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남궁진을 꺾다
씨익.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왜 웃지? 내가 우습나?”
“지금은 왠지 웃음이 나오네요.”
“무슨 말이지?”
“목숨을 걸고 죽을 둥 살 둥 무림의 고수들과 싸우고 있는 현재의 상황. 여하튼 내가 어릴 때부터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니거든요.”
“…….”
“근데…… 말이죠. 재미가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에요.”
남하림은 내력을 일으켰다.
슈우우우우-
단전에서 흐른 내기가 혈맥을 타고 전신을 흘렀다.
남하림은 전신에 흐르는 황금색 기를 보며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또 웃긴 게 뭐냐면, 내가 점점 강해진다는 겁니다. 어느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만큼.”
“……훗.”
‘지지 않는다고?’
남궁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보도록 하지.”
파앗!
코웃음을 친 남궁진이 이번에는 먼저 움직였다.
제왕폭강(帝王爆罡)의 초식.
머리 위에서 제왕검을 양손으로 고쳐 잡은 뒤 내리쳤다.
제왕검이 만들어낸 검강.
콰아아아앙!
남하림의 코앞에서 검강이 터지며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과 같은 기운이 불어 나갔다.
슈유유유유-
그 여파로 흙먼지가 사방으로 솟아오르며 앞을 가렸다.
시야가 가려졌지만, 남궁진은 그의 일격이 실패했음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으음, 이것을 막아내는군.’
십 성의 내력으로 단숨에 끝을 내려고 했건만!
서서히 먼지가 걷히면서 오른손을 뻗은 남하림의 모습이 드러났다.
“짜릿하네요.”
“……!”
“받고…… 나도 짜릿하게 만들어주겠습니다.”
‘온다……!’
남궁진은 긴장하며 제왕검을 고쳐 잡았다.
전과 같이 단숨에 치고 들어올 줄 알았다.
휘리리릭!
취리건곤보를 펼치며 남궁진의 앞으로 접근하는 남하림.
직접 봐도 믿지 못할 정도의 신위다.
무룡파천. 승룡포박. 진룡귀매.
좌우로 휘청거리는 듯한 걸음걸이.
아스라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순간마다 강룡십팔장이 펼쳐졌다.
“허어억!”
남궁진의 눈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강룡십팔장의 최대 단점.
한순간 강한 내력을 한 번에 쏟아부어야 하는 특성상, 연공을 펼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무림에 알려져 있었다.
한데!
쉬이이이이이이!
두 번도 아닌 세 번의 강룡십팔장이 한꺼번에 연이어 퍼부었다.
“하하하하! 짜릿할 겁니다!”
남하림의 대소도 들리지 않았다.
쿠아아아아-
콰아아아아-
쿠와아아아아아-!
‘무조건 막아야 한다!’
남궁진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모든 내력을 끌어 올렸다.
우우우우웅-
제왕검을 앞으로 겨눈 최후의 초식.
“후개. 나를 무시하지 마라. 난…… 창천광군 남궁진이다!”
제왕검무(帝王劍武).
번쩍.
제왕검의 빛은 어느 때보다 강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눈이 멀어버릴 듯한 빛이 춤을 추듯 날아오는 강룡들을 향했다.
쿵! 쿵! 쿵! 쿵!
두 강기의 부딪치차 충격으로 대지가 떨렸다.
휘이이이잉-
한차례 기풍이 주변을 쓸어버린 후, 함께 살아남은 강룡이 남궁진을 향해 부딪혔다.
“우우욱!”
남궁진은 신음을 삼키며 뒤로 밀려 나갔다.
털썩.
그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스윽.
남하림이 그의 앞에 섰다.
“당신이 누구인지 상관없습니다. 난 천하제일대개방 걸협오성의 남하림입니다.”
사방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제왕대가…….’
아무리 중독이 되었다고 한들, 다섯 명에 의해 제왕대가 전원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소수의 무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다수의 적과 상대하여 이길 수 없는 이유.
한 사람의 내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건만.
‘이놈들의 내력은 끝이 없다. 대체 개방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나, 제왕대 수하들의 상대한 네 명의 내력은 여전히 처음과도 같았다.
‘내력이 유지되는 한…… 이들을 이길 수 없다.’
남궁세가 제왕대와의 싸움이 끝났다.
* * *
탈탈탈.
다섯 명은 상의를 벗었다.
남궁세가를 박살 낸 후.
걸협오성은 제왕대의 수하들에게 자신들의 짐을 살펴보도록 했다.
남궁진이 원하는 물건.
무극창신공은 절대로 나올 리 없었다.
남하림은 벗었던 옷을 다시 걸쳤다.
“이제 됐소이까?”
‘…….’
남궁진은 할 말이 없었다.
빠득.
이빨을 갈며 살기를 뿜었다.
스윽.
다만, 남궁진의 살기는 남하림이 아닌 남궁청현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귀찮게 하지 않겠지요?”
“……미안하게 됐소. 우리가 잘못 알았던 모양이오.”
“그럼 잘 가시오. 오늘 일로 두 문파의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아무런 일이 없을 수 없었다.
분명 소문이 날 일.
남궁세가는 조만간 난리가 날 게 틀림없었다.
휙!
남하림은 기분 좋게 돌아섰다.
앞으로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으리라.
“가자. 조금 운동했다고 배가 고프네. 오늘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앗…… 부장. 황궁 요리 어때?”
“철각이 원하다면야.”
* * *
무림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도 눈과 귀가 있다.
걸협오성과 남궁세가 제왕대의 결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소문이 퍼져 나갔다.
사천성에서 발생한 사천신교의 소문이 잠잠해지기 전에 일어난 소문이었다.
걸협오성에 대한 중원인들의 관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어 갔다.
“우하하하하하!”
용두방전에서 대소가 터져 나갔다.
방주 오종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이보게. 방주! 오늘같이 좋은 날엔 춤을 출 수밖에 없구만!”
벌떡!
일장로 장두철이 용두방전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와 이이이리이이이 좋노오……!”
“후하하하! 저도……!”
법개 위한소까지 일어나 한바탕 춤사위를 펼쳤다.
오전 일찍 전해져 온 소식.
#NAME?
후개께서 창천광군을 또 박살.
다른 곳도 아닌 상대가 남궁세가였다.
한바탕 춤사위가 지나갔다.
“남궁세가 가주 얼굴을 보고 싶은데…… 아쉽군, 아쉬워!”
“방주, 다음에 볼 기회가 있을 것이네.”
“아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추개도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보게, 추개. 그 녀석을 돌려보냈으면 어떻게 되었겠나?”
“방주님, 그때는 워낙 이 녀석이 천방지축이라서…… 뭐……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말입니다. 사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어느 누가 그 아이들이 지금처럼 될 것이라 봤겠는가!”
“방주님, 이번 일로 남궁세가에서 해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클클클, 추개, 걱정 말게. 지금까지 잘해온 아이들이네. 그리고 우리도 더는 참으면 안 되지.”
장두철의 말에 방주 오종도 뜻을 같이했다.
“일장로님의 말씀이 맞네. 이젠 우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겠지.”
오종은 자신이 있었다.
중원에 흩어진 수많은 개방 방도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강력한 인물이 생겨났으니까.
“무림의 전 분타와 총타에 연락해서, 걸협오성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르라고 전하라!”
* * *
휙.
백후가 마차에서 내려섰다.
‘쳇…… 일부러 이런 곳에서…….’
마을에는 많고 많은 객잔들이 있었다.
하지만 남하림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너 개의 탁자가 놓인 간이 객잔이었다.
그곳에서도 안쪽 자리.
많은 사람들이 그들 주위에 모여 있었다.
“여러분, 잠시만 비켜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도착을 했군요.”
“아……! 네에. 알겠습니다. 후개님!”
우르르르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옆으로 물러났다.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백후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크흐으음.”
마음에 들지 않는 기침이 나왔다.
“여기 좋지 않습니까? 바람도 시원하고 주위 경치도 좋고…….”
“난 지저분한 것을 싫어하네.”
“세상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긴 별로 깨끗해 보이지가 않는군.”
“지저분한 정도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선 앉으시지요.”
스윽.
백후는 의자를 살폈다.
“흐음.”
음식물 자국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백후는 수하에게 의자를 가리켰다.
휘익!
수하가 의자에 백색 천을 빠르게 깔았다.
남하림도 그의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개방을 통해서 연락이 왔더군요.”
“그대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뭐,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되도록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한 거였는데.”
남하림은 백후의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점소이에게 손을 들었다.
후다닥!
점소이가 얼른 다가왔다.
이미 그의 손에는 시원한 냉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시원할 겁니다.”
“…….”
백후는 탁자 아래로 내려놓은 냉차를 빤히 보았다.
“난 이런 곳에서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네. 속이 민감해서 잘못 마시다가는 탈이 잘 나는 편이거든.”
“그런가요? 생각보다 연약하시네. 탈이 잘 난다고 하니 할 수 없죠.”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장소를 정하지.”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
백후 또한 남하림을 만나러 오기 전에 소문 하나를 들었다.
“우리가 헤어진 사이에 큰일이 일어났더군.”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서로 아주 사소한 문제로 의견이 안 맞은 것뿐이죠. 북방상국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겁니다.”
실제로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처음 봤을 때부터 후개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사천성에는 사천신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많은 무림문파들이 있었다.
그들도 포기했던 사천신교를 완전히 걸협오성이 갈아엎어 버렸다.
게다가 남궁세가의 제왕대.
남궁세가 절대무인 이군 중 창천광군 남궁진과 싸워 이겼다.
후개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계와 무림은 분명 다른 세계이지만 연관되는 부분이 많았다.
더 중요한 것은 후개가 남천상국 출신이라는 것.
백후는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북방상국에서 연락이 왔네.”
“그렇군요. 그가 뭐라고 하던가요?”
“둘째 공자가 시간이 바쁘지만 그대의 뜻을 따라 만나겠다고 했네.”
“바쁘신 분이 귀한 시간을 내준다고 하니 고맙네요. 어디에서 보자고 하던가요?”
“북방상국으로 초대를 하고 싶다고 했네. 괜찮겠나?”
“북방상국? 하북에서입니까?”
“그렇네.”
“조금 멀군요. 여하튼 초대까지…… 뜻밖입니다.”
“둘째 공자가 그대를 좋게 생각한 모양이네.”
“알겠어요. 그의 초대를 받아들이죠.”
“잘 생각했네. 둘째 공자와 좋은 만남이 될 것이 분명하네.”
“그건 만나보면 알겠죠.”
“음…… 그러면 바로 북방상국으로 갈 수 있겠는가?”
“어차피 하남을 지나야지 않겠습니까? 북방상국으로 가는 길에 무림맹에 잠시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무림맹에?”
“군사의 부탁을 받은 게 있거든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백후는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그렇게 하게. 그럼 우린 어디 중간에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중간에 따로 만날 일이 있겠습니까. 북방상국이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알겠네. 북방상국에 들어오기 전에 일단은 나를 먼저 만났으면 하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도착하기 전에 연락을 띄우죠.”
“고맙네.”
저들이 바로 찾아온다면,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북방상국의 다른 공자들 측에서 남하림을 만나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까.
스윽.
백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보겠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타악!
백후는 곧장 마차에 올라탔다.
“가자.”
다가닥.
왔던 길을 되돌아 움직였다.
마차 안에 탄 그의 표정이 풀렸다.
‘일단 거절을 안 해서 다행이군.’
저놈이 만나지 않겠다고 말을 할까 내심 걱정했었다.
‘후개, 이 녀석도 어차피 장사꾼이다. 서장에서 하던 짓을 보면 장사꾼이 틀림없어. 여하튼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군. 이제는 내 책임이 사라질 테니…… 후후후.’
환비균장에 대한 일은 둘째 백진묵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 * *
“아저씨!”
걸협오성은 무림맹으로 향하는 길에 전승을 만나러 갔다.
“요새 자주 네 소식이 들리더구나.”
“아하하, 제가 잘나서…….”
“안녕하십니까?”
남하림 뒤로 다른 네 명이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
“이제는 완전히 중원의 유명인사가 되었더군.”
“하하하하! 이게 전승 님 덕분이 아닙니까?”
당무독은 손에 낀 투장을 들어 보였다.
“겨우 장갑을 준 것밖에 없거늘.”
“아닙니다. 제가 이것 때문에 부담 없이 독을 만질 수 있지 않습니까?”
“으하핫!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전승이 다섯 명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구우우우웅-
동굴 한쪽 벽이 열리면서 대리석으로 만든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허어…… 이건 언제 만드신 겁니까?”
“심심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었지. 오늘은 무엇을 들고 오셨나?”
남하림이 반지와 홍요대를 꺼냈다.
전승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예전에 보던 물건들과 다른 점을 느껴졌다.
“혹시…… 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더냐?”
“무슨……?”
“반지와 홍요대의 붉은 보석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천령신옥(天靈神玉)인 것 같다.”
천령신옥.
하늘의 기운이 섞여 있는 신성한 돌.
전승 또한 보지 못한 전설상의 돌이 눈앞에 있었다.
“흐음…… 이건 똑같이 만들 수는 없겠구나.”
“상관없어요.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주시면 돼요.”
“알겠다.”
“음…… 혹시 이 두 개는 다른 모양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요? 너무 눈에 띄어서 군사라면 금방 탄로 날 것 같아서요.”
“알겠다. 요건 며칠이 걸리겠다.”
“상관없어요.”
* * *
“으으으…….”
병상에서 신음을 내는 사내.
“주작령. 깨어나라.”
번쩍!
주작령 문령이 눈을 떴다.
‘망할…… 놈들.’
그는 깨어나자마자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이휘연의 검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스으윽.
문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작령존을 뵙습니다.”
붉은 눈동자의 중년 사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분께서 실망을 하셨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방심을 했습니다.”
“허허. 내가 그러기에 너무 파훼법을 믿지 말라고 경고했거늘. 내 말을 무시하더니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제가 파훼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탓입니다. 절대로 실패할 수 없습니다.”
“주작령, 네가 만패군의 계승자임을 안다. 그의 역작인 무공파훼법이 대단한 것도 알지. 하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어찌 모르느냐?”
“아닙니다. 이번에는 다를 것입니다. 제가 그런 자들과 싸워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절대로 지지 않을 것입니다.”
“…….”
‘허어…… 아집에 사로잡힌 녀석. 남을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한층 더 뛰어넘을 녀석이거늘…….’
주작령존은 안타까움에 보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