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창천
“헉!”
만통자는 숨이 넘어갈 뻔했다.
“방금 창천이라 했나?”
“그렇다고 하네요.”
남하림은 당천금옥에서 알아낸 사실을 만통자에게 알려주었다.
당주영을 뒤에서 사주한 인물.
천령자라 하며, 소속은 창천이라 했다.
“노인장, 역시 창천에 대해서 알고 있군요. 거긴 뭐 하는 곳입니까?”
“내가 알 것 같아서 말해준 것이더냐?”
“그럼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그곳이 어디입니까?”
“…….”
만통자는 남하림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계속 함께하고 싶었는데, 어디 갔다 와야 할 것 같다.”
“현천회에 돌아가시는군요. 굳이 가시는 거면 오지 않아도 됩니다.”
“현천회에 다녀와서 이야기해 주마.”
“현천과 창천이라……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하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맞습니까?”
“…….”
“훗, 노인장은 대답을 안 해도 얼굴에 적혀 있어요. 이거 참…… 당황스럽네요. 중원 무림에 우리가 모르는 이상한 곳들이 이렇게 많다니.”
“후개, 나중에 말해주겠네. 지금은 나도 당황스러워. 다만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무림은 한 사람에게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흠, 무림을 속일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 내가 생각하는 그가 맞다면 충격은 충격이겠네요.”
“……끄응.”
만통자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조심해야 할 게야. 그놈들은 지금까지 만난 놈들과 차원이 다르다.”
“아하하.”
“왜 웃느냐?”
“노인장 말대로 조심은 하겠지만 무공 솜씨는 별반 다른 게 없던데요.”
환하게 웃는 표정의 남하림.
만통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놈이라는 걸 잊었군.’
“창천이고 천황이고 신경 안 씁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면 치우면 그만일 뿐.”
만통자는 걱정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자신만만한 남하림을 쳐다보았다.
* * *
당문에서의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부장, 만침독본에서 찾아봤는데 동물을 이용해서 독을 펼친 문파가 백 년 전에 있더군.”
“지금은?”
“흠, 그 뒤로는 기록이 없어. 하지만 가주님 덕에 중원 무림에서 해결되지 않은 중독 사건 모음을 살펴보다가, 그들이 아닌가 싶은 사건들을 찾았어.”
“그게 뭐야?”
“원인 모를 중독 사건들. 혹시 삼십 년 전 천강문이 멸문된 사건 알아?”
“어? 무독 형, 장강의 천강문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 삼십 년 전 장강 일대에서 최고의 문파였지. 본진 건물이 장강 하직도에 세워져 있어서 배 없이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중독돼서 멸문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아…… 하, 그럼 새를 이용해서 중독시킬 수도 있었겠네요.”
“그때 천강문을 공격한 곳이 구천마성 소속의 주작성(朱雀城).”
“……!”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따악!
그때 남하림이 손가락을 튕겼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재미있지 않아? 그런 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는 게.”
“부장의 말이 맞다. 어차피 싸울 거라면 센 놈과 싸우는 게 재미있지.”
팽유도도 기운을 냈다.
“으라라라차! 휘연 형 말처럼 구천마성 정도는 되어야 우리 상대가 되죠!”
“뭐, 누구든지 우릴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걸 알려줘야지.”
남하림은 형제들과 낄낄대며 웃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편히 지내기는 어려울 듯했다.
‘어휴, 시대를 잘못 태어났어. 하늘이 곱게 살도록 날 내버려 두질 않는군.’
* * *
“흐음…….”
추멸선자는 떠나기 위해 방을 정리하는 연홍을 지켜보았다.
내일이면 두 사람 모두 당문을 나서야 했다.
“잠깐만 앉아봐라.”
“네. 선자님.”
그녀는 곧바로 추멸선자의 앞에 앉았다.
“이제 돌아가면 무엇을 할 테냐?”
“……아직은…….”
“내가 준 돈은 있겠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게다.”
“열심히 일을 찾아보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못할 짓을 했다.”
“괜찮습니다. 저 또한…… 그러했을지도 모릅니다.”
“고맙다. 그렇다고 내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추멸선자는 며칠 동안 결심한 생각을 말했다.
“나와 같이 가지 않겠느냐?”
스윽.
연홍은 그녀를 보았다.
“저도…… 가고 싶지만 어머니께서 편찮으십니다.”
연홍의 어머니는 치료를 받은 후 몸이 많이 좋아졌지만, 혼자 두고 갈 수 없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넌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추멸선자의 말에 연홍은 흔들렸다.
그녀의 일생에 다시없을 기연이 눈앞에 있었다.
“내일 나와 함께 어머니를 만나보면 어떻겠느냐?”
“네…….”
연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방문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접니다.”
“후개인가? 들어오시게.”
드륵.
남하림은 방으로 들어섰다.
“마침 밖에서 우연히 들었습니다.”
“귀도 밝군.”
“하하, 혹시나 제 욕을 할까 싶어서요.”
“후개는 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하림은 연홍을 보았다.
망설이고 있었다.
“선자님을 따라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어려움이야 많겠지만, 여기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어머니가 걱정되겠지만 자신의 미래도 생각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내 미래…….’
연홍은 늙어 죽을 때까지 아무런 희망이 없는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추멸선자를 따라가면 힘든 일은 많겠지만 다른 일생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네. 후개님의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만일 어머니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면 당문에 부탁을 해보도록 하죠.”
“후개님…… 그,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고맙습니다.”
연홍의 눈에서 감사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 *
무림맹 군사의 공표에 종남파는 처음에는 반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바뀌어갔다.
무림맹의 두 군단.
지룡군과 철호군이 점점 다가올수록 종남파는 적막감에 휩싸였다.
한 도인이 종남산 금화동에 올랐다.
“하아아…….”
긴 한숨이 나왔다.
장문인 선류자는 아래 종남파의 경내를 무거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수백 년의 전통이 담긴 곳이거늘…….’
구천마제 시절에도 굳건히 지켜냈던 종남파의 자존심이, 무림맹에 의해 무너질지도 몰랐다.
‘어찌 선조님들을 만나 뵐 수 있을는지…….’
두 번의 서신을 보냈지만 그대로 돌아왔다.
무림맹 군사의 뜻은 완고했다.
‘군사는 이번 기회를 이용하려고 한다. 무림맹을 완전히 그의 손발로 만들고자…….’
선류자는 군사 제갈령의 야망을 느낄 수 있었다.
‘백리세가를 칠 때 알았어야 했거늘!’
이번 일로 무림맹은 중원 무림 연합 세력의 모임이 아닌, 단일 세력으로 인식될 것이 분명했다.
“군사. 이렇게 하면서까지 그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소이다.”
스으윽.
고뇌하는 선류자의 뒤로 도인이 다가왔다.
외당 당주 운지명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장문인. 모두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정말로 가는군.”
“자오곡(子午谷)에서 그들과 결전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오곡이라…… 결국 종남파의 운명은 천명에 맡겨야 하는 것인가.”
* * *
어둠이 짙은 밤.
마지막으로 당문에서 지내는 저녁이다.
스윽.
당무독은 야심한 밤에 자신을 찾아온 인물의 뒤를 따랐다.
‘여기는……?’
당문 가주의 개인 연무장.
안에서 당염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너라.”
당무독이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당염청은 연무장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겠지. 그 전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느냐?”
“네. 말씀하십시오.”
“너에게 당문은 무엇이냐?”
“제 뿌리입니다.”
“후후, 그럼 개방은?”
“저에겐 새로운 삶을 준 터전입니다.”
“오 년이 남았다. 당문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있느냐?”
“가주님, 제가 있는 장소가 중요하겠습니까? 개방에 있으면 어떻고, 당문에 있으면 어떻습니까. 항상 제 마음에는 두 곳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전 당문 출신이며 개방의 거지. 이 사실은 중원 무림인 모두 압니다.”
“후후후, 그렇구나. 내 생각이 짧았다. 난 네가 당문을 버린 줄 알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좋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를 가르쳐 주마. 당주영과 싸울 때 보았다. 당문의 제자라면 당연히 한두 개 정도는 당문의 무공을 펼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
“그래서 오늘 한 가지 무공을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무공을요?”
당무독은 설마 당염청이 직접 무공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후개는 상가의 인물이니 예외이지만, 다른 아이들을 보니 그들 본가의 무공을 제법 익히고 있더구나. 당연히 너도 세가의 무공을 익혀야지 않겠는가. 내가 가르쳐 주는 무공은 비천유성멸우(秘天流星滅宇)라고 한다.
“……!”
당무독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비천유성멸우?
방금 정말로 비천유성멸우라고 한 것이 맞나?
“가주님, 그 무공은…… 세가의 직계 중에서도 적자이거나 소가주에게 이어져야 할 무공입니다! 제가 함부로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닙니다!”
“항상 예외는 있지. 가주인 내가 너를 제자로 삼는다면 가능하다.”
“……그, 그건.”
당무독과 당염청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 제자가 되기 싫다면…….”
“아, 아닙니다. 당연히 저야 좋습니다. 다만…….”
“됐다. 다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넌 비천유성멸우만 익히면 된다. 너 또한 알 것이다. 당문의 역사상 그분 외에는 이 무공을 극성으로 이룬 분이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너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지.”
당문의 인물들이라면 수없이 들어온 비천유성멸우의 무공.
당문 조사이신 비황 당사항의 유품에서 발견된 무공이었다.
그 후 수많은 당문의 인물들이 수련했지만.
모두 실패.
세월이 흘러 당문인들은 비천유성멸우를 가리켜 불완전한 무공이라 결론 내리기도 했다.
“어떠냐? 자신이 있느냐?”
“네. 한 번 익혀보겠습니다.”
“좋다. 그럼 구결을 먼저 가르쳐 주겠다. 외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당염청은 천천히 구결을 알려주었다.
“황우진하(黃雨震河) 후요공강(侯曜共姜) 우주서항(宇宙徐抗) 소조양시(疏阻揚視)…….”
당무독은 입안에서 중얼거리며 구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구결을 마친 당염청은 잠시 기다렸다가 물었다.
“다 외웠느냐?”
“네. 모두 외웠습니다.”
‘아니…… 한 번에 외웠다고?’
당염청은 믿기지 않았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한 번 외워보거라.”
“네. 헌영시구(獻永視究)) 무운동우(舞運動雨) 황우진하(黃雨震河)…….”
당무독은 비천유성멸우의 첫 구절부터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완벽하게 외웠다.
‘정말로…… 구결을 한 번에 듣고 외우다니…… 이런 녀석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개방에 줬다니.’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그의 능력을 확인했다면 개방에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휴우, 그래도 이 아이가 당문을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군.’
우우우웅-
당염청은 내력을 올렸다.
팟!
그의 등 뒤로 광채가 올라오며 기가 솟구쳤다.
“잘 보아라. 이것이 비천유성멸우이니라.”
말로 들었던 당문 최고의 비전.
당무독은 눈을 크게 뜨며 지켜보았다.
우우우우우웅-
하늘로 솟구친 기가 뭉치면서 유성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스르르르륵-
붉게 변한 유성이 전방에 보이는 벽을 향해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번쩍!
그리고 이어진 폭발.
두두두두두!
벽을 향해 유성의 파편들이 쏟아졌다.
마치 하늘이 그대로 떨어진 듯.
벽을 가격하는 소리가 한참 동안 울렸다.
‘대단해. 위력만큼은 만천화우보다 절대로 강하다!’
“휴우…….”
당염청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전신의 내력을 다해 펼친 탓인지 기력이 다한 모습이었다.
“어떠냐?”
“최고였습니다! 당문의 그 어떠한 무공보다 강함이 뛰어났습니다. 만천화우보다 강한 듯합니다!”
“단지 강함뿐이더냐?”
“네, 그렇습니다.”
당무독은 사실대로 말했다.
“비천유성멸우는 강하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느냐?”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라도 비천유성멸우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하하!”
당염청은 한 번에 자신이 펼친 무공의 단점을 찾아낸 당무독의 능력에 다시 놀랐다.
“맞다. 하지만 그건 무공의 문제가 아니지. 내가 부족한 탓이다. 너라면 비천유성멸우를 완벽하게 펼치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꼭 성공하여 가주님의 염원에 보답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좋다. 초식을 가르쳐 주마. 자세히 지켜보도록 해라.”
당염청은 천천히 손과 발, 그리고 전신을 움직이며 당무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 * *
장구분타로 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창걸과 장구분타의 개방도들은 앞다투어 꾸벅 인사했다.
“분타주님. 그동안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후개님, 걸협오성님들과 함께한 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혹시 다음에도 시간이 나시면 꼭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하지요.”
“그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창걸은 분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아! 그만 돌아가자!”
“예에이……!”
“양충아! 시원하게 한 곡 뽑아라!”
“저어어어어얼…… 씨이이이이이구!”
장구분타로 떠나는 개방도들.
남하림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림 형, 이제 우리도 가죠.”
“갑자기 우리끼리 있으니깐 조용하다.”
“그러게. 노인장도 뭐가 급한지 일찍 떠나더군.”
창천의 존재에 대한 말은 없이 그냥 떠나 버린 만통자였다.
“창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무림에 있을까? 당 가주님은 모르시더군.”
“군사, 그 양반이라면 알지 않을까요?”
“뭐, 알겠지. 근데 물어보기 껄끄러워서.”
“이히히.”
팽유도는 웃음이 나왔다.
“왜 웃냐?”
“형도 껄끄러운 사람이 있는 게 신기해서요.”
“난 뭐…… 사람도 아니냐?”
남하림은 제갈령의 소름 돋는 눈동자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팍팍 흔들었다.
두두두두-
그때.
멀리서 흙먼지가 하늘로 솟구치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우리한테 오는 것 같은데요?”
“누구지?”
기마대의 등 뒤로 무림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하림 형, 무림맹 사람들 같아.”
“뭐야? 어떻게 알고 여기로 달려와? 그 양반 또 귀찮게 할 모양인가 보군.”
히이이이잉!
열 마리의 기마대가 멈췄다.
휘익.
선두 말에서 내린 중년 사내가 앞에 서 있는 다섯 명 앞으로 다가갔다.
‘음…… 복장을 보면 맞는 것 같은데…….’
걸협오성의 인상착의는 무림에 알려진 그대로.
다만 이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야 했다.
척!
그는 두 손을 강하게 부딪쳤다.
“무림맹 사천지부 경무송이오. 걸협오성이시오?”
“그렇소.”
“군사집무령패를 지니고 있다고 했소이다.”
척.
남하림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허리품 안에서 신패를 꺼냈다.
“이거면 되겠소?”
“군사님의 전서를 가지고 왔소.”
“아.”
경무송이 서신을 남하림에게 내밀었다.
남하림은 물끄러미 서신을 노려보았다.
‘이걸 안 받으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