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41화 (142/328)

141. 장류협

두우우웅!

길게 이어진 대전.

스윽.

스윽.

사천신교 교주 명왕신이 바닥에 깔린 붉은 융단 위를 걸어갔다.

고개를 숙인 사천신교의 주요 인물들과 신도들 사이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교주좌 뒤로 검은 태양과 붉은 달의 병풍이 강렬하게 그를 반겨주었다.

척!

교주좌에 오른 그가 뒤돌아섰다.

“처어어어어언세.”

“처어어어어언세.”

“신교 불멸.”

“영생 신교.”

우우우웅-

신교대전에 진동이 울렸다.

교주 명왕신은 자리에 앉았다.

뚝.

그와 동시에 대전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보고하라.”

맨 앞줄에 선 인물, 명왕장 승환이 서너 걸음 나온 뒤 무릎을 꿇었다.

“명왕장, 일어나라.”

스윽.

허리를 숙인 채 일어났다.

“교주님께 아룁니다. 송구하옵니다만 서궁십년지계가 실패했사옵니다.”

“…….”

슈우우우욱.

화라라라락!

솟구친 노기에 교주의가 펄럭거렸다.

교주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쏴아아아아-

가공할 신위가 허리를 숙인 명왕장 승환을 스쳤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장로는 누가 죽였다고 하는가?”

“대장로이신 명왕불의 살인자는 걸협오성의 도천걸로 확인이 되었사옵니다.”

“걸협오성? 개방의 거지들을 말하는 것이냐?”

“네. 그렇사옵니다.”

교주 명왕신도 소문을 익히 들었다.

“거지 놈들이 정신이 나갔구나. 감히 신교의 대장로를 죽이다니…….”

파아아앗!

교주의 노여움은 대전의 끝까지 퍼져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소상하게 말하라.”

“알겠사옵니다.”

명왕장 승환의 보고는 일각 동안 이어졌다.

교주의 심기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서궁상국에 들어갔던 그놈은?”

“서궁상국에 잡혀 있사옵니다.”

“살아 있다는 말인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놈은 고독(蠱毒)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잘 처리했군.”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그 과정에서 대장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악산표국도 함께 지웠습니다.”

교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악산표국을 정리했다는 것인가?”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천성에서 서궁상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증이 없는 한 서궁상국은 홀로 본 신교를 제재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거지 놈들 때문에 아까운 표국 하나가 사라지는군.”

“악산표국이 사라져도 본 신교에는 큰 타격이 없습니다. 자금력은 다른 곳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명왕장, 이번 일은 그대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리고…….”

교주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본 신교의 일을 방해한 녀석들을 가만히 두면 안 될 것 같지 않은가?”

“…….”

명왕장 승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안 된다.’

소나기는 피하면 되는 일.

억지로 맞을 필요는 없다.

“대답이 없군. 그냥 두자는 것인가?”

교주의 생각은 달랐다.

목소리부터 화가 난 듯 신경질적이다.

“내 생각이 자네에게는 불만인 것 같군.”

“아닙니다. 소신이 어찌 교주님의 신명에 불만을 표하겠습니까? 교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명왕장, 그놈들을 쫓아라. 살아서는 사천성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명을 받들겠습니다.”

쿵.

명왕장 승환은 바닥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숙였다.

휘익!

교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교의 신도들은 들어라. 본 신교의 염원인 중원제일의 신교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좀 더 신앙심을 가진다면 곧 우리들의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와아아아!”

“교주님 만세!”

“사천신교 만세!”

함성과 외침.

신교의 대전은 비이성적인 흥분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 * *

악산표국주가 남긴 물건.

‘비밀 장부군.’

천천히 한 장씩 넘기자, 숫자들과 기호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부장, 대체 무슨 뜻이지? 하나도 모르겠다.”

“음. 악산표국에서 누군가와 거래를 한 뒤 적어놓은 장부야.”

“뭘 이렇게 어렵게 적어놨지?”

“대부분 비밀 장부들은 남들이 모르는 암호를 많이 사용해. 누구 몰래 챙긴다거나 거래하는 물건이 위험할 때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는 편이지.”

“이 장부를 보고 누구와 거래를 했는지 알 수 있나요?”

툭. 툭.

남하림은 다른 두 개의 장부를 앞에 놓았다.

“이건 매입한 장부인 것 같고…… 이건 매출을 적어놓은 장부야.”

“아하…….”

“장부를 보니 악산표국주는 이런 판국에 많이도 해 먹었군.”

“이 두 곳이 어디인지 밝혀지면 좋겠는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후후, 무독, 알 수 있지. 장부를 보면 대충 어디인지 감이 와.”

“정말 이 낙서들만 보고도 알 수 있다고?”

“나중에 설명해 줄게.”

“왜?”

남하림이 객실 밖을 주시했다.

스윽.

팽유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두 명.’

객잔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없는 사내들이 눈에 띄었다.

미행과 은폐의 기본기가 없다.

“밑에 두 명이 보이는 것 같아.”

“어떤 놈들이지?”

“복장은 평범한데…… 광장히 대놓고 객잔을 살피고 있어.”

“우리가 악산에 온 사실을 알고 있군.”

“어떻게 알지? 국주님과 대총관밖에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상국에서는 두 분 외엔 모르지.”

“그럼 어디지? 우리는 아닐 테고.”

“면양에 있는 서궁상국 지부에서는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어. 국주님이 미리 연락을 띄웠거든.”

“면양지부에 신교와 연관이 있는 자가 있다는 말이네요.”

“누가 흘렸다면 그것밖에.”

슬쩍.

팽유도는 슬쩍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형, 잡아올까요?”

“그래. 물어나 보자.”

“네. 갔다 올게요.”

휙!

창문가에 선 팽유도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거지 놈들이 제일 좋은 특실에 지내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군.”

“후개가 돈이 많다고 하잖아.”

“나한테 향독 가루가 있는데…… 다른 놈들이 손을 쓰기 전에 우리가 독을 풀어볼까?”

사내는 돈 욕심이 났다.

“어때? 한 건 제대로 하면 팔자 펼 수 있잖아.”

스으윽-

그때,

“잘못된 희망사항은 생각으로만 하는 게 좋아. 안 그러면 인생 종 치는 순간이 빨리 다가오지.”

‘헉……!’

바로 뒤에서 들려온 소리.

사내들은 움찔거리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스윽-

목에 닿는 차가운 느낌.

천항은 고개를 슬쩍 돌려 확인했다.

‘반도……!’

망할…… 죽었다.

뒤에 나타난 인물이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맞다. 이게 있었지.’

슬슬.

천항이 허리에 묶어놓은 향독 가루를 쥐기 위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거기 좋은 게 있어?”

“…….”

휘릭!

하지만 그보다 팽유도의 손이 더 빨랐다.

향독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낚아챈 팽유도가 씩 웃었다.

“이게 뭘까?”

주머니를 열어 아래로 탈탈 털자,

“욱……!”

‘큰일 났다!’

향독 가루가 바람에 날렸다.

“커어어억!”

“켁…… 켁.”

천항은 정신을 잃으면서 팽유도를 가리켰다.

“네…… 놈도…….”

“난 괜찮아.”

스르르르-

결국 사내들은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툭툭!

천항이 눈을 번쩍 떴다.

‘여, 여기는……!’

“그만 일어나지.”

화들짝.

향독 가루를 맡고 기절한 게 생각이 났다.

그는 몸을 꿈틀거리며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동료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다섯 명의 거지.

‘걸협오성!’

그들 중 한 명이 신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신도패를 보니 사천신교에서 우릴 감시하러 왔군.”

천중은 허리를 만졌다.

‘저건 내 신도패다.’

“사실대로 말을 해주면 얼굴을 붉히지 않고 놓아주지. 우리 일이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려야 되겠지만. 하지만 거짓을 말한다면 이곳저곳이 힘들게 될 겁니다.”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압박감이 온몸을 죄였다.

“소속은요?”

“…….”

천항은 눈치를 봤다.

“한 번은 넘어갔어요. 두 번째는 기대해도 좋습니다.”

“죄, 죄송…… 합니다.”

“소속은요?”

“사천신교 북주 소속입니다.”

“잘하네요. 우리를 어떻게 찾아왔죠?”

“그건 북주 신장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북주는 어디에 있나요?”

“면양에…… 있습니다.”

‘면양?’

우연의 일치인가?

“면양에 사천신교 지부가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찾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요?”

“죄송…… 합니다. 저희 신교는 건물은 세우지 않습니다.”

“하긴 세워봤자 욕을 들을 테니. 이해해요. 그럼 모일 때는 어디서 모입니까?”

“주로 빈 공터나 마을 광장에서 모일 때가 많습니다.”

“여기까지는 마음에 드는군요.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제대로 답을 하면 보내주지.”

“…….”

“북주의 신장은 누굽니까?”

“그게…….”

천항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하지만.

스윽-

남하림의 손이 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다시 한 호흡을 내쉬었다.

“서궁상국 면양지부 책임자 조예가 북주의 신장입니다.”

남하림은 물론, 나머지 네 명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네.’

* * *

서궁상국을 나온 뒤, 이들은 악산표국을 지나 면양지부로 갈 계획이었다.

“하림 형, 이제 무작정 면양으로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부장, 유도 말이 맞아. 서궁상국 면양지부가 어느 정도까지 신교와 엮여 있는지 모르잖아.”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남하림도 고민이 되었다.

사천신교를 상대하는 데 이런 문제까지 엮어 있을 줄은.

“면양지부를 통해 사천신교 자금줄을 끊을 계획은 이미 저들 귀에 들어갔겠어.”

“부장, 어떻게 하지? 우리가 모르는 척해도 그는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 거야. 아니면 우리가 취할 계획을 신교에서도 미리 알게 되겠지.”

남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계획이 신교에 알려지면 전혀 소용이 없지. 하, 여하튼 저들 사이에도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이 있군. 면양지부 자체를 신도로 만들어 버리고 말이야.”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 좋아. 누가 이기는지 붙어보면 알겠지.’

네 사람은 생각에 잠기면서 미소를 짓는 남하림을 보았다.

[부장이 웃는데?]

[뭐야, 즐겁나 봐.]

[왜요? 난 머리가 아픈데.]

[상대에게 흥미를 느꼈겠지. 부장은 직접 싸우는 것보다 이렇게 싸우는 일에 더 흥미를 느끼잖아.]

[아…… 난 그래도 두들기는 쪽이 더 좋던데.]

* * *

명왕장 승환은 깍지를 낀 채로 탁자 앞에 앉았다.

“후후.”

서궁상국 면양지부에서 올라온 보고.

#NAME?

‘상군 채태황. 그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사천성에서 사천신교가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도들의 확보.

신도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금력이 지원되지 않고선 힘들었다.

“본 신교가 서궁만 먹어도 사천은 물론, 중원의 서쪽 지역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거늘.”

승환은 꿈이 컸다.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손에 들어올 현실이었다.

씨익.

승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

‘일단 어느 정도인지 실력을 보는 것도 좋겠군.’

* * *

오십 리 협곡으로 길게 뻗은 장류협.

악산을 출발하여 면양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관문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당무독은 장류협을 두리번거렸다.

“따악! 기습하기 좋은 장소네.”

“그러게요. 우릴 죽일 생각이라면 여기 양쪽으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랜만에 몸을 풀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유도야, 말이 씨가 되는 법이야.”

“철각, 벌써 씨가 된 것 같다.”

두두두두-

협곡 전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소리.

다다다다다-

이번에는 후방에서도 들려온다.

“하아…… 신교에서 또 이런 재미를 주냐.”

“너무 방심들 하지 말고. 조심들 해.”

당무독은 가방에서 단약 다섯 알을 꺼냈다.

“자아, 안 먹어도 괜찮겠지만 유비무환이지. 하나씩 먹어둬.”

“무독 형, 이게 뭔데요?”

“뭐긴. 해독제 겸 근육활성제. 새로운 걸 넣어봤는데 꽤 청량감이 있을 거야.”

툭.

팽유도가 얼른 입에 단약을 넣었다.

입안에서 터뜨리자 당무독의 말처럼 청량함이 상큼하게 터졌다.

“우왕, 안에 뭘 넣었어요?”

“박하(薄荷).”

“이거 좋은데요? 하나 더 먹으면 안 돼요?”

“떽, 몸에 좋은 것도 많이 먹으면 안 좋아져. 적당히 먹어야 해.”

두두두두두.

다다다다다.

점점 다가오는 소리가 커져갔다.

“전방 맡을 사람? 소리로 봐선 후방보다 많다.”

팽유도와 성철각, 이휘연이 손을 들었다.

“좋아요. 그럼 무독과 난 후방을 맡겠어요.”

“앗싸!”

팽유도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성철각과 이휘연도 마찬가지.

휘리리릭!

세 명은 기다리지 않고, 협곡이 꺾인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부장, 우린 어떻게 싸울까?”

“힘들게 싸울 거 뭐 있냐? 이럴 때 사용하려고 만든 독이나 왕창 풀어봐. 궁금했는데 구경이나 해보자.”

“하, 역시…… 부장은 내 마음을 너무 잘 안다니까.”

당무독이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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