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14화 (115/328)

114. 진실

후다닥.

창걸은 별관으로 급하게 들어섰다.

펄럭.

그의 손에 서너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망둥이! 후개님은 계시냐?”

“방에 계실 겁니다.”

창걸은 곧장 추멸선자가 치료를 받는 방으로 향했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모양이군.’

추멸선자는 여전히 혼수상태.

창걸은 밖에서 남하림을 불렀다.

“후개님.”

“알겠어요.”

문이 열리며 남하림이 밖으로 나왔다.

창걸은 손에 든 전서를 내밀었다.

“연중분타에서 온 전서입니다.”

“고마워요.”

세 장으로 된 전서.

‘상세하게 적었군.’

슥슥.

남하림은 한 장씩 넘기며 전서의 내용을 읽었다.

‘흐음.’

남하림의 콧등이 살짝 움직였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조금 이해가 가긴 하네요.”

“그런 듯합니다.”

“수고했어요.”

남하림은 전서를 들고 추멸선자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부장, 무슨 일이야?”

“이걸 읽어봐.”

당무독은 치료를 마치고 일어섰다.

“……!”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사실이라면…….”

“소가주를 죽이려고 한 이유가 되기는 해. 안 그래?”

당무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부장, 소문만으로 확신할 순 없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어? 당사자가 아니라면…… 당문에서 사실대로 말해줄 만한 사람이 있나?”

“……한 사람은 가능할지도 몰라.”

“누구?”

“아버지를 만나 봐야겠어.”

* * *

창독원(創毒院).

새로운 독을 만들어내거나 연구하는 중요한 부서.

……이기는 하지만, 무공이 약하거나 세력이 약한 인물들이 주로 배정받는 곳이기도 했다.

“아버지!”

“삼독실에 있다! 잠깐만 기다려라! 나가마!”

원주 당지환이 고개를 밖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아들 당무독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탁! 탁!

“첫날 한 번 코빼기만 보이고는 한 번도 오지 않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느냐?”

그는 손을 탁탁 털고 삼독실을 나왔다.

당무독 옆에는 싱글싱글 웃는 남하림도 있었다.

“후개도 왔군.”

“아버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남하림은 술병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으흐, 역시 배운 자식은 다르구만.”

“별로 좋은 술은 아닙니다.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것으로 들고 오겠습니다.”

“정성이 중요한 것이지. 고맙다. 자자, 내 방으로 가자.”

세 사람은 원주실로 자리를 옮겼다.

당지환은 앞에 앉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냥 내 얼굴을 보려고 온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이냐?”

파앗!

남하림은 원주실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내력으로 주변을 둘러쌌다.

“허허, 무림에서 후개, 후개 하는 이유가 있었구만. 네 녀석도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부장만큼은 안 돼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허, 정말이냐?”

“아버님, 무독도 걸협오성입니다. 제법 강합니다.”

“하하하! 내 씨앗에서도 이런 놈이 나오는구나!”

당지환은 창독원의 원주이지만, 청년 시절에는 무공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인물이다.

“후개, 고맙다. 내 꿈이 이루어진 것 같군.”

“무독이 열심히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있었군요.”

당무독은 시간이 날 때마다 무공 수련을 꾸준히 했다.

그 과정에서 항상 무공의 무리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고.

“근데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뭐가 궁금해서 찾아온 것이냐?”

“별관에 추멸선자가 부상을 당한 채 있습니다.”

“……!”

당지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냥 놀란 것이 아니라 걱정이 섞여 있는 눈빛.

‘추멸선자와 당문. 이분도 뭔가 알고 계시는구나.’

스윽.

남하림은 전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

“한번 보시지요.”

당지환은 연중분타에서 보내 온 전서를 읽은 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가주도 그녀가 별관에 있는 것을 아느냐?”

“네. 알고 계십니다.”

“지금 곁을 누가 지키고 있느냐?”

“만일을 위해 동료들 모두 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남하림은 창독원으로 오기 전, 당주영을 감시하던 이휘연과 팽유도까지 부른 후 성철각과 함께 별관에 남아 있도록 조치했다.

“잘했다.”

당지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당 가주와 추멸선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적힌 대로 두 사람은 한때 연인 사이가 맞다. 가주와 난 친척이지만 그들 무리와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 늘 멀리서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고…… 뭐, 내가 하는 일이 주로 밖을 나돌아 다니는 거였어서 가끔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도 우연히 볼 수 있었지.”

당지환의 이야기는 일각 동안 이어졌다.

“그들이 헤어진 이유는 전대 가주의 반대도 있었지만, 나는 가주의 변심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가주가 객잔에서 여인과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항상 다른 여인이었거든.

가주가 왜 나에게 특별히 잘해주는지 아느냐?”

“아. 뭔지 알겠습니다.”

“맞다.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 나쁜 짓은 아니었으니까. 나도 말을 하지 않았고.”

“……서윤 형님이 왜 그리 밝히는지 알겠네요.”

“여하튼 그런 일들이 있고 난 후, 지금의 대부인과 혼인했다.”

사내와 여인이 사귀고 헤어지는 건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당지환의 말은 이어졌다.

“흠,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그날도 독초를 구한 뒤 성도로 돌아올 때였다.

고개를 숙인 채 울면서 성문을 나가는 여인을 보았지. 추멸선자임은 확실했다. 근데…… 임신한 상태더군. 순간 누구를 만나고 갔는지 깨달았어.”

“연중분타에서 조사한 소문이 맞았군요. 추멸선자가 누군가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이 한동안 떠돌아다녔다는 게…….”

“……언젠가는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추멸선자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보니 소가주와 연관된 모양이군.”

“모른 척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은 저희들이 처리하지요.”

“에휴, 알겠다. 잘 부탁하마. 당문에 피해가 가더라도 최소한으로 해주었으면 한다.”

“걱정 마십시오. 무독과 함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잠시 후.

창독원을 떠난 남하림과 당무독을 생각하며 그는 대견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난 성공했어.”

쪼르르르-

자랑스러운 아들놈과 그 후개가 직접 가져온 술.

“캬아아- 술이 달군. 달아!”

* * *

당염청은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기댔다.

‘추멸선자…… 부선…….’

수십 년 동안 잊고자 했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그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한 범인이 추멸선자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녀가 당문에 의해 부상당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오…… 우리의 인연은 그때 끝이 났거늘.’

당염청이 허공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독영자는 있는가?”

스륵.

그의 앞으로 묵의인이 내려섰다.

“주군, 찾으셨습니까?”

“별관에 가서 추멸선자의 상태를 알아보게.”

“…….”

“그녀가 깨어나면 바로 전달하도록.”

“존명.”

스르르르-

묵의인의 신형이 가루처럼 흩날리며 사라졌다.

‘왜 그 아이를 죽이려 한 것이오. 왜…….’

* * *

“으으으-”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추멸선자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앗, 깨어나는 것 같아.’

추멸선자는 손을 힘겹게 부르르 떨고 있었다.

스윽.

연홍은 그녀의 손을 얼른 잡았다.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으…… 으…….”

연홍의 따뜻한 손안에서 조금씩 진정됐는지, 추멸선자의 신음 소리는 점차 안정되었다.

스으으으-

추멸선자는 힘겹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던 여인의 얼굴이 흐렸다.

“게…… 누구요?”

드륵.

그때, 방문이 열리며 다섯 사람이 들어왔다.

당무독이 먼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선자, 잠시 맥을 잡을까 합니다.”

“…….”

기력이 떨어진 것 외에는 안정기에 들어섰다.

“부장, 이젠 괜찮아.”

당무독은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시력이 조금씩 돌아오자, 자신을 내려다보는 인물들의 얼굴이 명확해졌다.

‘이놈들은……!’

거지 복장의 다섯 사람.

걸협오성이 분명했다.

추멸선자는 화들짝 놀라 몸이 굳어졌다.

황급히 눈을 돌려 검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계시죠. 괜히 힘쓰다가 다시 졸도할지 모릅니다. 그럼 죽게 내버려 둘 거고요.”

“…….”

그녀는 경계하며 남하림을 올려다보았다.

“네놈들이…… 왜…… 나를……?”

“창걸 분타주가 죽어가는 당신을 업고 오더군요. 그 자리에서 죽도록 가만히 두었으면 신경도 안 쓰이고 좋았을 텐데, 막상 사람이라는 게 인정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애민정신이 강해서요. 일단 어찌 될까 봐 살려는 놨습니다.”

“…….”

추멸선자는 능글거리는 남하림에 표정에 어이가 없어졌다.

“원래 후개가 이런 인물이었나? 소문과 다르군.”

“소문보다 더 멋지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잘난 체하는 놈이 제일 꼴 보기 싫지.”

“동의합니다. 꼭 못난 놈들이 잘난 체를 하더군요. 전 진짜 잘났기 때문에 싫어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입니다.”

“황당한 인물이군. 항걸님보다 더한 놈이 있을 줄은…….”

“아하! 사부님을 아시는 모양이군요. 이게 바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죠.”

“됐다. 무슨 이유로 살렸는지 모르나 나에게 좋은 말은 기대하지 마라.”

“그러죠. 하지만 당신을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보살펴 준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 인사는 하세요.”

남하림은 뒤에 가려져 있던 연홍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추멸선자의 눈이 커졌다.

‘설마……!’

연홍은 추멸선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왜…… 나를…… 수발했지?”

“그냥…… 아프시잖아요. 그래서…….”

“…….”

추멸선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침묵이 흘렀다.

“여기가 어디냐?”

“당문입니다.”

뚝.

일순간 그녀의 온몸이 경직됐다.

충격 때문인지 배에 상처를 입은 부위가 욱신거렸다.

남하림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멈추었다.

“나중에 대화를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됐다. 그 정도로 난 약하지 않아.”

추멸선자는 인상을 쓰며 고통을 참았다.

남하림은 그런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떡였다.

“당문이라 하나 별관이라서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지요.”

“……네놈이 알고 있는 것이냐?”

“어느 정도는요. 그렇게 명을 재촉하지 않아도 전부 말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 * *

휙휙.

연홍은 그녀의 상처를 천천히 풀었다.

“많이 좋아지신 듯합니다. 무독 공자님의 솜씨가 뛰어나신 것 같아요.”

“나는 너를 이용해서 죽이려고 했다.”

“…….”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을 터. 복수를 하고 싶지 않더냐?”

“저를 진정 죽이고자 했다면, 그곳에 가기 전에 죽였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의원에게 어머니를 맡기신 분이란 것도 들었습니다.”

추멸선자는 그녀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넌 나가서 후개란 거지 놈에게 잠시 만나자고 전해라.”

“바로 부르겠습니다.”

연홍이 밖으로 나간 뒤, 남하림이 환한 얼굴로 들어섰다.

“인상을 안 쓰니 훨씬 좋네요. 젊었을 때는 한 미모 하셨겠습니다.”

“능글거리는 건 네놈 사부와 똑같군.”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

스윽.

남하림은 의자를 가져와 침상 곁에 자리 잡았다.

“저를 왜 만나자고 하셨지요?”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뭘요?”

“능청은 그만 떨고. 나를 살린 이유가 있을 게 아니냐?”

“궁금한 게 많긴 하죠.”

“뭐지?”

“첫 번째, 선자를 찌른 범인은 당주영입니까?”

“……!”

추멸선자의 눈이 커졌다.

“표정을 보니 맞는 것 같군요.”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지?”

“쉬워요. 당문에서 비검술로 아미파 추멸선자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는 얼마 되지 않지요.”

“그렇다고 그놈을 바로 떠올릴 수는 없을 텐데.”

“유운정에 소가주를 끌고 간 인물이 당주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그의 무공은 비검술이고. 끼워 맞췄습니다.”

“……맞다. 그 개자식이 나를 죽이려고 했지.”

“그럼 두 번째 질문. 소가주를 죽이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그건…….”

추멸선자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문밖에서 팽유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림 형, 잠시 나와 봐야겠어.”

“흐음.”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다녀오지요.”

“알겠다.”

드륵-

남하림이 밖으로 나오자 팽유도가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정문에 가주가 왔어.”

“깨어난 것을 알았군. 무슨 말을 할지 만나볼까?”

스윽.

건물 밖으로 나가자, 당염청이 마당에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후개, 볼일이 있어 왔네.”

당염청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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