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죽음
이각도 지나지 않았다.
덜덜덜.
당두 호장우는 몸이 떨렸다.
이들과의 싸움을 말려야 했던 전직 상관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스윽.
호장우의 앞으로 그가 다가왔다.
‘살귀…….’
이휘연의 차가운 시선에, 그는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동창에서 우리를 죽이려는 이유가 뭐지?”
“…….”
호장우는 입을 뗄 수 없었다.
“죽고 싶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단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아닙니다. 황공님께서 부서진 구천신품 때문에 화가 나셨습니다.”
“그런가?”
남하림이 다가섰다.
‘환관인 줄 알았는데 동창의 인물이었군.’
“그가 북방상국에는 왜 왔지?”
“그건…… 운유단을 가지러 왔습니다.”
“운유단이 뭐지?”
“저희들은 환각단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운유단(雲遊團).
마치 구름 위에 떠다니는 기분을 느낀다고 붙여진 환각단의 또 다른 이름.
“그걸 어디에 사용하려는 모양이지?”
“그건…… 소인도 잘 모릅니다.”
“좋아. 모른다니 그냥 넘어가지.”
남하림은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운유단이나 가지고 가면 될 것을 구천신품에는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알기에 제독동창께서도 구천신품이 있어 황공님께서 선물로 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치자 호장우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제독동창이 구천신품을 가지고 있다고?’
동창의 수장.
관의 책임자들 중엔 환관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제독동창이란 인물은 꽤나 상대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모른 척해야겠군. 괜히 군사가 알면 피곤해질 게 틀림없어.’
“알았으니 돌아가서 내 말을 꼭 전하시오.”
“무슨 말씀을……?”
* * *
황공의 앞에 선 호장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밖에는 일백 명이 중경상을 당한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서로 괜한 일로 피곤하게 싸우지 맙시다.”
“방금 뭐라고 했지?”
“…….”
“피곤하게 싸우지 말자고?”
황공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호 당두. 지금 백 명이나 되는 수하들을 반병신으로 만들고 와서 거지 녀석이 하는 말을 내게 전한 것인가?”
털썩!
호장우는 그 자리에 바짝 엎드렸다.
“황공님, 죄송합니다.”
퍼억!
황공이 그를 걷어찼다.
‘욱.’
고통을 참으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휙.
황공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이번 기회에 잘 보였어야 했거늘. 아쉽군.’
그는 현재 비어 있는 금의위 수장에 관심이 매우 많았다.
제독동창의 추천이라면,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터.
“……할 수 없군. 이번에는 양을 조금 더 많이 가져가야겠어.”
그가 천진에 온 이유는 백진묵과의 거래 때문.
즉, 운유단을 얻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후후. 제독독창께 평소보다 두 배의 양을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음…… 그건 그렇고…… 그 녀석을 가만히 두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호 당두.”
“넵. 황공님.”
호장우가 부복한 채 큰 소리로 대답했다.
“천진성부에 가서 지금 당장 군사들을 끌고 오도록.”
“…….”
“지금 무슨 말인지 듣지 못했나?”
“아닙니다. 당장 천진성부에 다녀오겠습니다.”
“성주가 내 명을 듣지 않고 딴말을 하거든 제독동창께서 원하시는 일이라 말해라.”
“알겠습니다. 지금 다녀오겠습니다.”
휘이익.
호장우는 바람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크큭. 후개. 네놈이 아무리 강한다고 해도 수천 명의 군사들을 이길 수 있겠느냐?”
* * *
하나둘씩 천진을 떠났다.
남천상국의 양진명.
하북팽가의 팽진.
태원평의 명왕고.
모두가 아쉬움을 남겨두고 각자의 길을 떠났다.
심지어 팽진은 떠나기 전, 팽유도에게 하북팽가에 들를 것을 신신당부했다.
“하림 형, 우리도 가야 할 시간이야.”
“가볼까?”
당무독이 뭔가 찝찝한 듯 미적거렸다.
“하북소가에 가는 건 좋은데…… 북방상국은 이대로 두고 가는 거야?”
“이대로 가는 게 아니야. 두 곳 중 먼저 건드려야 할 부분을 정리하는 거지.”
“음, 그게 하북소가란 말이군.”
“순서대로 처리해야겠지.”
하북소가 당산지부에 내려갔던 준극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전의 움직임을 찾았다고 말이다.
“하림 형, 당산지부를 먼저 치면 안 돼?”
“쳐도 돼. 하지만 그곳은 몸통이 아니라 꼬리밖에 안 되거든.”
“몸통이 너무 크지 않아요?”
“하북소가가 몸통이라면 당연히 크지.”
“어? 아니라는 말이에요? 몸통이 뭔데죠?”
“당연히 가주 소융이지. 우린 그자를 잡을 거야.”
“형. 가주가 곧 하북소가인 거 아닌가?”
“하북소가라……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닌 듯하더군.”
소융을 만났을 때 어렴풋이 느껴진 감정.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산동악가의 일과 신녀의 일로 인해 영향력이 떨어진 것 같아.”
“부장의 말이 맞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여.”
“무조건 잡아야 해. 그 뒤 당산지부의 마전을 북방상국에서 끊어버리는 거지.”
“알겠어.”
다섯 명은 이내 천진루를 나섰다.
목적지를 정한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두두두두두-
곧장 천진성을 넘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전방에 이천여 명의 군사들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휘유, 장난 아니네.”
“이제는 군사들까지 데리고 와서 싸우는군.”
“하.”
남하림은 앞을 가득 메운 군사들을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들 전체를 죽일 수는 없었다.
“누구 작품이지?”
“음…… 어제 왔던 인간들 아닐까?”
“나도 그놈들이 이런 계획을 짠 걸로 보여.”
둥! 둥! 둥!
군사들 사이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척척척.
보병군사들이 앞으로 나와 방패를 세웠다.
차차차차차!
그 사이로 궁수병이 활시위를 겨눴다.
“화살이다. 전부 나를 따라와!”
타앗!
화살이 날아오기 직전, 남하림의 신형이 먼저 움직였다.
팟. 타앗!
그 뒤로 네 명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피우우우우우웅-
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날았다.
하지만.
타타타타타타-
화살이 꽂힌 자리에는 빈 공간만 남아 있을 뿐.
남하림을 선두로 네 사람이 바람같이 움직였다.
“저놈들을 쏴라!”
화살비가 하늘을 새카맣게 덮을 정도로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우신 위장군이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마치 빗줄기 사이를 뚫고 움직이는 격이 아닌가.
이제 걸협오성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걸협오성, 천천히……!”
그는 동창 황공의 명을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천진성부의 군사들을 이끌고 성문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으니, 더 억울했다.
‘어, 엄청난 인물들이다. 막을 수 없겠어……!’
걸협오성이 포위망을 뚫고 뒤로 돌아섰다.
군사들 사이에 있던 황공은 어느새 그들의 뒤에 선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쳤다.
‘후개……!’
“아…… 난 또 누구라고.”
휘이익!
남하림이 만리추풍신법을 펼쳤다.
“반갑소이다.”
“후개…… 이…… 노오오옴!”
황공은 시시각각 거침없이 다가오는 남하림을 향해 구음신장을 뻗었다.
퍼어어엉!
휘익!
남하림이 공중에서 가볍게 회전하며 구음신장을 피하자,
타앗!
동시에 황공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구음신장이 연이어 폭발했다.
퍼어엉!
퍼엉!
퍼어어엉!
이어지는 세 번의 공격.
“이놈! 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하림은 처음부터 피할 생각이 없었다.
우우우우우-
그의 손끝에서 강룡십팔장이 용솟음쳤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콰가가가가가가-
거대한 용이 구음신장을 밀어냈다.
주루루룩-
황공은 뒤로 밀려 나가며 인상을 있는 대로 썼다.
‘구음신공이 밀리다니……!’
자신은 최고의 음공 구음신공을 극성으로 익힌 사람이다.
후개의 무공이 이 정도까지 대단할 줄은…….
군사들은 뒤로 물러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쿠와아아앙!
‘우우욱.’
눈앞에서 강룡의 거대한 불덩어리가 황공을 향해 떨어졌다.
“구음신신.”
양손에 냉랭한 기가 쏟아지며 강룡의 불덩어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하지만,
슈우우우-
간단하게 밀어낼 것 같았던 구음신장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결국.
퍼어어억!
강룡십팔장이 떨어진 황공의 가슴이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이…… 노오오오오옴!’
털썩.
그대로 넘어간 황공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죽었다!’
우신 위장군은 황공의 시체를 보자마자 크게 외쳤다.
“모두 물러나라!”
군사들이 남하림의 주위에서 빠르게 물러나자,
우신이 후개 남하림을 향해 포권을 했다.
“반갑소. 본 소장은 우신이라 하오.”
“남하림입니다.”
“우린 싸울 생각이 없소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잘됐군요. 같은 생각이라서.”
이제 남하림과 일행이 가는 길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푸다닥!
동창으로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휘익.
환관이 손에 들어온 전서구의 발에서 전서를 꺼냈다.
‘흠…… 무슨 내용인고?’
손가락 마디만 한 전서를 풀자,
“허어…… 이런 일이…….”
전서에 적힌 짧은 한 줄.
#NAME?
“후개라면…… 개방의 인물?”
환관은 전서를 곧게 편 뒤 두꺼운 종이 위에 붙였다.
“공공께 알려야겠군.”
그는 빠른 걸음으로 제독동창이 있는 집무실을 향해 달렸다.
“정북입니다.”
“들어오게.”
정북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공공을 뵙습니다.”
동창의 최고 수장.
제독동창 유장이 들어선 정북을 보았다.
스윽.
정북이 유장의 앞으로 전서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천진에서 날아온 소식입니다.”
“…….”
유장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동창의 첩형이 죽은 사건.
심지어 그를 죽인 자의 신분은 개방의 후개라 했다.
“후개라…… 어떤 인물이지?”
“넵. 이름은 남하림. 걸협오성의 수장입니다. 남천상국 상왕의 셋째 아들입니다.”
“있는 집안 자식이군.”
“네, 그렇습니다.”
“황공이 죽은 이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정리가 되어 올라올 것입니다.”
“그때 다시 찾아오도록,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지 않나.”
“알겠습니다. 연락이 도착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정북은 소식이 들어오는 것을 바로 받기 위해, 다시 전서구가 있는 방으로 움직였다.
* * *
스윽.
금옥으로 내려가는 사내.
소하경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간수장이 그를 맞이했다.
“공자님께서 어인 일로 금옥까지 오셨습니까?”
“신녀를 만나고자 하네. 잠시면 되네.”
“…….”
간수장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녀를 밖으로 나오는 게 하는 것은 아니라, 소하경을 금옥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철컥.
철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여기에 오시면 다시 열어 드리겠습니다.”
어둠과 코를 찌르는 냄새.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얼마나 깊이 들어왔을까.
어둠 속에 한 인영이 보였다.
‘하연…….’
가까이 다가서자 하연의 신형이 점점 분명해졌다.
“괜찮으냐?”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왜 여기에 있느냐? 그에게 아직도 미련이 있는 모양이구나.”
“…….”
“차라리 솔직하게 말을 했다면…… 난 오래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서…….”
“됐다. 넌 나를 위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나를 죽이는 짓이었다.”
하연은 소화경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휴우…… 난 멍청했고…… 넌 진실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나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죄송하다는 말밖에 없구나. 나 또한 너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다.”
스윽.
소하경이 소매에서 단검을 꺼냈다.
“오라…… 버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난 이미 독을 먹었다.”
“……!”
“너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마지막에야 함께하는구나.”
휘익!
소하경이 그녀의 목을 단번에 그었다.
파앗.
하연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읏…… 오라…….”
“예전에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나의 운명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는 것이라고…… 하…… 하…….”
“크으윽.”
하연은 두 손으로 목을 감쌌다.
사람의 본능일까.
문득 그녀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푹.
소하경은 그녀를 안으며 가슴에 단검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불쌍한지고…… 살고 싶더냐? 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모르는 모양…… 이구…… 나.”
울컥!
소하경은 피를 토해내며 하연을 안은 채 앞으로 쓰러졌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