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서장으로
남하림은 두 팔을 번쩍 벌렸다.
와락.
먼저 다가온 팽유도부터 마지막 이휘연까지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휘연 형, 수고했어.”
“…….”
이휘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기분인가?’
가족이라는 느낌.
며칠 떨어지지 않았지만, 만나면 안심이 되는 감정.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안아주는 이는 사부 외엔 이들이 처음이다.
“부장도 고생했던데. 오는 길에 소문을 들었다.”
“그래? 빠르네.”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백진에 가서 별일은 없었어?”
“아아아- 내가 형하고 서장상회를 찾으러 갔어야 했는데!”
“하하, 심심했구나?”
“부장, 진짜 궁금한데 서장상회에서 거래한 물건이 대체 뭐야?”
당무독이 물었다.
“사천신교 이 미친놈들이 서장에서 환비균장을 받더군.”
“뭐어? 환비균장을……?!”
당무독은 환각성이 강한 버섯 중 하나가 바로 환비균장임을 잘 알았다.
“미친놈들…… 이제야 알겠네. 부장. 백진상국이 어딘지 알아? 바로 북방상국이야. 그놈들이 사천에 몰래 만든 상국.”
“……!”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왔다.
“하림 형, 그리고 백후가 백진상국에 나타났었어.”
“백후라면 북방상국의 총내국주인데…… 둘째 백진묵을 지지한다고 알려진 인물이야.”
북방상국의 마약과 연관된 일은 황안촌의 속각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이건…… 사천신교를 잡는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네.”
“부장, 무슨 말이야?”
“내가 보기에 이번 일은 사천신교가 아닌 북방의 대욕이 주관한 일이야.”
네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속각 사건에서 알다시피 북방상국의 주사업은 마약의 유통이 분명해. 그들의 장사할 때 모험을 하지 않아. 왠지 알아? 위험한 물건들을 취급하니까. 일반적인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섞은 상태로, 최대한 안전하게 거래하려 하지. 조사해도 찾지 못하는 이유야.”
“아하…… 그래서 서장과 바로 거래하지 않고 사천신교와 면양지부를 이용했구나.”
“신교는 자신들이 주도해서 환비균장을 판다고 생각해 서궁상국을 먹으려고 했던 거지. 다만 신교가 생각 못 한게 있어.”
“그게 뭔데?”
“신교가 서궁상국을 먹었다고 해서 환비균장을 중원에 뿌릴 수 있을까? 그걸 살 수 있는 곳이 없어.”
“왜? 마약이잖아?”
“무독, 환비균장이 환각성이 있다고 해도 많이 먹으면 어떻게 돼?”
“죽지.”
“알겠어? 마약은 죽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럼 돈을 못 벌어. 그래서 사천신교는 아니라는 거야.
환비균장만으로는 마약이 안 되지. 그걸 제조할 수 있는 곳은 북방상국밖에 없어.”
“그럼…… 최후의 두목은 북방상국이군.”
“무독의 말이 맞아.”
팽유도는 얼굴을 찌푸렸다.
“유도, 왜?”
“신교를 친다고 해도 헛일하는 거네요.”
“아니지. 이번 일을 떠나 사천신교는 사라져야 할 집단인 건 맞아.”
“부장 말이 맞지만 우리끼리 치기에 신교는 무리야.
당무독의 말은 현실적이었다.
“맞아. 의욕이 앞선다고 해서 달려 들 수는 없지.”
“이대로 물러나는 거야?”
“좋은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지.”
스으윽-
그때, 동명전으로 임시 면양지부장 강진이 찾아왔다.
“강 지부장께서 이 시간에……?”
강진의 얼굴에는 큰일이라고 이미 적혀 있었다.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죠?”
“후개님, 본 지부에 북방상국의 백후가 찾아왔습니다.”
꿈틀.
남하림의 미간이 움직였다.
광원 백진상국에 있던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
“무슨 일이라고 하던가요?”
“후개님을 만나서 이야기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를?”
‘내가 면양에 있는 것을 알고 왔군.’
“아들, 북방에 가면 돈귀신이라고 있다.”
“돈귀신요?”
“돈이 되는 장사라면 귀신까지도 팔아먹을 놈이라서 붙인 이름이지.”
“아하…….”
“혹시나 다음에 만나면 조심해. 손해 볼 짓은 죽어도 안 하는 놈이다. 그가 내민 조건은 무조건 도장 찍으면 안 되는 거야.”
돈귀신 백후.
얼핏 지나가다가 만난 적이 있을진 모르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스윽.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돈귀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볼까?”
* * *
지부장실에 마련된 접객실 건물 앞으로 백의검사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면양지부 소속의 무인들은 백의검사의 기세에 말도 하지 못한 채 밖으로 물러났다.
“이런, 남의 집에 와서 뭐 하는 짓이지?”
“…….”
백의검사 수장 일정학은 접객실로 들어선 인물들과 눈이 마주쳤다.
스윽-
이휘연이 다가서면서 백의검사의 검기를 밀어냈다.
‘크윽……’
단 한 명에 의해 내력이 밀렸다.
백의검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부장 말 못 들었나? 남의 집에 왔으면 예의를 지키고 물러나라.”
‘무, 무슨 살기가 이렇게 지독하지?’
일정학뿐 아니라 백의검사들 모두 온몸을 쑤시는 살기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스스스-
백의검사들은 슬슬 옆으로 비켜섰다.
자존심인지 일정학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자네는? 죽고 싶다면 가만히 있어도 좋다.”
“…….”
일정학은 결국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옮겼다.
“쯔쯔. 어째 북방은 예의가 없어.”
남하림은 그들 앞을 지나가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드륵-
남하림은 혼자 안으로 들어섰다.
백의 중년인이 의자에 앉은 채로 남하림을 맞이했다.
“그대가 후개인가?”
“한참 연세가 많은 줄 알지만 초면에 너무 말을 쉽게 놓는 게 아닙니까?”
“하하하, 건방지군. 듣던 대로.”
타악!
백후 앞에 의자를 놓았다.
남하림은 바짝 다가앉았다.
“백진상국에 있어야 할 분이 무슨 일입니까?”
“…….”
백후는 순간 뜨끔했지만.
“허, 알고 있었나?”
단번에 인정했다.
“그 정도는 알아보고자 한다면 쉽지.”
“방금 자네에 대한 관심도가 일 할 올라갔네.”
“칭찬인지 감이 안 잡히는군요.”
“후후, 남천상국의 씨가 맞군. 건방진 특유의 자신감.”
“좋은 뜻으로 해석하겠소.”
“좋은 방향으로만 인정하는 괴이한 버릇.”
“오, 다른 건 또 없나요? 궁금하네.”
“아시타비(我是他非). 전형적이지.”
“당신 말만 들으면 우린 완전 인성이 쓰레기 집안이네요.”
“잘 알아듣는군.”
일부러 도발을 위해 남천상국에 대해 심한 말을 했다.
무인이니 당장 반응이 나올 거라 여긴 것.
하지만.
‘흥분하지 않는군. 재미없게.’
“인정을 하는 모양인가. 별로 화를 내지 않는 걸 보면?”
“의미 없는 일에 화를 낼 필요 있습니까? 개 짖는 데 가서 함께 짖을 필요는 없으니까.”
같잖다는 눈빛을 보이던 백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조 지부장은 어디에 있는가?”
“북방상국의 정보력 정도면 이미 어떻게 되었는지 아실 텐데.”
“…….”
“우리 장사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간 보는 일은 하지 맙시다. 산전수전 겪으신 분이 척하면 답이 안 보입니까?”
‘하, 한 방 먹었군.’
“백진은 계속 면양지부와 거래를 하고 싶네.”
“…….”
“왜 말이 없는가?”
“사람들이 장사꾼, 장사꾼 하는 말 말입니다. 이유야 알겠지만 실은 한 번도 와닿지 않았거든. 근데 당신을 보니 알겠네요.”
세상에서 가장 뻔뻔한 사람과 마주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칭찬으로 듣지. 자네에게 그런 생각이 들도록 했으니.”
“물어나 보죠. 무엇을 거래할 생각인지?”
“우선 금액부터 제시하겠다. 운송 조건으로 총 물량 판매금액의 삼 할을 주겠네.”
“흐흠, 내가 불태운 물건의 삼 할이면…… 한 백만 냥 되겠군.”
“당연하다. 면양지부는 조용히 물건을 넘기는 조건으로, 우리가 파는 금액의 수수료를 삼 할이나 받아 챙기는 것이지.”
백후의 조건은 평범한 상국이라면 유혹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내가 자네이니 이 정도의 제안을 하는 걸세.”
“솔직히 끌리는 제안이긴 합니다.”
“후후후, 끌리면 거래를 하면 되지 않겠나?”
“그 대신 특별한 조건이 있겠지요?”
“하하하!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무엇입니까? 그 조건이라는 게.”
“자네가 얼마 전에 크게 사고를 쳤던 서장상회와 거래를 재개하는 것이네.”
“이런, 너무하네. 기어이 그 물건들을 중원에 유통시킬 작정이군요.”
“후개, 너무 흥분하지 말게. 우린 장사꾼이야. 돈만 벌면 되네. 그놈들은 돈을 내고 인생을 즐기는 것이지.”
“짧은 즐거움 뒤에 오는 고통은 모르는군요.”
“하하하! 그것까지 내가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남하림은 그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았다.
“잘 들었습니다. 의견이 서로 맞지 않는 모양이니 돌아가세요. 백진상국은 사천에선 어떠한 물건도 거래할 수 없을 겁니다.”
“후후, 그건 자네 생각이고. 사실 서장의 물건은 굳이 사천성을 거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우리 손으로 받을 수 있다네.”
“가능은 하겠죠.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릴 뿐.”
“크흐흐, 이 물건은 시간을 따지는 물건이 아니라서. 도착만 하면 되지.”
“…….”
“이러면 서궁상국에서도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백후의 의미심장한 눈빛과 말투.
‘벌써 밑 작업을 했다는 건가?’
느낌이 싸했다.
‘쯧, 누군지는 모르지만 백진과 거래하다면…… 나하고는 끝이겠군.’
남하림의 눈빛이 시릴 듯 차가워졌다.
“하루의 시간을 주지. 사람을 보낼 테니 확답을 주게.”
스윽.
백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하림을 내려다보았다.
‘큭, 고민이 될 게다. 서궁상국을 위해 구르는 중인데, 막상 서궁상국에서 딴생각을 한다면 배신감을 느끼겠지.’
드륵-
뒤로 문이 닫혔다.
남하림은 그때까지도 움직임이 없었다.
창문 너머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자신만만한 게 기분이 좀 나쁜데. 서궁상국에 그와 선이 닿는 인물이 확실하게 있는 모양이야.’
* * *
‘아이고, 머리 아파.’
남하림은 방 안에서 홀로 고민에 빠졌다.
사천신교와 북방상국.
양쪽에서 제안을 하며 치고 들어왔다.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
‘이것들이 나를 가지고 놀아?’
사천신교.
생각보다 큰 세력이었다.
청신군을 포함한 무력군은 청백홍검황신군으로 만 명의 대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아래 일반 백성들로 이루어진 신도들의 수는 오만을 훨씬 넘는다.
현재로서는 다섯 명으로 상대하기에 너무 벅찬 덩치다.
“아, 진짜. 내가 무림맹주면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쓸어버리는 건데.”
털썩.
남하림은 침상에 쓰러져 베개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비볐다.
“으으으으-”
휙!
베개를 위로 던지자,
푹.
다시 얼굴 위에 떨어졌다.
‘이것들을 진짜로 어떻게 하지? 정말로 돌아서 간다면 막을 도리가 없잖아.’
타타타타!
짜증이 난 남하림은 베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뚝.
순간,
격렬하게 움직이던 팔이 멈췄다.
“찾았다. 방법!”
휙!
베개가 다시 공중을 날아오르며 남하림의 신형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워어어어-”
휘이익!
백후는 말에서 내려섰다.
“후후후후.”
그의 웃음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뭔가?”
정문에 도착한 그를 보면서도 서궁상국 면양지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백후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놈이…… 어서 문을 열지 못할까?”
“죄송합니다. 후개님께서는 출타 중이십니다.”
“뭣이? 그가 어딜 갔다는 것이냐?”
“그건 소인들도 잘 모릅니다. 후개님께서 떠나시면서 북방상국 사람이 찾아오면 볼일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화라라락!
백후의 머리 위에 김이 솟구치는 듯했다.
‘거지 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볼일이 없다고?’
단 한 번도 무시를 당해본 적이 없는 자신이다.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 그놈이 어디에 갔지?”
끼이이익-
정문이 열리며 지저분한 얼굴이 빼꼼 나왔다.
‘거지?’
“당신이 백후라는 양반이오?”
“넌 누구냐?”
“그건 알 필요 없고. 후개님 말씀이 맞구만. 오전에 두꺼비같이 생긴 양반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고 하셨지. 개타작을 당하기 전에 조용히 돌아가시요잉.”
“……!”
백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망할 놈이……!! 어디에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