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84화 (185/328)

184. 무단(無丹)

방주실에 모인 다섯 명.

방주 오종과 일장로 장두철, 법개 위한소, 추개 영충, 마지막으로 당무독이 자리를 함께했다.

방주 오종은 다시금 확인했다.

“소림을 도울 것이라 했느냐?”

“네, 방주님.”

“소림사는 무극수신공을 그들에게 주면 문제가 없다. 그들 욕심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방주님, 우리에게 무극창신공이나 무극도신공이 있는데 천사회에서 요구한다고 해서 두말없이 줄 수 있겠습니까?”

오종은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개방이 소림사의 입장이라면…….

그들에게 무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중원 무림에 개방의 명성은 한없이 추락할 게 틀림없었다.

이는 소림사도 마찬가지일 터.

특히나 그들은 중원 무림의 종주였다.

추개 영충이 나섰다.

“무독, 있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가정으로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그 무공이 있다면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난 개방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다.”

“추개님, 부장은 그 무공이 있고 없고를 떠나 협의에 의해 소림사에 원군을 갔을 것입니다.”

추개 영충은 협의란 말에 말문을 닫았다.

“맞다. 무림맹이 사라진 마당에 그 녀석이라면 당장 소림사로 갔을 것이다.”

장두철은 말을 하면서도 힘이 없었다.

이 자리에 제자가 있어야 했다.

남하림은 내력이 사라진 뒤 항산으로 갔다고 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장에라도 항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법개,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방주님, 본 방은…… 협의지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위한소에게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개방의 존폐에 영향을 받게 되더라도 소림사의 어려움을 구경만 할 수 없었다.

추개 영충은 답답했다.

“허어…… 법개, 자네까지 감정에 휩쓸리는가. 개방의 앞날을 생각해 보게.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네.”

“추개, 난 구차하게 살고 싶은지, 아니면 떳떳하게 개방 방도로 죽고 싶은지 잘 모르겠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택하겠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을 모르는가. 난 자네 말대로 구차하게 살다가 때를 기다리겠네.”

추개는 여전히 원군으로 나가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방주 오종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결국 방주인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녀석이라면…….’

투덜대면서 소림사에 간다고 했을 게 분명했다.

만약 소림사에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그 녀석 성격에 개방을 때려치울 가능성이 높다.

현 개방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이미 자신이 아닌 후개 남하림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남하림의 뜻을 따라 하면 된다.

“여러분, 결정을 내리겠소이다.”

네 사람은 방주 오종이 어떤 말을 할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개방은 소림사로 원군을 보낼 것이오.”

“하하하핫! 방주, 알겠네. 이번 기회에 개방의 힘을 보여주도록 하세!”

장두철은 기합을 넣었다.

* * *

뚝. 뚝. 뚝.

동굴 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남하림은 흑철석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무단지경(無丹之竟) 무심지경(無心之竟) 무신지경(無身之竟) 무신지무(無身之無).’

천괴지체의 구결을 외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몸속의 모든 힘을 비우고 또 비워야 했다.

천괴지체는 기를 운기하지 않아도 늘 몸 내부에 내력이 가득하다고 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내력.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끌어 쓸 수 있는 내력.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비워야 했다.

천괴지체의 시작은 비움.

양천의 주인들 중에서도 완벽한 천괴지체를 이룬 자는 없었다.

천괴지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천괴성의 정기를 받아야 하며,

내력이 한없이 넘치던 단전이 단숨에 사라져야 했다.

양천지동에 들어선 남하림의 눈에 뜨인 것은 오직 한 권의 책자뿐.

첫 장에는 양천의 조사가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NAME?

앞장의 내용은 예전에 사부에게 들었던 말들이었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사람이 가질 수 있다는 의미.

‘이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내력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거군. 몸이 받쳐주는 한도 내에서는…… 이게 몸이 튼튼해야 하는 이유였어.’

천괴지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금강수체의 몸을 만들어야 했다.

천지의 기운을 사람의 몸에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금강을 익혀야 가능했으니까.

이건 남천상국에 있을 때부터 익힌 거이다.

금강수체가 완성된다면 천괴지체의 수련에 들어설 수 있을 터.

금강체를 이룬 몸 안에, 천지의 기운을 무한대까지 버틸 수 있는 완벽한 천괴지체를 만들면 끝이다.

내용은 간단했다.

비우고 넣으면 되는 일.

하지만 몸속을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 어디를 비워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책자에는 무조건 비워야 한다고만 적혀 있었다.

방법이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뜻.

‘하긴. 비우는 방법이 적혀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었겠지.’

남하림은 그날 이후, 하루에 한 번 식사를 하는 시간 외엔 흑철석 아래에 적혀 있는 구결을 외울 뿐이었다.

뚝. 뚝.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처음 흑철석에 올라앉았을 때는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는, 귓가에 물방울 소리만이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천괴지체의 구결이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구절이 어디에서 떠오르는 거지?’

몸 전체에서 구절이 떠오르고 있었다.

남하림은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손을 들어 올리자,

‘허어…….’

가벼웠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신기해진 남하림은 손을 좌우로 움직였다.

움직이는 느낌은 있으나 손이 없는 듯했다.

비운다는 느낌이 이것인가?

남하림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양천지동에 들어선 후, 드디어 길을 찾았다.

‘됐어. 이제 알았어.’

남하림은 흑철석에서 내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지만.

허기가 질 정도로는 지난 것이 확실했다.

“천괴곡에 한 마리 잡혀 있을란가 모르겠군.”

양천지동을 나오자, 사방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밤이구나.’

먼저 초가집 마당 한편, 사부의 묘에 가서 인사를 했다.

“사부님, 조만간 될 것 같아요.”

* * *

화르르르-

천괴곡에 잡혀 있던 산토끼.

사냥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남하림은 마당에 피워놓은 불을 보면서 토끼가 구워지낄 기다렸다.

천괴곡에 들어온 후 얼마나 지났는지 궁금했다.

‘음…… 수양성이 북쪽 감(坎)으로 간 걸 봐서 보름 정도는 된 것 같군.’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했다.

오성의 이름을 지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들이 보고 싶었다.

‘개방에 잘 돌아갔겠지? 다들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혈사천주 설백진이 다시 생각났다.

그는 분명 무림맹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그 인간이 무림맹주를 만나러 간다고 했지. 왜 가는지 안 물어봤구나.’

무슨 일로 유극지를 만나러 가는지 궁금해졌다.

설마 한바탕 싸우는 건 아니겠지?

타닥!

불꽃이 튀었다.

* * *

스으으으-

몸이 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신지무(無身之無) 무신지용(無身之用 무신지허(無身之虛) 무신지공(無身之空) 무신지아(無身之我) 무계무신(無界無身).

천괴지체의 구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외우는 것이 아니었다.

구결은 전신에 흐르는 혈맥에 녹아 스며들었다.

몸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점점 투명하게 변하던 남하림의 신체는 어느덧 흑철석 위에서 사라졌다.

우우우우우우-

덜덜덜덜.

흑철석이 떨리기 시작했다.

점점 세차게 흔들리던 흑철석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아래 바닥에서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흑철석.

균열이 상단 윗부분까지 완전히 도달했을 때,

쩌어억!

단단해 보이던 흑철석이 반으로 쪼개졌다.

투명해졌던 남하림의 몸은 어느새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완전 깨져 버렸구나.”

남하림은 깨진 흑철석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이상한 물건이 눈에 뜨였다.

‘어, 뭐지?’

죽편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가 흑철석 안에 놓여 있었다.

‘이건 완전 골동품인데.’

대충 봐도 몇백 년은 지난 물건이었다.

차르르르-

곧바로 죽편을 펼쳤다.

첫마디가 광오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양천천주가 남기노라.

‘이야, 이분도 보통 분이 아니시네.’

굉장히 당당하게 밝히고 있었다.

천지의 기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지니

천지 아래 모두 내 발밑에 있도다.

정말 대단하시군.

남하림은 죽편을 읽어 내려갔다.

지금까지는 비우는 것이었다면, 죽편에는 천지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수련이 적혀 있었다.

“하아…… 끝난 게 아니었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련이 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 * *

천지의 기를 받는 수련은 생각보다 쉬웠다.

다만 몸 전체에 가득 기운이 담길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양천지동 웅덩이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천지의 기는 조금씩 조금씩 남하림을 채워갔다.

익숙해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천괴기가 어느 정도 차이면 다시 버리면서 또다시 채워야 했다.

그 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한 방울이 두 방울이 되고.

그다음 두 방울이 네 방울로 되어 천지의 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휴우.’

천천히 눈을 뜬 남하림은 가부좌를 풀며 일어섰다.

분지의 가운데로 걸어간 남하림.

우우우웅-

천괴기가 펼쳐졌다.

단전이 아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신에서부터 기가 일렁거렸다.

타앗!

만리추풍신법을 펼치자,

휘리리릭!

남하림은 어느새 천괴곡의 입구까지 다가섰다.

설백진에게 내력을 잃기 전에 펼쳤던 만리추풍신법과 차이가 없었다.

우우우우웅-

이번에는 강룡십팔장을 뻗어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맹룡 한 마리가 굉음을 지르며 분지 위로 솟구쳤다.

콰아아앙!

허공에서 터진 폭발이 사방을 둥글게 쓸어버리는 바람을 일으켰다.

씨익.

남하림은 충분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됐어.”

완전한 천괴지체의 힘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동안 무작정 양천지에 있을 수 없었다.

“설백진, 당장은 어렵겠지만 기다려라.”

* * *

소림사와 개방.

숭산까지 밀린 소림사는 개방의 원군에 한숨을 돌렸다.

이후 두 문파는 철혈방과 신천문의 연합을 상대로, 한 달 동안 대치하며 막아냈다.

팽팽하게 대치한 상황에서, 천사회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북에서 하북팽가가, 호북에서는 무당파가 움직일 것이라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무극수신공을 두고 전 무림에 혼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벌써…… 이 개월이 지났구나.’

남하림은 항산을 내려오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오늘 날짜를 물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나 있었다.

곧 눈앞에 항산객잔이 나타났다.

‘마차가?’

이 개월 전, 자신이 타고 왔던 마차가 그대로 있었다.

‘설마…… 지금까지 나를 기다렸던 건가?’

객잔으로 들어섰다.

“어서…… 옵……!”

문을 향해 소리치는 인물.

마부 동삼이 분명했다.

“앗……! 공자님!”

동삼은 당장에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글썽글썽하며 달려왔다.

“아직까지 여기 있었어요?”

“가라는 말이 없어서…… 기다리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허어…… 반갑긴 합니다만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릴 줄은 정말 몰랐네요.”

“마차도 제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갈 곳도 없고 해서 공자님을 기다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생각지도 못했어요.”

“공자님께서는 그동안 계속 산에 계셨습니까?”

“아는 분이 계시는 곳에서 지냈어요.”

“아…… 전 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사냥꾼들에게 물어봤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어서 혹시나…….”

“하핫, 음, 이제 여기 생활을 그만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마차는 언제라도 오시면 떠날 수 있도록 정비를 잘해놓았습니다.”

“잘됐네요.”

동삼은 남하림의 앞에 앉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무림에서 이 개월 동안 일어난 사건들.

혈사천주 설백진의 등장.

무림맹의 와해.

은하궁과 중원오대세가연합으로 나누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은 숭산에서 일어난 대전이었다.

소림사와 개방.

그리고 천사회 소속의 철혈방과 신천문.

“대충 이 정도입니다요.”

“개방에서 다행히 잘 움직여 주었네요.”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협의지문이라며 개방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맹주 유극지. 언젠가는 무슨 일을 벌일 줄 알았어.’

무림맹이 결정적인 순간에 와해되었다.

혈사천주 설백진은 맹주 유극지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나쁜 놈의 새끼들.

‘유극지. 설백진. 제갈령……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인간들이야.’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에이……!”

팍! 팍! 팍!

남하림은 도삭면을 입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오물오물.

‘두고 봐. 당신들 뜻대로 되지 않도록 만들어주겠어.’

탁.

다시 그릇을 내려놓자, 도삭면 국물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동삼 아저씨. 다 먹었는데 가죠.”

“아!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숭산으로 갑시다.”

“숭산을요? 고, 공자님! 거긴 위험합니다!”

동삼은 앞에 앉은 남하림이 여전히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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