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58화 (159/328)

158. 남궁세가 대결

검을 뽑은 남궁청현은 당장에라도 남하림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언제……?’

이휘연의 검을 보지 못했다.

무당파의 검에 쾌검이 있었던가?

꾸우욱.

어느샌가 태극흑검이 남궁청현의 목에 닿은 채 누르고 있었다.

‘하아…….’

독사 같은 차가운 송곳니가 목을 찌르는 듯했다.

“부장에게 검을 내민 자는 죽음뿐이다.”

세상에 이보다 짙은 살기를 지닌 인물이 존재할까.

천살성의 살기에 남궁청현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남궁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한심걸, 무슨 짓인가? 검을 내려놓지 못할까?”

“…….”

이휘연은 눈꺼풀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니까.

남하림의 명만 있으면 가차 없이 남궁청현의 목을 찌를 듯한 기세다.

남궁진의 시선이 다시 남하림에게 향했다.

‘후개!’

남하림은 느긋하게 술잔을 들어 마셨다.

“크으…… 술맛이 왜 이리 좋지?”

“뭐 하는가?! 그를 말리지 않고.”

“제가 왜 말립니까? 말려야 할 사람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혼자서 흥분해서 날뛰는데.”

“후개, 그거야 그대가 청현을 의심해서……!”

“남궁세가에선 저희를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만히 볼 수만은 없다.

남궁진이 이번에는 버럭 화를 냈다.

“개방은 남궁세가와 등을 돌릴 생각인가?”

“남궁세가가 언제 개방과 친하게 지냈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물음에 남궁진은 흠칫했다.

남하림이 개방에 입방한 후,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당시 여러 문파나 세가들도 비슷하게 굴긴 했지만, 특히 남궁세가는 거지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무림대문파의 위신을 낮추는 행동이라 여겼다.

그들은 개방을 유난히 무시했다.

“하…… 후개께서 이해를 하게. 청현 아우가 성격이 다혈질이라 가끔 저런다네. 내가 사과를 함세.”

“……그러지요. 광군께서 사과를 하신다니 나이도 어린 사람이 모른 체하기도 미안한 일이니까.”

“고맙네.”

남하림은 이휘연에게 검을 거두게 했다.

“휘연 형, 광군께서 사과를 하셨습니다. 속 좁은 사람이라 생각하시고 대협으로서 큰 아량을 베푸는 게 좋겠습니다.”

스윽.

이휘연은 태극흑검을 뒤로 물렸다.

‘후우…….’

남궁청현은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꼼짝 없이 주변을 옥죄는 살기.

이휘연의 눈빛을 피하지도 못한 채 절망감에 빠질 정도였다.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자 몸이 휘청거렸다.

“……한심걸, 무당파의 검을 버렸는가?”

남궁진이 본 이휘연의 검은 분명 무당파의 무공이 아니었다.

“내가 무당파의 검을 버렸는지 어떻게 아시오?”

“…….”

“남궁의 창천광군께서 무당파 제자는 무당파의 무공만 펼친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는군요.”

‘이놈들은 어째 한마디 말도 질 생각이 없군.’

남궁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당파의 제자라면 당연히 무당파의 무공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술자리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궁진은 몸을 일으켰다.

“후개, 오늘은 이만 헤어지는 게 좋겠네.”

“그렇게 하시지요.”

“아 참, 무림맹으로 간다고 한 것 같은데.”

“맞습니다. 잠시 볼일이 있습니다.”

“나중에 꼭 보세나.”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밖으로 나갔다.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은 듯한 분위기.

다섯 명은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당무독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한 잔씩 술을 따랐다.

“으, 이제야 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네.”

“그러게 말이다.”

“하림 형, 정말로 남궁세가와 싸우려고 했어요?”

술을 받던 팽유도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싸우긴. 그냥 강하게 나가는 거지. 개방에서 배운 게 뭐냐? 그냥 밀고 나가는 거잖아.”

“……만일 저쪽에서 안 받아줬다면 바로 싸우는 거잖아.”

“맞아.”

“……그럼 싸우는 게 맞잖아요?”

“그 말이 맞네.”

“혀어어엉, 무슨 말이 그래? 싸우자는 거야, 아니면 아니라는 거야?”

스윽.

이휘연은 술잔을 들어 팽유도에게 권했다.

“받아라.”

“으이…… 네에.”

“부장이 싸우고 싶으면 싸우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거야. 어렵게 생각하지 마. 우리들은 남궁세가의 무서움을 아니깐 망설이는 것이지만, 부장은 남궁세가와 직접 부딪히지 않아서 잘 모르지. 어찌 보면 그저 안휘성에 있는 세가일 뿐이지 않나.”

“흐으음.”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문파가 개방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지.”

“휘연 형은 어떻게 내 속마음을 잘 알아채는지 모르겠어요.”

“같이 지낸 게 하루 이틀인가.”

“하림 형, 대단하다.”

“뭐…… 믿음이 강하면 돼. 그냥 그런 거 같거든. 자아, 그런 이야기 그만하고 한잔들 마시자.”

“그래, 그래. 막내가 선창을 뽑아라!”

“넵. 지하아아아아아아자…… 조쿠나아아아!”

“어어어어얼씨이이이이구나, 조아아아아타아!”

채애애앵!

다섯 잔이 중앙에서 서로 부딪혔다.

* * *

향흠루 밖에서 불이 환하게 커진 방을 노려보는 시선.

남궁진과 남궁청현은 한동안 지켜서서 창을 올려다보았다.

“…….”

멀리서 장타령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짜…… 거지들같이 놀고 있습니다.”

“거지들이니깐.”

* * *

퉷!

손가락에 침을 묻혔다.

슥슥.

남하림은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무공서를 한 장씩 넘겼다.

타악.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서책을 덮었다.

“다 봤다.”

“어때?”

침상 옆 의자에 이휘연이 앉아 있었다.

“별로…… 강한 무공인지 모르겠는데요?”

“무극창신공이다. 중원에서 제일 강한 무인의 무공.”

“무극창신공이 아니라 구천마제가 강한 것이겠죠.”

“……맞군.”

이휘연은 남하림의 말을 인정했다.

무공의 순위는 없다는 사실을 가끔씩 잊는다.

“이걸 익힌다면 어느 정도 강자는 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구천마제처럼 되는 것은 아니죠.”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화르르-

남하림은 등불에 서책을 갖다 대고 불을 붙였다.

더 이상 무극창신공은 필요 없었다.

복보다는 화가 될 물건.

“…….”

이휘연은 불에 타고 있는 무공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좀 더 파고들고 싶었지만,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휘연 형, 전부 외웠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시간 날 때 다시 적어줄게요.”

“……!”

‘그걸…… 한 번 만에?’

침상에 누워 대충 훑어보는 것 같더니.

“그걸 모두 외웠나?”

“아깝잖아요. 창술이라서 타구봉법에 응용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방도들이 배우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무극창신공의 구결을 타구봉법에 응용해서 방도들에게 가르치겠다는 건가? 그게 가능하다면 나도 배우겠다.”

“그래요? 휘연 형이 좋다고 하니, 그럼 한 번 만들어볼게요.”

“훗, 괴물 같은 놈.”

드륵.

그때, 문을 열고 팽유도가 들어왔다.

“어? 뭘 태워요?”

“무극창신공.”

“으아아아아아! 형아, 그걸 진짜 태운다고요?!”

팽유도는 화들짝 놀라 남하림과 이휘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 말리지 않았냐는 애절한 눈빛.

“으아…… 혀어어엉…….”

“유도야, 걱정 안 해도 돼. 부장이 전부 외웠다.”

“어어엉? ……와우, 진짜…… 하림 형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어떻게 책 한 권을 그새 외웠어요?”

스으으윽-

이번에는 성철각이 들어왔다.

“뭐, 뭘 태웠다고?”

그리고 반복되는 말과 동작들.

마지막으로 당무독까지 들어온 뒤에야 똑같은 말과 동작들이 끝났다.

“야, 다음부턴 웬만하면 전부 같이 들어와. 똥개 훈련 시키냐?”

* * *

하남성으로 올라가는 다섯 사람.

그들 뒤로 남궁세가의 제왕대가 따랐다.

“형님, 이틀 동안 저들을 따라다녔습니다.”

“…….”

남궁청현의 말대로 계속 따라다닐 수는 없었다.

“저들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겠나?”

“네. 맞습니다. 분명히 저 녀석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남궁청현의 확신은 명확했다.

“만일 잘못된다면…… 난 너를 포기할 것이다.”

“…….”

남궁청현은 남궁진의 뜻을 이해했다.

자신으로 인해 남궁세가에 피해가 가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무극창신공이 저놈들에게 없다면 뒷일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좋다.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하면 시작하자.”

“넵. 수하들에게 이야기를 해놓겠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뒤에서 따라오는 남궁세가 무인들의 움직임이 무거워 보였다.

“부장, 저들의 분위기가 어제와 다르게 보여. 시작할 모양인가?”

“이틀 정도 걸릴 줄 예상했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군.”

“그러게. 부장은 나중에 자리 깔아도 되겠다.”

“흐흐, 무독아, 네가 나설 차례다.”

당무독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시간을 기다렸다구.”

“살살해.”

“적당한 수준에서 해보지.”

당무독은 가방을 앞으로 돌렸다.

이미 그의 손에는 옥병이 서너 개 들려 있었다.

“음…… 여기가 좋겠어.”

인적이 드물고 독을 터뜨리기 좋은 장소를 찾았다.

두두두두-!

점점 가까워지는 남궁세가의 무인들.

“저기…… 남궁세가에서 오는군. 어찌 우리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남하림의 눈에 후방에서 다가오는 남궁진의 굳은 표정이 비쳤다.

잠시 후.

남궁세가 제왕대가 멈췄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남궁진의 목소리는 무심했다.

“후개는 앞으로 나서라.”

스윽.

남하림이 그의 말대로 앞에 섰다.

“계속 기다리기 힘들었습니다.”

“…….”

‘이 녀석, 우리들이 나설 것을 알고 있었군.’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언뜻 당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후개를 포함한 인원은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

‘저 녀석의 괜한 허세에 내가 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왕대가 질 만한 변수는 전혀 없다.

‘그대로 밀어붙인다.’

“후개. 우리가 하는 대로 따른다면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대들에게 확인을 할 게 있다. 모든 짐을 조사해 보겠다.”

“이런, 우릴 믿지 못하고 있었군요. 하긴 그러니 여기까지 따라온 게 아니겠냐만은.”

“…….”

“만일 여기에서 우리들이 조사를 받는다면 개방의 위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도 후개라고 알려진 본인이 말이외다.”

남궁진은 표정이 굳어졌다.

명백한 거절이다.

“우리가 무극창신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개방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무극창신공이 남궁세가의 것이라면 모를까.”

“후개, 그건 개방의 무공도 아니네.”

“개방의 무공이란 말을 제가 했던가요?”

“허어…… 전혀 돌려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군.”

“자꾸 우리에게 그 물건이 있다고 확신하는군요. 명확한 증거가 없이는 단정 짓지 마세요.”

“당연하지 않나. 자네들이 거절을 하니 있다고 믿는 수밖에.”

“그건 심증이라는 것이죠. 남궁세가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단……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슥.

남궁청현이 앞으로 나서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후개. 방금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누가 후회할지는 두고 봐야지.”

타앗!

남하림이 뒤로 물러났다.

제왕대 소속 육백 명의 무인을 상대해야 하는 다섯 명의 걸협오성,

“무독, 시작할까?”

퍼억!

퍽!

제왕대 주위에서 연이어 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흰색의 가루가 제왕대 머리 위로 날리면서 떨어졌다.

‘이게 뭐지?’

“콜록.”

흰색 가루를 맡은 제왕대 무인들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우우욱.”

“커어억.”

남궁진은 본능적으로 독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독이다. 모두 숨을 멈춰라!”

그가 재빨리 소리쳤지만 이미 중요한 때는 지났다.

제왕대 무인들이 바닥에 쓰러진 채 모든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젠장…… 이놈들 중에 독광걸이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남궁진의 시선에 당무독이 들어왔다.

“이놈……! 독을 사용하다니 사파의 무리가 아닌가?!”

“남궁세가의 시선에선 사천당문도 사파였나 보군요.”

당무독은 기가 찼다.

“쉽게 쉽게 모두 죽일까 하다가 부장이 가볍게 하자고 해서 이 정도로 하는 것이오. 아니면 모두 극독에 죽었을 것이외다.”

“……!”

채애앵!

남궁청현은 검을 뽑으며 남하림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곧 중간에서 멈춰야 했다.

“당신의 상대는 나다.”

스르르륵-

이휘연이 그의 앞을 막으며 태극흑검을 휘둘렀다.

쏴아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

단풍음(斷豊音)이 스쳐 지나갔다.

카아아아앙!

남궁청현은 검을 세워 태극흑검을 막았다.

주르르르륵!

십여 걸음을 뒤로 밀렸다.

‘검의 무게는 오히려 무당보다 강하거늘……!’

손이 마비가 된 듯한 충격.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부장에게 검을 겨누는 순간 죽는다.”

이휘연이 다시 움직였다.

번쩍!

태극흑검에서 내력이 폭발했다.

검신일체(劍身一體).

단전의 내력이 완벽하게 태극흑검으로 이어졌다.

남궁청현은 순간적인 폭발에 고개를 돌렸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멍청하군. 고개를 돌리다니.”

‘허억!’

남궁청현이 천풍검법을 무작정 펼쳤다.

휘이이잉-

검에서 솟아난 돌풍이 전방으로 쏟아졌다.

실망스러운 목소리.

“남궁가의 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실망이다.”

‘앞……!

스팟!

태극흑검의 검날이 남궁청현의 목을 그었다.

“크으으윽. 아악!”

비명이 터져 나오면서 손이 저절로 목을 감쌌다.

이휘연이 마지막에 태극흑검을 거두어 검상은 깊지 않았다.

‘지금은 완전히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겠지.’

털썩!

남궁청현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바로 지혈에 들어갔다.

스르르릉-

남궁진이 제왕검을 뺐다.

‘한심걸의 무공이 청현보다 우위에 있다니…….’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대부분 타 문파보다 우월하다고 자부했다.

“한심걸, 본인의 제왕검을 받아보아라.”

“미안하게 됐소. 받고 싶지만, 당신을 상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군.”

스윽.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명의 사내가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후개……!’

“그럼 우리도 놀이를 펼쳐볼까요?”

파아앗!

남하림은 만리추풍신법을 펼치며 남궁진의 정면으로 바짝 다가섰다.

‘기습하겠다는 것이냐?!’

우우우웅-

남궁진의 앞에 멈추는 동시에, 강룡십팔장이 펼쳐졌다.

뇌중무용(雷重武龍).

파아아아앙!

묵직한 일 장이 남궁진의 가슴으로 뻗어나갔다.

“이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내가 바로 남궁진이다!”

남궁세가의 자부심이 터져 나왔다.

남하림을 향한 반격.

제왕검이 남하림을 향해 떨어졌다.

번쩍!

제왕광천(帝王光天).

제왕검의 강력한 폭발이 강룡십팔장의 힘을 밀어냈다.

콰아아아앙-!

강 대 강의 대결.

남하림과 남궁진의 신형이 공평하게 일 장씩 뒤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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