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99화 (100/328)

99. 현천회

‘현천회(玄天會)라…….’

만통자가 몸을 담고 있는 단체.

화산파에서 가짜 구천신품을 훔치고 달아난 여인은 그와 같은 소속이었다.

자신들과 함께 화산파로 올라온 이유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뭐, 성공은 했네.’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

훔친 물건이 가짜라는 사실.

남하림은 오른손에 낀 반지를 슬쩍 보았다.

“노인장, 도둑은 어떻게 다시 만나려고 하셨습니까?”

“흐음…… 원래는 화음 객잔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랬군요.”

“뭐가 그래? 중간에 네가 나서는 바람에 일이 이상하게 꼬여 버렸어.”

“이건 제 잘못이 아니라 노인장이 똑바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신 거죠. 다 들켜놓으시고선.”

“정말로요. 부장 책임이 아니라 만통자님이 말을 안 해줘서 일어난 일인 것 같습니다. 미리 말하셨음 범인에 대해서 화산파에 가르쳐 주지 않았을 텐데요.”

성철각이 바로 두둔했다.

그는 사실 무림맹보다 무림의 분란을 없애고 싶어 하는 현천회가 구천신품을 가지고 가는 게 좋을 듯싶었다.

“어허,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더만. 네놈들과 내가 무엇을 말하리…….”

남하림은 진지하게 물었다.

“현천회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실 수 없다니 묻지 않겠어요. 다만 도둑을 찾기 전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현천회에서 무림에 이상한 짓을 하면 그땐 앞뒤도 안 보고 끝장이에요.”

“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네가 생각하는 정도로 본 회는 나쁘지 않으니깐.”

“노인장의 말을 믿는 겁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 듯해서요.”

“그거라도 믿어줘서 고오맙다. 그럼 현천회에 대해서 알려주었으니 넌 약속을 지켜야겠지?”

“알겠어요. 약속대로 그녀의 행방을 찾아서 가르쳐 드릴게요. 딱 거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노인장이 알아서 하세요.”

“이놈아. 나도 더 이상은 도와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그럼, 찾으러 가볼까요?”

“연락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찾겠다는 거냐? 좋은 방법이 있느냐?”

“간단해요. 우린 도둑을 쫓는 화산파의 도사들을 따라가면 되죠.”

‘쩝…… 맞군.’

“부장이 잔머리 하나는 역시 뛰어나.”

“머리가 좋은 거로 하자.”

* * *

화음현 마을에 내려온 일행은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향했다.

스윽.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상에 거지가 없는 마을은 없으니까.

“하림 형, 저기……!”

팽유도가 사람들 사이로 한 곳을 가리켰다.

“흐, 쉽지.”

길가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거지.

땡그랑!

“고생이 많네요.”

거지가 동냥 그릇에 떨어진 은전 한 닢을 보았다.

“누구신지?”

“개방의 후개올시다.”

“……!”

환하게 웃는 남하림을 올려다본 거지의 눈이 번쩍 떠졌다.

‘후개…… 님!’

개방의 신이 눈앞에 있었다.

반짝반짝한 은전을 보니 재신 같기도 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화산파 도사들이 내려와서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소?”

“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요. 어제…….”

거지는 감격에 달달 떨며 자신이 아는 사실을 모두 알려주었다.

“고맙소. 열심히 동냥하시구려.”

씩 웃은 남하림은 일행에게 다가섰다.

“후개, 뭐라고 하더냐?”

“어제 화음 객잔에 화산파 도사들이 몰려왔다가 사라졌는데, 그 뒤로 못생긴 여자 하나가 객잔에서 빠져나갔다고 하더군요.”

“어디로 갔다고 하더냐?”

“서쪽으로 움직였다고 했어요.”

“서쪽이라면…….”

“짚이는 곳이 있나요?”

“서안으로 향하는 게 맞을 게다. 빨리 가자.”

만통자는 다급히 움직였지만,

“뭣들 하고 있느냐? 왜 멀뚱멀뚱 서 있어?”

“흐음, 우리가 계약하기로는 그녀를 찾는 것으로만 하지 않았나요?

“그렇지. 근데…… 왜?”

“방금 그녀의 행방을 찾지 않았습니까. 이젠 노인장께서 알아서 하셔야죠.”

‘허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놈.’

만통자는 어이가 없었다.

“이놈아. 이게 찾아준 것이냐? 보통 우리가 말을 할 때 찾아준다는 뜻은, 내 앞에 가지고 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죠. 그건 찾아주는 것이고요. 우리가 약속한 것은 그 여자의 행방을 찾는 것입니다.”

“…….”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찾아서 알려주겠다고 했지 그녀를 찾아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이놈……! 사기다!”

“사기는 무슨…… 노인장께 돈 한 푼이라도 받았어요? 그저 현천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간단하게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구천신품을 왜 얻으려는지 이유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요.”

“……크으윽.”

“빨리 가서 찾아보세요. 더 늦어지면 따라잡지 못할 수 있어요.”

그가 현천회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한, 남하림은 완전히 신뢰할 생각이 없었다.

만통자는 한숨만 계속 내쉬었다.

“휴우…… 알겠다. 본 회가 구천신품을 가지려는 이유를 말해주마.”

“좋아요.”

“우린 오래전부터 한 가지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과연 은하검인 유극지가 구천마제를 죽였을까.”

“만통자께선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당무독이 중간에 나섰다.

“독광걸, 그걸 모른다는 것이네. 구천마제는 이십 년 동안 구천마성을 이끌었던 인물이야. 그런데도 중원 무림인들은 그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무도 본 적 없는 이와 맹주님이 싸워 이겼다는 말이군요.”

“맞다. 사실 그의 말뿐이지. 아직까지도 구천마제의 죽음은 오직 맹주만이 알고 있다. 구천마제 본인을 빼고는 말이야.”

“의심이 드는 것은 알겠어요.”

“분명 무림맹 군사도 그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따로 구천신품을 모으려는 거야. 이걸 빌미로 맹에 반기를 드는 자를 쳐낼 수도 있으니 그놈 입장에선 일석이조였겠지.”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구천신품으로 구천마제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다는 거군요. 노인장과 군사의 뜻이 같다면 구천신품을 서로 공유해도 되지 않나요?”

“후후, 그 인간이 공유를 할 것 같으냐? 우리에게 있는 것은 물론, 없는 것도 빼앗아 갈 녀석이다.”

“혹시 천사회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

구천마성과 구천마제의 존재.

그의 진정한 신분이 밝혀진다면, 그 내용에 따라 무림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제 대충 알겠군요. 구천마제의 신분을 알아내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네요.”

“맞다.”

“그 일을 현천회가 굳이 숨어서 할 필요가 있나요?”

“세상일은 어느 누구도 모를 일이다.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지.”

짜악!

남하림은 기합을 주며 박수를 쳤다.

“아, 깜짝이야!”

만통자는 화들짝 놀랐다.

“이제 이유를 들었으니 도둑을 잡으러 가죠.”

“잡긴 뭘 잡아. 그냥 그녀와 만나게 해주면 될 뿐이다.”

화음현을 나온 일행은 서쪽을 향해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둘 다 같은 방향인데…… 어디로 갈까요? 점괘를 한번 보세요.”

“그건 네놈들이 정해야지.”

“훔, 할 수 없군. 개방의 비기를 사용할 수밖에…… 유도야. 부탁한다.”

척.

두 갈래 길 앞에 선 팽유도.

‘개방의 비기를……?’

만통자는 생전 처음 보는 비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퉷.

팽유도는 고개를 하늘로 보며 침을 뱉었다.

그리고 얼른 뒤로 물러나 어느 방향으로 떨어지는지 확인!

차악!

중앙선을 넘어 왼쪽에 떨어졌다.

“하림 형, 왼쪽 길입니다.”

“수고.”

“비기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개방의 비기라고 해서 기대했다.

“이게 대단한 것이냐?”

“쓰읍, 그건 아니죠. 아무것도 안 하시면서 개방의 비기를 무시하시다니.”

“항상 느끼지만 네놈들은 정상이 아니야.”

“남다름은 특별! 얼마든지 좋은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죠.”

남하림은 씨익 웃으며 왼쪽 길로 들어섰다.

* * *

‘허어…….’

만통자는 속이 답답했다.

서안으로 향했다는 조여하를 찾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정상이다.

“어휴…….”

“왜 그리 한숨을 쉬세요.”

“아니…… 그게 화산파에서 찾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만나야 하는 게 아니냐?”

“난 또 뭐라고. 노인장께선 동료를 믿지 못하는 모양인가 봐요?”

“…….”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중원에서 그녀를 잡을 수 있을 인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만무하니까.

“그게 아니라면 주위 광경을 보면서 가죠. 중원엔 수많은 길이 있잖아요. 우리가 언제 이 길을 두 번 다시 지날 수 있을까요?”

남하림은 평소와 달리 차분하게 말을 했다.

‘허허…… 또 새로운 면을 보는군.’

“……그럴까?”

만통자도 마음을 비웠다.

느긋하게 경치를 보려고 할 때.

“엇, 가자.”

파아앗-!

남하림이 갑자기 신법을 펼치며 앞으로 사라졌다.

그를 따라 네 명도 동시에 신법을 펼쳤다.

“……야, 인마!! 급할 거 없다며! 망할 놈들이 어른을 놀리고 있어?!”

남하림은 최대한 빠르게 신법을 펼쳤다.

‘이건 화산파의 기…….’

전방에서 전해져 오는 미약한 기.

한데 점점 가까이 갈수록 화산파의 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채애애앵! 채앵!

귓가에 도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파의 기가…… 더 빨리 가야겠어.’

슈우우웅-

만리추풍신법이 극성으로 펼쳐졌다.

* * *

“으으윽.”

명조도인은 허리를 부여잡았다.

‘크윽…… 심하군.’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

도둑을 쫓아가던 도중, 천사회 소속의 혈사단이 갑자기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무자비하게 펼쳐지는 공격.

천사회 혈사단 소속의 무인들은 강했다.

삼군 매화검대의 무인들은 맞서 싸웠지만, 혈사단에 의해 거의 모두 중상을 당하거나 쓰러졌다.

낙저랑만이 선 채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상황.

“천사회에서…… 왜……?”

“이유가 달리 있겠소이까?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있으면 치울 뿐.”

‘이들도 구천신품을……!’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들을 공격할 리 없다.

“명조, 오늘 본인을 만난 건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시오.”

혈사단 단주 진형은 양손에 쌍륜을 들어 올렸다.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주지.”

피이이이잉-!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쌍륜이 회전했다.

탈각참륜(脫殼斬輪).

명조도인을 향해 쌍륜이 날아간다.

파아아아앗-!

순식간에 열 개로 늘어나는 철륜,

‘욱……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명조도인은 허리의 고통을 참으며 검을 끌어당겼다.

[가만히 계세요.]

그때,

휘리릭.

붉은 태극의 문양이 명조도인을 스쳐 지나갔다.

티이이이잉-!

열 개의 철륜이 태극의 검기에 부딪치며 뒤로 튕겨 나갔다.

이휘연이 명조도인의 앞에 내려섰다.

“걸협오성……?”

“뒤로 물러나십시오.”

화산파의 도사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걸협오성의 뒤로 물러났다.

진형은 쌍륜을 막아낸 이휘연을 쏘아보았다.

“네놈이 개방의 한심걸인가?”

말없이 그를 노려보는 이휘연.

“건방지군.”

파아아앗!

진형은 부지불식간에 공중으로 몸을 띄워 양손에 든 쌍륜을 던졌다.

팟! 팟! 팟! 팟!

수십 개의 철륜에서 쏟아진 백광이 이휘연의 전신을 향해 떨어졌다.

스으으으으-

이휘연은 태극흑검에 내력을 올려 천천히 돌렸다.

붉은 태극이 점점 커지며, 철륜에서 쏟아진 백광을 하나씩 막아낸다.

콰아악!

콰아악!

붉은 태극의 막을 뚫지 못한 백광이 하나둘씩 스러졌다.

“일검일심(一劍一心) 일심일백만(一心一白萬)…….”

태극혜검의 요결.

붉은 태극의 중앙을 향해 태극흑검이 찔러 들어갔다.

슈우우욱-

진형의 가슴을 향해 강하게 뻗어 나가는 태극흑검의 검기.

하늘보다 무거운 압박이 진형에게 떨어졌다.

‘이건…… 막을 수 없다…….’

쉬이이이익-!

이휘연의 일검을 맞은 고목이 마치 물에 녹는 듯 무너져 내렸다.

“헉…….”

겨우 몸을 끌어당겨 일검을 피한 진형은 입이 다물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스쳤다면…….’

육편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철썩!

“으악!”

넋을 빼고 있는 그의 뒤로 혈사단의 수하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성철각의 각법에서 뿜어져 나온 위력은 일각필살(一脚必殺)!

짜아아악-!

짝!

찰진 소리와 함께 혈사단의 무인들이 나가떨어졌다.

휘이이이잉-

번쩍!

콰아아앙-!

회선천도(回旋天刀).

더 강한 힘을 끌어내기 위해 회선장법을 응용하여 새로운 도법을 창안했다.

선풍발도(旋風發刀)의 초식이 펼쳐지자, 팽유도의 주위는 단숨에 초토화되었다.

“커아아악-!”

바닥에 쓰러진 무인들의 신형은 야수의 발톱에 당한 것과 같았다.

“키야, 다들 잘하는구만.”

“너희들은 안 싸우냐?”

만통자는 직접 싸우지 않고 연신 감탄만 하는 남하림과 당무독에게 한 소리 했다.

“다들 잘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전 몰라도 무독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저들한텐 좋을 겁니다.”

“…….”

당무독은 신나게 구경하면서도 싸우고 싶은지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긴…… 이놈이 움직이면 여기 전체가 독에 마비되겠지.’

가공할 세 사람의 무력.

진형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들의 실력은 각 문파의 최고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저 녀석들은 사대천사군장 정도의 실력이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할지도…….’

손에 든 쌍륜은 이미 반쯤 깨진 상태.

그에 비해 이휘연의 가느다란 검은 여전히 서늘한 빛을 뿜었다.

샤르르르-

이휘연의 발걸음이 연꽃이 떨어지는 듯, 바람처럼 날렸다.

연화락(蓮華落)의 보법.

화려한 개방의 보법으로, 태극의 움직임에 가장 적합했다.

“허허…… 연화락을 이리도 맛깔지게 펼치다니…….”

만통자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태극혜검의 초식과 연화락의 보법은 화려함 그 자체.

화라라락-

태극흑검이 지나가는 뒤로 붉은빛이 어지럽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진형은 도저히 막을 자신이 없었다.

‘아…… 름답군.’

그는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임을 깨달았다.

우우우-

전신의 내력을 모두 끌어 올려 쌍륜에 집중했다.

쌍륜이 빛을 내며 터져 나갔다.

파아아아앗-!

수십 조각의 파편이 이휘연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번쩍!

의검일체(意劍一切).

태극흑검의 끝에서 흐르던 선은 하나의 점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無).

태극의 붉은빛이 가느다란 붉은 선을 만들었다.

스걱.

진형의 목에 그어지는 혈선.

“멋진 검이었…… 다.”

진형의 무릎을 꿇리며,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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