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먹이를 노리다
“후후후, 난리가 난 모양이군. 조금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을 드러내는 사내.
백진묵의 마전(魔傳)을 찾기 위해 하북성에서 비밀리에 움직였던 준극남이 수하들과 도착했다.
“공자님들께서 한바탕 세게 달린 모양이야.”
하북소가 한단지부.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을 정문이 박살이 난 채 휑하니 떨어져 나갔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썰렁했다.
“들어가 볼까?”
준극남과 수하들과 안으로 들어섰다.
“완전 박살을 내버렸군.”
주위를 살피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내당으로 들어가는 문도 두 조각이 나 그대로 덜렁거렸다.
“누군가 했더니 준 호위가 아닙니까?”
팽유도는 인기척에 밖으로 나오며 반갑게 소리쳤다.
척.
준극남이 그를 향해 포권을 했다.
“팽 공자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야 늘 한결같지 않소이까.”
“저희들은 늘 다섯 분의 위명을 들으면서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아하하! 그렇지 않아도 하림 형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준극남은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공자님께서는 어떻게 변하셨을까?’
남하림이 개방을 떠난 후 처음으로 만나는 상황.
변한 그의 모습이 궁금했다.
‘공자님이시다.’
자리에 앉아 있던 남하림이 자신을 보았는지 미소를 지은 채 일어났다.
“아, 준 호위. 어서 오세요.”
“소신, 공자님을 뵙습니다.”
수욱.
그 자리에서 바로 허리를 숙였다.
“반갑네요. 더욱 늠름해졌습니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소신은 어찌 지내도 상관이 없지만 공자님께서 중원을 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지 않습니까?”
“하하, 고생은 무슨. 가볍게 다니고 있지요.”
준극남은 남하림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공자님께서 내리신 명을 이행한 내용들을 보고하겠습니다.”
“수고하셨네요. 그렇지 않아도 마전을 찾았다고 하던데. 그럼 한번 들어볼까요?”
남하림이 양삼에게 부탁한 내용.
북방상국의 둘째 공자 백진묵의 사업체에서 모든 유통을 담당하는 업체.
즉, 마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양삼이 파악한 백진묵의 사업체는 총 네 군데.
표국 두 곳과, 동북삼성으로 주로 거래하는 삼성상단, 하북 이남으로 거래하는 북중원상단.
개방의 정보망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양삼은 준극남에게 시켜 극비로 움직이도록 했다.
남하림은 이어 백진묵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도 함께 들었다.
‘네 군데면 북방상국 전체에서도 영향력이 많겠어.’
“삼성과 북중원상단의 유통은 그가 가진 표국을 이용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유통과 운반은 그들의 표국에서 도맡아 처리를 하는 듯했습니다.”
“대부분이라…… 안 그런 곳도 있었다는 말이군.”
“네. 그렇습니다. 조사해 본 결과 북중원상단 소속으로 유문지부만이 달랐습니다.”
‘유문지부! 찾았다.’
남하림은 느낌이 왔다.
“그들은 어디와 거래를 하던가요?”
“하북소가의 무인들이었습니다.”
“……!”
준극남의 보고에 다섯 명의 시선이 동시에 집중되었다.
하북소가의 이름이 나올 줄 몰랐으니까.
“하북소가라 했나요?”
“네. 유문지부에서 나온 물건들은 하북소가의 무인들이 표행을 한 뒤, 하북 소가 당산지부로 들어갔습니다.”
“하, 이제야 알겠어. 북방상국에서 중원에 마약을 공급하는 모습을 왜 찾을 수 없었는지.”
“부장, 그렇다면 마약을 유통하는 곳이 하북소가라는 말이야?”
“맞아. 이러니 당연히 잡을 수 없었겠지.”
이제 북방상국에서 마약을 중원에 유통시키는 과정을 찾아냈다.
‘그놈의 목을 조를 수 있겠군.’
백진묵을 상대할 때 이용할 수 있는 패가 생긴 셈.
“하림 형, 그럼 당산지부에 가서 또 한바탕 하는 건가요?”
“지금은 굳이 북방상국을 건드릴 필요 없어. 워낙 잘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라, 완벽한 증거를 찾는 게 우선이야.
준 호위는 지금부터 하북소가 당산지부를 드나드는 인물들의 정체를 모두 조사하세요.”
“공자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척.
준극남은 포권을 한 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아, 준 호위님, 방금 왔는데 너무 급하게 떠날 필요는 없어요. 내일 떠나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 * *
슥슥슥.
홀로 방에 들어간 지 한 시진.
남하림은 종이 위에 쉬지 않고 글을 적어내려 갔다.
‘다 됐다.’
마지막 한 장을 끝으로 붓을 내려놓았다.
드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반 자 정도의 두께로 된 종이들이 그이 품에 한가득 안겨 있었다.
“하림 형, 손에 든 게 뭔가요?”
“무극창신공.”
“……!”
팽유도는 잠깐 멍해졌다.
무극창신공이 불에 활활 탔을 때, 다 외웠다는 말을 듣긴 했었다.
“설마…… 그걸 전부 그 종이에 옮겨 놓은 건가요?”
“내가 모두 외웠다고 했던 말 잊었어?”
“그래도…… 그게…….”
씨익.
남하림은 미소를 띠며 준극남을 불렀다.
“준 호위.”
“넵, 공자님.”
준극남은 벌떡 일어났다.
무극창신공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남궁세가 제왕대와 싸웠던 이유가 무극창신공 때문이라고 했다.
‘아…… 정말 공자님께서 가지고 계셨구나. 그럼…….’
피식.
준극남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남궁세가도 공자님께는 안 되는군. 두 눈 뜬 상태로 당했어.’
“준 호위,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아닙니다. 그냥…….”
“혹시 창법이나 배워 볼 생각이 있는가 몰라?”
“……!”
“얼마 전에 하나 얻었거든. 무극창신공인데 살펴보니 가짜는 아니더라고. 익히면 제법 쓸 만한 무공이 될 거야.”
그것 제법 쓸 만한 무공이라는 말에 준극남은 황당했다.
누가 무극창신공을 삼재검법처럼 흔하게 이야기하겠는가.
“공자님. 소인이…… 어찌…… 이 무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분들께서 익히시는 게 맞습니다.”
“준 호위, 우린 괜찮아요. 난 반도가 있어서 굳이 창법을 익힐 필요가 없거든요.”
“나도…… 손에 들고 싸우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난 독만 있으면 돼.”
스윽.
이휘연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부장의 호위라면 무극창신공 정도는 익혀야 하지 않겠소이까.”
척.
준극남은 감격스러웠다.
무극창신공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에게 익히라는 그들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여기 받으시고. 지금 당장 익히기에는 어렵겠지만 우선 외우도록 하세요. 혹시나 모르는 게 있으면 다음에 만날 때 물어보고요.”
“……알겠습니다.”
“되도록 전부 외웠다 싶으면 불에 태우세요. 사람이 욕심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혼자 알고 있는 게 좋겠어요. 괜히 밖으로 나갔다가는 시끄러운 물건이잖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준극남은 무극창신공을 가슴에 품었다.
당무독과 양삼이 준 도움으로 내력이 강해졌지만 부족한 게 하나 있었다.
상승무공이 필요했지만, 이는 구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게 아니었다.
‘이것이면 됐어. 아니…… 너무 넘치는 무공이다.’
뚝.
준극남은 걸음을 멈추었다.
‘흠…… 어디서 좋은 창을 하나 구해야 하나?’
* * *
두두두두-
한단지부로 빠르게 내려오는 무리들.
무리들 사이에서 하북소가의 깃발이 펄럭거렸다.
휘이이이잉-
“멈춰라.”
박살이 난 정문 앞.
하북소가의 무인들이 멈췄다.
휘릭.
정문에 내려선 여인.
감영단 단주 소진화가 책임자로서 남하림을 만나기 위해 소융의 전서를 가지고 내려왔다.
‘휴우…….’
소진화가 긴장을 풀기 위해 크게 호흡을 했다.
“들어가죠.”
그녀는 앞장을 서며 한단지부에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에서 오셨소?”
전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진화는 걸음을 멈추며 그들을 보며 포권을 했다.
“하북소가 감영단을 맡은 소진화라 합니다. 무림 영웅 걸협오성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싸우러 온 건 아니고, 하북소가에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이까?”
“어느 분께서 무림영웅 후개이신지요.”
묻긴 했지만, 소진화는 후개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본인이 남하림이외다.”
미세한 바람에도 하늘거릴 만큼 부드러워 보이는 비단 걸의.
투명하게 빛이 날 정도의 머릿결이 가지런했다.
‘소문과 다름없군.’
“그대가 후개인 모양이네요. 반갑습니다.”
“본인은 별로 반갑지 않소이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되었다고 가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은 가주가 직접 했으면 좋겠군요.”
“그래서 제가 온 것이지요. 가주님의 전서를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보기나 하겠소.”
스윽.
팽유도는 그녀가 주는 전서를 받은 뒤 남하림에게 건네주었다.
서신의 내용은 간결했다.
#NAME?
이번 삼장로 소추의 일은 서로 인지를 하지 못해 발생한 일.
차후 그대를 만나 소추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겠으니, 부디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참아주시면 고마울 따름이외다.
소진화가 건네온 전서의 내용은 그들이 잘못을 시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음…… 일단 굽히고 들어오는 듯하지만.’
찌이익.
남하림은 소진화가 보는 앞에서 전서를 두 손을 찢었다.
“후개! 무슨 짓입니까?”
그녀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왔다.
“서로 인지를 못 한 일이라고 적혀 있군요.”
“……?”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전서의 내용으로는 충분히 한 발 물러난 뜻이 보였는데?
‘이 자식은……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정말로 우리와 싸우는 게 목적인가?’
“소진화 단주라고 하셨소? 말해보세요. 우리가 인지를 못 한 게 무엇인지. 하북소가가 말한 내용이 맞다면 본인이 사과를 하겠소.”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만 물러가세요.”
“……후개, 개방이 원하는 것이 두 문파 간의 전쟁입니까?”
“개방이 원하는 게 아니오. 당신들이 자초한 일이외다. 고작 신녀의 말에 본인을 죽이려고 한 하북소가에서 움직인 것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세가에서 쫓겨났습니다.”
“잘됐군요. 그대로 있었다가는 정말로 큰일 날 여자란 생각이 들었소이다.”
“후개, 신녀를 세가에서 정리했으니 화를 그만 푸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화는 이미 풀렸소. 다만 본인이 하북소가에 선전포고를 한 이상 물러날 명분을 주시오. 그렇지 않다면 두 문파간의 결전은 일어날 수밖에 없소이다.”
‘끄으응.’
소진화는 인상을 썼다.
명분을 달라는 남하림의 요구.
함부로 말을 했다가는 하북소가에도 적지 않는 피해가 생길 수 있다.
더는 그에게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터.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하는 겁니까?”
“방금 내가 했던 말 그대로. 기한은 삼 일이외다. 우리도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북방상국에 볼 일이 있으니 만나고 싶다면 알아서 찾아오시오.”
“……알겠소이다.”
소진화는 한단지부에서 물러났다.
‘망할 자식…….’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했다.
‘아닌 척하지만 하북소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다.’
남하림의 시선.
한 가지 목표를 정하면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눈빛.
“휴우…… 어렵겠어. 하필이면 저런 인물을 건드려선…… 망할 계집 하나 때문에 하북소가가 흔들리다니…….”
* * *
원래 하북성으로 온 목적이 있었다.
괜한 일로 시간이 바빠진 셈이 되자, 남하림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쯧, 하북소가 때문에…….’
남하림은 한단에 들어선 뒤, 북방상국 백후에게 연락을 취했다.
북방상국의 다른 인물들보다 먼저 만나기를 원했었으니까.
다가닥. 다가닥.
마차가 멈춰 섰다.
“백후 님, 도착했습니다.”
스윽.
백후가 마차의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여기가…….”
백후는 북방상국에서 남하림의 연락이 올 때까지 숨을 졸이며 기다렸다.
남하림의 대한 소문은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북소가와 부딪힌 사건.
소추에 대해선 백후도 잘 알았다.
그는 아무리 해도 후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뒤, 걸협오성은 다섯 명으로 한단지부를 습격하여 하북소가에 선전포고까지 했다.
스으윽-
문이 열리자 백후가 몸을 숙이며 나왔다.
“안에 들어가서 내가 왔다고 알리게.”
“알겠습니다.”
수하는 안으로 들어간 동안 밖에 선 채 기다렸다.
다다다다-
이윽고 수하가 정문으로 옷자락이 휘날리도록 달려왔다.
“백후 님,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
살짝 기분이 나빴다.
‘이놈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최소한 다섯 놈들 중 한 놈이라도 마중을 나와야 하는 게 예의 아닌가?
백후는 못마땅하게 정원을 지나고 마당을 지나 건물 앞에 섰다.
‘그래도 여기에선 한 놈이 마중을 나왔군.’
팽유도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지요.”
“반갑소이다. 도천걸, 후개는 안에 있는가?”
“안으로 드시죠.”
휘익!
백후는 돌아선 팽유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허허허, 마치 자네들 집같이 사용을 하는군.”
“싸워 이겼으니 당연히 승자의 몫이지 않습니까.”
백후가 안으로 따라가면서 물었다.
“후개는 정말로 하북소가와 싸움을 할 생각인가?”
“그거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후개의 뜻이 그러하다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남하림이 기다리는 집무실에 도착했다.
드륵.
안으로 들어선 백후를 남하림이 맞아주었다.
“앉으시지요. 여기는 그때보다 더럽지는 않습니다.”
“후후, 만나자고 연락이 받으면서 이번에도 이상한 곳이 아닌가 싶었네.”
“제 연락을 기다렸습니까?”
“…….”
“얼굴을 보아하니 많이 기다린 것 같습니다?”
“허허허.”
백후는 웃음으로 대신 대답했다.
“그동안 생각은 잘 해봤는가?”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방상국과 거래하는 건 안 될 것 같습니다.”
“허허, 너무 성급한 생각이 아닌가?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둘째 공자를 만나보고 결정을 짓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래서 하북으로 올라왔는데…… 이상한 일에 휘말려서 그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운데에서 중재를 설 수 있는데…… 괜찮겠나?”
“굳이 무림의 일에 관여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네. 하북소가의 가주 부인이 본인과 사촌 사이라네.”
“아하? 그런 사이였는지 몰랐습니다. 북방상국과 하북소가가 한배를 타고 있었군요.”
“…….”
순간, 남하림의 말에서 은근히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두 가문은 잘 지내는 사이입니까?”
“당연하지 않나. 그중에서도 둘째 공자와 특히 잘 지내는 사이이지.”
“이런…… 만일 하북소가와 문제가 생긴다면 둘째 공자인 그와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겠군요.”
“흐음……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지 않겠나. 하북소가에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게. 가주에게 그대의 말을 전해줄 수도 있다네.”
“신경을 써주시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본인과 개방의 문제. 북방상국에서는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괜히 불똥이 그쪽으로 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백후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져 갔다.
‘왜…… 두려운 생각이 드는 거지?’
그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