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음독(淫毒)
‘중독된 채 발견된 곳은 소당원, 발견한 시각은 아침이라…….’
소당원은 차기 가주 당서윤이 지내는 건물.
당문의 건물들 중 가주원과 더불어 호위가 가장 삼엄한 곳이다.
다섯 명은 다른 안내 없이 소당원으로 향했다.
“엄청 많군.”
이휘연은 소당원이 보이기도 전에 숨어 있는 기척들을 알아챘다.
“무독, 평소에도 이 정도로 호위가 서고 있나?”
“아마도…… 요.”
팽유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침입을 막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숨어 있는 당문의 비밀호위들.
“이 정도면 나도 몰래 들어오기 힘들 것 같은데요. 더구나 왔다 가는 것도 아니고 소가주를 중독까지 시켜야 하는데. 차라리 그 실력으로 죽이는 게 더 빠르겠어요.”
“그럼 딱 봐도 답은 이미 나왔네.”
“하림 형, 벌써?”
“아마 당문의 사람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무슨……?”
“소가주를 중독시킨 범인이 외부에서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남하림의 말뜻은 내부자의 소행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부장. 설마……!”
“방금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숨어 있는지 봤잖아. 쉽게 들어올 수 없어. 그렇다면 의심스러운 건 내부자일 수밖에 없지. 물론 무조건 내 말이 맞다고 할 수는 없어. 그냥 그런 가능성도 있으니 생각은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거야.”
‘내부자라…….’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크으윽.”
소당원에 가까워질수록 약 냄새가 진동했다.
소당원의 정문에 선 사내.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소당원 호위의 책임자로서 보호해야 할 인물이 흉수에게 중독당한 상황.
‘저들이군.’
소당원 호위장 당추는 다가오는 다섯 명을 보고 포권했다.
사전에 그들이 갈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상태.
‘당무독…… 잘 자랐군.’
같은 성을 사용할지라도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당추 호위장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그런 듯합니다. 소가주님을 잠시 뵈러 왔습니다.”
“알고 있네.”
슥.
당추는 당무독 뒤로 함께 온 네 사람을 보았다.
“이들도 함께 들어갈 텐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당원 안에 원독당 당주께서 계시네.”
“알겠습니다.”
원독당 당주 당진석.
사천당문에서 가장 고지식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자신이 할 일만 하기에, 당문의 가주조차 쉽게 대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이윽고 다섯 명은 약 냄새가 심하게 진동하는 방으로 들어섰다.
‘서윤…… 형님.’
당무독은 병상에 누워 있는 인물을 내려다보았다.
검은빛의 얼굴.
창백한 입술.
전형적인 중독의 모습이었다.
“무독 형, 내가 봐도 중독된 것 같아요.”
끄덕.
당무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서윤의 눈꺼풀을 살짝 올렸다.
흰자에도 검은색이 섞여 있었다.
‘여기까지 중독이 올라왔어.’
스윽.
이불을 젖히고 누워 있는 당서윤의 손을 잡으며 내기를 살폈다.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당서윤의 상태를 보니 살아 있는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어때?”
“으음…… 지금 환자가 이겨내려고 싸우고 있지만…… 몸이 약해져서 점점 밀리고 있어. 근데 어디서부터 중독이 시작된 건지 모르겠네.”
“중독이 맞아?”
“맞긴 한데…… 일반적으로 중독은 제일 먼저 독과 닿는 부분부터 시작해. 근데 그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아. 이런 독은 하나밖에 없는데…… 정확한 건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그래?”
드륵.
그때, 문이 열리면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은 누구냐?”
당무독은 당서원의 손을 놓고 얼른 돌아섰다.
“원독당 당주님을 뵙습니다.”
“……네가 당무독인가?”
당진석은 당무독을 아래위로 살폈다.
깨끗한 거지 복장에 허리에 찬 타구봉.
“독광걸이라 제법 소문난 녀석이군.”
“…….”
“옆으로 물러서라.”
당진석은 들고 있던 탕약을 가까이에 있는 남하림에게 내밀었다.
“잠시 들고 있게.”
“엇, 네.”
남하림은 얼떨결에 탕약을 받아 들었다.
“환자를 살펴보니 어떠하더냐?”
“확실한 건 아니지만 무기독(無氣毒)의 종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흐음.”
당진석은 내색은 내지 않았지만, 단번에 병명을 찾아낸 당무독을 새롭게 봤다.
“무기독의 종류는 몇 가지가 있는지 아느냐?”
“독진초서에 보면 다섯 가지로, 무청기(無聽氣), 무견기(無見氣), 무후기(無嗅氣), 무촉기(無觸氣), 무음기(無音氣)가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맞다. 그 다섯 가지이다. 독진초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거늘 어디에서 읽었더냐?”
“후개가 독문의 서적에 관해서 구해주었습니다.”
“용케 어려운 책을 구한 모양이군.”
당진석은 탕약을 든 남하림을 보았다.
“그대가 후개군. 계집들이 꽤나 달라붙겠어. 나쁜 뜻은 아니네.”
“저도 잘생긴 것은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잘났는지는 좀 더 지켜본 뒤 확인하겠네. 그것을 주게.”
“아…… 예.”
당진석은 탕약을 받아 한 방울씩 당서윤의 입에 떨어뜨렸다.
“침을 놓을 줄은 아느냐?”
“네. 서너 번 놓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 저기에 침을 가지고 와서 내가 불러주는 대로 놓아라.”
당무독은 얼른 침통을 가지고 왔다.
스윽.
침통 안에는 길이가 다른 침들이 담겨 있었다.
“네놈들은 소가주의 상의를 벗긴 뒤 몸을 돌려 눕혀라.”
“앗, 넵.”
스윽-
팽유도와 성철각이 얼른 당서윤의 몸을 눕혔다.
“빠릿한 놈들이군.”
휙!
“임맥을 따라 침을 놓을 것이다. 우선 염천에 놓아라.”
쿠욱.
당무독은 망설이지 않고 당진석이 부르는 혈자리에 침을 밀어 넣었다.
정확히 한 치 반의 깊이.
‘오호…… 가르쳐 주지 않았거늘. 감각적으로 놓았다는 것인가?’
“이번에는 화개다.”
스윽.
당무독은 장침을 받아 세 치 깊이에 찔렀다.
꿈틀.
환자의 몸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 녀석, 진짜군.’
단 두 번의 침술.
당진석의 눈이 커졌다.
* * *
반 시진 동안 침을 놓았다.
장침과 단침은 임맥을 따라 환자의 몸에 꽂혀 내려갔다.
‘이놈 물건이로다.’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방으로 보내기 전엔 이 뛰어난 능력이 알려지지 않았던 건가?
집중한 채로 침을 놓는 당무독의 표정은 안정적이었다.
“침술은 어디에서 배웠느냐?”
“본 방의 약방에 침술을 놓는 분이 계셨습니다.”
‘본 방이라…… 자신을 버린 당문에 섭섭한 모양이군. 하긴 나라도 그러하겠지.’
근데…….
당무독을 찾아오고 싶다.
새애액. 새애액.
미세하던 호흡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흐음, 다행이군. 스스로 호흡하고 있다.”
당무독은 걱정 서린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탕약은 무기독에 좋은 약효로 지었지만,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해독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독의 성분을 알아내야 하지.”
“알겠습니다. 괜찮다면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쪼옥.
당무독은 환자의 손가락을 찔러 피를 뽑았다.
검은색 피가 올라왔다.
“부장, 이게 뭔지 알아봐야 해.”
“알겠어. 우린 치료하는 데 도움이 안 되니 잠시 옆에 있을게. 수고해.”
당무독을 두고, 네 사람은 밖으로 빠져나왔다.
남하림은 멀리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당문의 소가주를 해치려고 한 놈들이야. 치료하는 무독을 노릴 수도 있느니 우리가 지켜야 해.”
“알겠어, 부장.”
“하림 형, 만일 소가주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일단 당문에서 범인을 잡아야겠지. 범인이 누구냐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움직일 테고.”
“그렇겠죠?”
네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독전대항을 펼칠 상대 가문.
만약 광독장원에서 독을 풀었다면 당문과의 전쟁은 불가피했다.
“휴우…… 두 가문이 이판사판 온 사방에 독을 뿌리고 다니면…… 백성들뿐만 아니라 성도 주위에 있는 무인들조차 중독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어요.”
“전쟁통보다 더 겁나겠군.”
팽유도의 말처럼 두 가문의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가만히 듣던 성철각은 궁금해졌다.
“부장, 만일 누군가 사천당문과 광독장원이 싸우도록 만든 것이라면?”
“더 심각한 일이지.”
“하림 형, 그게 사실이라면 우린 어떻게 해요?”
남하림은 요즘 들어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정체성의 혼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무림에선 원하지 않는 것도 가끔은 해야만 했다.
‘무림인도 피곤한 삶이구나.’
피식.
남하림은 웃음이 나왔다.
“이럴 때는 진짜 상거지가 제일 편할지도 모르겠네.”
“형? 무슨 말이야?”
“그냥 다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등 따시고 배부르면 세상 제일 행복한데…… 좋았어. 결심했다.”
“뭘요?”
“전 무림인들을 거지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멋진 생각이야, 부장. 그럼 전부 개방이 되는 거네.”
“역시 철각이 바로 알아주네. 유도와 휘연 형 생각은 어때?”
이휘연은 고민했다.
팽유도는 고민하는 이휘연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휘연 형, 무슨 고민을 해. 말도 안 되잖아요.”
“말이 안 되나? 부장이 천하제일인이 된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어휴, 휘연 형까지 물들었어! 이건 심각한데……!’
팽유도는 순간 걱정이 되었다.
“이건 진짜진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요. 하림 형이 천하제일인이 된다고 해도 무림인 모두를 거지를 만들 수 없어요. 알겠죠?”
“생각해 보지.”
“아니, 생각하지 마세요…….”
* * *
사천이대독가(四川二代毒家)의 독전대항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정자에 앉은 두 사람.
“후후후.”
광독장원 장주 묘진평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장주님, 올해 독전은 무조건 본 방원의 승리입니다.”
“허허, 방심은 금물이네.”
“방심을 안 하고 싶어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문의 소가주가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기세는 본 장원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들 입장에선 좋은 일이긴 했다.
그래서 묘진평은 그동안 물어보지 못한 것을 입에 담기로 했다.
“조 당주, 이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무엇이옵니까?”
“혹시 그대가 당서윤을 중독시켰는가?”
“…….”
광진당 당주 조봉재는 화들짝 놀랐다.
“장주님……! 아닙니다. 무슨 큰일 날 말씀을. 전 장주님께서 손을 쓰신 줄 알았습니다.”
“자네가 아니라고? 내가 그런 짓을 왜 하겠는가? 단번에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묘진평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아도 한편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독전대항은 독공에 대한 우위를 가리기 위함이지, 두 가문의 우위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순간 두 사람은 얼굴이 굳어졌다.
“당문에서 이번 일로 본 장원에게 누명을 씌운다면…….”
당문의 소가주를 해친 범인이 광독장원이라고 소문이 난다면?
단번에 전쟁이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지만 묘진평은 말을 하면서도 믿음이 없었다.
“장주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겠습니다.”
“그리해야지.”
그는 걱정에 점점 얼굴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큰일 났군. 누가 그를 중독시켰지?’
* * *
치이익.
당서윤에게서 얻은 핏방울에서 연기가 솟구쳤다.
‘찾았어! 이건…… 음독(淫毒)이야.’
중독의 원인을 찾아낸 당무독은 소리를 지르려다 다시 입을 닫았다.
‘혹시나 했는데. 내 생각이 맞았군. 이러니 세가에서 그동안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기에 찾아낼 수 있었다.
‘이런 음독이 있을 줄은. 부장이 구해준 은심독(銀審毒)이 없었다면 찾지 못했을 거야.’
원인을 알게 된 이상, 상대가 누구인지도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어휴…… 형도 그만 밝히시지.’
당서윤은 당문에서 당무독도 알 정도로 여자에 관심이 많았다.
성도의 많은 기루에서 최고 귀빈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
사냥을 다녀온 뒤라 당문에서도 의심하지 않은 듯했다.
‘이건 가주님께는 알려야겠지만…… 다른 가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좋겠군.’
드륵-
당무독은 문을 열고 옆 건물로 들어섰다.
깊은 밤이지만 아직 불이 커져 있었다.
“무독.”
남하림이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먼저 반겼다.
“모두 안 자고 뭐 해?”
“네가 힘들게 고생하잖아. 어떻게 됐어?”
“어떻게 중독을 당했는지 알아냈어.”
“원인은 뭐야?”
“음독(淫毒).”
“그게 무슨 독인데?”
“음…… 남녀가 서로…… 뭐 그런 거.”
“……아하, 많이 밝힌 모양이네.”
“내가 알기로도 쪼끔.”
“원인을 찾았으니 범인을 잡을 차례군.”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상의하려고 왔어. 가주께는 사실대로 말을 하려고.”
“그게 맞겠지.”
“지금 갈까? 조용해서 딱 좋을 듯한데.”
남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휘연 형, 주위에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소가주 호위를 좀 부탁할게요.”
“걱정하지 마.”
“그럼, 다녀올게요.”
소당원을 나선 남하림과 당무독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헉!’
가주전 호위대 노경홍은 순간 전신이 경직됐다.
갑자기 바로 앞에 나타난 두 명의 인물.
[쉿. 조용히. 후개입니다.]
“……!”
전음을 듣지 않았다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는 남하림과 당무독의 얼굴을 확인했다.
[무슨 일로 오셨소?]
[가주님을 몰래 뵙고자 왔습니다. 소가주 문제입니다.]
침실에 들고도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눈을 깜빡거린 노경홍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불이 꺼진 가주의 침실.
스으윽-
남하림은 내력을 살짝 끌어냈다.
팟.
순간 침실이 밝아졌다.
“후개와 독광걸이 뵙기를 원합니다.”
“흠흠.”
안에서 가주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드륵.
남하림과 당무독이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당염청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찾아온 것을 보니 중요한 일인 모양이군.”
“소가주의 중독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정말인가?”
이들이 당문에 도착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
그로서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송구하지만 소가주의 중독은 음독(淫毒)이었습니다.”
“……!”
당염청의 얼굴이 구겨졌다.
‘망할 놈. 내가 그리 조심하라고 했건만…….’
“이거 참…….”
“소가주께서 좀…… 밝히시니. 그래도 그 외에는 모든 게 훌륭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어이가 없군. 수고했다.”
“고맙습니다.”
“중독의 원인을 찾아냈으니 사람들을 풀어서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야겠군.”
“가주님, 그건 우리들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후개, 그대들이?”
곧바로 당문의 무인을 풀 계획이었던 당염청은 남하림이 그를 말리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