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09화 (110/328)

109. 조사

남하림은 당문에서 움직이는 것을 말렸다.

당염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후개, 이번 일은 당문의 일이라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들이 맡겠다는 것인가?”

“소가주를 중독시킨 놈들입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황상 당문에 변절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독과 우린 형제 사이입니다. 무독과 관련있지 않았다면 당연히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남하림에게 걸협오성은 가족이며 형제였다.

“…….”

당염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사람 찾는 데는 우리가 적격이 아니겠습니까?”

남하림의 말이 맞았다.

“그렇게 하게. 혹시 도움을 줄 건 없겠는가?”

“중독되기 전날 소가주와 함께했던 인물들을 알고 싶습니다.”

“사촌인 당주영이란 녀석과 사냥을 갔다고 들었네. 친한 사이라 늘 함께 사냥을 다녔지.”

“그날 사냥을 간 게 아니라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진 모양이군요.”

“휴우, 이 녀석들을…….”

“소가주는 여기 무독이 잘 치료할 것입니다.”

당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던 당문의 아이.

오성(悟性)이 뛰어나지만, 독에 민감하여 발전이 어렵다 생각해 개방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 뒤로 들려온 당무독의 소식들은 어땠는가.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무독, 그 녀석을 치료할 수 있겠느냐?”

“중독 원인을 알아낸 이상 치료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다.”

“그럼,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남하림과 당무독은 가주전에서 물러났다.

* * *

그 시각.

이휘연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침입자다. 두 사람은 소가주를 지켜라.”

“알겠어요!”

파앗!

이휘연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핏! 핏!

허공을 가르는 독침.

“악!”

“어억!”

두 명의 소당원 호위무사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스윽.

두 명의 복면인 소당원으로 내려섰다.

그들의 목표는 소가주 당서윤의 침실.

[단숨에 처리한다.]

끄덕.

복면인이 바로 움직이려는 순간.

휘이익!

소당원 안쪽에서부터 날카로운 기척이 쏟아져 나왔다.

찰나지간 복면인의 눈앞에 내려선 이휘연.

“어딜!”

팟! 팟! 팟! 팟!

복면인의 소매에서 독침이 쏟아졌다.

위이이잉!

이휘연의 앞으로 태극 문양이 만들어졌다.

툭, 투둑, 툭, 툭.

붉은 태극을 뚫지 못한 독침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거지……!’

눈을 크게 뜨며 자세히 보았다.

샤샷!

옆에서 단검을 쥔 두 번째 복면인이 이휘연을 기습했다.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

‘성공이다. 절대로 피하지 못한다!’

뚝.

하지만.

이휘연의 허리 한 뼘 거리에서 단검이 더 움직이지 못했다.

태극흑검이 이미 그의 목에 닿아 있었으니까.

‘욱! 빠르……!’

“커억!”

곧바로 복면인의 목에서 피가 터졌다.

후다다닥!

싸움 소리를 들은 호위대들이 주위에서 달려왔다.

“적들이다!”

‘젠장…….들켰다. 하지만…….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위기에 몰린 복면인의 시선이 당서윤이 있는 방을 향했다.

당서윤의 방에서 기다리던 팽유도와 성철각은 동시에 내력을 올렸다.

우우웅-

기감을 늘려 주위를 살피자,

“철각 형, 위에 쥐새끼가 또 있어.”

피피피피피핏!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독침.

휘릭!

팽유도가 묵흑반도를 휘둘렀다.

챙챙챙챙!

독침이 튕겨 나갔다.

부우우웅-

그와 동시에 성철각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각법을 펼쳤다.

파아아앙!

천장이 구멍이 나면서 복면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철각 형! 때려잡아야 해!”

“알겠어.”

휘릭!

대답과 함께 환보걸선각을 펼치자, 다리가 긴 채찍을 그리며 복면인의 허리를 강타했다.

퍼억!

콰다아앙!

가공할 위력에 복면인의 몸뚱이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우우욱, 실패…… 다!’

타앗!

그는 연습이라도 한 듯 재빨리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익!

“어딜.”

하지만 팽유도의 신형이 한발 빨랐다.

복면인을 막아서며 묵흑반도를 내리치자,

슉!

“커억-”

복면인의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단칼에 숨이 끊어졌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

남하림과 당무독이 소당원으로 돌아왔다.

“재미있었던 모양이네.”

“형, 소가주를 죽이려던 모양이야.”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사천당문 안방까지 쳐들어온 것을 보면 확실히 간 덩어리는 제대로 부은 것 같군.”

스윽.

호위장 당추가 포권했다.

“후개, 고맙소.”

“아는 자들입니까? 혹시 광독장원의 사람들은 아닌가요?”

“처음 보는 녀석들이었네. 몸을 뒤져 보았지만 단서가 될 건 보이지 않았소.”

‘신원불명의 인물들이라…….’

철통같은 경계로 둘러싸인 당문 한복판에 침입자가 발생했다.

내부에 내통자가 있는 것이 분명해진 셈.

“호위장님, 방금 이 사건은 가주님 외에는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당추는 남하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했다.

“지금부터 가주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출입을 금했으면 합니다.”

“알겠소이다. 수하들에게도 비밀로 하도록 명을 내리겠소.”

* * *

우우웅-

청년의 양 손바닥 위로 열두 개의 비검이 떠올랐다.

스르르륵-

양손을 앞으로 뻗자, 비검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팟! 팟! 팟!팟 !

그리고, 멀리 표적지에 열두 개의 비검이 꽂혔다.

완벽한 암기비검술.

사천당문의 십이환살(十二幻殺)이다.

짝짝짝!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헉.’

당주영은 깜짝 놀라 빠르게 뒤로 돌아섰다.

두 명의 사내.

남하림과 당무독이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주영 형님.”

“누군가 했다. 본 가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당주영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멋진 십이환살이었습니다.”

“고, 고맙다. 걸협오성한테 칭찬을 받아보는군.”

“여긴 본 방의 후개입니다.”

‘후개 남하림. 걸협오성의 수장.’

소문대로, 거지 복장만 아니라면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거지처럼 보이지 않았다.

“반갑소. 당주영이오.”

“남하림이외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면서도, 당주영은 의심의 눈초리로 두 사람을 보았다.

“무독, 일부러 온 것 같은데 무슨 일인가?”

“주영 형님, 한 가지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두근두근.

당주영은 갑자기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남하림은 그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

“서윤 형님이 중독되기 전날 사냥을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

당주영이 움찔했다.

“혹시 기루에 다녀오신 게 아닌지요?”

“…….”

“군수당에서 서윤 형님의 사냥 장비를 보니 전혀 사용한 흔적이 없더군요. 가지고 나간 화살도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셨고요. 물론 주영 형님 것도.”

당주영은 순간 깜짝 놀랐다.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두 분은 예전부터 기루에 자주 다니신 걸로 압니다.”

그날 기루에 갔다 온 사실은 병상에 쓰러져 있는 당서윤과 둘만 아는 비밀이다.

“표정을 보니 맞는 것 같네요. 두 분이 다녀오신 곳이 어디인지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디긴. 그날 사냥을 갔다 왔다.”

“형님, 사실대로 말씀을 하시지요.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

“가주님께서도 아십니다. 전 형님들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성인인 두 분이 어디에 간들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전 단지 두 분께서 어디에 가셨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가주께서도 알고 계시다니…….’

당주영은 가주도 알고 있다는 말에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주안에 있는 유운정이라는 홍루에 다녀왔다.”

“알겠습니다. 멀리까지 다녀왔네요.”

“조용히 다녀와야 해서…… 근데 왜 그것을 묻는 것이냐?”

“어떻게 중독이 되었는지 보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놔야지요.”

‘이 녀석…… 예전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멀리 안 나간다.”

당주영은 돌아선 그들을 보며 안심했다.

뚝.

그때,

갑자기 남하림의 걸음이 멈췄다.

“아,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무엇이오?”

“소가주와 함께 자리한 여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건…… 이름이 연홍이라고 했소.”

“연홍이라…… 좋은 이름이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개, 그게, 서윤의 중독과 관계가 있소?”

“글쎄요.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인데. 그대의 말을 들어보니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고맙소이다.”

“……!”

당주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독, 가자.”

휙.

남하림과 당무독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쯧,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군.’

* * *

붉은빛이 화려하게 사방을 밝혔다.

유운정에 들어서자 진한 여인들의 향이 사방에 진동했다.

“오오……!”

거지 복장을 벗고, 푸른빛이 도는 비단 무복을 차려입은 청년들.

여인들이 남하림과 팽유도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최상급 비단에 기품 있는 분위기, 수려한 미소를 띤 두 사내는 언뜻 봐도 귀한 집안의 공자들이 분명했다.

스윽-

“호호호, 두 분 공자님 어서 오세요.”

남하림의 곁으로 바짝 다가선 중년여인이 허리를 가볍게 숙였다.

“여기 동생과 가볍게 술 한잔 마시고 싶소만.”

스윽.

남하림의 손에 들린 금원보 하나.

번쩍!

중년여인은 더욱 환한 미소를 띠며 간지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호호호! 네, 잘 알겠사옵니다-”

드륵.

중년여인이 온통 금빛이 도는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잠시 기다리시면 아이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두 분 공자님께서는 편히 쉬시지요.”

남하림은 밖으로 나가는 여인을 다시 불렀다.

“아, 잠깐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여기에 연홍이라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소만.”

“…….”

중년여인의 순간 미세하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이쿠, 공자님, 죄송하옵니다. 그 아이는 얼마 전에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아…… 아쉽군요. 연홍이라는 아이 때문에 왔건만.”

“아휴, 저희 유운정에는 그 아이보다 더 예쁘고…….”

“뭐 어쩔 수 없지. 알겠소이다.”

“예예…… 잠시만 쉬시지요.”

중년여인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형, 수상해.”

“우선 연홍이란 여인부터 수소문해야겠어.”

“어떻게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알고 있을 거야. 일단 저 여자부터 감시해야겠어. 가자.”

“……벌써요?”

“후후, 아쉽지만 시간이 없어.”

“에이…… 괜히 기대했잖아요.”

휘익!

남하림과 팽유도가 방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놓여 있는 한 장의 종이.

종이 위에는 금전 한 냥이 올려져 있었다.

* * *

당문으로 돌아온 남하림과 팽유도는 본관 옆에 따로 마련된 별관에 들어섰다.

“풉.”

두 사람의 입에서 곧바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여기저기 마당에 불을 피운 흔적들.

무엇을 먹었는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음식들.

정원과 딱딱한 대청에 마치 편안한 침상처럼 널브러져 있는 모습들.

장구분타의 개방도들이다.

분명 이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별관은 깔끔했을 게 분명했다.

“역시 개방! 괜히 당문에 미안해지네! 당문 분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데요?”

“아하하!”

벌떡!

창걸은 청량한 웃음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으아악! 누구!”

잠결에 보인 부잣집 공자님들의 모습에 창걸은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깜박였다.

“납니다.”

“어…… 후개님?”

창걸은 눈을 비비며 다가오는 남하림과 팽유도를 보았다.

“옷이 번쩍거려……?”

“아, 잠시 어딜 갔다 오는 길이라서요. 근데 여기서 잠을 청합니까?”

“아…… 하하하, 하도 오랫동안 바닥에서 지내는 버릇이 들어서, 푹신하면허리가 아파서 말입니다.”

“아, 우리가 적응력이 뛰어나긴 하죠. 잠시 들어오세요. 분타주님께서 할 일이 있습니다.”

번뜩.

‘할 일!’

창걸은 지루했던 참에 정신이 맑아졌다.

“넵! 알겠습니다!”

곧바로 자리에 앉은 세 사람.

남하림은 그에게 유운정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항, 그래서 이런 옷을 입으셨군요.”

“이번 일은 모두가 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당문도 말입니까?”

“일단 우리만 아는 걸로 하죠. 우선 연홍이란 여인을 찾는 게 최우선입니다.”

“알겠습니다. 사람 찾는 일이야 본 방이 전문이 아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특히 유운정의 항림이란 중년여인의 뒤를 캐보세요.”

“자알 알겠습니다.”

“그럼 우린 가볼 테니 내일부터 빡세게 움직여 봅시다.”

별관을 나서는 남하림과 팽유도를 마중한 창걸은 기대감이 솟아올라 몸이 들썩거렸다.

‘따분했던 참에 잘됐네. 재밌는 일이 일어나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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