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28화 (129/328)

128. 신무맹

내화당으로 돌아온 남하림은 검후와 나눈 대화를 네 명에게 전달했다.

“네에에에에에?”

팽유도는 입을 떡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형, 검후님이 원하셨다고요?”

당무독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이야, 잘됐네. 검후님이라면 무림에서도 무시할 수 없잖아. 내가 봤을 땐, 부장이 복받은 것 같아.”

“어엉,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지금도 얼떨떨해서 믿기지가 않아.”

“무독의 말처럼 좋은 일이긴 하군. 나중에 검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면.”

이휘연도 검후라면 충분히 남하림의의모가 되기에 모자라지 않다고 여겼다.

“여하튼 검문에서 일이 잘 끝나 다행이다.”

당무독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흐, 그럼 검문도 부장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말이군.’

* * *

보름 전.

당무독은 무림맹을 다녀온 뒤 여러 가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는 도중, 화산파와 종남파, 당문을 거치면서 확신이 섰다.

‘무림맹을 믿을 수 없다.’

남하림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당무독은 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모두 잘 들어.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무림맹은 절대로 중원 무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어? 무독 형도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

팽유도가 먼저 당무독의 말에 동의했다.

“휘연 형은 어때?”

“무림맹의 육천과 주요 세력은 맹주와 군사의 세력들이더군.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의 무림맹은 중원 무림의 구파일방과 십대세가의 연합맹이라고 할 수 없다.”

“응, 휘연 형의 말이 맞아. 중원 무림의 많은 문파들이 무림맹이란 명칭에 착각하고 있는 거야. 내가 생각하기에 무림맹의 목적은, 중원 무림의 평화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구천마성처럼 지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당무독은 확신했다.

무림맹이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아직 시기가 적절하지 않으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네 사람 모두, 무림맹은 믿을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휘연 형, 무림맹만 믿고 있다간 중원 무림은 한순간에 똥이 될 거야.”

“……음. 무독, 무슨 생각이 있는 건가?”

“우리가 새롭게 신무맹을 만들죠. 어때요?”

신무맹(新武盟).

당무독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제안.

세 사람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모두의 심장이 뛰었다.

“무독, 신무맹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거야? 그리고 이건 부장도 알아야 하지 않아?”

“철각, 일단 부장 모르게 진행하는 거야. 원래 이런 일은 밑에서 알아서 하는 거거든. 신무맹은 부장을 중심으로, 중원 무림에 새로운 연합 세력을 구축하는 쪽으로 계획을 세워보는 게 좋겠어.”

“으음, 부장이 신무맹의 맹주가 되는 거야?”

“당연하지.”

“좋아. 난 신무맹 만드는 일에 찬성.”

성철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철각. 내가 말할 때까지 부장이 알면 안 돼, 알겠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부장 성격에 절대로 맹주를 맡으려 하지 않을 거야.”

“아하…… 알겠어. 무독이 말할 때까지 비밀로 할게.”

“좋았어. 휘연 형은 어때?”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중원 무림에서 부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걸협오성이란 명성을 중원에 떨쳤지만, 아직 무림맹주와 비견할 만한 위명이라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아직은 힘들어. 현 무림맹주는 구천마성을 무너뜨린 인물이야. 강하다고 해도 명성을 무시할 수 없지.”

“명성이라…… 가장 어려운 부분이군.”

“맞아. 지금으로서는 힘들다고 봐. 때를 기다려야 해. 기회가 왔을 때 잡기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하자는 거야.”

당무독은 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를 해놓은 뒤 때를 기다려야 한다.

“새로운 무림맹에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해. 그렇다고 남들 좋은 일 시켜줄 이유는 없고. 우리가 주도할 신무맹.

각자 다른 문파에서 자라, 각자 다른 걸 배우고, 떨어져 나오기까지 했던 우리를 하나로 모은 부장이야. 자질이 있어.”

“나도 하림 형이라면 공정하게 무림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봐.”

“부장은 착해. 악의가 없는 사람이야.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야.”

네 사람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거야?”

“우선 부장에게 호감을 가진 문파들과 도움을 받은 문파들이 있어. 현 무림맹에 반감을 가진 문파들도 분명히 있고. 그들과 인연을 쌓는다면 우리가 필요할 시점에 분명히 부장에게 도움을 줄 거야.”

이휘연이 생각하기에도 남하림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문파들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그게 뭔데?”

“언제, 어느 시점에서 신무맹을 급하게 발족시키는 상황이 될지 몰라. 그러니 정주에 무림맹을 세운 것처럼, 언제라도 신무맹을 곧바로 출범시킬 수 있도록 사전에 장소를 정해서 건물을 짓는 게 좋겠어.”

당무독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신무맹의 건물을 짓는 것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부장이라면 모를까, 우린 돈이 없잖아.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해?”

“그건 양 총관한테 부탁할 거야.”

“양 총관께? 우리가 말해본다고 해서 양 총관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부장의 명이 있어야 할 텐데.”

“아니, 난 알 수 있어. 그의 그릇은 절대로 상국에서만 머무를 크기가 아니야. 양 총관의 능력이라면 중원의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어. 거기다 부장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인물이지. 뜻을 알리면 바로 움직일 거야.”

“음…… 하긴…… 대단한 사람이긴 해. 부장 사업이 사실 한두 개야? 그걸 혼자서 전부 총괄하고 처리하잖아.”

팽유도도 양삼에 대해 인정했다.

“무독 형, 그럼 장소는 어디로 하려고?”

“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어. 좋은 장소 생각나는 데 있어?”

스윽.

성철각이 손을 들었다.

“개봉이 좋지 않을까? 가깝잖아.”

“아, 나도 그 생각 해봤는데, 우리가 개방 제자잖아. 다른 곳에서 안 좋게 생각할지도 몰라. 맹주로 부장을 추대할 거기도 하고.”

“아하…….”

“남양이 좋겠다. 호북, 사천과 가까운 곳이고 섬서와도 지리적으로 붙어 있어서 좋아.”

이휘연이 미리 생각이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응, 휘연 형 말처럼 나도 남양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

“그럼 거기가 제일 합리적이겠네요. 남양으로 정해두고 움직이면 되겠어요. 나도 좋아요.”

팽유도도 남양으로 한 표를 던졌다.

뒤이어 성철각도 찬성했다.

“좋아. 그럼 남양으로 정한 걸로 하고, 양 총관한테 서신을 보내놔야겠어.”

당무독은 손을 세게 쥐었다.

세상의 끝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무독, 좋은 일 있냐?”

“좋은 일이지. 검후님을 의모로 모시는 건 잘한 일이잖아.”

“그래? 뭐, 여튼 이제 구천신품도 받았으니 돌아가야겠다.”

“벌써?”

“여기서 할 일은 다 했어. 무림맹에서 우리가 오는 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겠지.”

“하긴…… 부장, 그 물건도 하나 더 만들 거지?”

“당연.”

“나중에 이 사실을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지겠구만.”

“이야, 그렇게 되면 좋겠다.”

“크으, 그때 딱!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어떻게 변하려나.”

“후후, 내일 떠나도록 하자. 오늘은 푹 쉬어.”

* * *

개봉의 대저택.

타타타타타탁!

서신 한 장을 들고 건물 안으로 뛰어가는 소년.

동진부는 서신을 받은 뒤, 보낸 사람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총관실을 향해 내달렸다.

“양 총관님!”

다급한 동진부의 목소리를 들은 준극남이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냐?”

“준 호위님, 서신이 도착했어요!”

“서신이라니…… 누구에게서 온 서신이지?”

“여기요!”

준극남은 동진부가 내민 서신이 담긴 봉투를 보았다.

숫자 삼(三)이 적혀 있었다.

‘삼이라면 당무독 공자를 가리킨다.’

그는 서신 봉투를 들고 들어가 양삼에게 내밀었다.

“총관님, 당무독 공자께서 보낸 서신인 것 같소이다.”

양삼은 봉투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지금쯤이면 사천에 계실 텐데…… 먼 곳에서 보내셨네요.”

양삼은 봉투를 뜯기 전, 손에 두꺼운 장갑을 꼈다.

꿀꺽.

그러고는 준극남, 동진부와 함께 작은 환단을 복용했다.

파앗!

봉투의 끝을 자르자 안에서 흰 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피식.

“무독 공자님도…… 너무 철저하시다니까.”

미량의 가루만 마셔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극조멸강독이 봉투 안에 들어있었던 것.

스윽.

양삼은 서신을 꺼낸 뒤 옆에 대충 놓아두고, 봉투를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접힌 부분을 자른 뒤, 길게 펼쳤다.

또르륵-

찻주전자에서 길게 펼쳐진 봉투 위로 천천히 물이 떨어졌다.

이윽고 종이에 물이 스며들자, 흰색 바탕 위에 검은색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NAME?

이번 일은 부장이 몰랐으면 하는 일이기에 몰래 보낸 서신이니,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내가 양 총관에게 서신을 보낸 이유는…….

서신을 읽고 내려가던 양삼의 눈동자가 빛났다.

‘신무맹!’

엄청난 계획이 적혀 있었다.

스윽.

그는 고개를 돌려 준극남과 시선을 마주쳤다.

“무슨 내용입니까?”

“준 호위님. 천하를 상대로 놀아볼 생각이 있습니까?”

“……!”

무림인이라면 언제나 포부가 창대한 법.

양삼이 그에게 서신을 넘겼다.

부들.

격정의 감정에 서신을 읽은 손이 떨렸다.

“주군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다할 것입니다.”

“알겠소이다. 준 호위께서도 당 공자님의 말씀대로 당분간 도련님께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사전에 알게 된다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네. 주군께 비밀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우선 우리들만 아는 걸로 하시죠.”

“알겠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내일 당장 남양으로 가야겠습니다.”

“예, 총관님. 수하들을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척.

준극남은 고개를 숙인 후 빠르게 나갔다.

그동안 양삼이 부족한 내력을 보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상승 무공을 구해준 덕에, 자신은 물론 수하들의 무공 또한 예전에 비해 몇 단계나 올라선 상태였다.

‘신무맹이라…… 주군의 호위는 내가 책임질 것이다!’

* * *

대검정(大劍庭)의 불빛이 환하게 비췄다.

검후 정화진은 걸협오성이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저녁.

간단하게 연회를 베풀고 봉황오영까지 초대했다.

중앙에 앉은 검후의 양옆으로 각각 다섯 명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로 서먹한 자리였지만, 검후의 명에 봉황오영은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청영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

“중원 무림에 나가면 정파 무인으로서 서로 상부상조를 해야 할 사이이거늘. 그깟 비무에 졌다고 해서 원수로 지낼 생각이더냐?”

“죄…… 송합니다.”

오영 중 유미령이 비무 결과에 가장 층격을 받았다.

천하제일인 부모님을 둔 그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특히 후개의 명성은 이번 계기로 더 퍼져 나갈 게 틀림없었다.

차기 검후로서, 중원을 어지럽게 만드는 구천신품을 하나씩 모아 호기롭게 처리하려는 계획이 처음부터 어긋나는 듯했다.

결국 그녀는 비무가 끝난 뒤부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스윽-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모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이번 비무는 운 좋게 저희가 승기를 잡은 것뿐입니다. 다음번엔 어떻게 결과가 바뀔지 모르는 일이지요.”

“하하! 하림의 말이 맞다. 겨우 한 번의 비무로 승패를 나눌 수는 없는 법이지.”

남하림이 자리에 앉자,

툭.

당무독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부장, 너무 겸손한 게 아녀?]

[안 그러면 화 안 풀 것 같지 않냐]

[언변 하나는 진짜 최고.]

[매우 고오맙다.]

이번에는 당무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희들이 천하제일미녀들께 한 잔씩 술을 올리겠소이다!”

[야, 넌 아부가 너무 심하잖아.]

[아, 이래야 화가 더 빨리 풀린다니깐. 서로 좋게좋게 지내야 나중에 좋아진다고]

[나중에 왜?]

[의모님이 곤란하시면 안 되잖아.]

[음…… 뭐, 그렇긴 하지.]

당무독은 성영 고미진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제가 말주변이 없습니다만, 지금까지 만난 여인 중 그대처럼 고귀한 기품을 지닌 여인은 처음입니다.”

중저음의 음성.

당무독은 살짝 들어 올린 고미진의 술잔에 술을 부었다.

“고, 고마워요.”

어색한 듯 웃으며 술을 받았지만, 고미진은 어쩐지 맘이 사르르 풀렸다.

척.

남하림도 당무독을 따라 마주 앉은 청영에게 다가섰다.

“한잔 받죠.”

“…….”

유미령은 남하림을 똑바로 쳐다보며 잔을 내밀었다.

분하지만 얼굴은 잘생겼다.

남하림이 그녀의 잔에 술을 부었다.

“자세히 보니 맹주님의 짙은 눈매를 닮았소이다. 매력적이군요.”

“…….”

사실 유미령이 자신의 얼굴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위가 짙은 눈매였다.

사내라면 모를까, 안 그래도 강렬한 인상인데 눈썹까지 짙어 너무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싫었으니까.

피식.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물론 그대의 무공이 더 고절하지만.”

다른 여인들 또한 남하림의 목소리를 모두 들었다.

백리희의 표정이 미세하게 어두워졌다.

“고맙군요.”

“별말씀을.”

남하림은 미소를 띠며 술병을 세웠다.

‘어휴…… 저 두 형들 때문에 죽겠네. 사전에 미리 이야기나 해주든지…….’

술잔을 내밀며 기대하고 있는 단목영하의 표정을 보며 팽유도가 땀을 삐질 흘렸다.

이 상황에선 한마디라도 할 수밖에 없다.

“밤하늘에 어둠이 짙은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바로 제 앞에 있으시니까요.”

“어머나!”

단목영하가 귀엽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가, 간지러워 미치는 줄 알았네. 다행히 겨우 넘어갔다. 좋은 분인가 봐.’

백리희와 이휘연은 서로 아는 사이 이기에 간단하게 술을 따랐다.

“소저의 결심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소이다.”

“고마워요.”

마지막 남은 성철각이 술병을 들고 서소화 앞으로 내밀었다.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했습니다.”

“괜찮아요.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요.”

“다행입니다.”

“……흐응, 더 할 말은 없으세요? 누구와는 달리 저는 별로 생각나는 말이 없으신가요?”

“……그, 그게 아니라…… 제가 넘보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분이셔서…… 요.”

성철각은 얼굴이 붉어졌다.

스윽.

뚱하던 서소화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순진하네.’

“그대에게 한잔 받겠어요. 제가 사내에게 술을 받는 것은 처음이에요.”

“고맙습니다.”

성철각까지 술을 한 잔씩 모두 따랐다.

검후 정화진은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쓸데없는 것들은 잊고, 앞으론 친한 벗으로 지냈으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벌컥.

모두의 술잔의 비워졌다.

대검정의 밤이 웃음소리와 함께 깊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남하림은 검문을 떠나기 전 검후를 찾았다.

정화진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남하림을 데리고 지하 연무장으로 내려갔다.

“맹주와 삼 초를 싸워 기절했다던데. 맞느냐?”

“네. 마지막 삼 초를 받는 도중 기절했습니다.”

“하하, 그게 유 맹주가 늘 하던 행동이지. 무공이 강한 사람을 만나면 비무를 신청했다가 마지막엔 아닌 척하면서 늘 상대방을 기절시켜 버렸다네.”

“그런가요? 지금까지 저만 기절한 줄 알았는데.”

“맹주가 은근히 약은 면이 있다네. 무언가 가르쳐 주는 듯하면서도 나중에 보면 의미 없는 것들이 많아.”

“음, 그런 인물인 줄은 몰랐군요.”

“나도 오랜 시간 그를 겪으며 겨우 알아낸 것이다.”

검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 뒤 돌아섰다.

“맹주가 익힌 무공은 은하무량검공으로, 중원제일의 검이라 할 수 있다.”

“장법도 펼치더군요.”

“물론. 그는 장법뿐만 아니라 권법과 지법, 그리고 궁법까지도 탁월한 인물이다.”

“역시 천하제일인이네요.”

“맞다. 그런데…… 그런 그를 오 년 안에 이기겠다고 선언했다지?”

“네. 그에게 똑바로 말했습니다.”

“자신 있느냐?”

“충분히 있습니다. 지금은 어려울지 모르나 시간은 제 편이 될 것입니다.”

맹주 유극지와 싸워 이기겠다는 남하림의 상태는 정상처럼 안 보였다.

‘하지만 무인이라면 이 정도의 배포는 있어야 하는 법.’

스가가가강-

검후 정화진은 후검(后劍)을 양손으로 잡은 뒤 뽑았다.

두 마리의 붉은 봉황이 그려져 있는 유려한 검신.

차아아아앙!

검신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맑은 소리를 냈다.

“십 초. 봉황무궁검의 십 초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를 이길 수 없다. 한 번 막아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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