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87화 (188/328)

187. 신무맹을 밝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치욕적인 선택을 강요받았다.

이들이 온 방향만 봐도, 천사백사군이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후개와 함께 개방 방도들이 나타난 순간.

승패는 기세는 이미 상대에게 넘어갔다.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수 없다.’

상황은 물러나야 하는 것이 맞았다.

현명한 수장은 물러날 때를 잘 알아야 하는 법이다.

“후개,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는가?”

“물어보시오.”

“천사백사군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다.”

“수장의 죽음으로 나머지는 모두 물러갔소이다.”

천사백사군 수장의 죽음.

육호상은 오래전에 산구창과 싸워본 적이 있었다.

둘은 실력이 비슷했다.

‘후개의 실력이 나보다 높다는 말인가?’

육호상은 자신의 목숨을 아꼈다.

‘이미 승패가 난 이상 난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바보같이 죽음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의미 없는 개죽음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물러날 수밖에.

“후개, 물러가겠다.”

“잘 생각했소이다. 천사회로 돌아가시오. 만일 그 말이 거짓이라면, 우린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외다.”

천사회의 완벽한 패배.

무려 두 달 동안 이어져 왔던 전쟁이 끝났다.

철혈방과 신천문, 천사회의 천사멸전군과 천사백사군이 숭화삼지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무극수신공을 이용해서 소림사를 치겠다는 혈사천주 설백진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들이 사라진 숭화삼지에는 승리의 함성만이 가득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파 무림 만세!

숭화삼지에 남은 이들의 시선은 모두 승리의 종지부를 찍은 인물에게 집중됐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

개방 방도들이 후개와 걸협오성 주위로 모여들었다.

“후개님과 걸협오성님 덕분에 이겼습니다!!”

“그건 아니지요.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거야 후개님이 계셔서…… 잘 돌아오셨습니다!”

“당연히 돌아와야지요.”

그들 사이에 있는 반가운 얼굴들.

추개 영충도 누런 이빨을 보이며 다가왔다.

‘이놈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남하림은 기쁨에 겨운 방도들 사이에 폭 묻혀 있었다.

방도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남하림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추개님! 괜찮으십니까?”

“어…… 그래, 괜찮다. 넌…… 어떠냐?”

“괜찮습니다! 나중에 따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알았다.”

하하하하!

남하림은 끊임없이 몰려오는 방도들의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며 즐거운 인사를 나눴다.

* * *

숭화삼지의 흥분은 어느덧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남하림은 소림사 방장 명허 대사와의 면담을 청했다.

군막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이 아이가 개방의 후개란 말이구나.’

허허, 놀랍도다.

소문에 듣던 대로 화려한 거지 복장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주위를 은은하게 흐르는 기운은 주변을 경건하게 만들 정도였다.

남하림을 보는 명허 대사의 감탄만이 한동안 이어졌다.

마치 부처를 대하듯 공손하게 합장하는 모습.

“아미타불. 후개에게 큰 도움을 받았네.”

“감사의 인사를 받을 분들은 제가 아니라 목숨을 아끼지 않은 화산파와 개방의 모든 분들입니다.”

오호…… 겸손하기까지 하도다.

“그건 본 승도 잘 알고 있네. 앞으로 두 문파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방장님께서 그런 마음을 지니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천천히 갚으시면 됩니다.”

“본 승도 그대의 말처럼 그렇게 하겠네.”

남하림은 명허 대사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 이유를 꺼냈다.

“방장님. 제가 어려운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해보게나.”

“천사회에서 소림사를 친 이유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알고 있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모르겠는가.”

“천사회가 이번에는 물러나겠지만,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소림사 방장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엔 개방과 화산파의 도움에 밀려 물러났을 뿐.

그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어찌 모르겠는가.

“혹시 후개도 그것을 원하는 것이오?”

“제가 원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소림사에서 무극수신공을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 해도, 이번 경우처럼 본 방은 당연히 도움을 줄 것입니다.”

명허 대사도 얼마 전 남하림이 무극도신공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욕심이 없는 인물이야.’

투명하고 맑은 눈빛.

그 소문을 듣고, 명허 대사도 무극수신공을 불에 태울까 고심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후개의 말이 맞았다.

계속해서 무극수신공을 지니고 있게 된다면, 이번 한 번으로 끝이 나지 않을 것이었다.

소림사는 무극수신공이 사라질 때까지 싸워야 하는 무한의 굴레에 빠져들지도 몰랐다.

그 과정에서 많은 소림사의 제자들이 다치거나 죽을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탐욕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부처님께서 욕심을 버리라 했거늘.

소림사는 욕심 때문에 멸문에 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언제까지 개방에서 소림사에 원군을 보내줄지도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개방은 무극수신공을 지킬 자신이 있는가?”

“개방이 아닙니다. 제가 지킬 자신이 있는지 물어보셔야 할 겁니다.”

“후개는 지킬 자신이 있는가?”

“무극수신공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헷갈렸다.

지키지는 못해도 빼앗기지는 않는 다는 뜻인가?

어렴풋이 알 듯 말 듯했다.

하지만,

천사회에 무극수신공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방장 명허 대사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미타불. 후개, 그대는 재미있는 사람이구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후개,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본 승이 방장이라 하나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 않겠나.”

“다녀오시지요.”

명허 대사가 소림사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처음과 달리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남하림이 소림사 방장을 만나는 동안.

당무독도 바로 움직였다.

개방 방주 오종과 화산파 장문인 명진을 찾은 그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무독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제가 두 분을 모신 이유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죄송하지만 제가 장문인께 먼저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알겠네. 무엇이 궁금한가?”

“장문인께서는 후개의 서신을 받고 원군을 오셨습니다. 그 이유를 묻고자 합니다.”

장문인 명진은 미소를 지었다.

“후개의 부탁이었으니까. 천사회와 싸운다는 소문을 들은 뒤 소림사를 돕고 싶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지. 때마침 후개의 서신을 받은 뒤 곧바로 결심을 했네.”

“만일 다른 사람이 부탁을 했다면 오셨겠습니까?”

“그때는 의논을 했겠지.”

남하림이기에 곧바로 원군을 조직해서 내려왔다는 뜻이었다.

“사실대로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허허허, 그대가 이런 말을 묻는 것이 우리를 부른 이유와 관계가 있는 모양인가 보군.”

“네,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그동안 군사였던 제갈령의 부탁을 따라 구천신품을 가져다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림맹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음…….”

“맹주 유극지와 군사 제갈령이 이끄는 무림맹은 결코 중원 무림의 정파 연합이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은 중원 무림에서도 은연중 깨닫고 있었다.

이번에 그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만일 저희들의 생각대로 무림맹이 깨진다면 어떻게 될까? 두 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새로운 무림맹, 신무맹을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신무맹이라 했느냐?”

“네, 방주님.”

방주 오종은 멈칫했다.

이들은 개방에 돌아왔을 때도 이에 대해 한 번도 말을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

신무맹에 대해 들은 두 사람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소림사 사건으로, 한 문파의 힘으로는 천사회 같은 연합 세력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무맹을 세우겠다는 뜻은 좋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들도 산재할 게야. 당장 급한 것은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현 무림맹이 있는 정주는 이미 은하궁으로 돌아서지 않았느냐.”

“그 문제는 저희들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양 총관이 주도해서 남양성에 신무맹이 들어설 건물들을 짓고 있습니다.”

방주 오종과 장문인 명진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계획이 아니라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허어…… 벌써…… 이런 일이 있기 전부터 신무맹을 생각했다는 것이냐?”

“네. 방주님, 사전에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고…… 너희들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혹시 저 녀석…… 아니, 후개도 알고 있느냐?”

“남양성에 함께 갔다 왔습니다. 부장도 별말 없었습니다.”

“별말이 없다는 건 후개도 인정을 했다는 뜻인가?”

“그 뒤에 따로 이야기를 나눈 건 없습니다.”

방주 오종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신무맹이 무림에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때,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지금이 그 시기라는 말이더냐?”

“네, 그렇습니다.”

당무독은 확신을 가졌다.

무림맹이 와해되고 중원 무림의 중심이 사라진 이상, 신무맹이 새롭게 나타나야 할 명분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장소뿐만 아니다. 알고 있느냐? 누가 맹주를 맡느냐에 따라 문파들이 신무맹과 함께할 것을 결정 내릴 것이니라.”

“네, 알고 있습니다. 맹주가 누가 될지 당연히 신경을 쓰실 것입니다.”

“맞다. 그런 부분에 있어 의견이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신무맹은 성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희들이 원하는 신무맹은 기존의 무림맹과 다릅니다.”

“다르다는 게 무슨 말이더냐?”

방주 오종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신무맹은 맹주는 존재하지만 내원 책임으로 운영을 할 생각입니다.”

화산파 장문인 명진이 이내 관심을 가졌다.

“내원 책임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신무맹에 천하내원이라는 조직을 만들 것입니다. 여기에서 수장으로 내원주를 뽑은 뒤, 신무맹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것입니다.”

“맹주는 무엇을 하느냐?”

“무림에 형식상,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입니다.”

장문인 명진은 당무독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오호…… 그런 방법도 있군.”

“무독아. 천하내원에 들어가는 인물들은 어떻게 정할 것이냐?”

오종은 내원 책임의 신무맹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물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천하내원에 들어가느냐에 관심이 쏟아질 게 틀림없었다.

“신무맹에 입맹한 문파들 중에서 대문파의 경우는 두 명씩. 중소방파의 경우는 한 명으로 천하내원을 구성할 생각입니다.”

“으음…… 무슨 말인지 알겠다. 각 문파에서 뽑힌 내원 소속의 인원들 사이에서 내원의 수장을 뽑는다는 말이구나.”

“네, 맞습니다. 내원에서 뽑힌 그분이 신무맹을 다스리게 되겠지만, 중요한 안건은 내원 소속 인원들이 다수결을 통해 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독단이 없는 방식.

예전 무림맹의 경우, 맹주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던 경우가 많아 중원무림 대문파와 부딪힘이 많았다.

신무맹이 내원 책임으로 된다면 충분히 각 문파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었다.

“본 화산파는 그대의 의견에 찬성을 하네.”

“하하하, 나도 마찬가지다.”

“고맙습니다. 우선 후개와 저희들과 친분이 있는 문파에 먼저 연락을 하겠습니다.”

탁탁.

오종은 당무독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젊음이 좋구만. 무림에 대해서 우린 걱정만 하고 있었거늘.”

“허허, 오 방주가 너무나 부럽소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다섯 명이나 있지 않소이까.”

“하하핫! 제가 지금까지 잘 살아온 모양입니다!”

* * *

양삼은 한편으로 물러나서 한 사람을 지켜보았다.

남하림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완전 바뀌셨어.’

환하게 웃는 남하림의 얼굴을 본 양삼이 미소를 지었다.

오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도 못 했는데.

개방에 가지 싫다고 투덜거리던 어린 남하림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윽-

양삼의 옆으로 당무독이 다가왔다.

“두 분의 허락을 받았소이다.”

“잘됐습니다.”

“내원을 구성한다고 하니 두 분 모두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더군요.”

“공자님께도 그게 편하실 겁니다. 능력은 충분히 되시지만 나이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생각이 다르듯이.”

남하림을 잘 아는 사람이야 괜찮겠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언젠가 문제를 삼을 수도 있었다.

“다섯 공자님께서는 젊습니다. 급할 게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양 총관과 우리에겐 남는 것이 시간이니. 그리고 시작이 중요하지 않겠소이까.”

“맞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남하림을 바라보았다.

휘익!

남하림은 멀리서 시선을 느꼈는지 손을 흔들며 두 사람 앞에 다가왔다.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신무맹에 대해서 말씀드렸어.”

“벌써? 너무 안 빨라?”

“지금이 적당한 것 같았어. 소림사의 일로 정파 무림은 혼란스러울 거야. 천사회는 여전한데 무림맹은 사라졌잖아.”

“혼란스럽다고 해서 문파들이 신무맹에 쉽게 들어오지 않을 텐데.”

“당분간은 어쩔 수 없지. 우선 화산파와 본 방에서 찬성을 했어.”

“당장 이 자리에서? 화산파 장문인께서도 화끈하시네.”

아무리 급해도 신무맹에 합류하는 일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일이었다.

“부장, 신무맹을 어떻게 운영할 건지 저번에 이야기했지?”

“어.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 다급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에 단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럴 때는 예외조항을 두면 돼.”

“여하튼 이런 부분은 무독이 알아서 잘하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주마.”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 말할게.”

* * *

타악!

설백진은 중앙으로 백돌을 내려놓았다.

“계속해서 도망만 다니는구려.”

“송구합니다.”

“혈군사는 본인이 폐관을 하는 동안 바둑만 둔 모양이외다.”

따악.

혈군사 기성이 백돌에 모자를 씌웠다.

끄으으응.

설백진이 신음을 냈다.

“이러다 백대마가 죽게 생겼군.”

설백진이 고개를 숙여 바둑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백돌이 마치 정파 무림처럼 완전히 와해된 것 같구려.”

“맞습니다. 정파는 이제 살아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백집이 살아날 수 없는가?”

“없을 듯싶습니다.”

“그대가 없다면야…… 없겠지.”

설백진은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백돌을 아무렇게나 놓았다.

별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한 한 수.

한데, 순간 기성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흑집 사이에 툭 튀어나온 백돌이 죽었다고 여겼던 백의 대마를 살릴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수를?’

기성은 의문을 가지며 설백진을 슬그머니 살폈다.

심드렁한 시선이, 바둑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모르고 둔 한 수란 말인가?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에이, 그만두세. 계속해서 지니 재미가 없군.”

“……그러지요.”

설백진의 의중을 전혀 알지 못했다.

기성은 천천히 바둑판을 치우기 시작했다.

거의 반쯤 치웠을 무렵.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기성님. 숭산에서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게.”

숭산에서 들려올 소식은 하나밖에 없다.

“천주님, 드디어 소림사를 끝장 낸 모양입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소림사라면 만족하지.”

하지만,

안으로 들어선 수하의 손에는 붉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단번에 혈군사 기성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설백진 또한 붉은색 봉투를 보았다.

천사회로 급하게 날아온 비보였다.

붉은색은 실패했다는 뜻.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혈군사, 봉투에 뭐라고 적혀 있는가?”

스윽.

기성은 천천히 봉투 속에서 서신을 꺼냈다.

파르르-

눈꺼풀이 세차게 흔들거렸다.

설백진은 기성이 준 서신을 받아 읽었다.

“큭.”

어이없는 웃음.

소림사를 무너뜨리고 무극수신공을 얻었다는 소식을 기다렸거늘.

이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서신에는 뜻밖의 인물이 적혀 있었다.

‘그 녀석이 나타날 줄은.’

후개 남하림이 화산파와 함께 숭산으로 내려왔다.

또한 천사백사군 군장 산구창과 싸워 일 초식에 죽였다고 적혀 있었다.

웬만한 무력이 아니고서는 그를 죽일 수 없을 텐데.

내력이 돌아왔다는 것인가?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천이었어.’

설백진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후개가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이유.

남하림은 양천의 전인이었다.

양천은 오래전부터 허무맹랑한 짓을 하며 구천에서 점점 퇴색된 곳일 터인데.

“무단을 성공하다니…….”

전인이라고 하나 전승자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대대로 양천에서 무단에 성공을 전인이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내력과 함께 금강수체의 힘을 이용했을 뿐.

‘후후, 재밌군.’

설백진은 흥미가 일어났다.

구천의 인물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말.

양천을 완벽히 익힌 자.

천하제일인이 되리라.

설백진은 궁금했다.

양천의 후인이 된 남하림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

그리고,

그 구전(口傳)이 정말 사실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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