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71화 (172/328)

171. 경매

붉은빛을 띤 도자기 등잔.

구천신품이 경매 품목에 올라왔다.

원래 경매를 열려고 한 날은 연회 당일.

하지만 임시 무대가 부서지면서 하루 연기되었다.

경매 장소는 북방상국 안.

죽상전 안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경매에 참가하려면 금액부터 최소 황금 오십 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것은 당연.

웅성웅성.

그럼에도 경매 시작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림 형, 난 벌써 떨려.”

“나도…… 경매하는 곳은 처음이야.”

“후후, 구경하면 재미있을 거야. 우리도 들어가자.”

네 사람은 흥분된 마음으로 남하림을 따라 죽상전으로 들어섰다.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면 돼.”

“응…….”

다섯 명은 빈자리에 앉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팽유도가 일행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무림인들도 제법 보이네요.”

이런 곳에 오는 사람은 전부 상인들이나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내력이 강한 무인도 몇몇 눈에 띄었다.

당무독은 그들이 의심스러웠다.

“무림인들이라. 구천신품을 노리고 온 건 아니겠지?”

“느낌상 맞겠는걸. 구천신품을 노릴 수 있는 인물은 무림인 외에는 없을 것 같아.”

“형들, 재미있겠어요.”

대애애앵!

그때.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첫 번째 경매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물건은 청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손을 들고 외쳤다.

휙!

“칠백.”

휙!

“팔백 나왔습니다. 팔백 이상 없으십니까? 하나. 둘. 셋! 육십 번 고개님께 낙찰되었습니다!”

두근두근.

싸울 때와는 다른 묘한 긴장감.

경매 물건들이 하나씩 팔려 나갈 때마다 팽유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웅성.

그때,

한순간 경매장이 술렁거렸다.

도자기로 만든 붉은색 등잔을 들고 백진묵이 나타난 것.

구천신품이 틀림없었다.

“하림 형, 구천신품이야.”

주위 많은 사람들의 시선들이 전부 구천신품으로 향했다.

“이야, 전부 저걸 노리고 있어.”

“그러게 말이다. 포기할 수 없다는 눈빛들이야.”

경매사들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들이 몇 보였다.

특히 호리한 몸매에 유난히 하얀 피부를 지닌 중년 사내.

가끔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가늘었다.

[무독 형, 저 사람은 관에서 나온 것 같지 않아?]

[그러게.]

[그리고 저자는 사기(邪氣)가 너무 짙네요.]

[사파인 같다. 구천신품 때문에 별 놈들이 다 달려드는군.]

탁.

백진묵이 탁자 위에 구천신품을 올려다놓았다.

“이번 물건은 붉은 등잔으로, 일명 구천신품으로 알려진 물건입니다!”

경매장에 들어선 모든 시선이 구천신품에 집중되었다.

이미 경매가 진행되기 전인데도, 그들의 손이 꿈틀꿈틀거렸다.

팽유도는 주위를 둘러보며 놀랍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 형, 진행하기도 전에 움직이고 있어. 어떻게 하지?”

“할 수 없지. 경매를 올린다고 약속한 상태라 취소도 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백진묵은 뒤로 물러나면서 경매장 뒷좌석에 앉은 남하림을 보았다.

‘후후후, 후개,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경매가 시작되기 직전.

스윽-

갑자기 남하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방상국 삼 공자에게 질문이 있소이다.”

“후개께서 무슨 할 말이 있소이까?”

“그 물건이 진품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줄 수 있습니까?”

“……?”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

좌중의 시선이 백진묵에게 집중되었다.

백진묵도 이 물건을 청해상국에서 받았을 뿐.

당연히 진품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후개. 이 물건이 구천신품인지 당장 확인할 수 없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진품이 아닌 것을 진품으로 파는 것이라면 이건 사기가 아닙니까?”

“후개. 그대는 이 물건이 가짜라고 확신하는가?”

“삼 공자께서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동안 서너 가지의 구천신품을 보았소이다.”

남하림의 말은 사실이었다.

산동악가와 백리세가.

화산파와 검문의 구천신품까지 남하림이 직접 관여했다.

중원에서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후개, 그렇다면 이 물건이 진품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다는 말이오?”

“당연하외다. 구천신품에는 구천마제가 비밀리에 자신의 물건임을 나타내는 표시를 해두었소.”

“그, 그런 게 있소? 그게 무엇이오?”

“본인이 한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

백진묵은 당연히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만약 후개가 가짜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모두 동요해서 발을 뺄 게 아닌가?

하지만 경매자들은 남하림의 생각과 같았다.

비싸게 주는 돈으로 가짜를 살 이유가 없다.

“그건 후개의 말이 맞소이다.”

“구천신품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후개에게 맡기는 걸로 합시다!”

경매사들이 술렁거리더니 하나둘 남하림의 의견을 따르기 시작했다.

경매 사회자가 백진묵을 보았다.

끄덕.

백진묵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회자가 곧바로 남하림을 불렀다.

“좋소이다. 후개께서는 확인을 해보도록 하시지요.”

스윽.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경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구천신품에서, 앞으로 나가는 남하림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붉은 등잔을 올려놓은 탁자 앞.

조금 떨어진 자리에 남하림이 멈췄다.

“후개께서는 앞으로 나와서 한번 살펴보시지요.”

경매 사회자가 옆으로 물러나려는 순간,

‘어, 어……?’

갑자기 자신을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터어억!

그는 몸이 휘청거리다 탁자 앞으로 성대하게 넘어졌다.

“아악!!”

쿠우우웅!

앞으로 넘어지면서 탁자를 세게 밀쳤다.

스르르-

퍽.

챙그랑!

탁자에서 떨어진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위로 경매 사회자의 몸이 떨어지며, 붉은 등잔은 산산 조각 났다.

“……!”

“……!”

경매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이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앞에서 일어난 믿기지 않는 사건.

찬바람이 그들 사이를 후비고 지나갔다.

“흐흑…… 흑…….”

경매 사회자는 울음이 터졌다.

부서진 조각들 뒤로 백진묵의 어이없는 표정을 번갈아 보자,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스윽-

남하림이 살짝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소이까?”

“흐윽…… 후…… 개님…….”

“아이구, 이게 무슨 울 일이라고. 깨진 물건이라도 경매에 올리면 팔릴 것이외다.”

남하림은 깨진 등잔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보시오. 그만 우시고 경매를 시작하세요.”

“……흑…….”

“쯧쯧…… 자자, 그럼 내가 먼저 금액을 제시하지요. 황금 일백 냥이외다.”

경매 사회자가 울음을 뚝 그쳤다.

경매에 올린 구천신품이 깨졌으니, 이제 자신의 인생은 망할 일만 남아 있었다.

근데 남하림이 나서 황금 일백 냥을 제시했다.

‘후개님께서…… 나를 도와주고자 하시는구나!’

경매 사회자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남하림을 열렬히 바라보았다.

“후, 후개님께서 황금 일백 냥을 제시했소이다. 그 이상 없으시다면…….”

“일백오십 냥.”

그때, 관에서 나온 중년 사내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허어, 깨진 물건을 왜 사려는지 모르겠군요.”

“호호호, 그런 후개는 일백 냥을 부른 이유가 있소이까?”

“그거야…… 안쓰러워서 그런 게 아닙니까?”

두 사람이 팽팽한 대화를 나누는 도중.

다른 사파의 인물이 소리쳤다.

“황금 이백 냥!”

경매 사회자는 갑자기 신이 났다.

물건을 깨뜨렸다는 생각은 단번에 잊었다.

“이백 냥이 나왔습니다! 또 다른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황금 삼백 냥이오. 그것이면 충분히 사지 않겠소이까, 하하하.”

남하림은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척.

“황금 사백 냥.”

“황금 오백 냥!”

“육백 냥.”

경매 금액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관에서 나온 사람과 사파에서 나온 두 사람만의 경쟁.

남하림은 난감하다는 듯 미소를 띠며 그들의 경매를 지켜보았다.

‘저 녀석이 왜…… 가만히 있지?’

관부에서 나온 사내는 마지막으로 황금 칠백 냥을 부른 뒤 남하림을 노려보았다.

“저분께서 칠백 냥을 부르셨습니다. 이제 다른 분은 없으십니까? 하나…… 둘…… 셋. 낙찰됐습니다!”

관부 사내는 표정이 굳어졌다.

‘중도에 경매를 포기했어?’

“후우…… 잘됐네.”

남하림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경매 사회자 뒤에 서 있는 백진묵을 보며 소리쳤다.

“삼 공자는 좋겠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깨진 물건을 황금 칠백 냥에 파니 말입니다. 삼 공자, 이정도 금액이면 만족하오?”

‘이거, 웃긴 놈이 아닌가?’

백진묵은 남하림이 일부러 깨뜨린 게 아닌가 싶어 표정이 실룩거렸다.

“크하하하핫! 후개. 충분하다. 그 가격이면 만족하네!”

“쯔쯔, 안 깨졌으면 내가 금액 상관없이 사려고 했는데. 다행히 깨진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군요.”

“후, 후개, 구천신품이 필요 없었던 모양이지?”

“깨진 물건을 어디에 쓴답니까?”

남하림은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뒷짐을 지고 단상을 내려왔다.

“그만 가보겠소이다. 잘 놀다 갑니다아-”

남하림의 뒤로 걸협오성 네 사람이 경매장을 나갔다.

‘커어…… 저…… 놈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무림 나부랭이가 어디서……!’

총총 빠져나가는 남하림의 뒷모습을 보는 관부 사내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 * *

천진루로 돌아가는 길

“하림 형, 일부러 깼지?”

“유도야. 물어볼 걸 물어봐라. 사회자가 정말로 실수를 했다고 치자. 부장이 구천신품이 떨어지는 걸 잡지 못하겠어?”

“내 연기가 어설펐나?”

“아냐, 부장. 난 진짜인 줄 알았어. 너무 자연스러웠어.”

이휘연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구천신품이 깨졌다고 해도 우리는 필요하지 않나?”

스윽.

남하림이 손바닥을 폈다.

붉은색 조각.

구천마제의 문양이 그러져 있었다.

“……!”

“와아……! 형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언제 그 틈에서 손에 넣은 거야?”

“흐, 떨어질 때 봤지.”

입을 벌리고 놀라워하던 당무독이 문득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만일 저들이 깨진 조각을 맞추다가 한 조각이 없는 것을 알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 안 해도 돼. 조각 몇 개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렸거든.”

“허얼. 그 짧은 순간에 그게 가능하다고? 대단해. 이번 일은 인정할 수밖에 없구만.”

당무독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 *

부들부들.

황공은 손이 떨리며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경매장에서 비웃으며 지나갔던 남하림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거지 같은 놈이…… 감히 본인을 비웃다니……!”

제독동창의 명에 따라 구천신품을 얻고자 왔건만.

눈앞에 있는 것은 깨진 조각들뿐.

비슷하게 모양을 맞춰보았지만 산산조각 나 몇 부분은 가루가 되어 있었다.

“동창일백살!”

휘익.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공님, 부르셨습니까?”

“지금 당장 동창일백살과 함께 천진루에 가서 후개를 끌고 오도록.”

“…….”

황공의 미간이 좁아졌다.

“지금…… 내 말을 듣지 않았나?”

“……황공님. 상대는 걸협오성의 후개입니다. 쉽게 움직였다가는 당할 수 있습니다.”

“두 당두. 지금 본인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말이군.”

“그것이 아니라…….”

“겨우 무림 거지 새끼들이 무섭다고 하다니. 네놈은 당두의 자격이 없다.”

슈우우우우-

황공이 백색 손을 뻗었다.

퍼억!

두 당두의 가슴에 구음신장이 떨어졌다.

투두두두둑-

“컥.”

좌측 늑골이 단숨에 부서지며 심장을 가격했다.

털썩.

구음신장을 맞은 사내가 단번에 즉사했다.

“호 번역은 앞으로 나와라.”

휙!

“황공님, 명을 내려주십시오.”

“지금부터 당두로 임명한다.”

“황공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다시 명을 내리겠다. 동창일백살과 함께 후개를 끌고 올 수 있나?”

“소신, 황공님의 명을 받듭니다.”

* * *

천진루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오랜만에 다섯 명만이 조용히 보내는 중이었다.

한 잔씩 술잔을 주고받을 때였다.

스윽-

이휘연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누가 온 것 같군.”

“나 참, 심심하다 싶으면 꼭 누군가 나타난다니깐.”

다섯 명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덜컹!

천관의 정문이 부서지듯 세게 열렸다.

우루루루루-

천관 안으로 동창일백살이 들어오며 좌우로 일사불란하게 정렬했다.

새롭게 당두가 된 호장우가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후개는 당장 나오지 못할까?”

호장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만.”

남하림은 밖으로 나왔다.

“후개는 들어라! 황궁의 동창태감 황공님께서 네놈을 끌고 오도록 명을 내리셨다.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동창? 뜬금없이 동창에서 나를 잡아가려고 하는 이유가 뭐요?”

“무림인이라 하나 황궁의 일을 방해한 죄. 한 나라의 백성이라면 엄벌에 처할 일이다!”

“훗. 황궁의 일은 뭔지 모르겠고, 방해한 것도 없으니 그냥 돌아가시죠. 난 분명히 경고했고, 지금 이후로 모든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할 것이외다.”

“하핫, 후개. 네놈이 중원에서 아무리 잘나가는 거지라 해도 황궁 최고의 창위들인 동창을 상대하기에 어려울 것이다. 네놈 때문에 개방이 피해를 볼 수도……!”

“잠깐. 잠깐. 이런 말까지는 하기 싫지만, 거기를 잘라서 그런가 말을 무지 많이 하는구려.”

“뭣이라……!”

호장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뭣들 하느냐? 저 거지 놈들을 당장 때려잡아라!”

“넵.”

채애애앵!

동창일백살의 동창 환위들이 후개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휘익!

남하림의 앞으로 나선 이휘연과 팽유도.

묵흑반도와 태극흑검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번쩍!

파아아앗-!

휘이이이이이이잉-

도기와 검기가 폭발하며 파장풍이 앞으로 쏟아졌다.

동시에,

퍼어어어엉!

“으으아아아악!”

이십여 명의 동창 환위들이 검 한 번 대항하지 못한 채.

달려왔던 반대 방향으로 모조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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