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결전
자오곡(子午谷) 대결전.
종남파와 무림맹의 대결은 처음부터 승패가 정해져 있었다.
자오곡에 먼저 도착한 종남파 도사들은 유리한 위치에 진영을 구축했다.
그에 반해 무림맹은 하루 뒤, 자오곡에 도착했다.
“크흐흐.”
무림맹의 두 무력군을 이끄는 범기는 자오곡에 먼저 도착한 종남파 진영을 살폈다.
그의 표정에서 단번에 비웃음이 배어 나왔다.
“어설프군. 그렇지 않소이까?”
“전형적인 무림인이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철호군 군장 우자성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군부 출신인 우자성의 눈에 종남파 진영은 전형적인 무림인들의 결전 방식.
“저들을 보니 쉽게 끝날 것 같소이다.”
“반 시진, 그 안에는 끝을 내겠습니다.”
“우 군장께서 선봉에 서실 생각이시오?”
“크하하! 이런 재미있는 일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구려.”
“고맙소이다. 그럼 준비를 한 뒤 바로 종남파를 치도록 하겠습니다.”
우자성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오히려 자오곡에서 죽여주기를 바라는 종남파 도사들이 불쌍할 정도.
‘오늘부로 무림에서 종남파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저벅저벅.
우자성이 철호군 앞으로 다가섰다.
척!
철호군 부군장 아청후가 고개를 숙이며 그를 맞이했다.
“철호군이 선봉을 맡기로 했다.”
척!
멸갑궁단 단장 홍경이 한 발 나섰다.
“선봉은 소신이 맡겠습니다.”
“당연하다. 철호군에서 선봉은 항상 그대가 맡아야 하지.”
“감사합니다.”
“우리 철호군의 작전은 간단하다. 멸갑궁단이 치고 들어가면서 십궁단이 적들의 후방을 공격한다. 천지인단은 멸갑궁단의 후미를 따르면서 적을 해산시키고, 그 뒤는 지룡군이 알아서 처리 할 것이다.”
“지룡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손 놓고 있어도 될 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좋다! 그럼 당장 움직인다.”
뿌우우웅-
둥! 둥! 둥!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자오곡을 뒤흔들었다.
홍경은 붉은색의 단궁(短弓)을 양쪽 손등에 걸었다.
그는 언제나 돌격대의 대장을 맡았다.
척.
우자성은 철궁을 손에 들고, 허리에 찬 전실시통(箭室矢筒)에서 철화살을 하나 꺼냈다.
슈우우우욱-
하늘을 향해 철궁을 겨눈 뒤 손가락을 튕겼다.
피우우웅-!
우자성의 손에서 떠난 붉은색 철화살이 날아오르며, 자오곡 대격전의 시작을 알렸다.
핑핑핑- 피이이이잉-!
철궁에서 쏟아진 수천 발의 화살들이 자오곡의 하늘을 가로지르며 아래로 억수같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한순간 새카맣게 어두워졌다.
진영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소리를 쳤다.
“뭣들 하느냐?! 화살이다!”
채애애앵-!
정신을 차린 도사들이 검을 꺼내 떨어지는 화살들을 쳐내며 막아내기 시작했다.
퍽! 퍽퍽퍽!
“으으악!”
하지만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 수천 발을 모두 막아낼 순 없다.
“커억!”
이마에 떨어진 화살에 절명하거나, 전신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하는 종남파 도사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청금당 방기림은 눈꺼풀이 심하게 떨렸다.
무림인에게 화살은 절대로 큰 위험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두 개가 아닌 수천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도저히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하지만 그들의 뒤쪽은 자오곡 절벽으로 막혀 있어, 쉽게 물러날 수도 없었다.
피웅! 피웅!
“악……!”
“아악!”
방기림의 진영 바로 앞에서 끊임없이 비명 소리가 울렸다.
“저들은……!”
하지만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적들이 진영을 향해 달려오며 손등에서 단궁을 쏟아냈다.
“커억!”
종남파 도사들은 눈앞에서 쏟아지는 수백 발의 단궁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퍽! 퍽! 퍽!
단숨에 선두에 섰던 진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종남오검이라 알려진 그들.
“이놈들……!”
수일검(秀一劍) 문상지가 곧바로 전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걱!
그의 검이 펼쳐지자, 멸갑궁단 단원들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엄청난 노기.
“한 놈도 용서하지 않겠다!”
피웅-
문상지는 고개를 돌리며 재빨리 단궁시를 피했다.
“네놈은 누구냐?”
홍경과 문상지가 오 장의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파앗!
타앗!
동시에 달려드는 단궁과 검.
피이이잉-
문상지의 몸을 향해 단궁시가 쏘아졌다.
‘이런 건 날아오는 방향만 보면……!’
휘익.
문상지는 허리를 돌리며 날아오는 단궁시를 피했다.
하나, 순간 득의에 찼던 그의 표정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끼리리릭!
화살촉이 퍼지는 소리.
‘이건!’
퍼어어엉!
화살촉이 터지면서 안에서부터 단침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멍청한 놈.”
핏! 핏! 핏! 핏!
수십 개의 작은 단침들이 문상지의 허리에 박혀들었다.
“욱!”
문상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찔거렸다.
스걱.
문장지의 눈동자를 스친 홍경의 참월극도가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컥.”
수일검의 죽음.
파아아앗!
붉은 피가 흐르면서 목이 꺾였다.
* * *
“어이! 같이 갑시다!”
문령은 객잔을 빠르게 나오면서 소리쳤다.
앞서가던 팽유도는 걸음을 멈추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질긴 사람이네…… 만통자 님보다 더한 것 같아.”
“응, 유도 말이 맞는 것 같아.”
성철각도 달려오는 문령을 보았다.
이들은 동트기 전, 새벽 일찍 객잔에서 나왔다.
“헉! 헉!”
문령은 숨을 내쉬며 바짝 다가섰다.
“사람들이 정이 말라가지고…… 말도 없이 떠나는 게 어디 있소이까?”
“우리가 어디를 가는지 알고나 있습니까?”
“굳이 알 필요 없소이다. 당신들을 따라가는 거니까.”
“따라오는 것은 맘대로라고 치고, 무슨 볼일이오?”
“어제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시오?”
“이름이 문령이라 했소이다.”
“맞소. 기억력이 좋군. 그럼 왜 따라다니는지 설명을 하겠소이다.”
그의 입가에 살소가 묻어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오. 걸협오성을 옆에서 죽이고 싶기 때문이지요.”
“음…… 좋은 이유는 아니군.”
바로 코앞에서 죽이겠다 선언했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문령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진 표정을 지었다.
“에이, 놀라지 않는 모양이군.”
“대충 예상했으니까. 별로 놀랄 것도 없소.”
“그럼 왜 보고만 있었지?”
“뭐,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만약 딴짓을 했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했겠지.”
“크하하하! 내가 아무 짓도 안 했다? 난 두 번이나 네놈들을 죽이려고 했는데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두 번이라는 말에, 당무독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당신이 새를 이용한 독비곡(毒秘谷) 주작성 출신이오?”
“허어, 이거 참. 독광걸, 자네도 대단하군. 독비곡의 존재를 알고 있다니. 놀랐어.”
“겨우 독비곡이 뭐가 대단하다고…….”
당무독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문령을 살폈다.
팽팽한 기의 대결이 이어졌다.
“나쁜 놈이군.”
팽유도의 목소리.
파앗!
팽유도가 등에서 묵흑반도를 꺼내는 동시에 문령을 향해 뻗었다.
흐느적.
문령의 신형이 옆으로 비켜 섰다.
스걱.
객잔의 입구 기둥이 잘려 나갔다.
스르르르륵.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기둥이 두 조각 났다.
“으앗, 이런.”
와르르르-
쿠우우웅!
한쪽 기둥이 쓰러지면서 입구에 세워둔 문의 입구가 일부분 무너졌다.
“에고, 무너졌네.”
“유도야, 잠시 뒤로 물러나 있어.”
팽유도는 슬쩍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성큼!
두 사람 사이에 남하림이 끼어들었다.
“그럼 진법도 당신 짓이네?”
“하하하! 당연히. 세상에서 그 정도 진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던데? 어디서 이상한 것들을 주워 와 말뚝만 박아놓았던데. 그 정도면 나도 펼치겠더만.”
“후개, 당신이 펼칠 수 있다고 했나? 그럼 한번 여기서 펼쳐 보든지. 내가 얼마든지 파훼해 주겠다.”
“원한다면. 잠시 옆으로 오시오. 남의 사업장을 방해하면 되겠소?”
남하림은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크기의 돌을 주워 모았다.
“한번 해볼까?”
휙. 휙. 휙.
남하림은 객잔 끝으로 온 그를 향해 돌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졌다.
열한 개째의 돌을 던진 후, 남하림의 손엔 마지막 한 개의 돌멩이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던지기 전에 포기한다면 안 할 수 있소.”
“시끄럽다. 던져.”
“그럼 당신이 원했으니…… 갑니다.”
남하림은 손에 든 돌멩이를 그의 앞에 던졌다.
스르르르르-
문령이 서 있는 앞에서부터 공간 막이 흐느적거렸다.
팽유도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하림 형, 저거…….”
“지금 진법 속에 갇혀 있어.”
“금방 돌덩어리를 던진 게 진법을 펼친 거야?”
“어. 대충 원리만 알면 쉬워. 가르쳐 줄까?”
“……아니. 괜히 배우다간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일단 주역부터 외우면서 익히면 간단해.”
“쉬, 쉬운 건 형한테만이겠지. 난 다음에 정말 시간이 많이 남으면 배워볼게.”
팽유도는 극구 사양했다.
씩 웃은 남하림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섰다.
“그만 가자.”
“부장, 저 사람을 가만히 둬도 괜찮겠어? 잡아다가 족치면 안 돼?”
“일단 무공이 강해. 우리가 먼저 싸우려고 하면 도망을 갈 게 뻔하고. 저런 놈은 무인의 자존심이 없어. 건들거리는 듯하지만 내가 틈을 보이면 바로 내 목을 찌를 놈이야.”
“그 정도 인물이라고?”
팽유도는 진법에 갇힌 문령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열받게 만드는 거야. 천천히 따라오도록 해서 내게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면, 먼저 싸움을 걸도록.”
“아하, 그래서 계속 달라붙는데도 모르는 척했구나.”
“가자. 나중에 나오면 다시 올 거야.”
남하림은 입구에 멍하니 서 있는 점원 종칠을 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서 뛰쳐나왔다.
“미안하게 됐소이다. 여기, 이걸로 수리를 하십시오.”
남하림의 손에 든 금원보 한 덩어리.
“이건…… 저어…… 혹시 후개님이신지…….”
“후후, 맞습니다. 아, 그리고 저기는 가지 마시고. 나중에 알아서 없어질 것이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헉, 넵. 알겠습니다.”
꾸벅.
종칠의 허리는 무릎에 이미 닿아 있었다.
한 시진이 흘렀다.
스르르르르-
마지막 돌멩이를 들어 올리자 진법이 사라졌다.
“개새끼, 죽는 줄 알았다.”
그는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한 시진이 지났어?’
문령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었건만.
“이거 자존심 상하는군.”
휙.
문령은 손에 든 돌멩이를 던졌다.
‘두고 보자.’
산길을 빠르게 달리던 문령은 걸음을 멈췄다.
“킁킁.”
어디선가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꼬르르-
갑자기 배에서 소리가 났다.
그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쩝…… 오랜만에 몸을 풀었더니 배가 고프네.”
타앗!
그는 발길을 박차며 맛있는 냄새가 나는 장소로 향해 달려갔다.
‘앗…… 저놈들은……!’
불을 피운 뒤 중앙에 모여앉아서 고기를 굽고 있는 다섯 명.
“하하하하! 뭣들 하시오? 그건 무슨 고기요?”
문령은 큰 소리를 내며 다가섰다.
“토끼.”
“대체 몇 마리를 잡았소? 제법 많군.”
“침 흘리지 마시오. 우리도 모자라니까. 많이 돌아다니고 있더이다. 잡아서 직접 먹으시길.”
“허허, 그러지 마시고 한 마리만 적선하시구려. 양도 많구만…….”
스윽.
문령은 손을 뻗어 불 위에 있던 고기를 잡으려고 했다.
휘익!
남하림은 타구봉으로 다가온 그의 손을 향해 내리쳤다.
파앗!
문령은 깜짝 놀라 손을 뒤로 뺀 뒤 물러났다.
“무슨 짓이냐?”
“조용히 말할 때 꺼지세요.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
“삭막하군.”
“우리를 죽이려고 한 인간에게 줄 고기는 없소.”
“아, 진짜…… 좋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더니. 죽고 싶은 모양이지?”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군.”
남하림은 고기를 아래에 내려놓은 뒤 일어났다.
“익으면 먹고 있어.”
“같이 싸울까?”
이휘연도 먹던 고기를 내려놓았다.
“잘난 체하는 이런 녀석은 혼자서도 충분해요.”
“그래.”
남하림과 문령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옆으로 걸었다.
“모르는 사이 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명이나 부탁을 들어서 왔겠군.”
“머리는 좋군.”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후후후, 누굴까? 알아맞혀 보지?”
“내가 몰라서 물어본 것 같소? 보나마나 사파의 혈군사가 보냈겠지.”
“뭐…… 맞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지.”
“당신은 천사회의 인물이오?”
“그런 덜 떨어진 녀석들과는 관계가 없다.”
문령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덜떨어진 녀석들이라. 나도 그건 동의합니다. 그곳이 아니라면 창천이나 현천과 비스무리한 조직에서 나온 거요?”
“……!”
뜻밖의 물음에 문령이 순간 아주 작게 멈칫했다.
“맞는 모양이군. 결국 당신을 보낸 혈군사도 이상한 집단 중 한 곳의 인물이라는 뜻이겠지?”
“그건…….”
정곡을 찌르는 남하림의 말에 대답이 막혔다.
“여하튼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을 할 테니…… 지금부터는 우리 일이나 신경 좀 씁시다.”
“싸우자는 것인가?”
“우리를 죽이려고 오지 않았나? 그럼 싸워야지, 안 그렇소?”
“그렇군. 싸워야지. 얼마나 강한지 직접 상대를 해주겠다.”
남하림과 문령은 걸음을 멈추었다.
“강룡십팔장인가?”
“잘 아는군요.”
“그것 가지고는 나한테 힘들지 않을까?”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
“당연히. 내가 더 강하니깐. 그게 이유지. 크하하하!”
짝짝!
남하림은 그의 대소에 박수를 쳤다.
“당신…… 정말 대단하다. 세상에 나와 비슷할 정도라니. 그 자신감은 인정하지.”
“훗. 인정이라는 것은 무공이 강한 사람이 못하는 녀석에게 하는 것이다.”
“그럼 맞네. 내가 더 강하지 않소?”
“이것 봐라. 후개, 네 놈도 정신승리를 잘하는 놈이군. 그래서 이상하게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든 모양이야.”
“음…… 당신은 인성에 문제가 있군. 혹시 주위에 친구가 없지 않소?”
슈우우욱.
문령은 살기를 내뿜었다.
“같이 잘 지내볼까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안 되겠어. 마음에 너무 안 들어.”
“나도 당신 같은 사람은 사절이외다.”
우우웅-
문령의 내력.
붉은 기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의 눈동자가 투명한 붉은색의 눈동자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