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57화 (158/328)

157. 남궁세가를 만나다

스윽.

‘극락왕생하시기를.’

남하림은 두 손을 모으며 합장을 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공서를 주워들었다.

무극창신공(無極槍神功).

‘이게 뭐라고…….’

쓰윽.

품 안에 무공서를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주위 경계를 살피던 네 명의 곁으로 다가섰다.

“부장, 그는?”

“내려가서 말해줄게.”

“알겠어.”

남하림과 일행은 내력을 지우며 본 길로 내려왔다.

휙휙휙!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인기척.

“누가 오는 것 같다.”

‘남궁세가인가.’

남하림의 생각이 맞았다.

오십여 명의 무리들.

남궁세가의 복장이 틀림없었다.

푸른 무의의 가슴팍에 남궁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 제왕대 소속의 백색 요대가 눈에 띄었다.

‘거지들?’

산길을 지나가는 다섯 명.

멀리서 얼핏 보기에 그들의 모습은 거지들이 분명했다.

휘이익!

제왕대 부대주 남궁청현과 고개를 숙인 거지들이 스쳤다.

‘뭐지?’

정확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도운 신유풍의 뒤를 쫓는 것.

‘이놈…… 부상을 당한 채 어디까지 간 거지? 질긴 놈. 신법 하나는 무림 일절이군.’

분명 신유풍은 검을 맞아 부상을 당한 상태다.

그리 멀리 갈 수는 없을 터.

킁킁.

후각이 발달한 수하가 빠르게 나왔다.

“여기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자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산으로 올라갔군. 여기서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위를 살펴라!”

“넵, 부대주님.”

파아앗!

제왕대의 수하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방금 그 다섯 명의 거지들…….’

남궁청현도 산으로 올랐다.

하지만, 잠시 스쳤던 다섯 명의 거지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

일각이 지났을 때.

산을 뒤지던 수하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부대주님, 신유풍을 찾았습니다!”

휘익!

남궁청현은 곧바로 수하가 소리친 장소에 내려섰다.

동굴 속에 죽어 있는 시신 한 구.

신유풍이 확실했다.

“꺼내라.”

스윽.

수하들이 시신을 끌며 밖으로 내려다 놓았다.

허리에 깊은 검상의 흔적이 보였다.

“질긴 놈. 여기까지 오다니…….”

거의 호북성 끝까지 횡단하며 도망쳐 온 셈이 아닌가.

후비적.

남궁청현은 시신 앞에 앉아 몸을 뒤졌다.

‘……!’

그의 눈빛에 당황이 서렸다.

후다다닥!

다시 한 번 더 빠르게 전신을 뒤졌지만, 찾고자 하는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신유풍이 다른 곳에 숨길 리가 없다.

‘앗…… 설마…… 그 거지들?’

느낌이 갑자기 싸해졌다.

“방금 그 거지들을 잡아라!”

남궁청현은 재빨리 일어나며 거지들이 내려가던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방금 지나간 저놈들은 남궁세가 제왕대야.”

팽유도는 제왕대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놈들이 왜 호북성까지…… 움직일 일은 그것밖에 없는데?”

당무독도 처음부터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무극창신공.”

“어어엉?”

남하림의 한마디에 네 사람의 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죽은 자가 소문이 돌던 그자가 맞더군.”

“……하아…….”

팽유도는 긴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중원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무극창신공이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

“그게 지금 내 품 안에 있어.”

“기연은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하더니만…… 이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굴러들어오는구나.”

“기연이고 뭐고…… 모르겠다. 조만간 우리를 따라올 텐데. 부장, 어떻게 하려구?”

“남궁세가라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상대하기에 정말 어려운 곳이고…….”

당무독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천신교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곳이 남궁세가였다.

“부장은 어떻게 할 계획이지?”

“음…… 버리기도 아깝고 남궁세가에 주자니 마음에 걸리네. 좋아, 지금 그들이 오기 전에 태워 버리자.”

“……!”

다른 무공서도 아닌 구천마제의 독문 무공.

무극창신공을 태우자는 말에 전부 말이 없어졌다.

“거참 부장다운 생각이다.”

“나, 나도 태우자고 할 줄은 몰랐어요.”

스윽.

“난 찬성.”

팽유도와 당무독과 달리 성철각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당무독은 아깝다는 표정이었지만 부장 남하림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부장. 무극창신공이야. 구경이라도 해보자.”

스윽.

남하림이 품 안에서 무공서를 꺼내 이휘연에게 주었다

“이게…… 그것이구나.”

슥슥.

이휘연은 찬찬히 한 장씩 넘기며 무극창신공을 읽어내렸다.

어지럽게 적혀 있는 구결과 상세하게 그려놓은 도해들이 가득했다.

‘멋진 움직임이다.’

미지의 인물이 무극창신공을 펼치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하루만 더 보면 안 될까?”

태워야 한다고 해도, 어떤 무공인지 한 번쯤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천하제일인의 무공이 아닌가.

“그렇게 해. 휘연 형이 가지고 있어.”

“고맙다, 부장.”

이휘연은 괜스레 두근거림을 느끼며 무공서를 품에 넣었다.

“불에 태우기는 아깝긴 해. 맞지?”

“음. 구천마제의 무공이잖아. 충분히 연구하면 좋은 부분을 참고할 수 있을 거다.”

어느덧 산을 다 내려왔는지 멀리 산문이 나타났다.

“형.”

팽유도가 앞을 가리켰다.

또 다른 무리들.

이번에도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오, 저들 사이에 대단한 인물이 있군.’

남하림의 눈에 보통 무인이 아닌 것 같은 인물이 들어왔다.

‘거지들…….’

자리에 앉은 채 산문으로 내려오는 다섯 명을 노려보는 남궁세가의 인물.

제왕대 대주 남궁진이었다.

스윽-

그의 곁으로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제왕대의 책사 염저상은 다섯 명의 거지들이 누구인지 확신했다.

“대주님, 걸협오성입니다.”

“저놈들이?”

“넵, 거지놀이를 하는 놈들이 아니라면 확실합니다.”

“하,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은 인물들을 이런 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스윽.

남궁진이 몸을 일으켰다.

“걸협오성을 맞이하는데 앉아서 똥개처럼 부를 수는 없지.”

성큼성큼.

남궁진이 산문으로 걸어갔다.

‘우리를 알아봤어.’

남궁진이 산문의 길 한복판까지 나왔다.

조용히 옆으로 지나갈 수 없는 상황.

산문의 한복판에서 남궁진과 남하림이 멈춰 섰다.

척.

먼저 남궁진이 알은척을 하면서 포권했다.

“혹시…… 개방의 걸협오성이 아닌지 모르겠소. 본인은 안휘성 남궁에서 온 진이라 하외다.”

“창천광군 남궁진.”

팽유도가 그를 먼저 알아보았다.

남궁진이 팽유도의 등에 걸린 반도에 시선을 주었다.

“오호. 본인을 아는 그대는…… 팽가 출신의 도천걸이군.”

남하림도 그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개방 제자 남하림이라 합니다. 먼 곳에서 남궁세가의 고인을 뵙게 될 줄을 몰랐습니다.”

“허허허.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남궁진은 후개부터 천천히 한 명씩 살폈다.

‘……소문도 이들의 본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군.’

한 명, 한 명의 내력이 자신과 비교해서도 낮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녀석들인지 모르겠군. 개방에서 제대로 인물들을 골랐어.’

남궁세가의 후기지수들도 많았지만 이들 다섯 명을 넘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후개는 여기에 무슨 일인가?”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만.”

“……!”

남궁진은 순간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자신의 물음에 되묻는 후기지수는 없었다.

살짝 목소리에 노기가 섞였다.

“허허. 어른이 묻는 말에 먼저 답을 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네.”

“그런 예의는 남궁세가에서 찾으시면 되겠습니다. 굳이 저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하신다면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군요.”

‘허어…… 이거…… 골 때리는 녀석이군. 역시 개방 놈이라는 것인가?’

“그렇게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말씀은 드리지요. 사천에서 볼일을 본 후 무림맹으로 복귀 중입니다. 이제 됐습니까?”

“허허허, 됐네.”

“창천광군께서는 무슨 일로 호북성까지 넘어오셨습니까? 수하들이 많은 것을 보니 큰일인 듯합니다. 제가 혹시 도울 일이 있다면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별일은 없네. 누군가를 쫓고 있는 중이지.”

“아!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구천마제의 무극창신공을 쫓는다고 하더군요.”

“…….”

‘약은 놈…… 일부러 모르는 척했어.’

“알고 있었군.”

“제가 누구인지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개방의 제자입니다.”

“하하하, 하긴 그대가 개방의 후개이지. 맞네. 무극창신공을 훔쳐 달아난 놈을 찾고 있다네.”

“그자가 여기로 도망을 쳤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오는 길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달려가던데.”

“그들을 만났는가?”

“바쁜지 옆을 지나쳐 갔습니다.”

남하림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산 위에서부터 산문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두두두두-

신유풍을 잡으러 갔던 남궁청현과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 * *

남궁청현은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음…….’

그는 혹시나 해서 산속을 다시 뒤졌다.

하지만 전혀 인기척을 찾을 수 없었다.

‘신유풍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면 분명 누군가를 만났음에 틀림없다.’

걸협오성.

산에서 만난 인물들은 이들 다섯 명 밖에 없었다.

남궁청현은 전음을 보냈다.

[형님, 신유풍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물건은?]

[그의 몸에 없었습니다. 근데 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네 말은 이들이 의심스럽다는 것이군.]

[네. 맞습니다.]

[알겠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모른 척해라.]

남궁진은 고개를 돌리며 씨익 웃었다.

“후개,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이라도 함께하겠는가?”

“바쁘지 않으십니까? 이럴 시간에 그자가 멀리 도망을 가면 어떻게 합니까?”

“휴우…… 그러게 말이네. 여기까지도 겨우 쫓아왔거늘. 그 물건이 우리 것이 되지 않을 모양이네.”

“그렇군요. 무극창신공인데…… 포기하시겠다니 아쉽겠습니다.”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구려.”

“제가 위로주를 대접하겠습니다.”

“허허. 그런가? 고맙네.”

* * *

향흠루.

최고급 주루에 들어섰다.

“허어…… 여기는 너무 비싼 곳이 아닌가? 개방의 제자가…… 이런 곳에 와도 되는지 모르겠구먼.”

“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밤새도록 마셔도 상관 없습니다.”

“허허허, 고맙네.”

안으로 들어선 남궁진은 무희들이 하늘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스윽.

남궁진이 먼저 술병을 들었다.

“내가 한 잔 따르겠네.”

“감사합니다.”

슈우우우우-

술잔에 떨어지는 술이 중간에서 멈췄다.

“이거 참…… 술이 멈췄군.”

“그렇군요.”

스윽.

남하림은 술잔을 가볍게 올렸다.

주르르륵.

술잔으로 다시 술이 떨어졌다.

“이제 떨어집니다.”

“허허허…… 그렇구만.”

이번에는 남하림이 술병을 들었다.

“이번에는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좋네.”

또르르르-

술병을 들어 그의 잔에 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부어도 술잔은 채워지지 않았다.

‘……후개의 내공이 이 정도였단 말이군. 동년배에 이길 수 있는 인물이 있을지.’

술잔에 떨어진 술은 증기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탈탈.

남하림은 술병을 아래로 털었다.

“이거 참…… 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술을 다시 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잠시 후 다시 술병이 들어왔다.

“후후후, 아까운 술 버리지 말게나.”

“그렇게 하지요.”

서로 술을 채운 두 사람은 술잔을 들었다.

“앞으로도 우리 사이에 술잔을 대는 사이가 되었으면 하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채애앵!

두 사람이 잔을 부딪쳤다.

휙.

벌컥.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후개, 혹시 물어봐도 되겠는가?”

“물어보시지요.”

“우리가 만나기 전에 산에서 누군가를 만났는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자가 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

“그런데 그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무공서가 사라졌다고 하네.”

“음…… 그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을 거라 의심한다는 말이군요.”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네. 산에는 자네들밖에 없었다고 해서.”

“아니죠. 우리 말고도 남궁청현이라는 분도 산에 있었지 않습니까?”

“……!”

떨어진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인물.

남궁청현이 벌떡 일어났다.

“후개, 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휘익!

이휘연이 일어나 남궁청현의 앞을 막았다.

휙휙휙.

순식간에 양쪽 진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그대의 모습을 보니 괜히 찔리는 게 사람 같소이다?”

“후개! 뚫린 입이라 함부로 말을 하는군.”

“청현. 그만 멈춰라.”

남궁진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졌다.

‘평소에 저 정도로 화를 내지 않거늘…….’

기분 나쁜 말이지만 화를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용히 술을 마시기 싫다면 밖으로 나가라.”

“……죄송합니다.”

남궁청현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남하림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제가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광군님께서 물어보기에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외다. 북리 가문도 영신이라는 자가 가주를 뒤에서 찔렀다고 해서 말이지요.”

남궁진과 남궁청현의 얼굴이 동시에 붉어졌다.

“후…… 개…… 감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망발을 하느냐? 죽고 싶은가?”

채애애앵!

남궁청현이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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