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종남파
스으으으-
종남파 도사들의 뒤에서 강한 압박감이 몰아쳤다.
‘헉!’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
결국 무형기를 이겨내지 못한 종남파 도사들이 옆으로 물러났다.
“우리도 그 물건에 관심이 있거든요.”
‘후개!’
언뜻 스치는 모습만으로도 누가 후개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던 중조가 후개 뒤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만통자님이 아니십니까?”
만통자는 뒤에 선 채 인사만을 받아주었다.
“항일검, 반갑네.”
중조는 의문이 들었다.
‘이분은 왜 이들과 함께하시지?’
휘이이이잉-
우자림 위로 날카로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휘리릭-
남하림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따라 흩날리며 반짝였다.
척!
남하림은 엷은 미소를 띠며 먼저 포권을 했다.
“개방의 남하림이외다.”
“종남파의 중조라 한다.”
남하림은 순식간에 언짢아졌다.
‘반말? 첨부터 깔보네?’
“후개, 관심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지. 우리도 저 여인이 지니고 있는 물건에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니겠소?”
‘말이 짧군.’
중조도 기분이 상했다.
“후개, 중원에 이름이 좀 알려지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모양이지?”
“이게 원래 내 말투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허어, 이거 완전 후레자식이로군. 저년하고 쌍으로 말이야.”
“말투가 거치시구만. 종남파 도사가 제일 후지다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야.”
꽈악!
중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에라도 손을 펼쳐 혼구멍을 내줘야 한다.
하지만 당장은 급한 일이 먼저.
“……후개, 자네의 뜻은 개방이 구천신품을 원한다는 것인가?”
“꼭 개방까지 갈 필요가 있겠소? 내가 원하면 그만이지.”
“개방의 후개가 욕심을 부리다니…… 소문과는 다르군.”
“소문은 집어치우고. 난 무림맹 군사의 부탁을 받았소. 무슨 뜻인지 알겠소이까? 나를 방해하면 맹의 군사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외다.”
“지금 본도를 협박하려는 것인가?”
“협박이라. 제갈령 군사가 이 말을 듣는다면 봉황선 부치는 속도가 세 배는 빨라지겠군. ‘협박’이란 단어는 나보단 군사 앞에 가서 직접 하면 더 효과가 좋을 거요.”
“…….”
중조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림맹의 군사.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땐 군사 이름을 파니 편하군.’
남하림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애써 잡은 고기를 넘겨줄 수는 없다. 애초에 구천신품은 무림맹의 물건도 아니지. 이 물건은 가지는 자가 주인이다.’
조여하를 잡은 이상 구천신품은 이미 종남파의 물건이다.
“후개, 군사의 명을 받았다고 했지만 무림맹의 이름으로 본 문을 맘대로 좌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구천신품을 내놓지 않는다면 저 여자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쯔쯔, 간 덩어리가 꽤 부은 모양일세. 서로 뜻이 다르다면 각자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종남파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랍니다. 무림맹 군사가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서, 아마 큰코다칠 테지만. 봉황선 하나 새로 사 가면 봐줄지도 모르지요. 하하하!”
중조는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며 종남파 도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슥슥슥-
걸협오성 주위로 다가오는 종남파 도사들.
‘이제는 종남파까지…… 아주 그냥 난리도 아니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꼬라지가 참 재미있겠어.’
남하림은 내력을 끌어 올렸다.
“후개, 괜한 일에 얼굴을 붉히기 싫다. 물러나라!”
“그건 내가 원하는 바인데.”
스팟.
중조는 검을 겨누었다.
‘흥. 겨우 다섯 명으로. 요즘 무림에 소문 좀 났다고 꽤나 잘난 척하는 하는 모양이지!’
그의 검 끝에서 검기가 날카롭게 빛을 냈다.
종남파의 검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맹하다.
‘네놈의 실력이 어떠한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해 주마.’
종남오검의 자존심.
휘익-!
중조가 남하림을 단숨에 제압하기 위해 검을 앞으로 뻗었다.
파바바바파팟-!
날카로운 기세로 몰아치는 검기!
그러나 남하림은 여유로웠다.
‘상대할 적이 많을 때는 짧고 굵게. 대장의 목을 잘라 기세를 꺾는다.’
번쩍!
남하림의 손바닥에서 빛이 솟구쳤다.
강룡십팔장을 단번에 십단공까지 끌어 올렸다.
‘밟을 때는 확실히 밟아야 기어오르지 못하는 법.’
염천멸사(炎天滅死).
“전부 쓸어버린다.”
화르르르-
쿠아아아아왕-!
일장(一掌)에서 쏟아져 나간 화룡의 화염에, 항일검의 검기가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우우욱……!’
시뻘건 화룡의 눈동자.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다.
중조가 무지막지한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소리쳤다.
“종남검항진을 펼쳐라!”
팟 팟 팟 팟.
수십 명의 도사들이 내력을 끌어 올려 중조의 뒤에서 검막을 펼쳤다.
화룡을 막아서는 검막.
콰아아아아아-!
화룡의 엄청난 열기가 검막과 충돌했다.
“우우우욱.”
믿기지가 않았다.
남하림 혼자서 삼십 명이 넘는 이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야…… 압.”
금강수체의 금강력을 한층 더 끌어 올리자,
화룡의 염화가 푸른빛을 띠며 검막을 바스러뜨리기 시작한다.
쿠아아아아-!
입을 크게 벌린 화룡이 세상을 삼키려는 듯 화염의 불꽃을 쏟아냈다.
“으으으악-!”
털썩.
종남파 도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헉, 헉, 괴물이다.’
중조는 시커멓게 탄 도의를 입은 채 망연히 바라봤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개방에서…… 저런 놈을 키워 내다니…….’
콰아아앙-!
곧바로 이어지는 또 한 번의 폭음!
중조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다른 모든 종남파 도사들도 마찬가지.
휘이이익-!
한순간 우자림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허헉!”
그때, 뒤로 넘어갔던 중조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휙휙!
“후개…… 이…… 거지 새끼가…….”
주위를 빠르게 살폈지만, 걸협오성과 조여하의 신형이 보이지 않았다.
퍽! 퍽!
그는 주위에 쓰러져 있는 도사들을 발로 찼다.
“이 자식들이 안 일어나고 뭐 해?”
“끄으으응.”
종남파 도사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신 안 차려? 본 파에 당장 연락을 띄워라! 상대는 걸협오성이다!”
“으어…… 네, 넵!”
중조는 몸을 살폈다.
도의는 성한 곳이 없었지만 다행히 내력에는 영향이 없었다.
‘후개, 두고 보자!’
* * *
우자림을 벗어난 후.
남하림이 걸음을 멈췄다.
“고마워요.”
조여하는 걸협오성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울 건 없습니다. 여기 노인장의 부탁을 들어준 거니까.”
만통자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녀가 종남파에 잡힐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했으니까.
“후개, 우리 때문에 종남파와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괜찮을지 모르겠네.”
“음…… 뭐…… 괜찮습니다. 귀찮긴 하겠지만 큰일이야 있겠어요?”
“자네가 상관이 없다면야 다행이지만……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지.”
조여하는 물끄러미 걸협오성이라 불리는 다섯 명을 쳐다보았다.
‘대단하다고 하더니…… 사실이잖아.’
툭.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바로 옆에 있던 팽유도의 허리를 슬쩍 건드렸다.
“이봐요.”
“아…… 예, 소저.”
“도광걸이죠? 도와줘서 고마워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없어요. 아 참, 제 이름은 조여하라고 해요.”
“조 소저시군요. 전 팽유도라 합니다.”
“팽 공자님. 항상 소문을 많이 들었어요. 역시 직접 보니 더 대단하시네요.”
“대단은 무슨.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난 개고생했는데. 별거 아니었다고?’
평소 도망에 일가견이 있다 자부하던 조여하는 괜히 무안해졌다.
자신은 탈탈 털렸으니까.
남하림은 떠날 준비를 했다.
“우린 그만 가자.”
“이보게, 후개. 어딜 가려는가?”
“이번엔 약속대로 찾아주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다만…….”
만통자는 바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돌아갈 모양이군.”
“서로 갈 길이 다르잖아요. 돌아가야죠. 저희가 너무 좋으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구천신품이 궁금하지도 않는가?”
“관심 없어요. 저번에 이야기했잖습니까. 내 물건이 아닌 건 관심 없다고.”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조여하가 앞으로 나섰다.
“잠깐만요.”
그러고는 천에 싼 물건을 꺼내 들었다.
천을 풀자 나타난 것은 깨진 반지 조각.
“여하야, 이게 무엇이냐?”
“가짜……. 제가 화산에서 가지고 나온 구천신품이 가짜였어요.”
“그게 정말이냐?!”
만통자가 화들짝 놀라며 깨진 반지를 집어 들었다.
“이것이 자하동에서 가지고 온 게 맞단 말이지?”
“네.”
“허…… 허허…….”
만통자가 허탈하게 웃었다.
“후개, 이것이 가짜라는군.”
“…….”
남하림은 대답이 없었다.
“왜 말이 없지?”
“그건 모르는 일이죠.”
“무슨 뜻인가?”
“저 여자가 진짜는 숨기고 일부러 가짜를 보여줄 수도 있고.”
조여하는 순간 울컥했다.
“아니,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소저, 난 남을 믿지 않소이다.”
“무슨 말이에요! 내가 진짜로 거짓말을 한다고 보는 거예요?”
“과도한 흥분은 진실을 숨길 때 나오는 반응인 경우가 많은데.”
“허어? 대체 웬 생트집을……! 내가 뭘 숨긴다는 건가요?”
스윽!
남하림은 손을 뻗어 그녀가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아. 진짜 피곤하네. 됐습니다. 어차피 난 그 물건에 관심도 없고 하니, 우리 서로 갈 길을 가죠. 두 분은 현천회가 뭔가 하는 곳에 가시고, 우린 돌아갑니다.”
“아니, 이봐요!”
조여하가 흥분해 소리쳤지만, 남하림은 단칼의 그녀의 말을 잘랐다.
“억울하면 화산파에 가서 왜 가짜를 놓아뒀는지 따지시오.”
“……이익!”
만통자와 조여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노인장, 그럼 우린 먼저 가겠습니다. 종남파에서도 믿지 않을 테니, 조심해서 가시기를 빕니다.”
남하림은 바로 돌아섰다.
“돌아가자.”
* * *
“하림 형, 따라붙었는데?”
“모르는 척해.”
만통자와 조여하가 계속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남하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부장, 일부러 따라오는 건가?”
“우리하고 방향이 같겠지.”
“그런가?”
“오랜만에 편하게 한잔 마실까?”
“좋아!”
성철각이 바로 대답했다.
마을로 들어간 다섯 명이 첫 번째 객잔을 지나쳤다.
‘저 녀석들, 어디로 가는 거야?’
두 번째 객잔도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얼마쯤 지난 후에야, 만통자는 다섯 명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아냈다.
‘추금루! 이놈들이 자기들끼리…….’
왠지 서운하다.
나도 술이라면 자다 가다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하는데.
조여하가 얼른 추금루를 가리켰다.
“저들이 저기로 들어갔어요!”
“……크흠.”
“우리도 얼른 들어가요.”
“저긴 술을 마시는 곳이라…….”
만통자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우물거렸다.
“아니, 왜요? 우리도 한잔 마시면 되죠.”
“괜찮겠느냐?”
“저도 성인인데 마실 수 있어요.”
“뭐…… 그렇다면 우리도 들어가자.”
만통자가 추금루로 앞장섰다.
척!
건장한 사내가 만통자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노인장께서는 멈추시지요.”
사내들 뒤에 있던 마른 중년인이 다가왔다.
“추금루에 볼일이라도 계신지요?”
“허허, 이 사람아. 술집에 술 마시는 거 말고 무슨 볼일이 있겠는가?”
“그렇군요.”
척.
중년인은 손바닥을 폈다.
“본 루는 선불로 한 냥을 받습니다.”
“한 냥? 진작 말을 하지.”
만통자는 동전 한 냥을 꺼냈다.
“잠깐.”
“또 뭔가?”
“동전이 아니라 금전 한 냥입니다.”
“뭣이? 금전?”
“맞습니다. 기본 금전 한 냥은 자리값이고, 기본 한상차림은 금전 열 냥입니다.”
“이런 도둑놈들이 있나? 세상에 그런 술집이 어디에 있나?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군!”
“영감님이 모르는 말씀이십니다. 추금루의 영업 방침이오니, 돈이 없으시다면 물러가시지요. 본 루는 귀빈들을 영업하는 장소입니다.”
“…….”
조여하가 앞으로 불쑥 나왔다.
“그럼 아까 들어갔던 거지들이 그 돈을 냈다는 건가요?”
스윽.
중년인이 허리춤에서 금원보를 꺼냈다.
“후개라는 분께서 요것을 주시더군요. 그분은 남천상국의 셋째 공자님이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특급 손님이시지요.”
* * *
스윽.
팽유도는 창가에서 추금루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갔어요.”
“잘됐군.”
“부장, 굳이 저들과 떨어지려는 이유가 있어?”
“피곤하잖아. 종남파도 졸졸 따라다니게 된 판에. 같이 있으면 또 엮여.”
“나도 동의한다. 사람이 좋아 보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이휘연도 남하림의 말에 바로 동의했다.
“흐음, 그렇긴 하지. 그건 그렇고, 난 조여하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의외의 일이 일어났어.”
당무독이 가짜 반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도. 설마 화산파에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네. 반지가 가짜라고 했을 때는 살짝 소름까지 돋았어.”
“저는 지금도 완전 제대로 한 방 맞은 느낌이에요.”
“후후후.”
남하림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림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게 이상하지. 누구라도 했을 법한 생각이야.”
“이젠 어쩌죠? 다시 화산파에 가야 하나? 반지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 군사가 화산파에 다시 보낼 텐데요.”
“갈 필요 없어. 어차피 화산파는 도둑을 맞은 거고, 훔친 곳은 현천회인 거야. 우리는 모르는 일이고.”
“그녀가 가지고 간 건 가짜잖아요”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
남하림의 말에 네 사람은 가만히 시선을 마주쳤다.
“그럼…… 화산파만 좋은 일 만들어준 거네요?”
“맞아. 화산파가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정말 조여하 혼자 몰래 자하동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엥? 무슨 말이에요?”
“하하!”
결국 남하림의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다른 네 사람의 머릿속에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