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당주영을 잡다
“그렇습니까?”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는가?”
당염청은 앞을 막아선 이휘연과 성철각을 슬쩍 보았다.
“당연히 들어오셔도 됩니다.”
남하림을 따라 당염청이 안으로 들어섰다.
스윽.
그는 걸음을 멈추며 추멸선자가 있는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주님, 이쪽으로 드시지요.”
남하림은 반대편 접객실로 그를 안내했다.
“알겠…… 네.”
당염청은 돌아서며 남하림을 따라 들어섰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
당염청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추멸선자가 깨어났다고 들었네.”
“꽤 신경을 썼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긴 당문일세.”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명확했다.
“아하, 여기저기 거지들이라 자꾸 밖을 보면 망각을 해서요. 여기가 어디인지 헛갈립니다.”
“이해하도록 하지.”
“가주님께서는 추멸선자를 만나려고 오셨습니까?”
“맞네. 서윤을 죽이려고 한 이유를 묻고 싶네.”
“제가 전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네.”
“만나고 싶어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만나야겠네.”
덜컹!
그때, 접객실의 문이 열렸다.
연홍의 부축을 받은 추멸선자가 문밖에 서 있었다.
“염청,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뻔뻔하군요.”
“……부선.”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시오.”
“잠깐만. 진정들 하시죠.”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추멸선자에게 자리를 건넸다.
연홍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탁자에 앉은 세 사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왜…… 그 아이를 죽이려고 했소?”
찌릿!
추멸선자가 살기 띤 눈으로 당염청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내 아이를 죽였으니까.”
“……!”
당염청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하하하하! 당염청, 설마 내가 모를 줄 알고 발뺌을 하는 것이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게요! 내가 그 아이를 왜 죽였단 말이오?!”
타앙!
추멸선자는 탁자를 내리쳤다.
“염청,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그대가 산파와 내통하여 아이가 죽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죽지 않았지.”
당염청은 온몸에 힘이 빠졌다.
‘어떻게 그 사실을……!’
오로지 혼자 알고 있는 비밀이었건만.
“당신은 자신만을 위해 나에게서 그 아이를 훔친 뒤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어!”
“부선.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소?”
차분하면서 화가 난 듯한 당염청의 목소리.
추멸선자는 당염청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누가 나에게 말했는지 그대는 알 필요 없지.”
“맞소. 난 당신의 아이를 훔쳤소. 차라리 그게 당신의 앞날에 나을 것이라 판단했으니까.”
“하, 당신이 왜 내 인생에 관여하지? 당신 말대로 우리 인연은 그때 끝나지 않았나?”
“……미안하게 됐소. 모든 게 내 불찰이오.”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무릎을 꿇은 당염청의 모습.
“난…… 당신의 아이이기도 했지만 내 아이였소. 제대로 키울 수는 없으나 모두에게 사랑받으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소. 당신과 나. 우린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소.”
“…….”
“당신에게 욕을 먹는 나쁜 놈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그는 진정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정말로 죽였다고 생각하시오?”
“그…… 아이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당연하지 않소. 세상에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부모가 어디 있소?”
“어디에…… 그 아이는 어디에 있지요?”
“잘살고 있소이다. 걱정 안 해도 되오. 이번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겠소.
고개를 숙인 당염청의 모습에 추멸선자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주영이다. 그놈이 찾아와서 모든 사실을 말해주었다.”
‘주영, 그 녀석이 어떻게……? 아!’
당염청은 확신했다.
당문에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돌아가신 전대 가주뿐.
“화가 풀리지 않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시오. 이번 일을 처리한 뒤 다시 찾아오겠소이다. 그동안 몸조리나 잘 하시오.”
“그 말을 믿어도 되나요?”
“비록 내가 키우진 않지만, 내 아이에게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소.”
당염청은 남하림을 보았다.
“후개, 방금 들은 이야기는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소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주영, 보아하니 그놈 주위에 우리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이 있는 듯하군.”
“그렇지 않아도 당주영과 함께 있던 인물과 휘연 형이 한 번 부딪혔습니다. 홍광지를 펼쳤다고 했습니다.”
“방금…… 홍광지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절대지법 홍광지가 무림에 다시 나타났다…… 그 무공은 그가 죽으면서 실전되었던 무공이거늘.”
당염청의 안색이 굳어졌다.
‘홍광지를 펼치는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은…… 구천마제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군림무용신(君臨無容神) 구천마제.
맹주 유극지에게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의 죽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후개, 당장 당주영을 잡아야겠소.”
당염청은 빠르게 밖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독영자, 당장 당주영을 잡아들여라.”
벌떡!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선, 먼저 일어나겠소. 몸조리 잘하시오.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소이다.”
“…….”
추멸선자는 급하게 접객실을 나서는 당염청을 말없이 보았다.
스윽.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쳤다.
“후개.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큰 잘못을 했는가?”
“음…… 잘한 일은 아니죠.”
피식.
그냥 실소가 나왔다.
“은근히 돌려서 말하는군.”
“직설적으로 말하면 선자께서 아프시지 않겠어요?”
“지금 그대가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인가? 눈물이 나려고 하는군.”
“제가 정이 많아서.”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 일이 잘못되었다면 아미파에도, 사천당문에게도…… 바보같이 눈이 뒤집어져서. 확실히 알아봤어야 했거늘.”
“참작할 만한 여지는 있으니 뭐. 어쨌든 잘못한 것은 책임지시면 됩니다.”
“맞다. 책임을 져야겠지. 근데…… 어디에서부터 해야 할지.”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남하림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허, 이거 참…… 상당히 웃긴 녀석이군.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느냐?”
“일단 몸을 추스르시면, 그다음 하나씩 알려 드리죠.”
“알겠다. 그렇게 하지.”
추멸선자는 방을 나가는 남하림을 보다 눈을 감았다.
그동안 짓누르던 마음의 짐이 사라진 듯, 몸이 가벼워졌다.
* * *
다다다다!
오십 명의 독가위사(毒家衛士)들이 건물을 포위했다.
개방의 추적에 의해 당문에서 사라진 당주영을 발견했다.
당문 외부에 마련된 안전가옥.
척!
수하가 안의 상황을 보고했다.
“당주영은 안에 있습니다.”
“수고했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지켜라.”
휘익.
독영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 있군.’
복도 끝에 있는 방에서 당주영의 기척이 느껴졌다.
복도에 설치된 기관 장치.
‘이런 유치한 장난이라니.’
스르르륵-
독영자의 신형이 사라졌다.
접근하던 기가 소리 없이 사라지자 당주영은 긴장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인물인데.”
독영자는 오직 가주 당염청만이 알고 있는 존재.
“어딜 보는가?”
‘뒤!’
휘릭!
당주영의 손에 들려 있던 천비침기(天飛針機)가 독침을 발사했다.
파파파팟!
수십 발의 독침이 독영자를 향해 날아갔다.
퍽퍽퍽퍽!
독영자가 옆에 놓여 있는 탁자를 당겨 독침을 막아냈다.
휘익!
당주영은 빠르게 돌아섰지만 독영자의 모습은 다시 사라졌다.
‘빠르다! 어디로 갔는지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따악!
‘하는 수 없군.’
당주영은 긴 막대기 같은 물건을 꺼낸 뒤 두 손으로 꺾었다.
피시시시식!
독무가 흘러나왔다.
“이 정도면 나타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방 전체를 가득 채운 독무.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고?’
“아직도 나를 못 찾는군.”
“……!”
방 전체에서 소리가 울렸다.
‘할 수 없군.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타아아앗!
당주영은 창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다다다다-
밖에 있던 독가위사들이 바닥에 내려선 그를 순식간에 포위했다.
“움직이지 마라!”
“가소롭긴!”
번쩍.
파아아아앗!
사방으로 퍼져 나간 열두 자루의 비검.
그의 주특기인 십이환살이다.
까아아아앙!
독가위사들은 왼손에 낀 철방패를 앞으로 세우며 비검을 막아냈다.
슈우우우웅-
순간, 당주영의 양손이 검게 변했다.
마치 괴수의 앞발처럼 변해가는 그의 손.
쏴아아아아-
흉흉한 기운을 떨친 당주영의 양손이 방패를 펼치며 막아선 독가위사들을 향해 뻗어갔다.
치지지직-!
녹아내리기 시작한 방패!
“아악! 독수다!”
“커어어억-”
독가위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파앗!
“당주영, 너무 설치는군.”
‘이 목소리는……!’
그의 뒤로 내려선 당염청.
“네놈이 변절자일 줄은 몰랐어.”
“그럴까?”
“건방진 놈.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군!”
당염청이 마무리를 짓고자 손을 뻗은 그때,
파아아앙!
당주영의 신형에서 빛이 먼저 터졌다.
팟팟팟팟팟!
사방으로 퍼져 나간 빛.
광침(光針)이 당염청의 전신에 쏟아졌다.
‘욱, 이런……!’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펼쳤지만 광침을 완전히 막아낼 순 없었다.
“우우욱.”
당염청의 다리가 풀리면서 휘청거렸다.
“네…… 놈이…… 어떻게…… 태광비…… 성…… 을……!”
“궁금하면 지옥에 있는 염라대왕에게 물어보든지.”
쉬이이익!
당주영은 손목에서 빠져나온 단검.
검붉은빛의 검날이 당염청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이놈, 물러나지 못할까?!”
까아앙!
순간, 독영자가 당염청의 앞에 나타나며 단검을 막았다.
‘우우욱.’
독영자의 눈이 당주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팟! 팟! 팟!
“이놈! 죽어라!”
독가호위들 또한 노성을 터뜨리며 당주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불나방 같은 놈들…….”
콰아아앙-!
당주영은 뒤로 물러나며 폭무탄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독무가 솟구쳤다.
‘크윽, 이놈이 어디로……!’
새까만 독무가 퍼지면서 시야를 가렸다.
“크으으으, 당주영…… 이놈……!”
당염청은 내력을 올려 당주영을 찾았다.
핏! 핏! 핏!
“악!”
“아악.”
그사이에도 독가호위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렸다.
‘크큭, 그분께서 전수해 주신 독종 덕에 당문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당주영은 독무 속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당염청을 노려보았다.
‘후후, 당염청. 당신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타앗!
당주영의 양손에서 단검이 빠져나왔다.
피우우우우웅-
공간을 찢는 파공음!
‘이런, 막을 수 없어!’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예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염청은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까아아아앙!
그때, 무언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청명하게 사위를 울렸다.
옆으로 몸을 돌린 당염청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떨어진 단검과 멀쩡한 형태의 돌멩이 하나.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무독……?”
그리고 독무 속에서 돌멩이를 쥔 당무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놈이…….’
자신을 방해한 당무독을 발견한 당주영이 살기를 내뿜었다.
“무독! 괜한 일로 목숨을 잃고 싶은 모양이지?!”
“언제부터 그렇게 멍청해졌소? 너무 멍청해서 주위가 안 보이나?”
휘이이이잉-
강풍이 불어왔다.
독무가 바람에 쓸려가면서 주위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처억. 척.
속속들이 모여드는 당문의 무인들.
“대체 얼마나 자신만만하면 멀리 도망을 안 가는 거요? 혹시 여기를 못 찾을 거라 생각했소?”
당무독의 말이 맞았다.
당문을 떠나는 김에 당염청의 목 하나 정도는 들고 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젠장…… 그냥 갔어야 했다.’
휙!
당무독이 돌멩이를 던지자.
한 마리의 제비가 물 위를 스치듯 당주영을 향해 날아갔다.
“흥! 겨우 그 정도…….”
휘릭!
굳이 막을 필요도 없이 피하면 된다고 여긴 순간,
옆으로 지나간 돌멩이가 방향을 바꾸며 당주영의 등을 가격했다.
퍽!
“악!”
상상하지도 못한 궤도.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당주영은 긴장했다.
“돌멩이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넌 이미 죽었어. 멍청한 놈.”
당염청은 한 발 물러난 뒤 흐트러진 내기를 운기하며 당무독을 보았다.
‘저 아이의 무공이 이 정도로 엄청날 줄이야…… 평정심을 잃지 않고 상대를 압도하고 있다.’
“……이 자식이……! 개방의 거지가 됐다고 해서 감히 네놈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두려운 모양이지? 잘난 척하는 놈은 정말로 잘난 사람을 보면 겁을 먹는다고 하더군. 지금 보니 딱 네놈이 그런 경우인데.”
“네놈의 입을 찢어 버리겠다!”
타앗!
당주영은 단숨에 당무독에 앞에 다가섰다.
번쩍!
광침이 폭발했다.
“크크크크! 이놈, 태광비성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웅웅웅웅웅-
당무독은 내력을 올리며 주위에 떨어진 돌멩이들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팅! 팅! 팅! 팅!
광침이 소용돌이를 뚫지 못하고 돌멩이와 부딪혀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주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광침을…… 막아내다니……?”
“변절자가 무슨 광침이야. 흉내만 겨우 냈을 뿐이구만.”
투투투투투!
광침을 막아내던 돌멩이들이 당주영을 둘러싸며 가두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아아악!”
소용돌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았다.
“이제 끝이야.”
“아아아아아아아악!”
당주영은 소용돌이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휴우…… 별거 아니네. 옛날에 괜히 겁먹었군. 손해 봤어.”
당염청은 당무독을 보며 한 가지 결심을 굳혔다.
‘저 녀석을 개방에서 데리고 와야 한다. 지금 안 된다면, 오 년 뒤 계약이 끝나는 동시에 무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