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60화 (161/328)

160. 무림맹으로

스윽.

“오- 좋은데?”

새롭게 변한 물건이 마음에 들었다.

천령신옥의 반지는 팔찌로 만들었다.

홍요대는 눈에 띄지 않도록 갈색의 요대로 변화를 주었다.

처음과 완전히 변한 두 개의 물건.

제갈령이 아무리 구천신품을 잘 안다고 해도 절대로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음…….’

중요한 건 천령신옥이니까.

이제 남하림의 손바닥에는 두 개의 작은 문양 조각이 올라가 있었다.

홍옥 반지와 홍요대에 박혀 있던 구천마제의 진짜 문양을 떼어놓은 것.

딸깍.

남하림은 팔찌와 요대를 착용했다.

‘이제 문양이 없으니 구천신품인지 잘 모르겠는데.’

팔찌와 갈색의 요대는 다른 값비싼 물건처럼 보였다.

새롭게 바뀐 물건들을 보니, 구천신품에서 중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문양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하림은 손에 쥔 문양 두 개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이…… 건……?’

갑자기 손이 떨렸다.

남하림이 무언가를 찾아낸 듯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손바닥에 있던 두 개의 작은 문양.

‘우선 같은 크기로…….’

먼저 홍옥 반지에 그려진 문양을 종이 위에 그렸다.

스으윽.

이번에는 두 번째, 홍요대의 문양을 집중하면서 그리기 시작했다.

스윽.

팽유도가 이휘연의 뒤로 다가왔다.

“하림 형이 뭐 하고 있어요?”

“갑자기 문양을 보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항.”

슥슥.

탁.

남하림은 붓을 내려놓았다.

“끝.”

두 장의 종이에 구천마제의 문양이 같은 크기로 그려졌다.

“흐응, 이 정도면 완벽하군.”

휙.

팽유도가 뛰어 들어왔다.

“형, 그게 뭐야? 구천마제의 문양이잖아.”

“유도야. 이 두 개를 잘 봐. 어떻게 보여?”

“음…… 똑같은데…….”

“나도 같은 문양인 줄 알았다. 후후후.”

슥슥.

남하림이 두 개의 문양을 하나로 겹쳤다.

“역시…….”

혹시나 했다.

설마 다른 문양일 거라 의심한 적이 없었다.

두 개로 겹쳐진 구천마제의 문양.

언뜻 보면 완벽하게 일치한 문양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른쪽 문양 끝부분.

그 부분만이 선이 겹치지 않고 두 개로 보였다.

“어…… 다르네?”

팽유도도 문양의 다른 부분을 찾았다.

“진짜네.”

당무독과 성철각도 신기한지 문양을 자세히 보았다.

“이것이었군. 구천신품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군사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슥슥.

이휘연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팽유도는 문양이 그려진 종이를 들고 신기한지 계속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였다.

“완전 대박이잖아.”

“그래도 이 두 개 가지고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양들을 모두 합친다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거…… 정말 궁금해집니다.”

남하림은 손에 들린 두 개의 문양을 꽉 쥐었다.

‘찾았어. 구천신품의 비밀. 이건 공신 해정 님께서 비밀리에 무엇인가를 알리기 위해 해놓으신 게 틀림없어.’

쿵쿵.

가슴이 떨렸다.

구천마제의 비밀.

단 한 번도 밝혀지지 않았던 그의 비밀의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분명 이 물건을 만드신 해정께서 중원에 중요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안배해 둔 것 같아. 우리가 한번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음…… 재미있기는 하겠는데…… 엄청 위험하지 않겠어요?”

“으흐흐, 우리가 언제 안 위험한 일을 한 적이 있어? 그냥 해보는 거잖아. 구천신품을 찾아야 하는 목표가 생겼어. 제대로 한 번 해볼까 하는데 어때?”

“부장아, 그럼 지금까지 제대로 한 게 아니야?”

“음……? 대충 한 거 같은데……?”

“엥, 대충 한 게 이 정도면 제대로 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하늘에서 떨어지나?”

“무극창신공은 떨어졌지…….”

“푸흐흐, 뭐 그렇다는 거지. 내일 무림맹으로 떠나자!”

갑자기 들뜬 남하림이었다.

‘부장이 정말 제대로 할 생각인 모양이군.’

* * *

전승과 헤어진 후, 다섯 명은 곧장 무림맹으로 향했다.

무림맹으로 향하는 길.

하루에도 수십 명이 비무를 위해 걸협오성을 기다렸다.

절대무림 백위에 들었던 걸협오성의 명성.

하지만 남궁세가의 제왕대와 창천광군 남궁진을 꺾는 순간.

오십 위 이상 순위로 날아올라 절대상무위에 이름을 올렸다.

수시로 변하는 백 위까지의 절대무위와 달리, 상무위는 거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무공이 높았다.

명실상부 중원 무림의 고수로 인정받게 된 것.

“흐음…… 이 일을 어찌한다?”

곤란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휘연 형, 우리가 비무를 많이 받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죠?”

“절대상무위는 다르니까. 죽기 싫다면 함부로 도전을 못하지. 백무위와 달리, 상무위는 도전 결과에 따라 죽어도 관여치 않는다는 무림의 불문율이 있다.”

“아항, 우리가 제일 만만하다 이 말이군.”

“맞다.”

“귀찮네. 대충 치우고 올라가자.”

“알겠어.”

걸협오성에 대한 도전은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도전자들은 처참한 패배만을 남겼다.

걸협오성은 도전자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도전할 자, 목숨을 걸어라.

실제로 죽이는 일은 없었지만, 반년 동안 내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없을 정도로 단전을 막았다.

거기다가 비무가 끝난 후엔, 그 자리에서 무공의 한 초식을 바쳐야 했다.

어느덧 걸협오성의 비무행은 무림에서 단전파괴지행, 또는 초식조공지행이라 불리고 있었다.

* * *

드디어 정주에 도착했다.

무림맹으로 향하는 다섯 명의 개방 방도.

주위의 시선은 자연스레 걸협오성에 집중되었다.

이들은 정주에 도착했을 때부터 무림맹에 보고된 상태.

중원제일맹 무림맹의 무인들이 정문에 걸협오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림맹이 정문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네요.”

“이미 보고가 되었겠지. 한참 우릴 따라왔잖아.”

정주성의 초입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내내 무림맹의 시선을 느꼈다.

긴장한 채로 서 있는 모습들.

“긴가민가하네. 저 모습이 우릴 제대로 환영해 주는 모습이 맞는가?”

“설마 내쫓기야 하겠어요? 물건을 두 개나 가지고 왔는데요.”

“후후, 유도 말이 맞아. 환영은 안 해줘도 쫓아내지는 않을 거야.”

남하림은 무림맹 정문에 멈췄다.

스윽.

중년 사내가 나왔다.

무림오천 소속의 규경단 단주 일성부가 남하림과 마주 섰다.

“무림오천 규경단을 맡은 일성부라 하오.”

“규경단 단주님께서 직접 나오셨군요.”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군사님께서 특별히 그대들을 안내하도록 부탁했소이다.”

“그렇군요. 지금 바로 군사님을 만나는 것입니까?”

“바로 만나고 싶으나 피곤할 테니 내일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셨소. 본인이 영화당으로 안내하겠소이다.”

“부탁하겠습니다.”

일성부를 따라 다섯 명은 무림맹으로 들어섰다.

뚝.

앞장을 선 일성부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순간 멈칫거리면서 당황했다.

‘맹…… 주님.’

무림맹주 유극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규경단 일 단주, 오랜만일세.”

“맹주님을 뵙겠습니다.”

일성부는 곧바로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유극지는 고개를 숙인 일성부 뒤로 남하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개, 오랜만이구만. 자네들도.”

“반갑습니다.”

유극지를 향해 다섯 명 모두 고개를 숙였다.

스윽.

유극지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였지만, 단숨에 남하림 앞에 바짝 다가섰다.

“소문을 듣자니 그동안 실력 좀 늘었다지?”

“확인을 해보시겠습니까?”

“자신만만하군. 그럼 한 번 볼까?”

슈우욱.

유극지는 손을 뻗어 남하림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타앗!

남하림은 다가오는 그의 손을 팔뚝으로 쳤다.

뒤로 튕겨 나가는 유극지의 손.

“오? 적당하게 막아냈군.”

“…….”

“그럼…… 이건 막을 수 있을까?”

휘리릭!

유극지는 바로 손을 회전시켜 남하림의 팔뚝을 감싸며 어깨로 밀면서 올라갔다.

투욱!

남하림은 어깨를 단번에 아래로 늘어뜨리면서, 가볍게 유극지의 손을 벗어났다.

서로 떨어진 두 사람.

“맹주님, 조금 는 게 안 보이십니까?”

“제법일세. 사천에서 좋은 경험을 한 덕분이군.”

“…….”

역시 맹주인가.

금지에 박혀 있어도 세상일은 모르는 게 없었다.

“따라들 오게. 차나 한 잔 마시고 영화당으로 가게.”

“저어…….”

일성부가 중간에 나서려고 했다.

슈우우우욱-

유극지의 신형에서 가공할 기세가 일성부를 뒤로 밀어냈다.

일성부는 하마터면 몸이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뻔했다.

“일 단주, 감히 맹주인 본인이 말을 하거늘. 어디 함부로 나서 말을 자르는지 모르겠군.”

“죄송하옵니다.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됐다. 이번 한 번은 용서를 할 테니 돌아가라.”

유극지는 돌아서며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쳤다.

“가지 않겠는가?”

“무림맹주님이 가자고 하는데 안 갈 수 있겠습니까? 근데 너무 강압적이신 것 같은데.”

“하하하하, 그렇게 느꼈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우리 가면서 그동안 재미있었던 일이나 이야기하세.”

유극지가 금지로 걸었다.

남하림이 일행을 보았다.

“우리…… 저분을 따라가야겠다.”

“하림 형, 뭔가 나뉜 듯한데.”

“으음…… 그런 것 같기도 해.”

팽유도는 물론, 다섯 명 모두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멀리서 유극지가 재촉했다.

“뭣들 하느냐? 빨리 오지 않고.”

툭.

남하림은 긴장한 일성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중에 영화당으로 갈 테니, 군사님께 전해주세요.”

“……알겠소이다.”

* * *

‘또 여기에 올 줄이야.’

남하림은 유극지와 함께 금지에 다시 들어섰다.

“후후, 어서들 오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전대 검후 예설란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전대 검후님을 뵙습니다.”

“다들 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자리에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나무 탁자 앞에 여섯 개의 찻잔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무림맹에서 나간 뒤 많은 일들을 들었네.”

“…….”

“미령, 그 아이도 만났더군.”

다른 일도 많은데 그 일부터 꺼낸다.

“네, 검문에 잠시 들렀습니다.”

“군사가 부탁을 했을 테지?”

“…….”

‘뭐지?’

그냥 느낌이 이상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

“네.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이름 대신 맹주님이 부탁한다는 식으로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유극지는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그녀가 그 물건을 내어주던가?”

“네, 받아왔습니다.”

“하하하, 정말로 그녀가 자네를 양아들로 삼은 모양이군. 그것을 내어줄 거라 예상 못 했는데!”

스윽.

유극지는 손을 뻗었다.

“한 번 보여주게.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군.”

“…….”

남하림은 순간 갈등에 빠졌다.

“허허,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것이네. 검후가 가졌던 물건이 어찌 생겼는지.”

“알겠습니다.”

툭.

허리에 찬 붉은 요대를 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극지의 눈빛이 빛났다.

“오호…… 그걸 차고 다녔어?”

구천신품이다.

보통은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가지고 다니지 않겠는가.

“제 것도 아닌데 굳이 조심스럽게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요.”

“하하하, 자네의 말이 맞는 것 같군.”

“여기 있습니다.”

스윽.

유극지가 홍요대를 받았다.

‘흐음…….’

홍요대의 뒤를 살폈다.

남하림은 유극지의 시선이 어디에 향하는지 알아챘다.

‘구천마제의 문양을 보고 있어.’

“…….”

한참을 보던 유극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받게.”

남하림은 그가 주는 홍요대를 잡았다.

‘맹주……?’

유극지가 홍요대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후후후, 후개, 귀여운 짓을 하고 있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군사를 위해 이런 수고까지 하지 않나. 그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슥.

유극지는 홍요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는 모를 거야.”

“……!”

“내가 입이 좀 무거워서…… 걱정 안 해도 돼.”

‘어, 어떻게……?’

남하림은 세상에 태어나서 이보다 당황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조금도 표시가 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핫, 자네 말이 맞네.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유극지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게 변했다.

“아, 사천신교를 정리했다고 들었네. 무림맹에서 정리를 할까 고민 중이었지. 잘 처리했더군.”

“운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자네에게 그런 운이 따라야 할 텐데.”

‘협박을 하는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운이 계속 따라 주면 좋을 텐데요.”

“아마 운이 좋을 거네. 내가 관상을 잘 보진 않지만, 이대로 탈 없이 나간다면 천하를 호령한 관상이지.”

“고맙습니다.”

“천만에.”

유극지와 남하림의 팽팽한 대결을 지켜보던 네 사람은 가슴을 졸였다.

‘으아아, 그래도 부장이 잘 버티고 있어.’

‘맹주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검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아.’

“여러분들, 제가 맛있는 다과를 준비했어요.”

예설란은 쟁반 위에 다과를 들고 나오면서 분위기를 바꾸었다.

벌떡!

팽유도가 그녀의 쟁반을 받았다.

“제가 들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등에 보이는 반도처럼 날쌔네요.”

“감사합니다. 제가 막내라서 항상 빨리 움직이는 편입니다.”

탁자에 다과를 내려놓았다.

유극지는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모두들 먹어보게. 직접 만든 것이라 먹을 만하네.”

“네, 감사합니다.”

스윽.

이휘연의 앞으로 예설란이 다과 하나를 건넸다.

“감…… 사합니다.”

“후후, 아니지요.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지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아이가 정신을 차린 모양이더군요. 세상에 자신보다 강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자만심을 버렸다고 연락이 왔어요.”

“…….”

“부모의 입장에서 감사한 경우죠.”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비무를 한 건 아닙니다만…… 그녀가 잘됐다면 좋은 일이군요.”

* * *

결국 금지에서 반 시진을 보냈다.

다섯 명은 유극지와 예설란의 배웅을 받으며 금지에서 나왔다.

영화당으로 걷는 그들.

금지에서 차를 마시고 다과를 먹었을 뿐이다.

하지만 양쪽 어깨에 하늘의 무게가 걸터앉은 듯했다.

“부장.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

“나도…… 모르지. 무림에 워낙 이상한 인간들이 많아서…… 하아, 일단 씻고 잠이나 자야겠다.”

남하림은 당분간 쉬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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