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69화 (170/328)

169. 비무

“아함……!”

남하림은 두 팔을 길게 뻗었다.

“하림 형, 지금쯤이면 거의 끝나가겠지?”

“음, 아마도.”

“형, 내가 진짜 몰라서 묻는 말인데…….”

“말해봐. 궁금한 게 뭐야?”

“북방상국에서 예전에 거래했던 내용을 보면 환금호 일 관에 금 한 냥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형은 그들에게 왜 다섯 냥을 제시했는지 궁금해. 너무 손해 아니야?”

“손해이긴 하지. 최대한 두 냥이면 손해를 안 볼 정도니까.”

“……흐음.”

팽유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북방상국에서 마약을 제조하지 못하도록 막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것.

자신이 알기에, 남하림도 손해 볼 일은 안 하는 사람이었다.

“아하하,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어…….”

“북방상국에서 바보는 아닐 테고. 우리가 천진루에 온 사실을 알고 있겠지?”

“알겠지. 밖에 나가면 우릴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총내국주가 운영하는 천진루에 우리와 태원평이 같이 있다? 어떻게 생각할까?”

“뭔가 있다고 봤을 수도.”

“이번 계약의 주체는 삼 공자라고 했어. 백후, 그가 밀어주는 이 공자의 최대 경쟁자. 딱 답이 나오잖아. 삼 공자 측에서도 바보가 아닌 이상, 백후가 중간에서 무슨 짓을 했을 거라 예상했겠지.”

“아…… 형은 삼 공자 측도 가격을 올릴 것까지 감안하고 불렀다는 거죠?”

“맞아.”

“그럼 두 냥은 그렇다 치고, 세 냥으로 해도 되지 않았을까요? 다섯 냥은…….”

“태원평 원주도 장사꾼이야. 갑자기 중간에 나타나서 거래를 제시해 온 나를 보면서, 모든 걸 꿰뚫어 봤을 거야. 북방상국에서 싸늘함을 느끼고 한 냥을 올려 두 냥을 제시한다면? 내가 세 냥을 다시 제시할 거라고 예상했을 거야.”

“원주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만약 어제 그에게 황금 세 냥을 제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았겠어요?”

“맞아. 어제 합의를 했겠지. 하지만 오늘 거래가 깨졌을 거야.”

“무슨 말인가요?”

팽유도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주가 분명 오늘 그 자리에서 나하고 거래를 했다고 말했겠지. 그럼 북방상국은 어떻게 나올까?”

“음…… 더 올려서 부르겠네요.”

“맞아. 북방에서도 머리를 굴릴 거야. 그러고서 원주가 금액이 우리가 제시한 것보다 적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내가 황금 세 냥을 불렀나 보다, 생각했겠지. 그럼 자신들은 한 냥 더 보태면 되는 거고.”

“하아…… 장사는 진짜 머리싸움이네요.”

“다섯 냥으로 환금호를 보면 손해긴 해. 원주도 그걸 잘 알아. 그래서 앞으로 이십 년 동안 북야평으로 들어가는 중원 모든 물품의 거래는 우리를 통하도록 편의를 봐주더군. 따지고 보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야.”

“하나를 주고 둘을 얻는군요.”

“그건 아니지. 하나를 주고 둘을 얻으면 도둑놈이지만, 장사꾼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어야 해. 그래야 서로 유대관계가 깊어지는 거야.”

팽유도는 대화를 하면서 한 가지 깨달았다.

‘휴우. 상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팽유도가 안도의 한숨을 쉴 때였다.

“호호호.”

밖에서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림 형, 저분, 정말로 철각 형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명왕고를 따라가지 않고 천관에 혼자 남은 명화진이었다.

* * *

백경묵은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

“후개 남하림과 거래를 하겠소이다.”

“원주,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그와 거래를 한다는 게?”

백현이 그의 앞으로 바짝 나왔다.

“외국주, 말 그대로이오. 환금호를 후개와 거래한다는 말이외다.”

휙!

백현은 뒤로 휙! 고개를 젖혔다.

‘백후……! 무슨 짓을……!’

당장에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가 얼마를 제시했소이까?”

“삼 공자, 그건 상도에 어긋나는 행동이지요. 우리와 거래를 원한다면 다시 금액을 제시해야지 않겠소이까?”

‘약은 놈…… 이놈도 역시 장사꾼이야. 잘됐어. 같은 가격이면 우리와 거래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배짱이 있다는 걸 보여주지.’

척!

백경묵은 손가락 네 개를 폈다.

‘헉.’

백현과 백후의 눈이 커졌다.

설마 두 냥도 아닌 황금 네 냥을 제시할 줄은 몰랐으니까.

‘후후후후, 이 정도면 남천 놈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겠지.’

백경묵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스윽-

명왕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나는 것이오?”

“태원평과 북방상국의 관계는 여기까지군요. 그동안 북방상국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소이다.”

벌떡!

백경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주! 대체 그놈들은 얼마를 제시한 것이오?”

“삼 공자. 거래라는 것은 말이오. 남이 제시한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이 얼마나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소이다.”

‘허, 이건 뜻밖이군.’

백후는 거래 현장을 나서는 명왕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황금 네 냥까지 거절할 줄은 그로서도 예상치 못한 일.

‘그놈이 정말로 얼마까지 말했는지 궁금하군. 다섯 냥은 아니겠지?’

턱!

백현의 손이 백후의 멱살을 잡았다.

“백후,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소?”

“지금…… 네가 내 몸에 손을 댔단 말이냐?”

백후의 싸늘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잡았다. 나를 죽일 텐가?”

“이 녀석이……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죽여주지!”

그의 시선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

백후의 기세에 놀랐는지, 백현이 순간 손에 힘을 풀었다.

타악!

백후는 귀찮은 듯 그를 손을 쳤다.

“멍청한 놈. 계약이 실패한 건 네놈이 그 녀석들을 얕잡아 봤기 때문이다. 차라리 새로운 계약을 제시한 처음부터 그만두거나, 아니면 다섯 냥을 제시했어야 했다.”

“…….”

“그쪽에서 네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읽은 셈이지. 허, 이번 일은 네놈들이 망친 것을 누구에게 잘못을 돌리느냐? 분명 이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백후는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밖으로 사라졌다.

콰아아앙!

부들부들 떨던 백경묵은 양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망할 새끼들……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겠다!”

* * *

진영전.

이 공자 백진묵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방금 백후로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잘됐소이다! 이제야 마음 편히 잠을 자겠습니다.”

푸욱.

백진묵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았다.

“경묵, 이 녀석. 그래도 통은 있었군요. 우리 몰래 아버지께 허락을 받아 낼 줄은 몰랐습니다.”

“잘못했으면 한 방 먹을 뻔했네.”

“이젠 모든 게 끝이 난 것입니까? 후개 그 녀석, 설마 딴소리는 하지 않겠지요?”

“그러지 않을 거네. 약속을 어길 녀석은 아닌 듯하더군.”

“좋습니다. 그를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알겠네. 언제 만나면 되겠나?”

“내일 생신 연회가 끝난 뒤 따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알겠네. 그들에게 가서 물어보겠네.”

“하하하하! 속이 너무 시원합니다.”

백진묵은 한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 * *

천진루 천관에 도착한 건장한 사내들.

“여기인 모양이군.”

중년인 한 명과 젊은 청년 세 명이 정문으로 들어섰다.

“누구……?”

팽유도는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에 돌아서다,

뚝.

그대로 멈춰 섰다.

분명 익숙한 얼굴들.

“숙부…… 님.”

중년인의 등에 거대한 도가 매달려 있었다.

하북팽가 부가주 팽진.

무림에서는 그를 가리켜 천극대도(天極大刀)라 부르고 있었다.

놀란 팽유도가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숙부님을 뵙습니다!”

‘흐음.’

팽유도의 신체는 지금도 여전히 팽가의 여러 청년들보다 작았다.

하지만, 팽유도의 신형 전체에서 흐르는 자연기를 읽을 수 있었다.

“유도,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느냐?”

“네, 그렇습니다. 숙부님께서도 무탈하셨습니까?”

“다행히.”

팽진은 옆으로 잠시 물러났다.

그 뒤로 세 명의 청년들이 다가왔다.

무심한 듯 표정의 팽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팽후천.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는 팽강성.

그들 모두 팽유도의 사촌들이었다.

“거지가 체질에 맞는 모양이군.”

“하핫, 저도 개방에 와서 알았습니다. 후천 형님도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허.”

예전 같았으면 한마디도 못할 팽유도였다.

스윽-

두 사람 사이로 팽강성이 나섰다.

“유도, 요즘 잘나간다고 하던걸. 축하해.”

“아, 네! 강성 형님.”

팽유도는 마지막으로 시선을 옆으로 돌려 팽휴와 마주쳤다.

가주 팽한의 아들.

하북팽가를 이끌 대공자였다.

“오랜만입니다.”

“오 년이 넘었군. 보아하니 잘 지낸 모양이다.”

표정 변화 없이 말하는 모습은 예전과 같았다.

“헤헤.”

“왜 웃지?”

“여전하셔서…… 변함없이 늘 한결같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하림 형입니다.”

“후개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팽유도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남하림이 밖으로 나왔다.

팽진은 모습을 드러낸 네 명을 보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어…… 이들이 걸협오성. 과연, 이 정도의 인물들이었는가?’

언뜻 보면 너무나 평범한 모습들.

하지만 고인의 수준에 오른 이들의 눈에는, 눈에 보이는 평범함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미숙한 세 명의 청년들과 달리, 팽진은 몸이 떨려올 정도였다.

“안에서 듣자 하니 유도의 숙부님이시라고요.”

“하림 형, 이분께서는 본 가의 부가주이신 팽진 숙부님이세요. 여기 세 분들은 사촌 형님들입니다.”

척!

남하림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남하림이라 합니다.”

* * *

하북팽가에서도 북방상국의 초대장을 받았다.

굳이 참석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북팽가도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관계로 북방상국과 연관이 있었다.

부가주 팽진 또한 세 명의 후기지수들과 함께 축하 연회에 참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연회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같이 지내시지요.”

“고맙네. 늦게 출발을 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네.”

“그러게 말입니다.”

“후개,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무엇입니까?”

“대체 개방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군.”

팽진의 시선 끝으로 천진루 앞마당에서 도를 겨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팽유도의 성장이 궁금했던 팽후천이 곧바로 도전을 한 것.

도천걸이라 소문난 팽유도의 무공.

본 가에 있을 때 팽유도는 도(刀)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까아아앙!

묵흑반도와 강현도가 부딪치고 서로 떨어졌다.

“우우욱!”

짧게 부딪혔지만 강현도를 통해 전해져 오는 충격이 상당했다.

반면 팽유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전혀 별거 없는데……!’

팽후천이 혼원벽력도를 펼쳤다.

자신 또한 극성으로 익히지는 못했지만, 팽유도는 도문십도만을 익히고 개방으로 갔었다.

“벽(霹)후(吼)굉(轟)도(刀).”

그는 전신의 내력을 끌어 올려 혼원벽력도를 펼쳤다.

‘헛, 저놈이 겨우 비무에……!’

팽진은 놀라서 팽후천을 말리려고 했다.

척!

그때, 남하림의 팔이 그를 잡았다.

“괜찮습니다.”

“……!”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역시 본 가의 혼원벽력도!’

이를 받아내는 팽유도의 얼굴에 자부심이 일어났다.

‘그럼 나도……!’

우우우웅-

묵흑반도에 내력을 밀어 넣자 도명(刀鳴)이 울었다.

번쩍!

초식의 변화보다는 단순한 힘과 빠르기.

가장 정직한 힘이 벽후굉도의 변화를 꿰뚫고 지나갔다.

쿠우우웅!

옆에서 보는 사람은 너무나 간단하게 초식을 파훼했다고 생각할 정도.

주루루룩-

팽후천은 그대로 뒤로 밀려갔다.

팽유도의 무공이 믿기지 않았다.

저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휘두른 반도에 힘없이 밀려 나가다니.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졌…… 다.”

“아닙니다. 방금 혼원……!”

“됐다.”

“…….”

팽후천은 고개를 숙였다.

‘앗…… 처음부터 안 한다고 할걸.’

팽유도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스윽-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던 팽휴가 앞으로 나왔다.

“유도. 괜찮다면 나와 비무를 겨루어보자.”

“네?!”

“나도 시시해서 할 마음이 들지 않는가?”

“그게…… 아니라…….”

“아니라면 됐다. 난 저 녀석처럼 졌다고 해서 죽을 인상을 쓰지 않을 테니.”

휙!

팽휴가 등에서 도를 잡았다.

슈우우욱!

그 순간, 용맹스러운 기가 도의 끝에서 솟구쳤다.

그가 익힌 도법은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하북팽가의 도법 중 가장 매섭고 용맹하다.

오로지 공격만 있을 뿐 방어는 없는, 필살의 도법.

‘오호단문도!’

팽유도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느꼈다.

한 마리의 먹이를 노리듯 노려보는 백호의 기세.

‘으으으음-’

예전이었다면 그의 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을 것이다.

팽유도는 조용히 묵흑반도에 내력을 흘렸다.

채애애앵-!

맑은 소리가 반도의 도신을 통해 울렸다.

단숨에 밀리는 오호단문도의 기.

움찔!

팽휴는 순간 놀랐는지 몸이 꿈틀거렸다.

전력을 다한 내력이 너무나 쉽게 밀려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들리는 이야기가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이전엔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지. 미안하다.”

“……!”

“고인에게 배우는 심정으로 네게 도전하겠다.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우우우우-

팽휴는 그동안 익혔던 모든 것들을 쏟아부었다.

지그므이 팽유도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최근에 깨우친 오호단문도의 마지막 초식이 도 끝에서부터 펼쳐졌다.

단천극호(斷天極虎).

파아아앗!

팽휴의 도에서 뻗어나가는 오호의 다섯 빛줄기.

쿠와아아앙-!

팽유도는 그의 말대로 최선을 다해 그를 상대했다.

묵흑반도가 천천히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이잉-

묵흑반도가 도막(刀膜)을 만들어내고,

두두두두-!

팽유도를 향해 날아오는 오호백광선을 막아냈다.

휘익!

도막을 펼친 묵흑반도가 다시 한 번 더 움직였다.

그리고,

스걱-

단천극호의 오호(五虎)가 잘려 나갔다.

“…….”

팽휴는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 상의만을 자른 뒤 지나쳐 간 묵흑반도의 흔적.

목숨을 걸고 싸웠다면 바로 즉사였을 것이다.

“휴우…….”

팽휴가 도를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네가 죄송할 것은 없다. 내 실력이 모자랐을 뿐. 잘 배웠다.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처억!

팽유도의 어깨에 팽휴의 손이 올라갔다.

“오 년 동안 열심히 했군. 난 네가 자랑스럽다.”

“감사합니다, 형님!”

팽유도는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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