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구용성
객잔은 시끄러웠다.
휙.
헉!
어느 순간 소음들이 뚝 멈추면서 고요해졌다.
쏴아아아-
적막감이 감도는 일 층의 객잔.
객잔 손님들의 시선은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여섯 명의 인물들에게 맞추어졌다.
저들이다.
저녁에 기습한 대산장을 박살 낸 걸협오성.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일백 명이나 되는 대산장의 자객들이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소문에는 시간이 없는 법.
해가 뜨기도 전에 소문은 산동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NAME?
객잔의 주인 변익장은 계단 아래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렸다.
“후개님, 송구하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본인에게 죄송할 일이 있었소?”
“그게…… 어젯밤에 자객이…….”
“아! 하하, 그게 주인장과 무슨 상관이오. 오히려 우리들 때문에 객실이 많이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자 했는데 잘됐소이다.”
남하림이 그에게 전표 한 장을 주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전표의 금액을 살짝 살핀 변익장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아이고…… 후, 후개님.”
놀란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이 녀석 아침이나 거하게 먹여야 겠소이다.”
“다, 당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슥슥.
길을 걷는 도중.
남하림은 무극도신공을 한 장씩 넘겼다.
어떨 때는 한참을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성의 없이 종이를 휙휙 넘길 뿐.
타악!
마지막 장까지 본 후 무공서를 덮었다.
‘구천마제, 이 양반 대단한 사람이긴 하네.’
무극창신공도 그렇고,
방금 본 무극도신공도 천하의 절기가 틀림없었다.
아직 나타나지 않는 두 개의 무공.
무극검신공(無極劍神功).
무극수신공(無極手神功).
사대절대무공을 모두 익힌 고금제일인 구천마제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만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야.
무극창신공을 본 뒤 미심쩍었던 생각이 무극도신공를 보자 확실해졌다.
맹주의 무공이 구천마제를 넘어선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맹주 유극지.
비밀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건…….
‘구천신품뿐이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림 형.”
팽유도가 다가섰다.
남하림의 손에 든 무극도신공에 시선이 닿아 있었다.
“어때요? 정말로 대단한 것 같아요?”
“볼래?”
끄덕.
팽유도가 무공서를 받았다.
이게 바로 그 천하제일 무공이다.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서너 장을 넘겼지만,
쓰읍.
팽유도는 곧바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대에 찼던 눈빛은 이내 실망감이 되었다.
상상한 것과 달랐으니까.
구결 하나에 천지개벽을 시킬 무공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탁.
폈던 무공서를 접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일단 나한테는 안 맞아요. 이 무공은 중도(重刀) 도법을 사용해요. 그리고…….”
팽유도는 말을 흐리며 끝까지 뱉지 못했다.
“후후후, 유도야, 자신감을 가져도 돼. 넌 걸협오성의 도천걸이야. 세상을 향해 소리쳐도 돼. 난 천상천하 유아독존 도천걸 팽유도다!”
“으아…… 형…….”
팽유도는 주위를 살피며 얼굴이 붉어졌다.
무극도신공은 정말 강한 무공이 맞았다.
완벽하게 익힌다면 세상에 베지 못할 게 없는 도법의 절대강자.
하지만.
“별로 강하다고 생각이 안 들지?”
“네에…….”
“네가 강해진 거야. 혹시 나중에 필요하면 나에게 물어봐.”
“형…… 벌써?”
“기본 아니냐? 나 똑똑해.”
“그렇긴 하죠.”
남하림은 무공서를 다시 품 안에 넣었다.
* * *
하남성으로 가는 길은 적과의 동침이었다.
‘많군.’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운.
무극도신공을 원하는 그들의 눈빛.
하지만 그들은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무림 최고의 무공을 지녔다는 말을 들었어도 그들의 강함은 가늠하지 못했다.
직접 당하기 전에는.
타앗!
팽유도의 신형이 달려 나갔다.
오십여 명의 무리들을 향해 묵흑반도가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동작은 단순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도법.
도악군림의 무리들은 합공을 펼치며 팽유도의 묵흑반도를 맞섰다.
“궁아! 곧바로 쳐들어가라!”
“넵, 유도 형!”
둥! 둥! 둥!
황보궁의 육중한 체격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이…… 놈을 막아라!”
퍽! 퍽! 퍽!
황보궁은 눈에 보이는 대로 일권을 날렸다.
“아아악-”
“어억!”
비명이 하나둘씩 터졌다.
멀리서 그 장면을 보는 시선들.
“궁이도 제법이야.”
“그러게. 이제는 힘 조절도 해가면서 싸우고 있군.”
당무독의 말처럼 대산장 이후 황보궁은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각이 지나가기도 전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궁아, 잘했어!”
“유도 형이 잘 가르쳐 줘서 쉽게 이겼어요.”
“하하, 네가 잘해서 그래.”
짝짝짝.
남하림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서면서 박수를 쳤다.
“대형, 어땠습니까?”
“잘했다. 이제는 무림인답다.”
“헤헤헤헤, 다섯 형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남하림은 바닥에 쓰러진 도악군림의 림주에게 다가섰다.
“어떻게 하겠소? 당신들이 계속 싸우기를 원한다면 난 여기에서 끝을 낼까 하는데…… 후후후.”
도악군림의 림주가 남하림의 웃음을 들었다.
섬뜻.
온몸을 죄여오는 기.
살기가 분명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살소.
“후개님, 죄, 죄송합니다. 소인이 눈에 멀었습니다.”
“흐음, 원래라면 본인은 이번에도 당신들을 봐줘야겠지요. 왜냐하면 난 후개이니깐. 후개는 아무도 죽이지 않더라. 그렇다면 밑져도 본전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기습을 했겠지요?”
림주는 말문이 막혔다.
후개의 말은 너무나 정확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더 이상 똑같은 짓을 하고 싶지 않군요.”
허걱!
림주는 가슴이 철렁거렸다.
뭐, 뭐야.
이러면 안 되잖아.
왜 하필이면 그걸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건데!
“후개님. 앞으로 두 번 다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림주야 그렇게 말하겠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뜻을 모른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꿀꺽.
목이 바짝 말라왔다.
림주는 뒤를 돌아서 가는 남하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곧이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다리 하나씩만 부러뜨리겠소이다. 다음에 오는 놈들은 다리 두 개. 그다음에 오는 놈은 팔 하나 추가. 점점 강도는 올라갈 것이외다.”
스윽.
뒤로 물러난 남하림 앞으로 다섯 명이 나섰다.
“궁아. 방금 말 잘 들었지. 무림에서는 가끔씩 이런 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사람이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가야 하는 거거든.”
“넵. 명심하겠습니다.”
“인정이란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것이지. 쳐라.”
남하림의 명이 떨어졌다.
퍽! 퍽! 퍽! 퍽! 퍽!
“아아아악!”
도악군림 사이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 * *
무림맹으로 가는 길.
한가할 정도로 조용했다.
도악군림에게 보여준 본보기에 무극도신공을 노리던 세력들은 쉽게 공격하지 못했다.
“유도 형, 심심하지 않아요?”
황보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삼 일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바탕 움직일 수 있게 누구라도 나타나면 재미있을 텐데.
뚝.
그때, 이휘연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 기운은…….’
그 녀석이다.
황보세가에서 너무나 유연하게 빠져나갔던 인물.
“휘연 형. 혹시 저번에 이야기했던 인물인가?”
“그가 맞다.”
기가 전방에서 느껴졌다.
‘킥.’
역시 천살성인가.
이 정도 거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다니.
무시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하기엔 버거울지도.
‘흥, 그래도 무극도신공은 찾아야겠지.’
가볼까?
휘이이익!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봅니다!”
그가 여섯 명을 향해 반갑게 소리쳤다.
홀로 나타난 청년.
자신만만한 모습.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의 행동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는 것은 달랐다.
무림에 나온 뒤 이와 같은 인물은 처음이었다.
“하하, 왜 말들이 없소이까?”
청년은 멈추지 않고 곧바로 여섯 명 앞으로 다가섰다.
휙!
이휘연이 먼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한심걸 이휘연. 나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쉬익.
완벽한 일검이 펼쳐졌다.
태극흑검이 청년이 가슴을 베었다.
휘익!
그런데,
검은 청년을 그대로 통과하여 지나쳐갔다.
‘뭐지?’
이휘연은 순간 믿기지 않았지만 빠르게 검을 당겼다.
스팟!
스극-
연이어 두 번의 공격.
목과 허리.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허공을 지나쳐 갔다.
이휘연의 얼굴이 표정이 굳어 심각해졌다.
청년은 즐거웠다.
‘후후, 놀라고 있군.’
이런 맛이지.
약자와 싸우면 재미없다.
강자와 싸워 놀리는 맛이 좋았다.
파아앗!
믁흑반도를 머리 위로 올린 팽유도가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이것까지 피해봐라!”
슈우우우웅- 카아아아앙!
청년의 어깨까지 떨어진 묵흑반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어……?’
팽유도의 묵흑반도가 휘청거리며 청년의 몸을 통과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움직이는 기척조차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절대고수다.’
이자의 무공은 우리들의 수준과 다르다는 것인가?
곧이어 성철각이 움직이려고 했다.
“철각, 함께 싸운다.”
타앗!
당무독이 빠르게 달려 나왔다.
양손에서 무형비강이 쏟아지며 청년을 향해 떨어졌다.
“애들 장난 같은데.”
풋.
청년은 한 손을 뻗어 무형비강의 방향을 틀었다.
챠르르르-
그 순간 성철각의 철선각이 청년의 허리를 향해 날아갔다.
‘도망을 못……!’
파앗!
빛이 사라지는 듯 청년의 모습이 사라졌다.
목표를 잃은 성철각의 발이 허공을 갈랐다.
“킥킥, 이거 참. 실망이군. 한 명도 나를 건드리지도 못하다니.”
불쑥!
청년이 남하림의 앞에 바짝 다가섰다.
“후개, 자네는 가능할까 모르겠어?”
스르륵-
남하림은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아악!
청년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왼쪽 손가락으로 따라가자,
퍽!
그 순간 남하림은 청년의 왼쪽 얼굴을 내리쳤다.
청년의 얼굴이 휙 돌아가며 휘청거렸다.
‘이 자식이……!’
보기 좋게 얻어맞은 청년이 남하림을 노려보며 살기를 뻗어냈다.
“가능하군요.”
웃음기가 섞인 남하림의 목소리.
청년의 신법은 대단했다.
걸협오성의 네 사람조차 따라잡지 못할 정도니까.
하지만 남하림은 달랐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혼령안(魂靈眼).
이유는 남하림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보였다.
청년은 헛웃음이 표정에 나왔다.
‘하, 이거 어이가 없군.’
생각지도 못한 일.
후개가 공무보(空無步)의 움직임을 파악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청년은 한 번 더 펼쳐보기로 했다.
만일 이번에도 알아낸다면 확실히 공무보를 꿰뚫어본 게 틀림없다.
“후개. 이번은 다를 것이다.”
스르륵-
청년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타앗!
그와 동시에, 남하림이 오른손을 들어 청년의 팔을 쳐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 이어지는 우연은 없다.
“……후개, 나를 어떻게 찾았지?”
“그냥 보인다고 하면 믿겠소?”
남하림의 눈빛과 목소리.
거짓은 아니었다.
“그냥 보였다니. 신기한 재주를 가졌군.”
그는 곧바로 인정했다.
후개 앞에서 공무보는 소용이 없었다.
남하림은 청년의 신분이 궁금했다.
“당신은 우리들을 알고 있지만, 우린 당신이 누군지 모르오. 우리 통성명이나 먼저 하는 게 어떻겠소이까?”
“흐흠, 통성명이라…… 굳이 알 필요 있을까?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하는데.”
“죽을 땐 죽더라도 너무 비싸게 굴지 말고, 인사나 합시다.”
“하하하! 이거 참. 어차피 죽을 놈이 이름을 묻기는…… 좋아. 내 이름은 구용성이다. 이제 됐느냐?”
“흐음, 어디서 왔지요? 내가 생각했던 곳은 아닌 듯…….”
“아니. 거기까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아도 의미 없을 테니. 내 물건만 가지고 가면 될 뿐이다.”
“혹시…… 당신이 그것을 뿌렸소?”
청년, 구용성은 말문을 닫았다.
남하림은 바로 알았다.
무극도신공을 뿌린 놈은 이 녀석이었어.
신비 세력.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제3의 세력이 나타난 것이다.
중원을 혼란에 빠트리는 무리들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당신이군.”
“맞다. 내가 무극도신공을 중원에 내놓았지.”
남하림은 긴장이 되었다.
무극도신공을 중원에 내놓다니.
구천마제의 무공을 우습게 본다는 뜻인가.
구용성은 말이 나온 김에 뱉어냈다.
“청극도왕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무극도신공을 던진 후 구천마제의 이름을 팔았지. 단번에 달려오더군.”
“무림을 대혼란에 빠트릴 계획. 이유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소. 무공을 배웠다는 놈들은 대부분 원하는 게 무림 제패이더군. 네놈들도 무림을 원하겠지? 하지만 쉽게 될까? 무극창신공도 실패한 것으로 아는데.”
피잇!
구용성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그렇지 않아도 무극창신공이 중간에 사라졌다.
그런 일이 없도록 이번에는 계속해서 지켜보던 중이었다.
“후개…… 네놈 짓이었구나.”
“거참, 내가 했다고 한 적은 없소. 괜히 생사람 잡지 말고.”
구용성의 한쪽 입술이 꿈틀거렸다.
“네놈은 오늘 여기에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