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12화 (113/328)

112. 추멸선자

당문과 광독장원의 급작스러운 발표.

독전대항은 두 달 뒤로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사천성에 퍼졌다.

사천인들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당염청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드륵-

방 안에 걸협오성과 만통자가 함께 모여 있었다.

당염청은 자리에 앉아 창문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다가 그 여인을 봤네. 보아하니 깨어난 지 오래된 모양이군.”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럼,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는지 묻겠네.”

“바로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가 정신을 완전히 차리기도 전에, 당문에서 닦달했을 테니까요.”

“…….”

남하림의 말이 맞았다.

당문은 물론, 자신도 소가주를 중독시킨 연홍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의로 한 짓이 아니라고 해도.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인이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후개, 지금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깨어났다면 누가 시켰는지 알아냈을 게 아닌가?”

“네. 맞습니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잘됐군. 누구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용모파기를 그려보니 추멸선자와 가장 부합하더군요.”

“……!”

당염청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추…… 멸선자라면…… 아미파의……?”

“맞습니다. 아미파의 뜻인지, 아니면 그녀의 개인적인 이유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

“추멸선자를 찾기 위해 개방도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만간 찾게 되겠지요.”

“……고맙네. 이 일은 우리가 처리해야 하거늘. 당문이 움직인다면 숨어버릴지도 모르네. 부탁하지.”

당염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는 것입니까?”

“일이 있네. 혹시 도울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나.”

“알겠습니다.”

당염청은 숨을 크게 쉬며 별관을 나섰다.

남하림은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주시했다.

‘음…… 뭐지?’

* * *

“역시 개방이었어.”

추멸선자는 연홍을 데리고 간 거지들이 누구인지 알았다.

“감히…… 거지 놈들이……!”

소가주 당서윤 또한 개방 독광걸에 의해 목숨을 구했다.

“그렇소. 걸협오성의 독광걸이 당서윤을 해독했소이다.”

“음독은 해독이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맞소이다. 당문에서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소. 그런데 독광걸이 그걸 알아낼 줄은…….”

“흥. 대단한 인물들이군.”

“내가 사람을 사서 서윤에게 보냈는데, 아쉽게도 그놈들 때문에 실패했소이다.”

탁!

추멸선자가 분에 차 탁자를 쳤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것이오? 만일 우리가 함께 당서윤을 중독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피곤한 일이 일어나지 않겠소이까? 나 혼자는 증거가 없어서 괜찮은데.”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당주영, 넌 죽을 테니까.”

타앗!

찰나지간 당주영이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의 양손에서 십이환살이 펼쳐졌다.

팟! 팟! 팟! 팟!

무청(無聽), 무음(無音), 무견(無見).

열두 개 비검이 추멸선자를 향해 쏟아졌다.

“흐으응. 멋지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본녀를 잡지 못한다!”

차아아앙-!

추멸선자가 상천검을 뽑자 황금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툭, 투둑, 툭. 툭.

그녀의 발 아래로 비검들이 떨어졌다.

‘아홉 개.’

핏! 핏! 핏!

등 뒤로 짓쳐오는 세 자루의 비검!

‘흥, 잔재주를 부리는군.’

휘익!

바닥을 찬 후 허리를 비틀며 돌아선다.

까아아앙-!

내력을 끌어 올린 추멸선자가 상천검을 세워 비검을 막아냈다.

투두둑.

비검은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호오, 제법이군. 조금만 더 내력이 깃들었다면 위험했겠어.”

“추멸선자. 왜 나를 죽이려고 하지?”

“멍청한 놈. 아직까지 모르느냐? 당서윤이 죽지 않는다면 당연히 네놈이 죽어야지. 결국 광독장원과 사천당문은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차앗-!

추멸선자는 머리 위에서 상천검을 잡았다.

“이놈! 한 번에 끝을 내주마!”

스카아아앙-

상천검이 황금빛을 뿌리며 당주영의 전신을 휘감았다.

“호호호!”

만족스러운 웃음.

상천검의 검기에 걸린 이상, 당가 애송이의 죽음은 기정사실이다.

슈우우욱-!

추멸선자는 움직이지 못하는 당주영의 목숨을 끊기 위해, 마지막으로 상천검을 내리쳤다.

그때.

파아아앗!

당주영의 신형에서 비검이 화려한 공작의 날개가 펴지듯 쏟아져 나갔다.

‘어…… 어……!’

추멸선자의 눈이 커졌다.

예상하지 못한 당주영의 반격.

일전의 공격과 완전히 다른 내력이 아닌가!

‘이놈, 지금까지 실력을 숨겼단 말이더냐?’

채애애앵!

채앵!

상천검이 정신없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비검들.

피잇!

‘욱.’

결국 비검 하나가 복부에 꽂혔다.

그녀는 다리를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독이…….’

추멸선자는 곧바로 이 사이에 넣어둔 비상해독제를 깨물었다.

척척.

당주영이 한 발씩 천천히 다가왔다.

조소가 담긴 그의 눈빛.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던 당주영의 얼굴이 아니다.

“당…… 주영. 나를 죽인다면……!”

“죽인다면? 아미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다! 네놈과 당문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팟!

당주영의 소매 끝에서 단검이 흘러나왔다.

푹!

“아악!”

비명 소리.

스윽.

추멸선자의 가슴에 단검을 꽂은 당주영은 그녀의 얼굴 가까이 붙어 섰다.

“이봐. 추멸선자. 난 당문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야. 한 가지 더 알려줄까?”

꾸우우욱!

“아아악!”

당주영이 그녀의 몸에 박힌 단검을 비틀었다.

“당신의 죽음은 아미파에게 알려지게 될 거야. 범인은 당연히 당문으로. 큭, 그놈들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원래대로 당문과 광독장원이 싸웠을 텐데. 이젠 아미파도 함께 망하게 될 테지.”

“커어억!”

추멸선자의 입에서 선혈이 쏟아졌다.

슈욱.

당주영은 단검을 뽑고 추멸선자를 옆으로 밀었다.

스르르륵.

쿵.

힘없이 옆으로 쓰러진 몸뚱이.

“감히 누구를 죽이려고…… 그동안 비위 맞춘다고 힘들었네.”

퍽!

쓰러진 추멸선자의 배를 가격하자,

‘뒈졌군.’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당주영은 자신의 옷을 살폈다.

“에이.”

상의에 붉은 선혈이 묻어 있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미친년 때문에…….”

퍽! 퍽! 퍽!

당주영은 다시 추멸선자의 복부를 연이어 가격했다.

털썩.

그녀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다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주영은 더 이상 손을 대기 싫었다.

가만히 두어도 죽을 게 확실했다.

“후후, 여기 두면 사람들 눈에 확실히 뜨이겠지.”

씨익.

‘당문과 아미파를 같이 정리하면 천황께서 좋아하실 게 분명하다.’

휘릭!

만족스럽게 웃던 당주영은 곧 신형을 날려 자취를 감췄다.

* * *

위이이이이잉-

매서운 바람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일각 후.

창걸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추멸선자의 행방을 좇던 중이었다.

그는 마치 죽은 듯 엎드려 있는 추멸선자가 옆에 쪼그렸다.

‘아니, 이 여자가…… 왜 여기서 엎드려 자고 있지? 욱…… 이 냄새는?’

스윽-

창걸은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헉! 이건…….’

순간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복부에 검상이 여러 군데 보였다.

‘피가 따뜻하다. 얼마 되지 않았어.’

창걸은 혹시나 추멸선자의 맥을 잡았다.

‘흐으으으음…… 아직 살아 있다.’

미세하지만 숨이 붙어 있었다.

창걸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살려놓고 보자.”

휘이이익!

창걸은 그녀를 등에 업은 뒤,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 * *

남하림은 별관에서 급한 연락을 받았다.

“분타주가 부른다고?”

“네. 후개님.”

“알겠소. 먼저 가세요.”

모두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 형, 무슨 일인지 안 물어봐도 돼?”

“곤란한 일인 것 같다. 분타주가 이유 없이 별관으로 부르지 않았겠지. 가보자.”

밖으로 나서자 들어오던 만통자를 만났다.

“꺼어억! 네놈들 설마 나를 두고 도망가는 것은 아니겠지?”

“약주 하셨어요? 편히 주무세요. 우린 별관에 갑니다.”

“어…… 그래? 전부?”

만통자는 그대로 방향을 돌렸다.

“노인장?”

“나도 별관에 가야겠다. 일이 있어서.”

“마음대로 하세요.”

별관 정문에 들어섰다.

‘음…… 일이 있는 모양인데…….’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여기저기 개방도들이 앉아 있었지만 명백히 주위를 경계하는 눈빛이다.

“후개님, 오셨습니까?”

남하림의 기척을 알아챈 창걸이 방에서 얼른 나왔다.

“후개님, 부상당한 추멸선자를 찾았습니다.”

“잡아온 건가요?”

“그건 아니고……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팽유도가 바로 물었다.

“죽었다는 뜻인가요?”

“거의…… 응급으로 지혈한 상태입니다.”

“들어가죠.”

남하림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연홍?’

방에서는 연홍이 침상 옆에 앉아, 멍하게 죽은 듯한 추멸선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수가 자신의 앞에 누워 있었다.

자신을 이용하고 죽이려 했던 인물.

칼을 심장에 찌르기만 해도 원수를 갚을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스윽.

남하림은 조심스레 연홍을 불렀다.

“괜찮나요?”

“아…… 네…… 괜찮습니다.”

연홍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당무독이 추멸선자의 몸을 살폈다.

“부장. 어떤 놈인지 몰라도 단숨에 죽이지 않고 서서히 죽어가도록 놔뒀어.”

“독한 인물이군.”

“내력이 높아서 지금까지 버틴 것 같아.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

“치료할 수 있겠어?”

“검상에 독기가 있는 것 같지만 빠르게 해독제를 먹었어. 이 정도 독기는 몰아낼 수는 있지만, 검상의 다른 부분은 의원이 있어야 해.”

남하림의 은전 한 냥을 팽유도에 주었다.

“유도가 밖에 나가서 조용하게 의원을 데리고 와줘.”

“빨리 갔다 올게요.”

휘이익!

팽유도는 곧장 방을 빠져나갔다.

“부장…….”

상처를 살피던 당무독의 손이 멈췄다.

남하림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이건…… 당문의 독이야.”

“그 말은…….”

“당문의 인물에게 당했다는 거지.”

“허,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당문에게 왜 당해?”

그의 말대로 상황은 뒤죽박죽처럼 보였다.

이휘연이 검상을 살폈다.

“아래 복부의 상처는 비검에 의해 생긴 것이고 나머지 상처는 손으로 찌른 후 비틀었다.”

“당문에서 비검을 쓰는 인물이 많아?”

“거의 절반은…… 되겠지. 나도 펼칠 수 있으니까.”

“그렇군. 추멸선자를 이길 만한 실력을 가진 인물은?”

당무독은 비검을 사용하는 당문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때, 얼마 전에 보았던 비검술이 떠올랐다.

십이환살. 당주영.

“부장…….”

“몇 명 되지 않는 인물들 중 그도 있겠지? 제법 강한 무공이던데.”

당무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하림도 당주영 생각이 났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추멸선자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군.”

“부장, 당주영의 주변을 조사해야 하지 않겠어?”

“철각의 말이 맞아.”

추멸선자를 죽일 정도의 무력을 지녔다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휘연 형이 유도와 함께 수고해 줬으면 해.”

“알겠다. 우리가 그놈을 맡지.”

“고마워.”

남하림은 이번에는 성철각을 보았다.

“철각은 혹시 모르니 추멸선자를 옆에서 지키고 있어.”

“알았어.”

“그리고…… 분타주님.”

“넵. 하명하십시오.”

“아미파 근처에 본 방의 분타가 있습니까?”

“아미산 근처라면…… 연중분타가 있습니다.”

“그럼, 그곳에 연락해서 추멸선자에 대한 사소한 것까지 모두 조사하세요. 그녀가 당문에 원한을 가진 이유가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네. 당장 연중분타에 소식을 띄우겠습니다.”

척.

창걸은 포권을 하며 방을 나섰다.

“흐음.”

만통자가 기척을 냈다.

“할 말 있으세요?”

“난…… 뭘 하면 되지?”

“지금처럼 별관을 오가시면 됩니다.”

“엥?”

만통자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무시하는 게냐?”

“그게 아니라, 노인장이 이리저리 움직이면 수상하게 생각할 게 아닙니까? 안 그래도 유명하신데. 별관과 당문을 오가면서 수상한 놈들이 주위에 없는지 살펴보라는 뜻이죠. 조심한다고 하지만 들킬 수 있으니. 노인장의 역할은 그들의 시선을 흐리게 만드는 일이에요.”

“아하…… 아무 일도 없는 듯 연기를 하라는 말이군.”

“잘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를 뭘로 보고. 당연히 잘할 수 있다. 그놈들이 전혀 눈치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마.”

“고마워요. 이럴 땐 큰 도움이 되네요.”

“음…… 근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건 맞냐?”

만통자는 말을 하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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