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96화 (97/328)

96. 칩입자

“흐흥흐…… 흐흐흥.”

만통자는 흥얼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였다.

“이 녀석아, 뭘 그리 입안에서 중얼거리고 있느냐?”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노래? 즐거운 모양이지?”

“산세가 보기 좋아서요. 예전부터 오악은 한 번씩 구경하고 싶었거든요. 오늘 운이 좋게도 화산에 올라오네요.”

“허얼…… 지금 놀러 가는 줄 아느냐?”

“나중에 일어날 일은 그때 생각하고, 지금은 주위에 펼쳐진 멋진 경관을 보는 게 어떻습니까? 가슴이 시원해지지 않나요?”

“에잉…… 한심걸, 대체 저 녀석은 왜 저러냐? 화산파에 가면서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지 않느냐?”

싱긋.

이휘연은 대답 대신 엷게 미소를 지었다.

“화산파에선 이미 우리가 가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구천신품을 얻겠다는 놈이 생각도 없느냐? 정확히 무슨 계획이라도 없느냐?”

“만통자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림 형의 머릿속이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요. 만통자님께서도 경관을 즐기세요.”

“우와…… 멋진데…….”

‘참 나, 이 녀석들도 똑같군. 대담한 건지, 태평한 건지.’

스윽.

남하림은 문득 궁금했다.

“근데 노인장이 왜 걱정하시죠?”

“……잉?”

“그 물건과는 상관없으시잖아요. 구천신품에 눈독들이시다 진짜 큰일 날 수 있어요.”

“허 참, 허허 참, 혹시나 관심을 가진다면 죽이기라도 하겠구먼.”

“상황이 이상하게 변한다면 모를 일이죠. 그런 일이 안 일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남하림의 표정은 단호했다.

“네 녀석도 마찬가지다, 이놈아. 관심 없다고 하더니 겨우 구천신품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구먼. 실망이군.”

“노인장께서 지금 오해하고 계시네요.”

“어떤 점이 오해라는 것이냐?”

“구천신품 때문이 아니라, 제가 가지게 될 것을 훔치려고 하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

만통자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난 남의 물건은 관심이 없어요. 내 손에 들어오기 전 구천신품을 누가 가지고 가더라도. 하지만 내 손에 물건이 들어왔을 때는 다릅니다. 소유권이 넘어온 이상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제가 제 물건은 집착이 강하거든요.”

“그럼, 만약 다른 사람이 먼저 화산에 있는 물건을 가지고 간다면…….”

“방금 말했잖아요. 어쩔 수 없죠.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는 내 것도 아니잖아요.”

저렇게 말하면서도, 남하림은 손에 들어온 구천신품을 제갈령에게 넘겼다.

‘구천신품에 관심이 없는 건 맞겠군.’

“만약…… 네가 얻은 구천신품을 내게 달라고 하면 주겠느냐?”

“아뇨.”

“왜? 군사는 되고 난 왜 안 되는데?”

“난 신의가 있어요.”

“허어러러러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하라라라라랄.”

“……뭐냐?”

“웃겨서요. 하라라라라라랄.”

“됐다. 그만해라.”

“싫어요. 하라라라라라라랄.”

“크윽, 다채롭게 미친놈.”

* * *

만통자는 한동안 괴상한 소리를 들으면서 화산을 올랐다.

‘이건?’

만통자는 흠칫했다.

스샤삭-

화산을 오르는 산길 옆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기척이 들렸다.

“지금 아셨어요? 산문에서부터 우리를 쫓아왔는데.”

“알고 있었다고?”

“우린 모두 눈치채고 있었어서 노인장도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

‘허허, 헤어진 뒤 얼마나 지났다고? 일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화산에 오르는 이들은 이미 산동악가에서 만났던 걸협오성이 아니었다.

그들 개개인이 보여주는 무공의 발전이 비상식적인 정도로 빨랐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니 조만간 모습을 드러내겠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는 남하림의 예상대로 움직였다.

매화도의(梅花道衣)를 두른 스무 명가량의 화산파 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멈추시오.”

세 개의 매화가 수놓인 매화도의.

사십 세 초반의 중년인, 매화검인 낙저랑이 남하림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대가 후개요?”

“맞습니다.”

사전에 무림맹에서 연락을 받았다.

#NAME?

‘에잉, 나는? 설마 무시하는 것인가?’

자신이 중원 밥을 먹은 지가 얼만데.

만통자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이보게. 노부는 만통자라고 하네. 자네는 누구인가?”

걸협오성과 만통자가 함께한다는 보고는 없었다.

낙저랑은 곧바로 예를 취했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낙저랑이라 합니다.”

“몰라봤군. 하마터면 화산파에서 노부를 무시하는 줄 알았다네.”

“제가 어찌…….”

낙저랑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불발인가. 만통자님이 함께 오시다니.’

문으로 들어서기 전 걸협오성의 위명을 확인하고 싶었건만.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걸협오성도 따라오시오.”

시간은 충분히 있을 터였다.

* * *

매화제일문.

화산파의 경내에 들어서기 위한 정문이다.

걸협오성과 함께 만통자가 올라온다는 소식에, 노매전 장로회에서 오장로 명궁도인이 마중을 나왔다.

만통자에 대한 예를 취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만, 그의 관심사는 걸협오성에 쏠려 있었다.

‘저 아이들이 개방의 제자들인가.’

다섯 명의 신형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기.

‘오호. 무형의 기가 모두에게서…… 겨우 약관의 나이라고 들었건만 대단하구나.’

정심한 내력으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수련해야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무형기다.

그것이 겨우 약관의 나이에 느껴지다니.

‘대체 개방에서 어떻게 저 아이들을 키웠는지 모르겠군.’

명궁도인의 얼굴에 부러움이 스쳤다.

스윽-

그는 한 걸음 나가 만통자를 먼저 반겼다.

“만통자께서 직접 오셨군요.”

“허허, 명궁. 오랜만일세. 우리가 만난 지 오 년은 지났구만.”

“그렇습니다. 그 정도 된 듯합니다.”

“노매전으로 갔다는 소식은 들었네. 내 보기에 자네는 아직 현장에서 움직여야 할 사람인데.”

“세월은 무시할 수 없더군요. 이젠 후배들에게 물려줄 시간이 되었지요.”

“허허.”

만통자의 웃음에 동병상련의 뜻이 느껴졌다.

이내 명궁도인이 남하림의 앞에 섰다.

‘이 청년이 후개군.’

소문으로 들은 모습 그대로다.

개방의만 아니면 귀공자라 불러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

“개방 제자 남하림입니다.”

“본도는 명궁이라 하네.”

화산장절(華山掌絶) 청류향 명궁.

“화산사절의 장절로 고고(孤高)하신 청류향 님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후후, 후개에게 그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군.”

명궁은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일로 화산으로 올라왔는지 미리 소식은 들었네.”

“서로 이야기하기 편하겠습니다.”

“우선 들어가세. 그대들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대전에선 회의를 하고 있다네. 아마 지금쯤이면 끝났을 수도 있겠군.”

“알겠습니다.”

* * *

“저 녀석들이군.”

“개방의 거지 놈들…….”

경내로 들어오자, 화산파 도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걸협오성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당무독과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릴 보는 눈이 장난 아닌데?”

“당연하겠지. 저들 입장에서 우린 강탈자잖아.”

“요즘 중원 문파들 사이에서 우리 밉상인 거 알아요?”

“유도야, 원래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겐 장애물이 많은 법이야. 편하게 생각해.”

“노력해야겠네요.”

“이런,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군. 여가궁으로 먼저 안내를 하겠네.”

“알겠습니다.”

남하림은 그의 뒤를 따라 돌아섰다.

* * *

“여기서 쉬고 있으면 연락이 올 것이네.”

“고맙습니다.”

“그럼 가보겠소이다. 불편한 게 있으면 주위에 사람을 부르면 될 걸세.”

명궁도인은 곧바로 여가궁을 나서 대전에 도착했다.

‘흠……  역시 아직 끝이 나지 않았군.’

명궁도인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두 진영으로 나뉜 대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구천신품을 돌려주자는 찬성파와 줄 수 없다는 반대파.

회의를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건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무극전주 명동도인은 가슴이 답답했다.

“대체 이해가 안 되오. 대화산파의 수많은 절기들을 놓아두고, 그깟 아무런 쓸모도 없는 구천마제의 장난감에 목숨을 거는 것인지!”

“허허, 무극전주. 이 문제는 자존심이외다. 구천신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 파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을 정녕 모르겠소이까?”

“노군전주, 무림맹에 구천신품을 넘기는 것이 대화산파의 위명에 금이 가는 일이라는 말이오?”

“당연하지 않소이까. 무림맹 군사가 성의를 다해 구천신품을 돌려달라고 했다면 돌려줬을 것이외다. 하지만 어땠소? 새파란 아이들을 보내 다른 말 필요 없이 무조건 내어놓으라고 하지 않소! 이게 명백히 본 파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오!”

노군전 명조도인은 구천신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사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계속 강조했다.

어느 쪽도 양보를 하지 않는 상황.

화산파의 결정은 결국 한 인물에 달려 있었다.

장문인 명진도인이 안으로 들어서는 명궁도인을 보았다.

“오장로, 오셨소이까? 무림맹에서 온 손님들은 어디에 있소?”

“회의가 길어진 탓에 잠시 여가궁에서 쉬도록 했습니다. 만통자께서도 함께 오셨습니다.”

“만통자, 그분도 오셨단 말이오?”

“네. 걸협오성과 친하신 듯했습니다.”

“오장로, 그들을 만나 보니 어떠했소?”

“차분하게 보이더군요. 정파의 여느 후기지수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무림맹 명정이 말하기를, 거만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 제자가 후개에게 당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중대한 일에 사심이 들어간 보고를 하다니…….”

명진도인은 이들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대들의 뜻을 알겠네. 이 문제에 대해 고려한 후, 내일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겠네.”

명진도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대전을 나가면서 명궁을 불렀다.

“명궁, 잠시 보세나.”

“알겠습니다.”

* * *

“쯧.”

대전을 나오는 태음전주 명무도인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주위로 명조도인과 서너 명의 도인들이 합류했다.

“화산파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소이다.”

“명조 사형의 말씀이 맞소이다. 본 파가 무림맹의 하수인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구천신품에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 가진 자가 주인이라 생각합니다.”

“명하, 자네의 말이 맞네. 굳이 돌려줄 이유가 없지. 그리고 무림맹 군사가 원하는 것을 보면, 소문처럼 구천신품에 뭔가 숨겨져 있을지도.”

“그렇다면 더욱더 군사에게 주면 안 되겠군.”

명조도인은 눈동자에 탐욕이 살짝 묻어났다.

“장문인의 뜻은 돌려주는 방향인 듯하외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들이 구천신품을 먼저 확보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 물건은 장서원 자하동에 있소. 그곳을 드나들 수 있는 인물은 장문인 밖에 없지 않은가.”

절레절레.

명조도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후후후. 아니, 한 명이 더 있소.”

“누가……? 아하, 명영을 말함이오?”

“그렇소. 장서원주 명영 또한 가능하지요.”

“그가 장문인의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함부로 열어주지 않을 것이오.”

“우선 장서원에 가봅시다. 만일 열어주지 않더라도 장문인이 개인적으로 꺼낼 수 없도록 사전에 이야기를 해놓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음…… 노군전주의 말이 맞는 것 같소이다. 장문인께서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미리 명영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좋겠소.”

그들의 발길이 장서원으로 향했다.

* * *

화산파 북쪽에 위치한 장서원.

기암괴석 사이에 지어진 그곳으로 들어서는 길의 폭은 석 자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나다닐 수 없었다.

“조용하군.”

명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장서원 호위가 자신들의 기감을 눈치 못 챘을 리 없다.

진작 장서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하건만.

하지만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명무 사제. 들어가 보게.”

“알겠습니다.”

명무도인은 장서원으로 들어서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건…….’

희미한 기가 손잡이를 타고 느껴졌다.

휘릭!

매화신보의 매화류영(梅花流影).

명무도인은 허공에 흩날린 매화를 밟으며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채애애앵-!

명조도인이 검을 뽑으며 명무도인의 옆으로 다가섰다.

“무슨 일인가?”

“사형, 안에…… 누군가 있소.”

스르르릉-

채애애앵!

명조도인이 장서원을 노려보았다.

“명영!”

소리를 질렀지만, 장서원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할 뿐.

“명조 사형, 장서원을 지키던 호위무사들도 전혀 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망할, 빨리 가서 장서원 상황을 알려라!”

휘익!

후미에 있던 도인이 빠르게 경내로 달려갔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장서원에 침입한단 말인가!’

장서원은 화산파 경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세 건물 중 한 곳.

‘장서원에 소리 없이 침입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보통 놈이 아니다.’

명조도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슥슥.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섰다.

‘기가…….’

명무도인의 말처럼 문안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꾸욱.

태을구검을 문을 향해 뻗었다.

콰아아앙-!

태을검기에 문이 산산조각 부서졌다.

휘익!

‘어디냐?!’

휘이이익-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

명조도인은 몸을 비트는 동시에 태을구검을 뒤로 휘둘렀다.

휙!

하지만 검은 허공을 가를 뿐.

“웬 놈이냐?”

명조도인이 유령처럼 뒤로 물러나는 인영을 보며 소리치자,

“태을검인. 소문대로 멋진 한 수였다.”

변조한 듯한 음성이 울렸다.

명조도인은 옆으로 돌아서며 어둠에 가려진 인영과 마주쳤다.

“수고하시오.”

휙!

복면인은 신형을 날리는 동시에 연막탄을 던졌다.

퍼엉!

장서원 전체에 연기가 가득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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