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24화 (125/328)

124. 비무

‘벌써?’

허류향의 눈에 내화당으로 들어선 걸협오성이 들어왔다.

검문을 나선 지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돌아온 것이다.

허류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후개, 나갔던 일은……?”

“대충 정리하고 왔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가짜 놈들을 잡았다는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누군가 잡아오겠지요. 범인을 찾아서 현상금을 걸어놓았습니다.”

현상금을 건다고 해서 쉽게 끝날 일이었나?

아닌 듯싶었지만 허류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하튼 잘 끝났다고 하니 다행이네.”

“혹시 검후님께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까?”

“바로 검후전에 소식을 전하겠네.”

“고맙습니다.”

“쉬고 있게.”

허류향은 귀홍실로 들어가는 그들을 본 뒤 검후전으로 직접 향했다.

그녀가 경내를 지나갈 때였다.

웅성…….

한쪽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얼핏 후개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허류향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갔다.

자경단 소속의 무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앗, 허 당주님!”

그녀들 중 한 명의 손에 웬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건 무엇이냐?”

“여, 여기 있습니다.”

다섯 명의 현상범.

그 아래로 가짜 걸협오성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황금…… 일백 냥이면 중원이 움직이고도 남겠군. 이 정도의 금액을 내걸다니.”

남하림의 배포에 그녀는 또 한 번 놀랐다.

“근데 이걸 왜 자경단에서 가지고 있느냐? 설마 본 문에서도 이놈들을 잡으려고?”

“그것이 아니라, 본 문에서 관리하던 상가에 사기를 치고 도망간 놈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 잘됐군. 이놈들을 잡으면 현상금도 받을 수 있겠어.”

“근데…… 다리를 절단해야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나쁜 놈들이지 않느냐? 상관없다. 이런 놈들은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황금 일백 냥의 힘은 컸다.

다음부터는 누구라도, 절대 걸협오성의 이름으로 사기를 치지 못할 것이다.

“알아보니, 불에 탄 두양촌에 걸협오성의 이름으로 새롭게 집을 지어준다고 하더군요.”

“허, 정말 대단하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색한 사람들이 있는 법.

잠시나마 청영 유미령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했던 게 미안할 정도다.

“전혀 다르군. 달라.’

* * *

검후가 남하림과 독대를 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는군.”

“검후께서 결심한 모양인가 봐.”

“그럼 갔다 올게. 쉬고 있어.”

남하림이 내화당에서 나오자 봉황철검단 부단주 궁학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모시겠소이다.”

“고맙습니다.”

그녀를 따라 나선 지 반각.

검후전이 나타났다.

검후전 안으로 들어서자,

뚝.

남하림의 걸음이 복도 앞에서 멈췄다.

안쪽으로 이어진 복도 양옆에 그려져 있는 벽화들.

검을 들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무한의 힘이 느껴졌다.

‘흐으음.’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는 순간, 벽화 속의 여인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

‘나를 시험하는 건가?’

“후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들어가는 도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군요.”

스윽-

그때.

벽화의 끝에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영 유미령이 가소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이 여길 통과한다면 사부님께선 어떠한 일에도 관여치 않겠다고 하셨소이다.”

“그렇다면 남는 장사겠군요. 알겠소이다.”

처억!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섰다.

곧바로 펼쳐지는 취리건곤보!

휙!

슈욱-

남하림이 공간을 찢고 나오는 듯한 신법을 펼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파앗!

스르르-

사위에 푸른빛을 띤 기가 흐르면서, 점점 벽화 속의 여인이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살아 있어?’

눈동자조차 푸른빛을 띤 청의여인.

휘이이익-

남하림의 가슴을 향해 푸른 검이 뻗어왔다.

파아아앙!

무형의 기로 이루어진 청검을 향해 남하림이 일장을 뻗었다.

퍼억!

강력한 풍압이 휘몰아치며, 청의여인의 몸이 사방으로 흩어지듯 퍼져 나갔다.

‘으음……!’

스르르륵-

사라졌던 푸른빛이 다시 모여들었다.

팟! 팟! 팟! 팟!

다시 십여 개의 청검이 남하림의 전신으로 뻗어 나왔다.

무형의 기는 같은 무형기로 상대해야 했다.

취리건곤보를 펼치면서 다시 일장!

파아아아앙!

파아앙!

무형장으로 하나하나 청검을 막아낸다.

‘이렇게 싸우다간 끝이 나지 않겠어.’

스르륵-

청의여인의 몸이 흩어지며 두 명으로 변했다.

‘이런…….’

두 명으로 변할 줄은 몰랐다.

핏! 핏!

상하좌우 모든 곳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을 펼치는 두 명의 청의여인.

휘릭.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청검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스걱.

다른 청검이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

‘엄청 차갑군.’

제대로 걸렸다면 순간 몸이 얼어붙었을 것이다.

스르르륵-

다시 빛이 갈라지며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늘어났다.

‘이거 갈수록 태산인데.’

점점 정신이 사나웠다.

죽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는 존재다.

‘빨리 잡지 않으면 더 늘어나겠어. 원천을 끊어야 한다.’

남하림의 시선은 곧바로 벽화에 닿았다.

단전에 내력을 올리며 단 한 번의 출수를 기다렸다.

슥슥슥-

생김새도 똑같은 네 명의 청의여인은 남하림을 둘러쌌다.

팟팟팟팟.

네 개의 청검이 중앙에 포위된 남하림의 가슴과 등, 허리를 향해 밀려왔다.

청검의 싸늘한 기운이 덮쳐와 몸의 움직임을 막았다.

웅웅웅-

남하림의 단전에서 울리는 공명음.

번쩍!

단전에서부터 황금색 빛이 퍼지며 청검이 접근을 막아섰다.

‘지금이다!’

기다렸다는 듯, 남하림에 손바닥에서 흐르는 강맹한 기가 벽화를 향해 뻗어나갔다.

쿠아아아앙!

단숨에 벽화를 찢어낼 듯 쏟아져 나가는 십단공의 강룡십팔장.

콰아아아아아앙!

강룡십팔장이 부딪힌 벽화는 물론, 건물의 일부분까지 무너져 내렸다.

점점 푸른빛이 엷어지면서 네 명의 청의여인이 사라졌다.

‘무식하군.’

유미령은 다가오는 남하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문제가 있습니까?”

“잘했지만, 그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무슨 말이오?”

“벽화의 기를 가두면 될 것을 무식하게 부수다니.”

“…….”

‘이 여자가 자꾸 무시하네.’

남하림은 성큼 그녀의 앞에 다가섰다.

“난 말이오.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할 뿐입니다. 부서진 벽은 새로 고치면 되지 않겠소?”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건가요? 하긴 황금 일백 냥은 당신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겠죠.”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군요. 보아하니 내가 돈이 많다고 비꼬는 모양인가 본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도 할 말이 있습니다. 단지 참아주는 것뿐.”

“이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거야?”

“뭐라고 말하는지는 알아서 잘 생각해 보시지요.”

스윽.

남하림은 더 이상 상대하는 게 귀찮은 듯 그녀를 지나쳤다.

휘익!

유미령은 손을 뻗어 남하림의 소매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 빠져나갔는지 남하림이 한 걸음 더 빨랐다.

‘후개…… 잘난 척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 * *

남하림은 검후와 마주 앉았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네. 부술지는 몰랐지만 허락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겠네.”

“아닙니다. 제가 수리비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우린 별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검후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그가 돈이 많은 것도 알았으니까.

“두왕촌 사건을 잘 처리한 모양이더군.”

“별일 아니었습니다. 소문이라는 게 가끔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겁나는 것이지만, 상황에 맞게 본질을 정확히 알면 대처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런가?”

“이번 일은 분명 저에게 원한이 있는 자의 소행입니다.”

“오호? 근거가 있는가?”

“사기를 치던 놈들이 갑자기 마을에 불을 내고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음…… 그대의 말에 일리가 있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릴 요량이었겠지만, 뭐, 더 큰 소문으로 덮으면 됩니다.”

“그게 황금 일백 냥의 현상금인 모양이지?”

“당연히 중원에 소문이 퍼지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두왕촌 소문보다 제가 건 현상금에 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대단하군. 무공만 강할 줄 알았는데.”

“저번에도 이야기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꽤 잘났습니다.”

“이제 알겠군.”

제자 유미령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검후 정화진은 남하림을 부른 이유를 꺼냈다.

“후개, 한 가지 물어보지. 사실대로 말해주면 좋겠네.”

“말씀하시지요.”

“입수한 구천신품들을 무림맹 군사에게 줬다고 들었네. 맞는가?”

“맞습니다.”

“이유가 있는가?”

“간단합니다. 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의미지?”

“무림맹이 군사의 명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 제가 왜 그에게 구천신품을 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음…… 군사가 모르고 있었다면 주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후후,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맙네.”

“군사가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구천신품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돌려주지 않았다면 엄청 개방을 괴롭혔을 겁니다.”

“그자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이지.”

남하림이 구천신품을 무림맹에 돌려준 이유를 알았다.

자신이 가진 홍요대도 마찬가지.

남하림에게 주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나서 괴롭힐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손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군사의 요구는 계속될 터.

“싸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군. 그대에게 구천신품을 주겠네.”

“감사합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부탁하지. 들어주었으면 하네. 내 체면도 있지 않는가?”

“무엇입니까?”

“봉황오영과 걸협오성이 비무를 가졌으면 하네. 자네들이 전부 이기는 조건으로.”

“비무를 말입니까?”

“그렇네.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은영을 제외한 네 명 모두가 너무 자만에 빠져 있다네. 겸사겸사 이런 일도 좋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구천신품을 주신다는데 받아들이지요.”

“고맙네.”

걸협오성 정도면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더없이 충분할 것이다.

* * *

검후전을 나온 지 이각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비무 대회에 대한 소문은 어김없이 검문 전체에 퍼져 나갔다.

“하림 형, 이번 비무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 거야?”

“그건 아직 따로 이야기한 적 없어. 그냥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하면 아 되려나?”

“부장, 난 여자랑 잘 싸우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

성철각은 걱정이 생겼다.

“철각. 저들은 그냥 여인이 아니니깐 걱정 안 해도 돼.”

“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무림인으로 생각해. 그러면 될 거야.”

“으음…… 알겠어. 그렇게 생각해 볼게.”

“비무를 전부 이긴다는 조건으로 구천신품을 주는 게 맞겠지?”

“검후께서 말을 했으니깐 믿어야지.”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군.”

검후가 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을 터.

“언제 한다고 했지?”

“이틀 뒤. 하루 정도는 준비한다고 해서.”

“알겠다. 그럼 우리도 준비를 해야겠군.”

팽유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백리 소저와는 누가 비무할 거야?”

“내가 하지.”

“하림 형이? 청영 유미령과 비무 하지 않고?”

“아니, 휘연 형이 할 거야.”

“좋아. 내가 상대하지.”

이휘연은 대전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와 대결해 보고 싶었다.

“그럼 우리들이 나머지 세 명과 비무 하면 되겠네.”

“유도야, 나머지 세 명은 잘 모르니까, 우리는 이틀 뒤 현장에서 정하는 것으로 하자.”

“무독 형,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 * *

내화당으로 백리희가 찾아왔다.

“저희들과 비무를 한다고 들었어요.”

“검후께서 부탁을 하더군요.”

“사부님이요? 왜……?”

“봉황오영의 무공을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백리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이유가 아닌 줄 알아요. 우리 무공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시는 분이 사부님이세요.”

“그럼 우리들의 무공을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그런 이유였다면 사부님께서 직접 비무를 신청했을 거예요.”

백리희는 남하림이 즉각 대답을 하지 않는 걸로 봐서, 자신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요.”

“그건 아닙니다. 정말로 별 이유가 없거든요.”

“알겠어요. 이젠 묻지 않죠. 대신 다른 질문을 할게요.”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제 상대는 누구시죠?”

스윽.

남하림이 손을 들었다.

“남 대협께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의 상대는 유미령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 남 대협께서는 청영과 싸울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청영의 상대는 따로 있습니다.”

“혹시…… 누구신지?”

“휘연 형이 맡기로 했습니다. 휘연 형이라면 그녀가 검을 펼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겁니다.”

‘한심걸. 이분도 대단하지.’

백리희는 한 가지 걱정이 사라졌다.

남하림이라면 충분히 자신이 수련했던 무공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 * *

둥! 둥! 둥!

세 번의 북소리가 검문을 울렸다.

검문의 대연무장에 준비된 비무대.

검후 정화진이 비무대에 천천히 올라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