렸다.

파아아아아-!

이번에는 검기가 아닌 검강.

역위천은 마치 붉은 화염의 날개를 펼치는 불사조처럼 날아올랐다.

끼이이이우웃-

괴성과 함께 남궁요의 공격이 한꺼번에 밖으로 밀려났다.

채애애애애애앵!

콰아아앙-!!

두 사람의 승패는 검의 세기로 갈렸다.

강검이자 중검의 남궁요가 화검에 의해 밀렸다.

십여 걸음으로 물러난 그는 이 상황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내가…… 밀리다니……!’

타아아앗!

그때, 역위천이 크게 한 걸음 내디디면서 불사검을 앞으로 밀어냈다.

승기를 잡은 이상 바로 끝을 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반대로 당할 수 있는 것이 고수들 간의 대결.

슈우우우우우우-

역위천과 남궁요.

둘 사이의 공간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퍼어억!

불사검이 아닌 역위천의 왼손이 아래로부터 남궁요의 가슴을 올려쳤다.

남궁요의 눈이 고통에 커졌다.

들썩.

남궁요의 발이 바닥에서 반 자 정도 떴다.

“커어억!”

오장육부의 모든 장기들 사이로 충격이 전해졌다.

“남궁요, 재미있게 놀았다.”

“…….”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남궁요는 겨우 고개를 들어 떨어지는 불사검을 보았다.

역위천의 검은 인정이 없었다.

스걱-

불사검의 날카로운 검날이 남궁요의 가슴을 지나갔다.

* * *

오백기의 천사기용대를 이끌고 온 화유는 황룡도를 바닥에서 끌어당겼다.

당…… 했다.

완벽하게 적에게 당했음을 알았다.

이십 마리의 대상에 의해 천사기용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웠다.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물러날 수밖에 없어.’

동문상국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중원오대상국의 한 곳이거늘…… 혈군사께서 실수를 하셨다.’

최소한 오대상국은 무림세가로 생각했어야 했다.

오가련의 오천 명의 무인들은 점점 패배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위천에게 남궁요가 목숨을 잃은 순간부터,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화유는 뒤로 물러났다.

의미 없는 싸움은 할 필요가 없었다.

“천사기용대는 모두 물러나라!”

오백 명에서 살아 움직이는 수하들은 오십 명도 되지 않았다.

오가련 소속의 무인들도 물러났다.

슈욱-

대상 부대를 이끌고 온 손현독은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가 이겼다! 동문이 이겼도다!”

“와아아아-!! 동문 만세!!”

“불사무혼 만세!!”

용병왕 역위천의 이름 또한 전장에 울려 퍼졌다.

* * *

중원에 떠도는 소문 두 가지.

하나는 강소성에서 들려온 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강에서 들려온 소식이었다.

첫 번째는 오가련과 천사회가 손을 잡은 뒤 동문상국을 쳤지만.

불사무혼 역위천과 동문상국의 대상 부대에게 완벽한 패배를 당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소문은 신강에서 흘러나왔다.

사천성에서 마교의 침입을 막은 걸협오성이 마교주 천마를 만나기 위해 마교에 갔다는 것.

중원인들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미쳤다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쳤지만.

결국 마교주와 만난 후개는 마교와 중원 무림의 마중공동성명을 발표했다.

#NAME?

최근 중원 무림을 어지럽게 하는 악한 세력이 있어, 당분간 마교는 중원 무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중원 무림도 마교의 일반적인 활동에 대해 최소한의 보호를 해주며 서로에 대한 신의를 가질 것이다.

중략…….

마지막으로 곤륜파의 일에 대해서는 불행한 사건임을 인지하고, 천마신교는 곤륜파에 대해 백년불가침을 선언하겠다.

긴 공동성명이었지만 간단히 말하면 마교와 후개가 동맹을 맺겠다는 뜻이었다.

“크하하하핫!”

혈군사 기성은 공동성명이 적힌 서신을 읽고 광소를 터뜨렸다.

“마교주가 이걸 인정했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후개도 마찬가지.

겨우 개방의 후개인 신분 주제에.

중원 무림의 이름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주제넘은 짓을 하는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어이가 없었다.

점점 아쉬웠다.

중원에서 가장 먼저 죽였어야 할 인물은 개방의 후개 남하림이었다.

‘진작……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놈을 죽였어야 했다.’

이제 놈은 너무 커버렸다.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을 정도로 거물이 되었다.

‘우선 제갈 련주에게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건지 물어봐야겠군.’

무림맹이 와해됐다고 하지만 제갈령의 입김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스윽-

혈군사가 고개를 들었다.

‘혈사령.’

혈사천주 설백진의 개인 전령이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천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나를?’

혈사천주가 혈사령을 보내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무슨 일인지 아는가?”

“주군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알겠네. 지금 바로 가는 것인가?”

“맞습니다.”

혈군사 기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터억!

무릎에 걸려 바둑판이 옆으로 쏠렸다.

‘어허…….’

바둑판 위에 놓여 있던 흑돌과 백돌이 마구잡이로 섞여 버렸다.

복기는 가능했지만 당장 다시 둘 시간은 없다.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군. ……설마 그 일 때문에 그런 것인가?’

혈사천주 설백진이 그를 찾는 이유.

이를 떠올린 혈군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 * *

드륵-

기성은 문을 열고는 소리를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천주님, 부르셨습니까?”

“군사, 자리에 앉게.”

“고맙습니다.”

혈군사 기성이 혈사천주 설백진의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군사도 소식을 들었을 것이라 보오.”

“무슨 소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는 마교에서 온 소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문상국에서 나온 소식이지.”

“…….”

동문상국을 꺼내는 그의 목소리에 노기가 배어 있었다.

“오가련의 서신을 받은 모양이더군.”

“그렇습니다.”

“음, 서신을 받았는데. 무슨 내용인지 본인은 왜 모르고 있었을까?”

“별 내용이 아닌지라 천주님께 따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따로 보고를 안 했군. 별일이 아니라서?”

설백진이 왜 화가 났는지 알았다.

“천주님, 그건 간단한 협조의 내용이라서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따각.

설백진이 의자 손잡이에 손가락을 튕겼다.

“간단한 협조의 내용인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군사가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야. 내가 폐관에 들었을 때는 군사가 맡아서 했지만, 지금은 최소한 보고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털썩!

혈군사 기성은 그 자리에서 부복을 했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

설백진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떠올랐다.

‘약은 사람이군.’

단번에 바짝 바닥에 붙은 채 용서를 빌고 있었다.

“일어나라.”

“감사합니다.”

기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제갈 련주에게 천사기용대를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감이었습니다. 동문상국 정도는 언제든지 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동맹을 하여 힘을 키워 나가야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제갈의 염천과 동맹을 맺고자 했나?”

“그렇사옵니다.”

염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염천과 동맹을 맺고자 한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과 동맹을 맺은 것인가?”

“…….”

혈군사 기성은 순간 멈칫했다.

“당연히 천사회가 아니겠습니까?”

“큭, 천사회라? 군사, 사실인가?”

기성은 이미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은 예상했다.

그러기에 제갈령과 사전에 말을 맞추어 놓은 뒤였다.

“천사회의 이름으로 오가련의 제갈 련주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설백진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확인해도 상관없겠군.”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큭, 자네는 당연히 천사회의 군사이니 본 천사회와 동맹을 맺었겠지.”

스윽-

설백진은 한 장의 서신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아는가?”

“무엇이옵니까?”

“오가련의 련주인 제갈령의 서신.”

“…….”

“천사회와 동맹을 맺어주어 고맙다는 서신을 보냈지. 그에 대한 답장이다. 궁금하면 한번 읽어보겠는가?”

“아닙니다.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주님께 보낸 그의 개인 서신이 아닙니까?”

씨익.

설백진의 입술이 벌어지며 이빨을 보였다.

“맞아. 별 내용은 없었어. 앞으로 잘 지내자고 쓰여 있더군.”

혈군사의 표정은 여상했다.

만일 서신에 손을 댔다면.

그 순간 목이 날아갔을지 모른다.

설백진이 눈앞에 흔들어 보인 서신은 가짜일 확률이 높았다.

설백진은 무표정한 그를 주시했다.

‘대단하군. 속을 줄 알았건만. 역시 혈군사라는 건가.’

기성이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함정을 한번 만들어보았다.

빠질 듯하면서도 제대로 빠져나갔다.

“그건 그렇고, 동문상국 일은 실패했더군. 천사회의 망신이지 않는가?”

“송구하옵니다. 천사기용대라면 충분 할 줄 알았습니다. 설마 동문상국에서 대상 부대를 운용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건 완전히 제 불찰이옵니다.”

“오가련도 몰랐으니 그 문제는 넘어가자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날 것은 아니지.”

“무슨……?”

“천사기용대가 당했거늘, 물러나면 되겠는가?”

이왕 시작했다면 제대로, 끝까지 가야 하는 법.

“천주님의 뜻은…… 동문상국에서 무극검신공을 빼앗아오는 것입니까?”

“무극검신공도 나쁘지 않아. 하나 그것보단 동문상국에 당했다는 게 화가 나는군.”

“알겠습니다. 곧바로 동문상국을 칠 준비를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를 마쳤으면 하네. 빨리 움직여야겠어.”

“천주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수고하게.”

혈군사 기성은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섰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무극검신공이 뛰어난 무공은 맞지만, 혈사천주에게는 필요 없었다.

‘아직 나를 믿지 못하고 있군. 좀 더 조심해야겠어.’

혈군사 기성은 뒤를 한 번 보았다.

‘혈사천주, 조금만 더 참아주겠소이다.’

* * *

마교에서 나온 일곱 명.

그들은 한 가지 소문을 접했다.

천사회가 동문상국에게 보낸 최후통첩.

#NAME?

“천사기용대가 완전히 깨지니 열받은 것 같군.”

“하림 형, 동문상국하고는 안 친한가요?”

팽유도가 보기에, 동문상국 얘기를 들은 남하림의 반응이 바로 없었다.

친한 문파나 가문이라면 언제나 도움을 주기 위해 단번에 달려가곤 했는데.

“상국주이신 분을 숙부님이라고 부르긴 해. 어릴 때라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그럼 엄청 친하잖아요. 숙부님이시라면요.”

“그런가?”

“하림 형, 동문상국에 안 가봐도 되겠어요?”

“용병왕과 동문상국에도 꽤 강한 무인이 많겠지만, 천사회가 이 정도로 마음을 먹고 나온다면 위험할 수 있다.”

이휘연도 한마디 했다.

“부장…… 나도 휘연 형 말이 맞는 것 같아.”

“흐음…… 철각까지 동문상국을 걱정한다면 위험해도 갈 수밖에 없겠군.”

“와아아……!”

황보궁이 길게 탄성을 지었다.

“궁아, 왜 그래?”

“대형, 우리 지금 끝에서 끝으로 가는 거네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요?”

“육로는 멀지. 하지만 장강을 이용하면 빨리 갈 수 있어.”

청해서에서 강소성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장강의 수로였다.

“와아아아……!”

이번에도 황보궁이 탄성을 냈다.

“궁아, 이번엔 뭐냐?”

“장강 수로를 끝에서 끝까지 배를 타고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요.”

“아, 아핫, 난 또 뭐라고. 배를 타본 적이 있어?”

“아뇨. 어릴 때 한두 번 타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뱃멀미는 하지 않겠지? 상당히 괴롭거든.”

“괜찮을 겁니다. 일반 백성들과 달리 무림인들은 평행 감각이 뛰어나서 뱃멀미를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랬나? 그럼 다행이고.”

* * *

반 시진 뒤.

장강의 물결을 따라 평소보다 빠르게 내려가는 배 한 척.

물결을 따라 좌우로 배가 흔들렸다.

우아아아아악.

으으으으왜애애애액.

선미 끝에 앉아 장강의 물결을 향해 고개를 내민 황보궁.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지옥의 고통과 맞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