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선전포고
취리건곤보(醉裏乾坤步).
개방이 어찌 화려하리.
당연히 개방의 무공도 화려하지 않다.
휘리리릭-!
하지만 남하림이 펼친 취리건곤보는 화려함을 넘어섰다.
척검단 무인들이 뻗고 휘두른 검은 남하림의 그림자조차 닿지 않았다.
발정구타.
십팔초식의 타구봉법은 취리건곤보의 움직임에 절정무공으로 변했다.
타타타타타-!
수십, 수백 번의 타구봉질에 척검단 무인들은 개 맞듯이 맞은 뒤 바닥에 쓰러졌다.
휙!
남하림은 가볍게 몸을 날렸다.
“이 정도는 몸 풀기였고…… 진짜는 당신이지.”
타앗!
공중에서 한 번 더 발돋움을 하며 소추의 앞으로 사뿐히 내렸다.
“후개……!”
슉!
슉!
슉!
남하림이 일장을 가볍게 뻗었다.
‘크윽, 이 녀석의 손이 보이지 않아!’
퍽! 퍽! 퍽!
하지만 위력은 강하게 쳤을 때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쿠우웅-!
“우우욱.”
소추는 얼굴과 가슴, 그리고 배에 충격을 받으며 뒤로 물러났다.
‘남궁진을…… 이긴 놈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우우우우우웅-
건황신공을 십이 성으로 끌어 올렸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이길 수 있는 상대.
극양의 내공이 퍼진 그의 신형이 불뚝거리며 터져 나갈 것 같았다.
“후우우우우개애애애!”
소추는 목이 터질 듯 외치며 극양검을 휘둘렀다.
화아아아아-!
검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사천의 미친 괴물들보다 훨씬 편하다. 이건 애들 장난 같군.’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실력.
소추의 무공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다.
쏴아아아아-!
풍룡동우(風龍動雨).
남하림은 피하지 않고 그를 향해 강룡십팔장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앙-!
극양의 기와 극강의 기가 부딪쳤다.
찌지지지직-
치이이잉-!
기풍이 몰아닥치며 주변을 쓸어가는 중에도, 극양검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력의 차이.
“커어억!”
그와 동시에 소추의 입에서 선혈이 울컥 쏟아졌다.
‘몸에……!’
소추의 몸 안에서 오장육부가 뒤섞여 버렸다.
‘건황신공이…….’
앞에 선 남하림을 올려다보았다.
‘상대가…… 되지…… 도 않다…… 니.’
하늘을 가리고 선 그는 거인이었다.
‘우…… 린…… 용의…… 역린을…… 건드렸…… 어…… 무조건…… 빌어야…… 산다.’
쿠욱.
소추는 바닥에 앉은 채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척검단 무인들은 허망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 * *
두두두두-
거친 말발굽 소리.
안휘성에서 거의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무극창신공은 찾지 못할 수 있다.
하나 남궁세가의 무공이 중원 무림에서 망신을 당했다.
그것도 몇 수나 아래로 여긴 개방의 무공에.
남궁세가의 검이 꺾였다.
빠른 시일 내 패배를 되갚지 않는다면, 천하제일세가의 위명에 오점을 남길 터.
“후개……! 기다려라!”
선두에서 달리는 사내.
남궁세가의 또 다른 이군(二君) 무극용군(無極勇君) 남궁동악이다.
삼검(三劍)이 뒤를 따랐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후개를 꺾는 일.
“형님, 잠시 쉬었다가 가야겠습니다.”
남궁동악 옆으로 화우검(花雨劍) 남궁명학이 붙어 섰다.
열두 시진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는 없었다.
“객잔이 나오면 쉰다.”
“알겠습니다.”
* * *
퍼러러러럴-
저 멀리 죽림객잔의 깃발이 나타났다.
“저곳에서 잠시 쉰다.”
“넵. 알겠습니다.”
히이이이잉!
네 마리의 말이 죽림객잔에 도착했다.
휘이익!
휘익!
남궁동악과 삼검 세 명이 말 위에서 내렸다.
화우검 남궁명학이 객잔으로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간단하게 요기나 하고 가자.”
“알겠습니다.”
웅성웅성.
옆자리 사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이번에는 하북소가의 소추가 당했다고 하더구만.”
“소추가? 후개님과 걸협오성을 건드렸다고?”
“그렇다는구만. 창천광군도 깨지는 마당에, 소추 그자가 미쳤군.”
“키킥, 믿는 구석이 있었겠지.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오우…… 딱 그들에게 맞는 말이구만. 하하하, 감히 무림의 성인(聖人)이신 후개님을 건드리는 놈이 있다면 저주를 퍼부어 주겠네!”
“성인이신 후개님을 괴롭히는 그런 놈들이 바로 개새끼들이 아닌가.”
타악!
남궁동악은 탁자를 내리쳤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서 혓바닥을 잘라 버릴 기세다.
“형님. 참으시지요. 일반인들입니다. 소문만 안 좋아질 것입니다.”
“후개 놈이 중원에서 그렇게 추앙을 받는다는 것인가?”
“…….”
“젠장……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놈을 벨 것이다. 요기가 끝나는 대로 바로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 * *
하북성에 들어선 걸협오성은 곧바로 한단으로 향했다.
“하림 형, 한단은 하북소가 지부가 있는 곳이야.”
“상관없어. 우릴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지.”
“무슨 말이야? 뭘 보여줘?”
“소추, 그자 말을 못 들었어? 신녀가 우릴 죽이려고 했다는 말?”
스윽-
이휘연이 명확하게 말을 해줬다.
“유도야. 하북소가는 개인이 움직여서 싸우는 곳이 아니다. 신녀가 명령을 내렸다는 말은 결국 하북소가 전체가 부장을 죽이려고 덤벼들 거란 뜻이지.”
“그럼…… 전쟁이잖아.”
“맞다. 우린 하북소가와 전쟁을 하려는 거다. 상대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데 바보같이 보고만 있을 수 있나?”
“아니지! 당연히 싸워야지!”
팽유도가 전의를 일으켰다.
“하림 형, 알겠어. 한 번 붙어보자고요. 그럼 이제 계획은 뭐예요?”
“우리의 계획은 초전박살. 한단으로 단숨에 밀고 가 무림에 선전포고를 한다.”
“알겠어요! 이번에도 짜릿하겠습니다.”
“부장, 나도 알았어.”
“후, 철각도 이번에는 상대를 봐줄 필요 없어. 알겠지?”
“부장, 나 지금 엄청 화가 났어.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 * *
한단현 하북소가 지부.
지부장 구종창은 한 장의 서신을 받았다.
#NAME?
본 세가에서 신녀 하연이 보내온 서신의 내용.
그에게는 야망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지역의 지부가 아닌 중앙으로, 즉 본 세가에 먼저 올라가야 했다.
‘신녀에게 잘 보이면…… 중앙 보직으로 옮길 수 있다.’
한단지부의 모든 무인들을 동원하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소추와 척검단 무인들이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싸움 방식은 하나만이 아니니까.
지리적 지형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터.
“좋아. 지금쯤이면 한단으로 올라오겠지. 이번 기회에 중앙으로 한번 가보자. 언제까지 지역만 다닐 수는 없잖아.”
우우우우웅-
밖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울렸다.
‘뭐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
점점 소리들이 커지면서 비명 소리까지 섞여 들렸다.
벌떡.
구종창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습이다!”
한단지부에 적이 쳐들어왔다.
“감히……! 겁도 없이 하북에서 본 문을 건드리는 미친놈이 누구냐?”
휘익!
그는 밖으로 몸을 날렸다.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그는 걸협오성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 *
콰아아앙!
정문을 부수고 들어선 팽유도가 내문 앞에서 묵흑반도를 내리쳤다.
쩌어어억-!
마치 장작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한단지부로 쳐들어온 다섯 명의 목표는 하나.
초전박살.
눈에 보이는 대로 한단지부 무인들을 눕혔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그들은 곧바로 나가떨어지는 동료 무인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서면 죽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단지부 무인들은 거리를 유지한 채 다섯 명의 뒤를 따를 뿐.
덜컹!
구종창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저들은……!’
찢어진 문 사이로 들어선 다섯 명의 사내들.
거지 복장에 도와 검을 든 거지.
그리고 가방을 멘 모습.
초면이라도 다섯 명이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당신들이…… 왜……?”
“왜라니? 전쟁은 하북소가에서 먼저 시작했잖소?”
‘……아…… 제기랄.’
구종창은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쳐라!”
“…….”
하나 그의 목소리는 허공에 울릴 뿐.
한단지부 무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앗!
팽유도의 신형이 바람을 뚫으며 그의 앞에 다가섰다.
스윽-
눈앞에 보이는 짧은 묵흑반도가 강기를 뿜어내며 언제라도 목을 칠 것 같았다.
“검을 버려라. 죽고 싶지 않다면.”
“으…… 으…….”
구종창의 입 밖으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작은 몸집이지만 전신에서 흐르는 기는 세상 누구보다 거대했다.
티이잉!
손에 잡고 있던 검이 떨어졌다.
걸협오성이 한단현에 도착한 지 일각.
모든 것이 정리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이곳은 걸협오성, 개방에서 접수한다.”
* * *
한단현은 단숨에 뒤집어졌다.
이내 마을 곳곳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한단지부에서는 정식으로 걸협오성의 선전포고문이 퍼져 나갔다.
#NAME?
하북소가의 신녀가 말하기를, 본인이 죽여야 그들이 산다고 했다.
이에 본인을 죽이기 위해 하북소가의 소추를 보냈다.
……중략…….
본인은 어쩔 수 없도다.
이유 없이 그들의 손에 죽을 수는 없는 법.
이 시간 이후로 개방과 하북소가는 전쟁을 선포한다.
한단에서 일어난 사건은 하북 석가장현 하북소가에 빠르게 올라갔다.
개방의 선전포고에 각 당의 당주들과 무력단의 단주, 그리고 장로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대전에 모였다.
“가주께서 허락을 한 일이오?”
태상장로 소하균.
백발의 노인으로 올해 나이 여든둘.
하북소가 최고 어른인 그가 나섰다.
“숙부님, 제가…… 한 일은 아닙니다.”
소융은 어렵게 대답했다.
그도 한단에서 올라온 소문을 들었을 때, 일이 벌어졌음을 알았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그만둬야 했다.
“그동안 가주에 대한 부정한 말을 들었어도 듣지 못한 척 가만히 있었다네.”
“숙부님.”
“사실인가?”
“아닙니다. 전 그 아이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나도 아네.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게 아니지. 그것이 거짓이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듣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네.”
“…….”
태상장로 소하균은 하북소가를 위한 마지막으로, 충정을 다해 충고를 했다.
“그 아이가 특별함을 아네. 하지만 그 아이로 인해 하북소가가 무너지게 된다면, 자네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네.”
소융은 대전에 모여든 따가운 시선들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할 텐가? 어서 결정을 내리게.”
“……숙부님, 잘 알겠습니다. 그 아이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그리고 개방에서 움직이기 전에 가주는 후개를 만나야 할 게야.”
* * *
절암정으로 올라섰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무거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항상 이곳을 오를 때 즐거웠거늘…….’
가주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가주님…….’
절암정에 오르자 멀리 소융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뒤로 다가섰다.
“왔느냐?”
“…….”
“차라리 네가 평범한 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제가 함부로 일을 만들었습니다.”
“전부 나를 위해서 한 일임을 잘 안다. 넌 최선을 다했을 뿐이니라.”
“가주님…….”
소융은 여전히 돌아서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인가 보다.”
“…….”
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워진 목소리.
얼굴을 보이지 않는 뒷모습.
단단히 굳은 그의 뜻을 알았다.
“그동안 소녀를 잘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다. 네가 곁에 있어서 내가 좋았구나.”
스윽.
하연은 등을 보인 소융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아이와 함께 떠나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떠나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전…… 가주님을 사모했습니다.”
“……알고 있다.”
스윽.
하연은 돌아서서 절암정을 내려갔다.
소융은 그녀가 떠난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허어…… 미안하구나. 너 때문에 하북소가를 어찌 버릴 수 있겠느냐?”
자신의 삶은 오직 하북소가의 가주.
소융은 냉정했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두었다.
하북소가의 일을 결정짓는 데 하연의 신기(神氣)를 이용했다.
‘어느 정도 선을 지켰다면…….’
시간이 많이 흐르자, 예전과 다르게 하연은 욕심을 부렸다.
가주 소융의 정을 독차지하기 위해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여러 가문 인물들에게 접촉했다.
점점 그녀의 도를 지나친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정리를 해야 될 시기였지.’
* * *
하연은 신녀전으로 돌아왔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그가 없는 생을 살아야 했다.
생명의 은인.
존경에서 연모로 바뀐 그의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다.
이제는 그것조차 할 수 없다.
스윽.
하연은 상자를 열었다.
‘이것이라면…… 그를 죽일 수 있을 거야.’
하연은 마지막으로 소융을 위해, 후개 남하림을 죽일 계획이었다.
“제가…… 꼭…… 그를 죽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