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연회
깊은 밤.
천진루 천관에 두 명의 인물이 몰래 찾아왔다.
당무독이 그들을 맞이했다.
“후개를 만나고자 하오.”
“어디서 왔소이까?”
“하북소가에서 왔소이다.”
당무독은 말을 하는 사내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인물을 힐끗 보았다.
“들어오시오.”
“그게…… 하북팽가에서 와 있다고 들었소. 미안하지만 밖에서 따로 만났으면 하오.”
당무독은 어렴풋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 듯했다.
“기다리시오. 부장께 물어보겠소.”
“부탁하겠소이다.”
당무독이 불이 환하게 켜진 방에 들어섰다.
드륵-
비무 후 어느 정도 마음을 텄는지, 걸협오성은 하북팽가의 인물들과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무독, 누가 왔지?”
“부장을 찾아. 밖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는군.”
“누구지?”
“말을 안 하는데, 하북소가에서도 중요한 인물 같아.”
스윽.
팽진이 하북소가란 말에 관심을 가졌다.
“후개, 그놈들과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뭐, 문제가 꽤 많습니다.”
“숙부님, 얼마 전에도 부장을 죽이기 위해 하북소가의 신녀가 찾아왔었습니다.”
“……여기에 직접? 신녀라고 해도 간이 제대로 부었군.”
“감영단인가 하는 곳에서 잡아갔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슥-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 * *
남하림은 밖으로 나온 후 곧장 정문으로 걸었다.
멀리서부터 두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느 분이 나를 찾아오셨소이까?”
“후개이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스윽.
뒤에서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본인은 하북소가의 주인 소융이라 하네.”
‘하북소가의 가주라…….’
그의 부인이 북방상국 출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와 함께 천진으로 왔을 터.
“이런, 가주께서 직접 오셨소이까?”
“후개, 예의를 차리시오!”
옆에 있던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예의라…… 별로 차릴 기분이 아닌 것 같소이다.”
“후개!”
사내가 소리치려고 했지만 곧바로 소융이 그를 말렸다.
“동허, 뒤로 물러나게. 후개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척.
소융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후개,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소. 신녀에 대한 일은 용서를 했으면 좋겠소이다.”
“아니, 뜬금없이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나를 죽이려고 했던 행동들이 가주의 말 한마디에 용서가 된다고 보십니까? 정말로 그런 생각으로 왔다면 본인을 잘못 보신 듯합니다.”
동허가 다시 나섰다.
“후개! 그 일은 신녀가 혼자서 한 일이거늘. 가주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북소가가 그렇게 허술한 가문이었습니까?”
“……!”
다시 맞서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동허는 남하림의 눈빛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지금은 자리도 그렇고, 다음에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다음에 보도록 하지.”
소융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남하림은 멀리 사라지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똥줄이 타나 보네. 가주가 직접 찾아오는 것을 보니. 신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가?’
* * *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리면서, 북방상국 국주 백진만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천진의 백성들은 그저 축제가 즐거울 뿐.
연단에 선 백진만이 축하를 하러 온 귀빈들을 맞이했다.
“하하하! 백 국주, 점점 더 젊어지는 것 같소이다.”
“후후, 무슨 말을 하는 게요. 허 국주께서도 장난이 아니구려.”
툭툭!
허 국주는 백진만과 손을 맞잡은 뒤 옆으로 빠져나갔다.
스윽-
다음 차례를 기다리자, 양진명이 올라섰다.
“이런…… 남천에서 귀한 분이 오셨구려. 양 형이 먼 곳에서 왔구만.”
“당연히 와야지요. 오늘 이렇게 보니 늘 한결같소이다. 비결이 대체 뭡니까?”
“잘 먹고 잘 자면 됩니다. 아 참, 이번에 남천에서 큰 사고를 친 듯하더이다.”
“하하하, 그건 당사자에게 물어보시지요.”
백진만은 고개를 돌려 연단 아래에 서 있는 남하림을 보았다.
‘하, 웃긴 녀석. 광천목으로 거지 옷을 만들어 입었군.’
“양 형, 나중에 따로 한잔합시다.”
“그렇게 하지요.”
양진명이 내려가자 남하림의 차례가 다가왔다.
남하림은 환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섰다.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자네가 후개로구만. 너무 많이 들어서 처음인데도 처음 같지는 않군.”
백진만은 아래위로 남하림을 살폈다.
‘별로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생긴 것과는 다르다는 말이군.’
“이보게, 후개.”
“말씀하시지요.”
“자네는 우리 북방상국과 원수를 진 듯하군. 왜 그러는가?”
“원수 진 것은 없습니다. 그저 살다 보니 부딪힌 것밖에.”
“이번 일은 조금 심하지 않았나? 서장과 북야평까지 모두 자네가 쓸어버렸다지?”
스윽-
뒤에 선 백후가 고개를 내밀며 다가왔다.
“국주님,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후개가 이 공자와 만나서 환비균장을 거래하기로 했습니다.”
백진만은 다섯 명의 아들 중 백진묵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게 사실이더냐?”
“네. 후개와 거래를 마쳤습니다.”
“허,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니…… 제법이군.”
“감사합니다.”
백진묵은 미소를 띠며 백경묵을 바라보았다.
‘큭, 망할 놈.’
백경묵은 그제야 백후가 환금호 건을 방해한 이유를 알고 부들거렸다.
“후개, 둘째와 계약한 것을 축하하네. 이왕 이리 된 거, 환금호에 대해서도 조금 양보를 할 수 있으면 좋겠군.”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네를 직접 보니 상왕보다 훨씬 낫구만.”
“감사합니다. 다음에 아버지를 만나면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성격도 밝아서 좋아. 재밌게 놀게나.”
남하림은 연단을 내려갔다.
스윽.
연단 아래서 백진묵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개, 바쁘지 않다면 여기 내 형제들과 인사들이나 나누게. 언젠가는 계속 만나야 할 사이들이 아닌가.”
“그렇긴 하죠.”
백진묵은 남하림을 데리고 네 명의 형제들이 있는 자리로 함께 갔다.
남하림을 맹렬히 노려보는 두 명의 시선.
‘오호…… 감정이 제대론데.’
둘 중 한 명 또한 눈에 익은 얼굴이다.
‘아하, 북방상국 넷째 백한묵. 오 년 만이네.’
남하림은 백한묵의 앞으로 다가섰다.
“우리 안면이 있네요.”
“훗, 기억을 하는 모양이군?”
“기억은 내가 아니라 그대가 더 하는 것 같은데요?”
“……쯧.”
백한묵은 더 이상 이놈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재수가 없어지니까.
“편안하게 지내다 가려면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게다.”
“풋.”
남하림은 그를 무시하며 다른 한 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이자가 삼 공자군.’
“후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다.”
백경묵이 남하림을 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이런, 상대를 보면서 도발을 하세요. 감당이 되지 않을 때는 조용히 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내력.
‘허억!’
백경묵은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피식.
남하림은 실소를 띠며 내력을 거두었다.
“다들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아.”
남하림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연단 아래 일행에게 내려갔다.
* * *
채애애애애앵!
차아아아아아앙!
북방상국 광장에 세워진 임시 무대.
백진만의 탄일 축하를 위한 검무가 펼쳐졌다.
“와우! 멋지다!!”
짝짝짝!
무림인들 눈에는 가벼운 놀이처럼 보이지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선 연신 환호 소리가 울렸다.
휙!
임시 무대 위로 백경묵이 올라섰다.
“여러분. 본인의 말을 들어보시오!”
웅성거리던 군중들이 임시 무대 위 백경묵을 향해 집중했다.
“본인은 백경묵이라 하오. 방금 전 무희들의 검무를 보았습니다. 물론 이것도 좋지만, 이제 실제 무인들의 비무를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와아아아아-!”
곧바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백경묵이 주위를 살폈다.
“오늘 이곳에 특별히 걸협오성께서 오셨소이다!”
백경묵이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걸협오성 만세!!”
“후개님 만세!”
엄청난 환호가 끊임없이 터지자 백경묵은 당황했다.
‘이건…… 뭐지?’
생각 외의 함성.
남하림은 주위에서 자신들을 부르는 환호에 척하니 손을 들었다.
환호와 박수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그러게.”
“올라가서 한바탕 놀아볼까? 어때?”
남하림은 다른 네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러네요. 남의 잔치에 왔는데 장타령으로 풀어줘야죠.”
“좋았어. 가자.”
타아앗!
파앗.
남하림이 신법을 펼치며 임시 무대 위로 사뿐히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무공에 관심이 많은 인물들이 소리쳤다.
“앗! 후개님의 취리건곤보다!”
좌우로 흔들거리며 허공을 밟는 듯한 남하림의 모습은 마치 취선과도 같았다.
뒤를 이어 팽유도의 신형도 흔들거리며 하늘을 빠르게 날아올랐다.
“와아아아아-! 저게 뭐야!”
”도천걸님의 비취류신법이다!”
곧이어 당무독은 제비가 낮게 바닥을 치듯 임시 무대에 내려앉았다.
“독천걸님의 연쌍비신법이시다! 한 마리 제비 같다!”
흔들흔들.
넘어질듯 넘어지지 않는 성철각의 신법.
“이건…… 천장걸님의 취영화류팔선보다. 역시 팔취선의 진정한 신법!”
마지막으로 이휘연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자, 그 뒤로 꽃잎이 흩날렸다.
“우와…… 한심걸님의 연화락…….”
걸협오성이 임시 무대에 오르자 환호 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각자 특색이 다른 신법을 보자 흔치 않은 광경에 신이 난 군중들이 목청껏 소리쳤다.
‘이게…… 아닌데…….’
백경묵의 계획은 자신의 수하와 후개가 비무를 가지는 것.
번쩍!
남하림은 환호하는 군중들을 보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와아아아아!!”
남하림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 오늘 백 국주님의 생신을 맞이해서 신나게 놀아보겠습니다!”
스윽-
팽유도가 앞으로 나오며 목에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으으으으으으러어어어어엄…… 신나게에에에에에…… 놀아보자꾸우우우우나!!”
덩실덩실.
팽유도가 등에서 묵흑반도를 꺼내며 타령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폭풍이 불어닥치며 무대 위를 감싸고 휘돌았다.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얼씨이이이구 드러러러러간다-”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얼씨구 너어어어어간아아아아다-”
팽유도의 타령에 뒤이어, 당무독의 연쌍비투가 하늘로 솟구치며 폭죽을 터뜨렸다.
퍼어어어어엉!
퍼어어어어엉!
강기의 폭발.
무인이라면 두 사람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눈을 반만 뜨고 봐도 알았다.
‘허억! 이미 이들은 초절정의 벽을 넘어섰어!’
일반 백성들은 펑펑 터지는 폭풍과 폭죽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와우우우우우우! 독광걸님! 최고!”
챠르르르르-
폭죽이 터지는 사이.
성철각의 환보걸선각이 지나가면서 타령에 맞춰 화음을 맞췄다.
“와……! 소리 죽인다!”
“부우우우우바아아앙의 주이이이인 자아아알 나아았네에에에에-”
“자아아알 머어어억꼬…… 돌아아아간다!”
슈우우우욱-
이휘연의 붉은 태극이 마치 태양처럼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태양을 뚫고 내려오는 한 마리의 용이 무대를 강타!
콰아아아아앙-!
순식간에 무대 주위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서졌다.
“…….”
“…….”
순식간에 내려앉은 정적.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잠시 고요했던 무대 주위는 세상이 떠나갈 듯 환호 소리로 꽉 차올랐다.
“우와아아! 최고다!”
살랑살랑.
임시 무대에 선 남하림은 환호 소리에 보답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 * *
임시 무대 주위가 너덜너덜해지면서 연회는 강제로 끝이 났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장면밖에 없었다.
“역시…… 걸협오성님이시다.”
“오늘 여기에 오기를 잘했어!”
“세상에 그분들만큼 멋진 타령을 부르는 거지는 없을 거야.”
“결정했어.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개방에 보내야 해!”
“나도, 나도…….”
웅성웅성.
천진루 천관 밖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번이라도 걸협오성을 더 보기 위해 모여든 백성들.
“하림 형,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는데 어떻게 하지?”
“성인(聖人)님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고 싶다면서…… 꼭 부탁한다고 하더라구.”
성철각도 한마디 했다.
“성의를 무시할 순 없지.”
남하림은 밖으로 나갔다.
“유도야. 사람들을 줄을 세워서 한 명씩 들여보내.”
“알겠어요!”
팽유도가 얼른 정문을 열고 소리쳤다.
“후개께서 여러분들을 만나 뵙고자 하십니다. 한 줄로 줄을 서세요!”
그 모습을 건물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들.
“팽휴야.”
“네, 숙부님.”
“대단하지 않느냐?”
“정말 엄청난 무공이었습니다.”
“아니…… 무공이 아니다. 지금 저 모습을 봐라. 한 시진 동안 웃는 얼굴로 저들을 한 명씩 맞이하고 있다.”
“…….”
“그는 정말로 성인이 맞는 모양이다. 무인이 무공만 잘한다고 해서 존경을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저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팽진은 시선을 옮겨 사람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이는 팽유도를 보았다.
‘녀석이 강해진 이유를 알겠군. 후개 옆에 있으면 강해지고 싶지 않아도 강해질 수밖에 없어. 본 가에서 가장 복 받은 녀석이야.’
“휴야, 네가 가주가 되었을 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느냐?”
“……가르침을 받습니다.”
“한 가문에서 가주는 굳이 강할 필요가 없다. 가문에서 중심이 되어줄 한 인물. 정신적으로는 가주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그 외 기세의 중심이 되어줄 인물이 필요한 법이지.”
팽휴의 시선도 그를 따라 팽유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놈을 개방에 빼앗기고 싶지는 않겠지? 저 녀석이라면 너에게 가장 힘이 되는, 팽가의 심장이 될 수 있을 게다.”
“숙부님, 잘 알겠습니다. 제 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한다. 저 녀석을 얻는 것도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저들 나머지 네 명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