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56화 (157/328)

156. 무극창신공을 얻다

대화를 하는 도중.

남하림은 갑자기 찻주전자를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백후는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쪼르르르-

남하림은 새로운 빈 잔에도 차를 채웠다.

스윽.

그러고는 백후의 앞으로 찻잔을 밀었다.

“생각보다 향이 좋더군요. 굳이 찾아오셨는데 드릴 게 차뿐이라. 한 잔 드시지요.”

“성의는 고맙기는 하나 이런 질 낮은 차는 안 마시네.”

“쯔쯔, 무안하게 질 낮은 차라니. 여기 객잔 주인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습니다.”

스윽.

백후는 남하림이 건네준 찻잔을 옆으로 밀어냈다.

“뭐, 싫다는데 억지로 멕일 수도 없고.”

남하림은 자신의 찻잔을 들었다.

“흐으으음.”

“…….”

백후는 차향을 맡은 뒤 한 모금 마시는 남하림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흐음…… 자네, 예전에도 이런 차를 마셨나?”

“사실 좀 가리는 편이었는데 중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취향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경험은 하고 보는 거더라고요.”

“지금 하는 말이지만 그대는 개방에 잘 간 듯하군.”

“칭찬이 아닌 줄 알지만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자네도 뭐든지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하는구만.”

“인생도 짧은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남하림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 녀석…… 그에 대해서 말을 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있어.’

백후는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말리는 기분에 초조해졌다.

“후개, 금액을 이야기해 보게.”

두 사람 사이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백후가 다시 환비균장에 대한 이야기를 제시했다.

찌이잉-

남하림의 손가락이 찻잔 위를 빙글 쓸어냈다.

꿈틀.

백후의 미간이 좁아졌다.

“전 돈이 많습니다. 넘칠 정도로.”

“…….”

백후는 돈이 많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항상 모자라는 게 돈이다.

“돈이 많다면 굳이 이번 일에 나설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돈을 쫓는 자와 돈이 달라붙는 자의 차이겠지요.”

“흠, 전자는 나를 말함이고 후자는 그대인가?”

“전자는 모르겠지만 후자는 확실히 그런 듯합니다.”

“자화자찬이 하늘을 찌를 기세구만.”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급할 게 없는 사람은 항상 마음이 편하다.

“돈이 아니라면 무엇을 원하느냐?”

“원하는 게 없습니다. 전 항상 흘러가는 대로 탈 없이 지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조용하면 얼마나 평화롭고 좋겠습니까?”

“세상에 성인군자가 납셨군. 그대는 조용하게 지낼 성격이 아니다. 보아하니 나에게 원하는 게 있을 터. 말해라.”

“허어, 없다는 걸 왜 자꾸 말하라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하오문을 통해 나를 찾는다고 하길래,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싶어 만나준 것뿐이외다.”

‘이…… 놈…….’

가여워서 만나줬다는 말.

무시를 당한 느낌에 백후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올라왔다.

하지만 소리를 지를 순 없었다.

‘일단…… 참는다. 내가 화를 내길 원하고 있어.’

갑자기 목이 말랐다.

백후는 밀어놓은 찻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저렴한 차는 안 마신다고 하시더니, 어째 언행이 맞지 않군요.”

‘망할 놈…….’

백후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휴우…….”

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의 눈에 칼자루를 잡고 있는 남하림과 위험하게 칼날을 잡은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놓고 싶지만…….’

등 뒤에 또 다른 검이 심장을 노리고 있음을 알았다.

북방상국 둘째 백진묵.

자신을 의지하면서도 언제든 등에 칼을 찌를 수 있는 인물.

그에게는 결과만 있을 뿐이었다.

“후개, 표강표국과 호북상국을 얼마 전에 인수받았더군.”

“음, 아셨군요. 이번에 완전히 제 이름으로 가져왔습니다.”

“일단 축하는 하네. 표강표국이라면 표강상국에서도 수입이 좋은 사업체이지. 더구나 호북상국은 거의 표강상국을 넘어설 정도이니…… 운이 좋군.”

“사업은 운으로 할 수 없습니다. 북방의 총내국주께서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실망이군요.”

“…….”

“어쨌든, 갑자기 두 곳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문제라고 하기보다는 약간의 말들이 나온 것 같아서 말이지. 그대는 잘 모르는 듯하군.”

백후는 지나가는 투로 말을 던졌다.

“두 곳에 문제가 있으면 연락이 왔을 겁니다. 북방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긴 당연히 문제가 생기면 연락이 갔겠지. 다만 하남 땅에서 장사를 하는데 너무 잘 된다면…….”

백후는 말을 끝까지 잇지 않았다.

“그 뜻이었습니까? 중앙상국이 견제한다는 것이군요.”

하남성에 기반을 둔 오대상국의 일국 중앙상국.

백후의 말대로 호북상국은 하남상국을 위협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남상국의 국주는 중앙상국의 셋째 주유형.

“당연히 견제가 들어가지 않겠나? 예전에는 표국상국에 있던 호북상국이 지금은 남천상국에 들어갔으니 중앙상국에서도 긴장이 될 만하겠지.”

“그래서요?”

“중앙상국에서 오대상국회에 이 문제를 상정하겠다는 뜻을 보이더군.”

“허어, 주 아저씨가 뒤통수 칠 모양인가 보군요.”

“아직은 아니지만, 만일 안건을 낸다면…….”

“북방에서 내 편에 서주겠다는 말이군요.”

“어떻게 하는지 봐서 말일세.”

‘똥줄이 타셨구만. 표강과 호북까지 꺼내는 것을 보면.’

남하림은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죠. 중앙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전쟁입니다.”

“흐음…….”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다.

백후는 다시금 당황한 눈빛이 나왔다.

“중앙은 안건을 제시했으니 제외하고, 서궁이 확실한 내 편이니깐 최소한 두 군데 표를 받아서 큰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중앙에서 먼저 말을 꺼내준다면 나야 좋죠. 그렇지 않아도 호북상국을 좀 더 키워보고 싶었거든요. 요녕이나 길림에 괜찮은 사업도 보이고…….”

‘이 녀석…… 도발을 하고 있어.’

씨익.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대화에서 완전히 기세를 잡았다.

“허허허. 후개, 당연히 그런 일이 일어나면 되겠나. 어려운 시국에는 오대상국이 힘을 합쳐야지. 내가 주 국주와 친하니 안건을 올리기 전에 잘 이야기하겠네.”

“굳이 인맥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건입니다.”

백후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이야기할 마음이 없어. 오늘은 방법이 없군.’

“그대를 보니 환비균장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만. 나중에 또 보세나.”

“또? 그냥 가는 거 아닌가요?”

“허허. 장사 하루 이틀 했나? 의견이 안 맞으면 서로 맞을 때까지 만나는 것이네.”

“하아, 그렇긴 하죠. 다만 나중에 만나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여서.”

“허허허허, 설마 똑같겠나?”

“흐음…… 좋아요.”

일어선 백후.

이제 그의 제안을 받아줄 차례다.

“뭣이……?”

“그냥 두면 두고두고 계속 귀찮게 할 것 같단 말이죠. 결정을 짓는 게 좋겠군요.”

“허허허허!”

백후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백진묵, 그를 만나서 이야기하겠어요.”

“둘째 공자를?”

“힘들다면 없던 일로 하시고요.”

‘으음…… 어차피 보고는 해야 한다.’

백후는 결정을 내렸다.

“알겠다. 둘째 공자에게 그대의 뜻을 전하지. 나중에 따로 연락을 하겠네.”

“그렇게 하세요.”

백후가 객잔을 떠났다.

옆에 떨어져 있던 네 사람이 다시 옮겨 앉았다.

“백진묵이 만나줄까?”

“욕심이 하늘 꼭대기까지 찬 사람이라 환비균장을 포기 못 할 거야.”

“헤엥…… 그렇다면 만날 수도 있겠네요.”

“부장, 구천신품 때문인 건 알겠지만 그를 만난다는 것은 환비균장을 팔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당무독은 걱정이 되었다.

북방상국에선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마약을 유통할 수 있다.

하지만 거래를 트면 자신들이 준 환비균장으로 마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걱정 마.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남하림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무독, 부장이 어떤 사람인데 그런 걱정을 해. 이미 머릿속에 모든 계획이 다 있을 거야.”

“……철각, 사실 아직 계획은 없어.”

“아니…… 난 부장을 믿어. 지금 없어도 나중에 생기잖아.”

“헤헤! 철각 형은 하림 형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잖아요.”

* * *

양삼의 앞으로 한 장의 서신이 도착했다.

‘후후, 이번에는 무엇을 구해달라고 하실지 궁금하군.’

저번 서신에는 뜬금없이 빙공(氷功)을 구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스으윽-

그동안의 행적에 대한 긴 글이 적혀 있었다.

‘흐음…… 아직 무림인으로 지내시는 중이면서 왜 일은 예전보다 더 벌이시는지.’

서장의 돈황상국 인수권과 서장 금광권. 그리고 환비균장의 사업 유통권.

양삼은 주인이 즐거운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그러다 서신 마지막쯤에 적인 몇 줄의 글에 인상을 썼다.

‘백진묵이라…… 귀찮은 사람과 엮이신 것 같군.’

양삼은 서신을 접어 품 안에 넣었다.

멀리 공사 현장에서 한 사람을 보았다.

“준 호위님.”

휘이이익!

준극남은 빠르게 양삼의 곁으로 다가섰다.

“총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양삼은 목소리를 낮춰 그가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부탁하겠습니다.”

“예. 그럼 지금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조심들 하십시오.”

준극남은 인사 후 수하들과 함께 물러났다.

‘북방상국은 너무 선을 넘었어. 하긴, 그 물건들에 의해 오대상국까지 올라섰으니 포기할 수 없겠지. 뿌리가 깊지 않는 나무는 결국에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누군가에 의해 더 빠르게 무너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양삼은 느낌이 왔다.

북방상국이 무너진다면…….

‘그 원인은 공자님일 거야.’

스윽.

양삼은 눈앞에 펼쳐진 공사 현장을 보았다.

수십만 평의 대지에서 이루어지는 웅장한 대공사.

‘후후, 조만간 새로운 세상은 이곳에서 열리겠지.’

* * *

휘이익.

산속을 빠르게 움직이는 인영.

‘망했어. 내 정체가 탄로 났다.’

품속에 있는 한 권의 무공서.

신유풍은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청홍백사군에게서 무공서를 받은 뒤, 천사회로 가져다주기로 한 마음이 변했다.

무극창신공이 주는 마력.

그것에 홀린 그는 계약을 스스로 파기한 후 방향을 돌렸다.

청홍백사군은 자신들이 무극창신공을 얻게 된다면, 중원의 모든 시선이 따라붙을 거라 확신했다.

이에 세 사람은 비밀리에 신유풍과 계약을 했다.

천사회에게조차도 비밀로.

혈사천주의 수족인 그들은 혈군사조차 믿지 않았다.

청홍백사군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했다.

그가 배신을 하기 전까지는.

신유풍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남궁세가에 의해 무극창신공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온 중원에 알려졌다.

청홍백사군이 움직였던 이동 경로에서 신유풍의 흔적을 남궁세가에서 발견한 것.

무림맹에서 나온 무인들까지 나타나 자신을 추격했다.

#NAME?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소문은 안휘성 전체로 퍼졌다.

안휘성 모든 무인들의 시선이 신유풍을 향했다.

타앗!

신유풍은 바위를 차며 산을 빠르게 내려갔다.

‘내 정체가 밝혀졌다고 해도 호북까지 잡으러 오지 않을 것이다.’

“휴우…….”

신유풍은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그놈들에게서 거의 벗어났을까.”

시간을 최대한 벌기 위해 산을 넘어왔다.

탁탁!

그는 품에 있는 무공서를 두드렸다.

“이것만, 이것만 제대로 익히면 최소한 천하십무인에는 들 수 있어.”

신유풍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그럼…… 가볼까?”

휘이익.

그가 바람을 남기며 사라졌다.

* * *

반각 뒤.

신유풍이 사라진 자리에 남궁세가 무인들이 내려섰다.

“대주님! 여기에 그자의 흔적이 있습니다.”

“도둑놈의 새끼. 네놈이 여기로 도망을 오면 못 찾을 거라 생각했더냐.”

정체가 밝혀진 이상, 신유풍은 남궁세가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뒤를 쫓아라.”

“넵. 대주님!”

휘이이익!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신유풍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쯧, 안휘성에서 일이 끝났으면 이렇게 무림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텐데. 아쉽군.’

신유풍의 행동반경을 좁혀 한곳으로 몰아넣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움직임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 * *

오랜만에 한가한 여행을 했다.

남하림은 천천히 주위를 보면서 걸었다.

“너무 한가로운데…….”

“그러게. 이럴 때 산적 놈들이나 마적 같은 놈들이 나타나면 좋을 텐데.”

“흐, 그러고 보니 사천성을 넘어 여기로 오는 동안 한 번도 그런 놈들을 만난 적이 없네?”

당무독의 목소리에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형은 새로운 독을 실험할 대상을 찾는 거잖아.”

“이왕 만들었는데 나한테 실험할 수는 없잖아.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좋지.”

“진짜 형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불쌍해.”

팽유도가 뒤로 휙 돌아섰다.

“하림 형, 아직 북방에서는 연락이 안 오네?”

“확인하겠지. 백진묵, 그자는 욕심이 많아도 급하게 달려들지 않아. 모든 사실을 파악한 뒤 결정하는 유형이라고 하더군. 나를 만나서 이익이 될지 안 될지 주판을 열심히 튕기고 있을 거다.”

“그럼 기다리면 되겠네요.”

“맞아. 이익이 되겠다고 생각이 들면 찾아오겠지.”

남하림은 확신했다.

‘최소한 하남성에 들어가기 전엔 연락이 올 거야.’

결국 그들은 환비균장을 원할 수밖에 없었다.

스윽.

이휘연이 손을 갑자기 들었다.

“잠깐.”

그는 다섯 명 중 가장 기감이 뛰어났다.

‘위.’

이휘연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끄덕.

남하림이 짧게 신호를 보내자, 이휘연이 기가 느껴진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여기쯤인가.’

미세하게 느껴지는 기(氣) 사이에서 짧은 호흡 소리가 들렸다.

[부장, 저기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동굴.

남하림도 그 안에서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주위 경계를 부탁해.]

[알겠다.]

스윽.

남하림은 조심스럽게 동굴로 다가섰다.

동굴 벽에 기대어 있는 사내.

“괜찮습니까?”

“으…… 으…….”

사내는 화들짝 놀라며 남하림을 겨우 쳐다보았다.

“개방의 후개요.”

“……으…….”

남하림은 그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후…… 우…….”

그의 손을 잡은 남하림.

스으윽.

조심스럽게 내기를 사내의 몸에 전해주었다.

사경을 헤매던 사내는 잠깐 동안 정신이 돌아왔다.

“후…… 개…… 내 품에…….”

“…….”

“내가…… 욕…… 심을…… 욱.”

스윽.

사내는 가슴에서 한 권의 무공서를 꺼냈다.

“아…… 씨…… 버어얼…… 그놈…… 들에게…… 더러워서…… 빼앗…… 기기 싫소.”

‘무극창신공.’

“후…… 개. 남궁…… 놈에게는…… 절대로…… 빼앗기…… 지 마…… 시오. 빨리…… 가…… 시오…… 그놈…… 들이…… 올게요.”

스륵.

사내의 손에서 힘이 빠지며, 그의 머리가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이자가 신유풍이었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