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현상금
콰아아앙!
콰작! 우지끈!
고목이 한 번의 충격으로 부러졌다.
‘거지 새끼들이……!’
문령은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싸움에서 살기 위해 도망쳤다.
이 바닥에서 최고라는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물론,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하나 이십 대 동년배 중 자신보다 강한 상대는 없다고 자신했다.
‘건방진 새끼들.’
휙!
문령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다섯 명을 보았다.
“큭, 닮긴 닮았군. 그놈의 거지 새끼들과 말이지.”
다섯 명의 가짜 걸협오성.
반 시진 전.
이놈들이 겁도 없이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
문령은 그대로 눈이 뒤집혔다.
감히 내 앞에 저 꼬라지로 나타나?
그대로 사지를 찢어 죽여주마!
우우우우웅-
문령이 전신의 내력을 끌어냈다.
급격한 기의 변화에, 그들 주위로 땅이 흔들거릴 정도.
무릎을 꿇고 있는 가짜들은 온몸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문령에게서 뻗어 나온 살기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흐흡, 흑흑, 재수 더럽게 없네. 그냥 바로 여길 떴어야 했는데…… 제대로 한 탕도 못하고 죽게 생겼어!’
걸협오성 단화걸로 분장한 신후종은 인생이 종쳤음을 깨달았다.
눈앞에서 악귀나찰처럼 살기를 뿜어내는 문령의 무공은 자신이 지금까지 본 세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흐윽, 그래도 우릴 잡으러 온 놈은 아닌 것 같은데…….’
검각뿐만 아니라 청부업자들도 자신들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당장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조상이 돌본 셈이다.
신후종 외 네 명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문령의 처분을 기다렸다.
이들의 꼴을 보자마자 화풀이를 하려던 문령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옳지, 그렇지 않아도 잘나간다는 개소리 듣지 싫었는데…… 무림에서 얼굴도 들지 못하게 만들어줘야겠군.’
“이봐. 가짜 단화걸.”
“…….”
“이 거지 새끼가 대답이 없어?”
티이잉!
문령이 손가락을 튕겼다.
“커억!”
신후종의 어깨에 강력한 충격이 떨어졌다.
털썩!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넘어간 신후종.
“으으으으, 으으…….”
어깨뼈가 통째로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몰아쳤다.
“입에 자물쇠를 걸어놨군. 내가 부르면 즉각 대답하라고 했을 텐데. 아니면 죽고 싶은 모양이지?”
벌떡!
신후종은 넘어진 상태에서 재빠르게 몸을 세웠다.
고통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크으윽. 살아야 한다. 죽고 싶지는 않아!’
“죄, 죄송합니다. 나으리.”
“좋아. 우리 한 가지 재미난 놀이를 하자고. 어떻게, 할 생각이 있는 사람 손들어 봐?”
“…….”
“어쭈, 재미없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네? 그럼 모두 뒈져야겠지.”
번쩍!
다섯 명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아닙니다. 지금도…… 재미있습니다!”
“맞습니다! 소인들은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하. 하. 하!”
다섯 명은 서로를 보며 억지로 웃기 시작했다.
문령은 그들을 보며 킥킥 웃었다.
“키킥. 네놈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제법 재미있는 일이 될 거야.”
“예, 옛!”
“잠깐들 가까이 와.”
가짜 걸협오성은 빠르게 문령의 곁으로 다가섰다.
* * *
드륵-
귀홍실로 들어선 팽유도가 네 사람을 모았다.
“다들 여기 모여봐요.”
입에는 어디서 얻었는지 당과가 물려 있다.
서글서글한 팽유도는 사교성이 좋아서, 처음 만난 사람도 서너 마디 후 막역지우가 돼버렸다.
이번에도 내화당의 잡일을 처리하는 병학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검문과 봉황오영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들은 것.
“검후의 직전제자는 다섯 명으로 봉황오영이라 불린대요.”
청영(淸英) 유미령.
묵영(黙英) 서소화.
성영(聖英) 고미진.
양영(良英) 단목영하.
은영(恩英) 백리희.
다섯 명의 여인들 중 가장 늦게 검후의 제자가 된 은영 백리희가 다음 대 검후 후보로 포함된 것은 예상 밖이었다.
“오호. 그들을 오영이라 하는군. 그럼 어떤 방법으로 검후를 선출하는 거래?”
“기본적으로는 무공이 강해야 하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많이 있는데, 이를테면 덕(德)과 지(知)으로 아랫사람들은 다스리는 모습 등등. 검후가 되기 위한 필수 자질들의 점수가 높아야 한다네요.”
“서로 경쟁자인 셈이군.”
남하림은 턱을 쓱 쓰다듬었다.
“청영인 유미령은 어떤 인물이야?”
“엄청 대단하다고 말하던데요. 다른 네 명과 비교해서요. 검후조차 인정할 정도로, 하나에서 열까지 모자라는 게 없다고 했어요.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자신보다 낮다고 판단하면 한없이 아래 사람처럼 여기는 게 옥의 티라고.”
“천하제일인과 전대 검후의 여식. 그것도 외동딸이니깐. 그렇지 않은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뭐, 그렇겠죠.”
“이변이 없는 한 유미령, 그녀가 다음 대 검후에 오르겠군.”
“네, 그럴 겁니다.”
팽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꼬르륵.
그때 성철각이 출출한지 배를 쓰다듬으며 멋쩍게 웃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밥 먹을 시간이네!”
* * *
자경단 단주 여주미가 다급하게 내화당으로 들어섰다.
“허 당주! 후개를 만나고자 하네!”
평상시의 표정과는 달랐다.
“다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군. 그들은 식사 중일 텐데. 귀홍실로 가보게.”
“알겠네.”
여주미의 발걸음이 빠르게 귀홍실로 향했다.
‘누가 함께 있는 모양인데?’
사내들 사이에 여인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후개,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들어오세요.”
그녀가 문을 열자 다섯 사내와 함께 차를 마시는 여인이 보였다.
‘은영?’
걸협오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를 마실 정도로 친분이 깊었나?
그녀는 이 자리가 허류향의 배려라는 사실은 몰랐다.
“단주님께서 다급하게 오신 듯합니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걸협오성과 함께 차를 마시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본인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소이다.”
“소문이요? 무슨 소문입니까?”
“검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두왕촌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저녁, 화마로 가구 십여 채가 불탔다는 연락을 받았소이다.”
“그 사건이 우리와 관련되어 있군요.”
“그렇소이다. 생존자가 다섯 명의 거지들, 걸협오성이 집안에 물건을 훔치고 살인까지 저지른 뒤 불을 질렀다고 증언했다 합니다.”
피식.
남하림이 실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참, 유명하니깐 별일이 다 생기는군요.”
여주미는 당황했다.
당연히 노발대발할 거라 예상했는데.
나머지 네 명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후개, 큰일이지 않소이까?”
“큰일이긴 하네요. 두왕촌의 마을 주민들이 많이 다쳤다고 합니까?”
“그, 그것까지는…….”
자신들이 누명을 썼다는데 마을 주민들의 생명에 대해 먼저 묻다니.
여주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 중원인들이 후개와 걸협오성을 존경하는 것인가?’
“여 단주님, 빠르게 소식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아니오. 우리도 그놈들이 본 문에서 찾는 놈들인지 조사해야 할 것 같소이다.”
“각자 조사해 보도록 하죠.”
남하림은 굳이 같이 조사할 생각이 없었다.
백리희는 걱정이 되었다.
이들의 명성에 해가 되는 일이었다.
“남 대협님, 혹시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들의 일이니 우리가 처리해야지요.”
남하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한 짓도 아니지 않소이까?”
“그렇긴 하지만…….”
남하림은 곧장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런 일은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선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 봐야겠군. 근처에 개방 분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여 단주님, 혹시 두왕촌 주위에 개방 분타가 있는지요?”
“가까운 곳에는 개방 분타가 없소이다.”
“할 수 없군요. 이가 없으면 잇몸을 사용해야지.”
여주미는 남하림의 말에 눈을 끔벅였다.
‘잇몸이라니…… 무슨 말이지?’
* * *
검문을 나선 다섯 명.
거지 복장이 아닌 무인들의 가벼운 경장 차림이다.
두왕촌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불에 탄 냄새가 마을 초입부터 흘러나왔다.
“하림 형, 어떤 놈들일까?”
“잡아보면 알겠지.”
“이래서 유명인은 피곤하구나.”
“우선 흩어져서 여기 주위 일대 조사부터 하자.”
“알겠어.”
마을에 들어선 그들은 증거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꾸벅꾸벅.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졸고 있는 사내 거지.
잠이 쏟아지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챙그랑!
동냥 그릇에 동전이 떨어지는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돈이다!’
잠결이지만 번뜻 눈이 떠졌다.
어디, 그릇에 얼마가 있나.
“커어어억!”
황금색 동전 하나.
사내는 시커먼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의 금액이다.
‘진짜다…… 금화다……!’
중탁은 달달 떨리는 마음으로 금화를 적선한 인물이 누구인지 올려다보았다.
“……!”
금화보다 더 빛나는 청년의 얼굴.
“공자님, 감…… 사합니다.”
“바쁘오?”
‘에에엥? 바빠? 내가?’
거지가 바쁠 일은 없다.
“없습니다만…….”
“여기에 터를 잡은 지 얼마나 됐지요?”
“…….”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자 중탁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남하림을 보았다.
“궁금해서.”
“이십…… 년 정도…….”
“토박이로군요.”
남하림은 상의 자락을 살짝 옆으로 돌려 중탁에게 목패를 보여주었다.
“……?”
“글을 읽을 수 없겠지만, 이게 개방의 신패라는 것이오.”
“헉!”
개방이란 말에 중탁을 얼른 자세를 바로잡았다.
남하림은 신패를 가리키며 한 자씩 가르쳐 주듯 천천히 읽었다.
“개방. 남하림.”
“남…… 하…… 림? 허걱!”
털썩.
청년의 말이 맞다면 눈앞에 다가앉은 그가 누군지는 자명하다.
“후, 후……!”
“쉿,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진 않겠지만. 가만히 계세요.”
“아…… 예, 옛!”
중탁은 남하림의 옷차림을 천천히 살폈다.
“아, 본의 아니게 잠시 변장한 거요. 우리를 사칭한 놈들이 사고를 치고 다닌다고 해서 말이지.”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소인은 그놈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요.”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두양촌에서 함께 동냥질을 하는 놈이 있는데, 글쎄, 그놈이 걸협오성님을 만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고 했답니다. 근데 가짜 그놈들이 귀찮게 한다며 맞을 뻔했다고 하더군요. 그놈이 얼마나 실망을 하던지. 더러워서 거지를 때려치운다나…….”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거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이 싫어졌다면서 밥도 먹기 싫다고 했으니, 어디 다리 밑에서 처자고 있을 겁니다.”
“오호, 그렇군요. 그에게 갑시다.”
* * *
반각 정도 걷자 나무로 만든 다리가 나타났다.
“저기에 있습니다.”
남하림과 중탁은 다리 아래에 누워 있는 거지를 발견했다.
퍼억!
중탁이 그의 발을 툭 차며 건드렸다.
“어어어…… 뭐, 뭐냐?”
“일어나 봐. 네가 보고 싶어 하는 분을 이 형님께서 모시고 왔다.”
“에이…… 씨…… 내가 누굴 보고 싶어한다고…….”
그는 어기적거리며 몸을 세웠다.
“누구……?”
중탁의 옆에 나란히 선 남하림.
“뭐 하냐? 빨리 인사드리지 않고. 걸협오성의 후개님이시다.”
“……뭐!”
“키키키키, 놀랬냐?”
벌떡!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정말 후개님이 맞습니까요?”
“맞소이다.”
중탁이 중간에 나섰다.
“저번에 본 녀석들이 역시 가짜라고 하셨어. 마을에 불을 낸 놈들을 잡으러 오셨대.”
“개망할 놈이! 어쩐지 생긴 게 절라 못생겼더라니깐!”
그는 남하림을 다시 쳐다보았다.
“후개님, 손 한번 잡아보면 안 되겠습니까?”
“아, 여기 있소이다.”
그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남하림의 손을 잡았다.
“크흡, 영광입니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요. 절대로 이 손을 씻지 않겠습니다.”
“가능하면 씻는 것이 좋겠지만, 뭐, 그들을 봤다고 하던데. 얼굴을 기억합니까?”
“네. 똑바로 기억합니다. 제가 어찌 그놈들의 얼굴을 잊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럼 갑시다.”
“어디를 말입니까?”
“그놈들을 잡아야 할 게 아닙니까?”
“아아! 네. 네. 알겠습니다요.”
* * *
웅성웅성.
두양촌 일대 마을 중앙 광장마다 현상범을 찾는 공문이 붙었다.
다섯 장의 공문 아래에 적혀 있는 현상금.
“허어…… 황금 일백 냥이라…… 엄청나네. 이놈들만 잡는다면 죽을 때까지 떵떵거리고 살겠어!”
“이놈들이 두왕촌에 불 지른 놈들이군.”
“오옹? 불은 걸협오성이 냈다고 하지 않았나?”
휙!
수십 명의 시선이 방금 말한 사내에게 쏟아졌다.
“어어……? 왜 그래……?”
“자자, 여기 똑바로 읽어보게. 이놈들이 걸협오성님으로 행세를 했다고 하지 않은가!”
“미, 미안…… 하네. 내가 잘 몰랐어…….”
탁! 탁!
덩치가 큰 사내가 몽둥이를 탁탁 치며 다가섰다.
“어이, 잠시 비켜라.”
쓰걱!
사내가 가짜 걸협오성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를 찢었다.
“이놈들을 잡으면 황금 백 냥을 준다고 했지?”
“대형, 그냥 잡아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사기를 치지 못하도록 두 다리를 절단해서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요.”
“크하하하! 마음에 드는군.”
“앞으로도 걸협오성의 이름을 대고 사기 치는 놈들을 잡아오면 똑같이 황금 일백 냥을 주겠다네요.”
“푸하하하! 후개께서 엄청 열받은 모양이군. 오늘부터 우리 황천당은 다른 일을 제쳐두고 이 새끼들 잡는 일에 집중한다. 알겠나?”
“넵!”
광장을 빠르게 떠나는 덩치 큰 사람들.
그들의 목표는 오직 다섯 명의 가짜 걸협오성이었다.
‘쳇,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이것도 안 되는군. 설마 그 새끼가 돈으로 처바를 줄이야. 이거 반칙 아냐?’
멀리서 이를 바라보던 문령은 인상을 쓰면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