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하북소가
#NAME?
커다랗게 바닥에 꽂혀 있는 표지판.
“이게 몇만 평이냐?”
“정확히 이십만 평하고 이천사백 평 정도 될 겁니다.”
“와우…….”
현장의 끝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공사는 거의 초기 공정.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양삼.”
“네. 공자님.”
“여기에 자네 생각도 들어갔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대공사를 할 수가 없잖아?”
“그렇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소인이 보고를 하지 않고 처음으로 한 행동이었습니다.”
“송구할 정도는 아니고…… 무슨 생각으로 선뜻 합류를 한 거야?”
“공자님의 그릇이 천하를 담을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흐음…… 뭐, 잘했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땅도 좋고. 산세도 나쁘지 않고.”
“감사합니다. 공자님께서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씨익.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다른 네 명의 긴장된 표정이 풀어졌다.
[다행이다.]
[그러게.]
그들도 공사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로 넓은 땅에 대공사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땅을 어떻게 찾았지?”
“남양분타주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귀찮은 일들도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양삼은 남양에 들어온 뒤 곧바로 남양분타를 찾았다.
분타주 허지웅을 만나 후개의 상단을 지을 자리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
남양의 마을에서 벗어난 끝자락에 황무지를 소개받은 뒤, 거의 공짜에 가까울 정도로 싼 가격에 매입을 마쳤다.
“허 분타주님 덕분에 싸게 매입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후개님의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도와드려야지요.”
“사적인 일이라서 괜히 분타주님께 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우리가 가끔 밥이나 얻어먹지 그 외에는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후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저어…….”
“말씀하시지요.”
“오늘은…… 저희 분타에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 하하, 개방 거지가 어디에서 지내겠습니까? 하룻밤 부탁드리겠습니다.”
허지웅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휙!
방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빨리 가서 청소 안 하고! 후개님과 걸협오성님이 가신다!”
“네에엡!”
남양분타의 방도들은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남양분타의 밤.
끼이이익-
끼이이익-
오백 명의 방도들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도록, 분타 마당에 통돼지구이 스무 마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스윽.
마당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남하림과 양삼은 조용히 그들을 보았다.
스스럼없이 술잔을 주고받는 모습들.
“저분들도 많이 변했습니다.”
“으응,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모양인가 봐.”
‘공자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양삼은 공손하게 술을 따랐다.
“양삼, 이 정도의 규모라면 하남 땅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서너 군데에서 다녀갔습니다.”
“어디에서 왔지?”
“상단 예정지라 소문이 났는지 중앙상국에서 먼저 견제를 하듯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어떻게 처리했어?”
“그들을 만나 사실대로 말을 했습니다. 공자님께서 새롭게 사업을 하기 위해 구한 장소가 남양이라 했습니다.”
“중앙상국에서는 좋아하지는 않았겠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하긴 자신의 앞마당에 갑자기 나타나서 집을 짓는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강압적으로 하려고 해도 상대가 하필이면 공자님이 아니십니까. 저들도 머리깨나 아플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무림맹에서도 왔다갔을 텐데.”
“네, 맞습니다.”
하남성에서 벌이는 대규모의 공사가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조사를 하는 게 당연.
“그들에게도 사실대로 말을 했습니다. 하남에 공자님께서 상단을 만들 계획이라 공사를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말을 하던가?”
“처음에는 놀랐지만 호북의 표강표국과 호북상단을 하남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하니 믿었습니다.”
“잘했어. 중앙상국과 무림맹이 다녀갔으면, 더는 귀찮게 할 곳은 없겠군.”
“그렇습니다.”
양삼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궁금했다.
아직 남하림은 신무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을 하지 않았다.
“공자님, 공사를 계속 진행한다는 것은 네 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준비를 하는 거라며.”
“네. 맞습니다.”
“당장 하는 게 아니잖아. 뭐, 나중에 어떻게 될지언정 남양에 좋은 땅을 사 놓았으니, 신무맹이 들어서든 상단이 들어서든 우리에겐 좋은 일이니 괜찮아.”
“아…… 맞습니다. 저도 그런 공자님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또르르르-
양삼은 술잔을 다시 따랐다.
“준 호위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됐지?”
“백진묵의 마전을 찾아낸 모양입니다.”
“잘됐군.”
“한단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준 호위가 고생이 많았겠어.”
스윽.
두 사람 곁으로 분타주 허지웅이 다가왔다.
“후개님, 같이…….”
“오, 그럴까요?”
남하림이 일어나 허지웅과 함께 마당으로 내려갔다.
와아아아아-!
따다다닥!
통오오오통!
함성 소리와 함께 수백 명이 타구봉과 조롱박을 치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공자님이 저렇게 변하실 거라고는…… 예전엔 상상도 못 했지.’
벌컥.
양삼은 오 년 전, 어렸던 남하림의 모습을 생각하며 술잔을 비웠다.
* * *
며칠 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백의를 입은 뒤 하루 동안 신녀전에서 제를 지냈다.
덜덜덜.
신괘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세상만큼 큰 사내가 건물을 밟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에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눈에 익숙한 건물들.
그곳은 하북소가였다.
‘누가…… 누가……!’
거인은 하나도 남김없이 건물을 무너뜨렸다.
‘얼굴을 봐야 해!’
그녀는 앞으로 달렸다.
숨이 막혔지만, 거인이 누구인지 얼굴을 보기 위해 빠르게 달렸다.
점점 거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사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번쩍!
눈을 떴다.
식은땀이 그녀의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설마…… 그가…….’
하연은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어 늘 익숙한 수호성을 찾았다.
휘이이익-
수호성의 앞으로 유성이 스쳐 지나갔다.
유성 뒤로 이어지는 별빛.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별.
절대로 나타나서는 안 될 별이 선명한 빛을 뿌리고 있다.
‘천괴성이 올라오고 있어. 아…… 안 돼!’
밤하늘에서 별을 보던 그녀에게서 절망에 가까운 탄식이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북소가 수호성의 빛이 무너지고 있었다.
큰일이야.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있는 한 절대로 하북소가가 무너지도록 두지 않아.’
스륵-
하연은 다급하게 움직였다.
‘후개를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분께서 죽을 수밖에 없어.’
“영안 님.”
그녀는 허공을 향해 이름을 불렀다.
스으윽-
“신녀님, 곁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소추 장로를 불러요.”
“알겠습니다.”
휘익.
허공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지나갔다.
* * *
‘망할 년…….’
소추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번의 실수.
한음고(寒陰蠱)의 복용 덕에 건황신공을 십이 성까지 익혔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한음고를 복용해야 했다.
“크흠.”
이제 자신을 찾는다는 하연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들어오세요.”
소추는 안으로 들어섰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괜찮소이다. 갑자기 본인을 불러서 놀랐을 뿐이오.”
“자리에 앉으세요.”
소추는 그녀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늦은 시간에 본인을 불렀소?”
“본 가에 큰 위험이 닥쳤습니다.”
“허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본 가에 무슨 위험을 닥친다는 것인지 상세하게 말해보시오.”
“천괴성이 본 가의 수호성을 흐리고 있어요. 점점 수호성의 기운을 빼앗아 가면서 올라오는 중이에요.”
“으으음…….”
소추는 그녀의 점괘를 맹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었다.
“천괴성을 죽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가주님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 있습니다.”
소추는 인상을 썼다.
그녀의 신기는 겁이 날 정도로 맞는 경우가 많아, 하북소가의 대소사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곤 했다.
흑당의 침입으로 장하지부가 불에 탈지 모르니 수화전을 확보하도록 지시했을 때는, 정말 피해를 거의 보지 않고 그들을 물리쳤다.
삼 년 전 우물에 빠진 시신의 범인을 신괘로 잡아낸 적도 있었다.
그녀의 신괘는 하북소가 인물들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연 소저, 천괴성이 대체 누구란 말이오?”
“후개. 개방의 후개가 천괴성이 틀림없습니다.”
“방금 누구라 했소? 후개가 천괴성이란 말이오?”
“맞아요. 그가 본 가를 망하게 할 천괴성이 틀림없습니다.”
‘……!’
간절한 눈빛.
이미 결심이 선 듯 하연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하북성으로 올라오기 전에 삼장로께서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연 소저, 신괘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그를 먼저 건드려서 괜한 일을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그가 본 가를 무너뜨린다는 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분명히 신괘에서 본 가를 무너뜨리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봤어요. 확실해요. 그를 보면서 너무 겁이 났습니다.”
그녀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이 정도로 간곡하게 말을 할 정도라면…… 진짜일 수도…….’
소추는 그녀의 말을 점점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알겠소이다. 본인이 그를 상대하겠소이다.”
“고맙습니다…… 삼 장로께서 나서주신다면 걱정이 사라질 것입니다.”
잠시 후, 소추는 바쁘게 신녀전을 나섰다.
스윽.
어둠 속에서 신형을 드러내는 사내.
“하연아…… 조용히 살아가면 될 것을…….”
소하경은 멀리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 * *
하북으로 향하는 다섯 명의 여정은 한가로울 정도로 조용했다.
한때 물밀듯이 밀려왔던 도전 비무도 없었다.
앞장선 이는 하북팽가 출신 팽유도.
오 년 전 하북팽가를 떠나온 뒤, 다시 하북 땅에 들어서는 기분은 무척 색달랐다.
“형! 여기를 넘어서면 하북 땅이에요.”
“생각보다 빨리 왔네.”
“신법이 점점 익숙해져서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어요.”
쏘옥.
팽유도는 멈춘 사이에 취구소단을 입에 넣었다.
약효가 빠르게 전신으로 흘렀다.
“무독 형, 요걸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환상적이야. 전혀 피곤하지 않아!”
“흐, 자주 만들다 보니 요령도 생겼어. 양 총관이 항상 좋은 재료를 공수해 주니 쉽게 만들 수 있거든.”
“자아, 그럼 얼른 가요!”
팽유도가 발걸음을 떼려고 할 때였다.
‘누구지?’
언덕 너머로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황빛의 검의.
팽유도는 그들의 옷이 눈에 익숙했다.
“하북소가 같은데.”
이휘연이 앞으로 다가섰다.
하북소가 무리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우리에게 좋은 감정은 없겠지만 죽이려고 기다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러게요.”
“살기에 긴장한 표정까지, 확실한 것 같구만.”
“맞아요. 오늘 날 잡고 완전 벼르고 온 것 같아요.”
그들이 친절하게 마중하러 나온 것은 아니었다.
‘저 녀석들이군.’
소추와 함께 하북성 아래로 내려온 척검단 무인들.
‘개방 후개.’
소문으로 들은 복장 그대로.
‘남궁세가의 창천광군을 이긴 녀석이다.’
소추는 그와 무공을 비교해 보았다.
‘예전이라면…… 남궁진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나 지금은 다르지. 나에게는 건황신공이 있다.’
십이 성을 대성한 건황신공을 익힌 뒤, 어느 누구도 겁날 게 없었다.
소추가 내력을 끌어 올려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그대들이 걸협오성인가?”
“맞소이다. 하북소가에서 온 거요?”
“본인은 하북소가의 소추라 한다.”
팽유도가 그를 알아보았다.
“천환자 소추. 건황신공을 익혔다고 알려진 하북소가의 장로야.”
“본인에 대해서 잘 아는 인물이 있군.”
스윽.
소추가 신호를 보냈다.
타아앗!
척검단 무인들이 빠르게 내려오면서 다섯 명을 포위했다.
“하북소가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미안하게 됐다. 본 세가를 위해 그대들이 죽어줘야 한다는 신괘가 내렸다.”
“신괘? 어디서 이상한 점을 보고 와선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오?”
“…….”
남하림은 어이가 없었다.
“하림 형, 예전에 들은 말이 있는데, 하북소가에 신기(神氣)를 가진 여자가 한 명 있다고 했어요. 음…… 하북소가 가주가 어릴 때 데리고 왔다고 했던나?”
“그래?”
남하림은 소추를 보며 물었다.
“소가에 점 잘 치는 여자 말 믿고 우리를 죽이려는 게 맞소?”
“…….”
“어이가 없네. 미신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린다더니. 하북소가가 이래저래 큰일이군.”
“후개, 신녀를 욕보이지 마라.”
“하하, 신녀라…… 진짜인 모양인데.”
남하림은 주위를 둘러싼 하북소가의 무인들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왠지 불쌍해 보였다.
“미신에는 약도 없다는데…… 할 수 없군. 제일 좋은 방법을 써 드리죠.”
“하림 형, 그게 뭐야?”
“개 패듯이 패야 정신을 차리겠지. 미친놈은 몽둥이가 약일 수도 있거든.”
쏘오옥!
남하림의 허리에서 타구봉을 꺼내 들었다.
휙.
“앗, 그럼 나도…….”
성철각도 허리에서 타구봉을 뽑았다.
화르르르-
저놈이 미친놈 취급을 했다.
소추는 얼굴이 불에 탄 듯 새빨갛게 변했다.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죽여라!”
채애애앵-!
척검단 무인들이 검을 휘두르며 포위한 다섯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