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격변
금강수체의 힘을 이용하여 십이 성의 강룡십팔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남하림은 완벽한 기회를 노렸다.
쉬익!
홍기조가 남하림 목을 향해 날아가,
스걱-
그 앞을 빠르게 스쳐 갔다.
아슬아슬하게 한 치의 간격 차이.
찌리릭!
홍기조가 스친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번 건 센데……!’
버틸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전력을 다한 문령의 공격에 생각보다 큰 부상을 입고 있었던 것.
“크큭, 제법이군. 내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피하다니…… 이것도 피할 수 있는지 볼까?”
문령은 공격을 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남하림의 몸에는 정말로 내력이 없었다.
휙! 휙!
장난삼아 무작정 홍기조를 휘둘렀다.
까아앙!
까아앙!
남하림의 몸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찢어진 상의 자락 안으로 혈선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단 한 번!’
상대가 피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기회.
전신의 힘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다.
쓰윽-
문령이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이젠 끝을 내야겠어. 상대가 반응해야 재미가 있는데.”
슈우우욱-
홍기조의 붉은빛이 한층 더 진하게 솟구쳤다.
“네놈의 목구멍을 뚫어주겠다.”
타앗!
문령은 단숨에 남하림 앞에 섰다.
“끝이다!”
번쩍.
‘지금!’
남하림의 눈에서 빛이 뻗어 나왔다.
단 한 번의 공격.
단전의 내력이 아닌 금강수체의 힘으로 강룡십팔장을 끌어냈다.
쿠가가가가가가가가강!
홍기조가 남하림의 목을 뚫기 전,
문령의 얼굴을 향해 강룡십팔장이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뚜둑.
문령의 목뼈가 부러졌다.
쿠우웅!
단 한마디의 비명도 없이.
문령은 목이 부러진 채 쓰러졌다.
“허억…… 헉.”
남하림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전력을 다해 쏟아낸 일장에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아이고…… 일장 한 번 썼다고 죽겠네.’
앉아서 쉬고 싶었다.
“아저씨……!”
남하림은 멀리 떨어져 있는 마부 동삼을 불렀다.
후다다닥!
“고,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동삼은 얼른 남하림을 부축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네요. 그래도 마차까지만 부탁 좀 할게요.”
“아…… 네에…….”
다그닥.
우여곡절 끝에 남하림이 마차에 올라탔다.
소매로 목을 쓱 문지르자 상처에서 피가 묻어나왔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을 뻔했어. 여하튼 잘 참았군.’
첫 번째 공격 때 바로 반격했다면 목에 상처는 없었겠지만, 문령을 죽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허덜덜.
상의는 완전히 찢겨 걸레처럼 되어 있었다.
“이게 진짜 거지 옷이군.”
괜히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거지복이 아닌 일반 경장차림을 입었는데.
내 팔자가 진짜 거지 팔자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기운이 빠진 상태에서 긴장이 풀리자 잠이 밀려왔다.
“잠이나 자야겠다.”
* * *
항산 아래 마을로 들어서는 마차 한 대.
“공자님.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남하림은 마차 밖으로 나왔다.
멀리 항산이 보였다.
‘저기에…….’
상무우 사부가 있을지는 모른다.
무작정 온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막상 항산 아래에 도착하니 막막했다.
넓고 넓은 항산에서 어떻게 그를 찾아야 할지.
“공자님, 지금 산에 올라가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조만간에 날이 어두워질 겁니다.”
“그런가요?”
“내일 일찍 올라가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오늘은 이 마을에서 하루 보내고 가죠.”
“소인이 방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객잔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항산객잔.
방을 잡은 뒤 간단한 식사를 위해 일 층 객잔으로 내려왔다.
동삼이 먼저 음식을 시켜놓았다.
“공자님, 여기가 산서일미 도삭면이 유명하다고 해서 시켰습니다.”
“잘하셨어요.”
남하림이 자리에 앉자마자 점소이가 두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후루루룩!
남하림과 동삼이 그릇을 거의 비워갈 때.
덜컹!
객잔의 문을 열고 사냥꾼들이 들어왔다.
“에이…… 술이나 마시세나.”
“망할 놈이. 하필이면 천괴곡으로 도망을 가다니……!”
멈칫.
남하림의 젓가락이 도중에 멈추었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네 명의 사냥꾼들.
“안녕하세요.”
남하림은 벌떡 일어나 사냥꾼이 앉은 자리에 갔다.
스윽.
사냥꾼들은 다가온 남하림의 모습을 살폈다.
제법 돈 있는 집안에 자제의 모습이다.
“무슨 일이오?”
“혹시 뭘 사냥하시는지 궁금해서요.”
“…….”
“네 분을 딱 보니 보통 분들이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 뭐어…… 이것저것 사냥을 하지.”
옆에서 동료 사냥꾼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오늘도 멧돼지를 잡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그놈이 천괴곡으로 도망을 가는 바람에 아쉽게 놓쳤지.”
“천괴곡에 들어가서 잡으면 안 됩니까?”
“그건 안 되네. 천괴곡에는 들어갔다가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이 없거든.”
“왜 그런가요?”
“그건…… 우리 사냥꾼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소문이지.”
사냥꾼들은 한참을 천괴곡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항산의 호풍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협곡이 천괴곡이라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맘껏 드세요.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와하핫, 정말이오?”
“고맙네!”
남하림은 사냥꾼들과 인사를 한 뒤 동삼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사부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았어.’
찾아가야 할 장소는 천괴곡이었다.
* * *
아침이 밝았다.
남하림은 사냥꾼들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항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항산은 오악 중 협곡이 가장 깊은 곳.
산을 오른 지 두 시진이 지났다.
휘이이이잉-
절벽 사이를 지나오기를 서너 번.
일반 사람들 같았으면 오줌을 지릴 정도의 천 길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다.
‘아찔하긴 하네.’
오물오물.
남하림은 입에 왕만두 하나를 물고는 아래 절벽을 내려다보았다.
‘어차……!’
절벽 끝을 지나자 또 다른 협곡이 나타났다.
“다 왔다.”
사냥꾼들이 말한 천괴곡.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 힘들다는 그곳은 죽음에 둘러싸인 듯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찝찝하긴 한데…….”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 들었다.
휙!
협곡 안으로 던지자,
“…….”
‘……아무 소리도 안 나잖아.’
분명 바닥에 떨어져야 하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남하림은 귀신이나 영혼의 존재에 대해 믿지 않았지만,
‘거참, 더 이상하잖아.’
순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남하림은 반각 정도를 가만히 선 채 망설였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언젠가 내력이 돌아온다고 해도, 혈사천주 설백진에게 또 당할 수 있다.
불끈!
갑자기 의지가 일어났다.
설백진을 패려면 무조건 금강수체의 힘을 전력으로 펼칠 수 있어야 했다.
“가자.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음…….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스으윽-
남하림은 천천히 협곡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 * *
스으으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어억.’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서 무엇인가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남하림이 펼칠 수 있는 것은 오직 금강수체의 기(氣)뿐.
스르륵.
‘이…… 건…….’
마치 발바닥을 밀어내는 듯, 바닥에서 부드럽게 발이 떨어졌다.
협곡의 바닥이 금강수체에 반응하고 있었다.
남하림은 확신이 들었다.
‘여긴…… 상무우 사부와 분명히 연관이 있는 곳이야.’
더 이상 어둠은 두렵지 않았다.
스스스스-
마음이 편안해지자 사방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안으로 길게 이어진 협곡.
남하림은 천천히, 계속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동안 걸었는지 몰랐다.
‘빛이다.’
드디어.
멀리 어둠이 끝나는 모습이 보였다.
남하림은 살짝 눈을 찡그리며 눈부신 햇빛 속으로 들어섰다.
“하아아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
절벽 사이에 작은 분지가 있었다.
분지의 끝에 세워져 있는 것은 초가집.
‘저곳에…… 상무우 사부가…….’
남하림은 천천히 분지로 들어섰다.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안 계시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저건…….’
마당에 석관이 놓여 있었다.
남하림의 표정이 굳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
‘설마…… 사부님께서…….’
남하림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석관에 다가섰다.
“사부님…….”
양천 상무우 죽음에 들다.
스르르릉-
남하림은 석관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아…… 하아…… 사부…… 님.”
오래전 헤어졌던 상무우의 얼굴이 틀림없었다.
마치 어제 돌아가신 것처럼 깨끗한 모습.
남하림은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렸다.
살아 계실 거라 여겼는데.
남천상국에서 헤어지던 날.
그는 다음에 만날 테니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분의 기억을 좀 더 빨리 떠올렸다면…….
좀 더 일찍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죄송해요. 사부님.”
남하림이 석관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가지런히 모은 손에 쥐여져 있는 봉투가 눈에 띄었다.
#NAME?
‘이건…… 나에게?’
남하림이 시신의 손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안에는 한 장의 서신이 들어 있었다.
#NAME?
맨 위에 적혀 있는 문장.
자신에게 보낸 글이다
#NAME?
아마도 넌 내력을 잃고 여기에 찾아왔겠지.
좀 더 일찍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네가 내력을 잃은 후에 기억이 나도록 안배를 했기 때문이니라.
상무우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남하림의 내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NAME?
천괴성의 정기를 받은 자만이 진정한 천괴수체를 익힐 수 있지.
상무우 사부가 남천상국으로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NAME?
네가 양천을 이어받을 운명이라면.
넌 단전이 사라진 채 내 앞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니라.
‘사부님…….’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남하림의 상황을 예견했다.
#NAME?
그곳에 가면 제자의 천괴지체를 완벽하게 이룰 수 있으리라.
하림아.
처음이자 끝으로 부탁을 하나 하고 싶구나.
구천의 본래 의미가 퇴색된 지 수백 년이 지났다.
사부 또한 구천의 일인이라 하지만.
무림은 더 이상 구천의 힘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이니라.
긴 서신의 글이 끝났다.
“……사부님, 편히 쉬세요. 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제가 꼭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스르르릉-
남하림은 석관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당 한편에 상무우의 무덤이 생겼다.
* * *
양천지동(陽天之洞).
초가집 뒤편으로 동굴이 보였다.
‘여기에 들어가면 된다고 했지?’
천괴곡으로 들어올 때와 다른 긴장감이 들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남하림은 이내 결심했다.
‘설백진. 이건 당신 덕분이야.’
타악!
드르르릉-
양천지동의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 * *
무림은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숨죽여 있던 것들의 야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꿈틀거렸다.
그중 혈사천주 설백진의 등장은 무림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
폐관을 마친 그의 행동에 온 관심이 집중되었다.
후개 남하림과 첫 만남에서 결전을 벌이고, 단번에 남하림의 단전을 없앴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당사자가 사라졌기에, 진실 여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혈사천주 설백진은 그다음 행적으로 무림맹을 찾은 후, 반시진도 머물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
천사회로 돌아간 그는 곧바로 사파들을 모았다.
그리고,
소림사에 선전포고를 했다.
무극수신공을 넘기지 않는다면 천사회에서 쳐들어갈 것이다.
소림사는 곧바로 무림맹에 원군을 요청했다.
하지만 무림맹 맹주 유극지는 소림사의 뜻을 거절했다.
무림맹의 존재 의미에 대해 따지는 소림사에게, 맹주 유극지는 뜻을 밝혔다.
무림맹은 공식적으로 해체할 것이다.
무림맹의 공식 해체.
폭풍 같은 사건이었다.
이후 은하검인 유극지는 무림맹 무력의 대부분인 무림육천과 함께 은하궁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였던 제갈령도 제갈세가, 남궁세가, 모용세가, 상관세가, 하후세가를 모아 오대세가연합을 세웠다.
이 모든 것이 한 달 만에 일어난 격변이었다.
* * *
특외부에 다섯 사람이 모였다.
“난리 났구만.”
무림의 소식은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곧 천사회에서 소림사로 움직일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천사회가 움직이는 모양이지?”
“철혈방과 신천문이 숭산으로 가고 있어.”
팽유도는 시선을 돌렸다.
“휘연 형, 소림사에서 두 문파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막아낼 수는 있다. 다만…… 그게 끝이 아니라면 숭산은 전멸일 거다.”
“끝이 아니라는 게…… 무슨 말이죠?”
“혈사천주 설백진. 이자의 싸움 형태를 보면 항상 그런 식이다. 모든 일의 마무리는 혈사천의 세력을 보내서 직접 밀어붙인다고 할 수 있다.”
“숭산, 소림사를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성철각이 걱정스러운 듯 덧붙였다.
“그들을 도와줄 세력은 없다. 이제 중원에서 무림맹은 사라졌어.”
“군사 제갈령이 이끄는 오대세가연합은요?”
“그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소림사를 도울 수 있는 세력은…… 이제 없다.”
“부장이 있었다면…… 달라졌겠죠?”
남하림이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형제가 보고 싶었다.
옆에서 황보궁이 큰 소리로 말했다.
“대형이라면 당연히 도와줬을 겁니다.”
“맞다. 부장이라면 죽더라도 갔겠지.”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당무독이 결정을 내렸다.
“맞아요. 갑시다. 우리 개방만이라도 소림을 도우러 가죠.”
“무독 형, 난 찬성!”
“나도…….”
“알겠다. 준비하자.”
번쩍!
황보궁도 손을 들었다.
“저도!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