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01화 (202/328)

201. 계약하다

초강유의 천마신공이 펼쳐졌다.

마공 중에서도 최고의 마공.

‘우선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수 볼까?’

처음은 가볍게 천마멸장(天下滅掌)!

남하림을 향해 마기가 날아갔다.

아수라의 미소가 단번에 남하림을 삼켰다.

콰아아앙!!

천괴신체에서 황금빛이 퍼져 나갔다.

검붉은 마기가 단숨에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양천의 무단은 천마 초강유의 천마신공을 상대하기에 충분했다.

‘오호, 이것이 양천의 황금호신기(黃金護身機)군.’

육 성의 천마멸장이 단숨에 밀려났다.

‘큭, 제법인걸.’

이번에는 팔 성의 천마신공.

초강유의 손가락 끝에서 천마지(天魔指)를 펼쳐졌다.

티이이잉!

지강(指罡)이 남하림의 가슴에서 튕겨 나갔다.

두 번째 초식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금강불괴까지?’

그는 남하림의 신체가 금강신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타앗!

초강유는 바닥을 박차며 허공으로 신형을 띄웠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를 펼치며 남하림의 얼굴을 향해 일장을 뻗었다.

“천마파천장.”

붉고 검은색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남하림은 반격을 해야 했다.

파아앙!

초강유가 뻗은 손을 향해 강룡십팔장이 펼쳐졌다.

마치 태양이 폭발하는 것처럼.

초강유와 남하림 사이에서 강한 빛과 함께 폭음 소리가 울렸다.

슈우우우우우욱-

큰 파장이 십여 장 밖까지 퍼져 나갔다.

주르르륵-

스으으윽-

둘은 거의 동시에 뒤로 미끄러졌다.

“멋진 반격이야. 벌써 삼 초가 지나갔군. 이번에는 먼저 선수를 하는 게 어떤가?”

“굳이 원하신다면!”

휘익!

남하림은 기다렸다는 듯 만리추풍신법(萬里追風身法)을 펼쳤다.

슈욱.

갑자기 허공에서 툭 튀어나온 듯 번개 같은 움직임.

‘빠르다!’

초강유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남하림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퍼어억!

초강유는 할 수 없이 천마호신공으로 남하림의 일장을 막아냈다.

찌릿.

일장의 위력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무단의 내력에 담긴 기.

‘크, 이건 뭐지?’

정사마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이질적인 기운.

휘리리릭!

취리건곤보가 연이어 펼쳐지며 환영이 일어났다.

초강유의 주위로 십여 명의 남하림이 분신술을 펼친 것처럼 나타났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구별조차 하기 힘들 만큼 완벽한 그림자.

‘뒤!’

슈우우욱-

“잡았다!”

파아아아아앙!

천마수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휘이이익-

하지만,

“제대로 못 찾는군요.”

허공에서 들려온 목소리.

눈앞에서 떨어진 남하림이 강룡십팔장이 쏟아냈다.

콰아아아앙-!

“흡!”

초강유는 또 한 번 천마호신공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찌리릿.

또 한 번 몸에 충격이 왔다.

영향을 받았는지 순간적으로 내력이 사라지듯 흔들렸다.

몸속에서부터 무언가가 계속 내력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은, 기분 나쁜 감각.

‘이것 때문에…… 구천의 조율자라는 것인가?’

일반적 무공과는 달랐다.

남하림은 두 번의 공격으로 무단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갔음을 알았다.

무단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빨리 채워야 했다.

전신에서 무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길었다.

‘쯧,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도는 힘을 아껴놓아야 하는구나.’

초강유도 몸에 이상이 생겼다.

몸 안에 남아 있는 남하림의 기를 없애야 했다.

‘계속 싸우다가는 내력이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 빨리 몸속에 있는 기를 몰아내야 한다.’

천마광장은 고요해졌다.

수많은 마교도들은 천마와 대등하게 싸우는 후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남하림이 두 손을 올렸다.

“마교주님, 아직 십 초를 겨루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서로의 실력을 본 듯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제 충분히 본 것 같으니 그만두는 게 좋겠군.”

“그럼…… 서로 비긴 것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좋겠네.”

척.

척.

초강유와 남하림이 서로 포권했다.

마교도 사이에서 내려다보았던 탈혼마제는 아쉬웠다.

싸움을 시작했다면 끝을 봐야 하거늘.

‘약관의 나이에 천마랑 놀다니…… 정말로 천하제일인이 될지도 모를 놈이군.’

* * *

남하림은 다섯 명의 곁으로 다가섰다.

“에구…… 힘들어 죽겠네.”

“괜찮은 건가?”

“형, 사실 지금 몸 안에 기가 하나도 없어. 무단에서 기가 만들어지려면 조금 지나야 할 거야.”

“…….”

이휘연은 이해한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남하림이 싸움 도중 비긴 걸로 하자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성격에 먼저 그만하자고 말하지 않으니까.

“다행이군. 천마가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천마도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거야. 무단의 기가 그의 몸에 들어가서 내력을 지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부장 말에 따르기로 했군.”

“아마도 그럴 겁니다.”

저벅저벅.

건너편에서 호장악이 다가왔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쉴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맙소이다.”

호장악은 처음과 다르게 공손했다.

마교는 철저한 강자존의 세계.

정파인이라고 하나 천마와 대등하게 싸운 후개 남하림에게 예를 다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호장악을 따라 객마원으로 가는 길에 많은 마교도들을 스쳐 지났지만.

그들의 눈빛은 적대감이 아니라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객마원에 도착했다.

“후개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이곳 원주에게 말을 하면 됩니다.”

“고맙소이다.”

호장악은 밖으로 나가기 전 객마원주에게 정중하게 모시도록 부탁을 남겼다.

휘익!

그때,

객마원에서 쉬고 있던 그들 앞에 탈혼마제가 나타났다.

“크큭, 잘 봤다.”

“멀리 가신 줄 알았소이다.”

“오랜만에 신교를 돌아다녔지. 옛날 기억이 나서 말이야.”

털썩!

탈혼마제가 남하림 앞에 앉았다.

“난 네놈이 미친놈인 줄 알았다.”

“노인장이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클클, 지금 보니 완전 능구렁이가 따로 없군. 네놈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다면 계속 미쳤거나 순진한 놈으로 봤을 게다.”

남하림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보았다.

“킬킬킬, 지금 네 얼굴을 보아라. 순진한 척 웃고 있지 않느냐? 마교에 온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더냐?”

“그게 뭔데요?”

“네놈에게 당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만, 설마 양천의 전인일 줄은 몰랐군.”

“어…… 노인장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캬하핫! 한때 천마에 도전했던 몸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않겠느냐?”

양천의 전인인 남하림.

마교 또한 변천이기에, 구천의 조율자는 당연히 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일은 잘 끝났나?”

“그럭저럭 잘됐습니다. 서로 물러날 명분은 챙겼으니까요.”

“잘됐군. 그럼 여길 나가는 것인가?”

“…….”

남하림은 대답 없이 그를 빤히 보았다.

‘……이 느낌은.’

만통자?

“킬킬, 귀찮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맞구나.

가만 두면 찰거머리처럼 계속 따라다닐 낌새가 보인다.

“노인장, 내력을 원래대로 해줄 테니 각자 원하는 길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군.”

“잘됐네요. 그럼 바로 하죠.”

“하나 지금은 아닌 것 같군. 본인이 몇십 년 동안 마혈옥에 박혀 있었던 이유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지. 후개는 내 목표를 단번에 깨뜨렸네.

싸움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 혼자 있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네놈들 뒤를 따라다니면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 킬킬.”

남하림은 갑자기 피곤해졌다.

* * *

객마원의 지붕 위로 어둠이 내려온 시간.

천마 초강유가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남하림이 안으로 들어선 그를 맞이했다.

초강유가 들어서며 먼저 객마원 접객실 한편에 앉아 있던 탈혼마제를 발견했다.

스윽.

“탈혼마제님을 뵙습니다.”

“클클클, 오랜만일세.”

“마혈옥에 계신 줄 알았다면 진작 찾아뵈었을 것입니다.”

“크하하하! 천마가 농담을 다 하는구려!”

탈혼마제는 대소를 터뜨렸다.

마혈옥에 누가 살아남아 있는지 천마가 몰랐을 리 없다.

“후개를 만나러 온 모양인데 본인은 신경 쓰지 말라고.”

탈혼마제가 뒤로 빠졌다.

“교주님, 앉으시지요.”

남하림이 자리를 내밀었다.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지.”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서로 원하는 바를 터놓는 마지막 결정이 남아 있었다.

초강유는 마교의 역사를 잘 알았다.

한때 강한 힘으로 중원 무림을 마교의 발아래 놓은 적도 있지만.

그건 일시적이었을 뿐.

중원 무림인들만 아니라 중원인들 모두의 거부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초강유는 조금씩 마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려면 먼저 중원 무림에 마교의 인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비무는 비긴 걸로 끝이 났지.”

“세세히 따지면 제가 이겼습니다.”

“왜 그대가 이겼다고 하는 것이지?”

“먼저 그만두자고 한 분이 교주님이시지 않습니까?”

“말을 꺼낸 것은 자네가 먼저다.”

“전 단지 물어봤을 뿐입니다.”

남하림의 표정은 참으로 뻔뻔하기까지 했다.

“…….”

초강유는 눈에 힘을 주었다.

“이런, 눈에 힘은 빼셔도 될 텐데. 그러다가 눈이 빠져나오겠습니다.”

“배짱은 인정하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 않을 터인데 말이야.”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죄송합니다.”

“큭, 웃기는 녀석이군. 순진한 척하는 것이냐?”

“사람의 진심을 몰라보시는군요.”

남하림의 말에 초강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지.”

“있는 그대로, 하던 대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당분간 무림이 정리되는 동안, 마교는 이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으로.”

“흐음. 가만히 있어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도 얻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원하는 게 뭡니까?”

“별 욕심은 없네. 본 신교도 중원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싶은 것뿐.”

“그것밖에 없습니까?”

그것 하나 때문에 중원 무림과 마교는 수없이 반목하며 싸워왔다.

그런데,

“나오고 싶다면 나오세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네요.”

남하림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탈혼마제 마저 시선이 돌아갈 정도.

“부장…… 그건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야.”

“휘연 형, 중원 무림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야. 조용히만 있으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만 정파 무림에서 시끄러울 텐데…….”

“그건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결하면 되겠지.”

남하림은 뜻은 간단했다.

중원의 일은 그들 스스로 결정을 내리면 된다.

“후개, 무림에서 마교를 막을 텐데?”

“무림 정복에 뜻이 없다면 그들도 이해할 겁니다. 만일 그것도 안 된다고 날뛰면 알아서들 하시면 되고요. 난 그때 손을 떼겠습니다.”

“그대가 나서지 않는 것만 해도 됐군.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지.”

“그럼 우리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요?”

“그런 셈이군.”

“아 참, 천마께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뭐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 * *

콰아아앙!

오천의 무장원 무인들과 호천군 이천 명이 부딪쳤다.

팍팍!

채애애앵-

한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고, 도검과 도검이 부딪히며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로의 힘은 비등했다.

뒤로 밀리지 않은 채 서로의 목숨을 죽이며 앞으로 나아갈 뿐.

‘지금이다.’

남궁지는 뒤에 따르는 수하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나팔을 불어라!”

뿌우우우웅-

염성평야 위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두-

오가련과 호천군의 싸움터로 다가오는 매서운 말발굽 소리.

바람을 탄 깃발이 뒤로 힘차게 펄럭였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천사기.

오백 기의 천사기용대가 나타난 것이다.

황룡도를 옆으로 뻗은 채 달려오던 천사기용대주 화유가 앞을 보며 소리쳤다.

“우리의 목표는 용병이다!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라!”

화유가 황룡도를 좌우로 교차하며 내달렸다.

역위천이 오른 방향을 보았다.

“크흐, 제갈령, 머리를 썼군. 천마회를 끌어당겼어.”

“형님, 기마대입니다.”

“두려운가? 우리가 기마대와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닐 텐데.”

“아닙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자네는 앞을 맡아라. 천사회, 저놈은 내가 맡지.”

불사무혼 역위천.

역위천이 점점 자욱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천마회의 기마대를 향해 섰다.

우우우우웅-

불사검에 내력을 끌어 올렸다.

척.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기세.

쿵! 쿵! 쿵! 쿵!

그리고, 땅이 흔들거렸다.

지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축이 매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우우웅-!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쿵! 쿵! 쿵! 쿵!

계속해서 땅이 울부짖었다.

잠시 싸움이 멈추고,

다들 괴성이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 어……!”

호천군의 무인 한 명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

그것도 이십여 마리가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뿌아아아앙-!

짐승들이 기다란 코를 흔들거리며 천사기용대의 중앙을 향해 전차처럼 내달렸다.

‘대체…… 저건 어디서……?’

남궁요는 갑자기 나타난 코끼리 부대를 보며 몸이 떨려왔다.

한 마리만 해도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그런 놈들이 이십여 마리나 있었다.

퍼어어억!

황금색 갑주를 얼굴에 찬 코끼리가 선두에서 천사기용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으악……!”

천사기용대주 화유는 급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하하하하하핫! 어떠냐? 동문상국이 만만하게 보이더냐?”

대상(大象) 부대 뒤에 나타난 중년인이 대소를 터뜨렸다.

동문상국은 용병왕 역위천에게 의뢰한 뒤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염성으로 움직이는 천사회를 발견,

기마대를 상대하기 위해 대상 부대를 움직였다.

대상을 처리하지 않으면 천사회의 기마대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볼 터.

‘저놈들을 먼저 벤다!’

타앗!

급히 판단한 남궁요는 몸을 날리며 코끼리의 눈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채애애앵!

남궁요의 검은 허무하게 중간에서 튕겨 나갔다.

“누구냐?!”

남궁요는 검을 갈무리하는 사내를 보며 인상을 썼다.

“불사검……!”

고요한 기세.

역위천은 멈추지 않고 남궁요의 앞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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