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81화 (82/328)

81. 결전이 시작되다

다음 날 아침.

풍천분타주 정전국은 이른 시간 남하림의 방문을 받았다.

일각 동안 남하림의 설명을 들은 그는 시시각각 표정이 변했다.

쿠웅!

정전국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찍었다.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후…… 후개님, 살천…… 성……?”

“허 참, 분타주가 그리 심장이 약해서야 제대로 수하들을 이끌고 가겠소이까? 여기 물 한 잔 마시고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벌컥.

정전국이 사발 가득한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꺼억.”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트림을 했다.

“끄읍, 크흠, 죄…… 송합니다.”

“으, 됐네. 자연 현상인 것을…….”

남하림은 예전 같았으면 질색을 했겠지만, 오 년 동안 개방에서 지내다 보니 익숙해져야 하는 것도 있었다.

“후개님. 정말로…… 정말 살천성 놈들이 여기로 쳐들어올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마 확률은 거의 십 할입니다. 분타주도 그들을 만나보고 싶지 않습니까?”

“아이고…… 무슨 농담을 그리 진하게 하십니까? 살천성을 만나고 싶다니요. 전혀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런, 정말로 농담이 아니지요. 아까 수하들을 시켜 신려세가에 연락을 보냈지 않았소이까. 그들이 오기 전에 살천성에서 신나게 달려올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아…… 진짜……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신 겐지…….’

“그, 그럼…… 다른 분타나 본 방에 급히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굳이? 여기에 있는 인원이면 충분히 싸우고도 남지요.”

“후개님…… 상대는 살천성…… 입니다요.”

“살천성이라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각하고 싸워봤는데 별거 없더군요. 살수가 살수일 때 겁나는 거지,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 이상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엥? 정말이십니까?”

“내가 분타주께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기다리고 있다가 오는 즉시 타구봉으로 개 패듯이 잡는 겁니다. 아마 신이 나실지도 모릅니다.”

“흐음…… 뭐…… 후개님이 그러시다면야 알겠습니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개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오랜만에 타구봉에 때를 벗겨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며칠 시간이 있으니까 그동안엔 풍천분타 개방 형제들에게 타구봉법을 봐드리죠.”

“정말이십니까? 후개님께서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는 말을 들으면 분타의 거지 놈들이 정말로 좋아할 것입니다……!”

분타주 정전국은 처음과 달리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중에 모두 연무장으로 모이도록 하세요.”

“넵, 알겠습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아마 한 놈도 빠짐없이 연무장에 모일 것입니다. 후개님과 함께 무림을 위해 싸운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오히려 저희 풍천분타에게는 영광입니다.”

“후후후, 감사합니다. 분타주께선 진정한 협의개방도이십니다.”

정전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개님,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쿵! 쿵!

정전국은 가볍게 바닥을 튀며 밖으로 달려 나가면서 소리쳤다.

“전원……! 집합……!”

* * *

삼 일의 시간이 지났다.

“얍! 아얍!”

부우우웅-!

휘이익-

오백여 명의 개방도들이 연무장에 모여 타구봉을 휘둘렀다.

남하림은 그들 사이로 움직이면서 소리쳤다.

“견화타구(犬畵打拘).”

“견화타구.”

오백여 명의 개방도가 한꺼번에 내는 복창이 우렁찼다.

“모두 잘 들어라! 타구봉법을 펼칠 때 유의해야 할 것은 타구봉의 끝이다. 손에 힘을 주지만, 절대로 타구봉이 떨려서는 안 된다.”

십팔초 타구봉법은 개방의 제자라면 기본적으로 익히는 봉법이다.

하지만 남하림이 가르친 타구봉법은 달랐다.

그들이 익혔던 타구봉법에 완벽한 무리(武理)까지 더한 가르침.

같은 동작을 펼치더라도 초식과 구결의 연관성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삼 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개방도들은 완전히 새롭게 변한 타구봉법을 받아들였다.

파아앗!

남하림은 타구봉을 들며 마지막 초식 만투만구(萬投萬拘)을 펼쳤다.

타타타타-

슈우우우!

허공을 내리친 타구봉의 위력에 폭풍이 솟구쳤다.

“와아아아아!”

“휘유우우우-!”

개방도들은 그 자리에 서서 환호를 질렀다.

십팔초식의 타구봉법으로 보이는 가공할 무력!

자신들도 열심히 수련하면, 후개처럼 완벽하게 펼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슷하게 펼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솟아났다.

“만투만구!”

남하림은 뒤로 돌아서며 내력을 끌어 올려 소리쳤다.

이어져 나온 오백여 명의 함성이 풍천분타를 진동시켰다.

“만…… 투…… 만…… 구……!!”

콰아아아앙!!

연무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하림 형은 정말 대단해.”

“어떻게 삼 일 만에…… 엄청난 일을 했어.”

네 명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단체로 개방도들을 가르치는 것은 생전처음이었다.

“당연할 수밖에…… 타구봉법을 익히면서 깨우친 것을 빠짐없이 가르치고 있다.”

이휘연도 인정했다.

자신의 성취와 깨달음에 대해서는 동문이라 할지라도 가르쳐 주기 쉽지 않았다.

“만일 하림 형이 마음만 먹는다면 십만 방도 전체를 가르쳐서 중원을 일통할지도 모를 일이야!”

“유도 오빠, 정말이야?”

“헤헤, 안 믿기지? 그런데 안 믿기는 짓을 태연히 해내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부장으로 모시는 하림 형이지.”

“아하…… 진짜 엄청나네…….”

턱!

팽유도는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잡는다. 싫다고 해도.”

“유도 오빠…… 싫다고 하면 좀 그렇지…….”

“하림 형도 소소를 싫어하지는 않아. 예전에 백화미 백리 소저에게 하던 행동하곤 다른 것 같거든.”

신소소도 그녀와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대충 들었다.

“소소, 잘해봐. 나도 응원할게.”

당무독과 성철각도 한쪽 눈을 깜빡이며 응원을 보냈다.

“……흠흠, 모두들 고마워요. 꼭 성공해 보겠어요.”

신소소의 시선은 개방도 한 명, 한 명 자세를 고쳐주는 남하림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 * *

두두두두-

중년 사내는 거칠게 말을 몰았다.

한시라도 멈출 수 없었다.

‘소소야……! 무사히 기다려라. 아빠가 간다!’

신려세가 가주 신명항은 개방의 서신을 받은 뒤 곧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살천성에서도 움직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살천성…… 만일 소소의 옷깃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네놈들은 지옥을 맛볼 것이다!”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

신소소. 딸아이를 잃는 것은 세상을 잃는 것과도 같았다.

광야를 달리던 신려세가의 무리들.

“주군. 저기……!”

신명항의 옆에서 달리던 아수군장 대하벽이 앞을 가리켰다.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사내.

그의 등 뒤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황금 깃대에 붉은색의 깃발.

천사기(天邪旗).

사파의 종주 천사회의 깃발이었다.

‘젠장.’

신명항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파의 일원으로서 천사기를 무시할 순 없다.

천사기를 등에 맨 사내가 그 자리에서 소리쳤다.

“신려세가 신명항은 천사기를 앞에 두고도 가만히 있는가?”

휘익.

신명항은 바닥에 내려앉아 부복을 했다.

“천사기령을 뵙습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

“제 여식을 데리러 가는 길입니다.”

“개방의 풍천분타에 가는 것인가?”

“…….”

신명항은 부복한 상태에서 인상을 썼다.

‘또 새어 나갔군.’

“왜 대답이 없는가?”

“맞습니다. 그곳에 제 딸아이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세가로 돌아가라.”

꾸욱.

신명항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가 돌아가서 기다리면 그 아이를 무사히 데려다줄 것이다.”

“살천성에서 딸아이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잘못된 소문이다. 살천성에서는 후개의 손에서 그대의 여식을 구하려고 했다.”

‘이것들이 서로 짜고……!’

신명항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 딸아이는 제가 직접 데리고 갈 것입니다.”

파아아앗-!

사내의 몸에서 내력이 솟구쳤다.

“지금 천사기를 무시하는 것인가?”

“…….”

신명항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사내가 말한 그분의 존재.

“천주님의 명이십니까?”

“아니다. 혈군사이신 기성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이다.”

“혈군사께서 무슨 이유로 그런 명령을 내리는지 모르겠소이다. 전 절대로 딸아이를 구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천사기의 명을 거부한다면 천사회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그래도 좋겠는가?”

신명항은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제 딸아이가 무사하다면 천사회에서 빠진들 상관없습니다.”

스윽.

신명항은 부복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사기령을 보았다.

“이번 일이 끝난 뒤 천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 천사기를 무시한 죄를 달게 받겠소이다.”

휘릭!

신명항이 다시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말을 몰며 앞으로 달려갔다.

펄럭.

홀로 남은 천사기령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후, 신명항, 지금 가도 늦었을 것이다. 천사회를 거스를 거라던 혈군사님의 말씀이 맞았군.”

* * *

살주세가 가주 안본강은 느긋하게 앉은 채 수하들을 내려다보았다.

살주일살군 전풍 뒤로 삼백 명의 살수들이 살기를 품었다.

“전풍, 살왕께서 보고 계신다. 일살군으로 충분하겠지?”

“걱정 마십시오. 일살군은 살각의 멍청한 놈들과는 다릅니다. 겨우 이런 일에 살주삼군 전체가 움직인다는 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후후, 그렇겠지. 이번 기회에 살각을 본 세가로 흡수해야 하지 않겠나.”

안본강은 욕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독정이 죽고 남은 살각의 잔존 세력을 흡수하면, 살천성 내에서 살주세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은 자명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수고하게.”

척.

전풍이 고개를 숙였다.

휙!

그러고는 일살군의 수하들을 향해 돌아섰다.

“풍천분타에 있는 모든 거지들을 지운다.”

“옙!”

샤샤샤샷-

일살군 삼백 명의 살수들이 풍천분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휘이이잉-

“오는군.”

이휘연은 바람 속에서 적의 살기를 감지했다.

“역시…… 신려세가보다는 살수 놈들이 먼저 왔어.”

남하림은 앞을 주시했다.

‘도전을 하겠다면 얼마든지 받아줘야지.’

“분타주님께서는 살수 한 놈이라도 얼씬도 못하게 소소를 지켜주세요.”

“후개님, 걱정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이분의 옷깃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전국은 열 명의 개방도와 함께 신소소를 둘러싸며 보호했다.

남하림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이휘연부터 네 사람이 모두 따랐다.

척.

풍천분타의 정문을 보며 섰다.

개방으로 돌아가기 전 분타들을 방문하면서, 남하림은 예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타를 세운 장소.

무턱대고 비어 있는 땅에 분타의 깃발을 꽂은 게 아니었다.

방어를 위한 최적의 지형.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수성진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땅에 분타를 세워놓았다.

“참 신기한 게 본 방에도 대단한 분들이 계셨다니깐.”

“하림 형, 무슨 말이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전방을 봐.”

‘앞을?’

팽유도는 자신이 찾지 못한 것이 있는지 앞을 유심히 살폈다.

“으음…… 아무것도 없는데?”

“부장. 한꺼번에 다 보여. 신기하네?”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의 팽유도와 달리, 성철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한눈에 전방이 들어온다는 것을 눈치챘다.

“한 번에 다 보인다고요? 어…… 그렇네.”

팽유도는 신기한 듯 앞을 보았다.

“개방의 분타들은 기본적으로 배수(背水)의 지형에 팔괘오행진으로 건물들을 세웠어.”

스윽.

남하림은 나무로 세운 해우소를 가리켰다.

“저기를 봐. 여기에서 보면 곤(坤)에 위치야. 그리고 저기 뒤로 쓰러져 가는 창고는 리(離). 주방 건물은 건(乾)이고, 정문은 태(兌)이지. 물론 튼튼하지는 않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지만 밖에서 쳐들어오는 저놈들의 눈에는 커다란 장애물처럼 보일 거야.”

짝짝짝!

팽유도는 신기한 듯 박수를 쳤다.

“와아아아- 하림 형,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알아?”

“기본 아니냐? 오행팔괘 정도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익히잖아. 다들 안 그래?”

“아니. 안 그래. 하림 형네가 이상한 거야. 하긴, 물어본 내가 잘못했지.”

“히히히, 유도야. 우리 부장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잖아. 이런 부장하고 같이 있다니 운이 좋아.”

“진짜 철각 형도…… 됐다.”

남하림은 미소를 띠며 자리를 배치했다.

“유도는 무조건 선봉이니깐 중앙 태(兌)를 맡으면 좋겠지?”

“당연. 선봉이나 중앙은 무조건 내 자리야.”

“그럼 오른쪽 건(乾)은 철각이 맡고, 휘연 형이 곤(坤)을 맡아주세요.”

“알겠다.”

“나와 무독은 여기에서 조율을 하면 될 거야.”

남하림은 살천성과 싸울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기세를 올려주고.’

병법에 이르기를, 싸움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사기!

척.

남하림은 허리에서 타구봉을 뽑아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개방의 제자들은 외치시오. 개방천하! 천하협의! 협의무적!”

“개방천하! 천하협의! 협의무적!”

“개방은 천하무적이다!”

풍천분타의 하늘 위로 함성이 울렸다.

개방도들은 남하림을 따라 외치면서 깨달았다.

후개와 함께하면 개방은 무적이라는 것을.

* * *

전풍은 풍천분타의 정문을 보았다.

두두두두.

멀리서 보기에는 허름했던 문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성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타로 들어서는 담장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낮았다.

“단숨에 넘어간다.”

“옙.”

타아앗!

전풍은 땅을 차며 정문 위로 솟구쳤다.

휘이이익-

그를 따라 일살군의 살수들이 담장 앞에서 날아올랐다.

번쩍!

“누구 맘대로 들어오려는 거지?”

‘헉, 갑자기!’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폭발하는 도광(刀光).

콰아아앙!!

전풍은 극성으로 내력을 올리며 철부극을 들어 막아냈다.

“우욱-”

몸이 밀리면서 바닥에 내려앉았다.

겨우 담장을 넘은 살수들 또한 안으로 내려섰지만.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딱, 딱, 딱, 딱, 딱!

타타타타타타타타!

타구봉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개방도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일살군의 살수들을 밀어붙였다.

칙칙.

태앳!

양손에 타구봉을 치고 땅에 침을 뱉는 타구진법.

원래 침을 뱉는 동작은 없었지만 누군가 한 명이 침을 뱉자 따라 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뭐냐?!”

‘허어, 거지 새끼들이 더럽게시리!’

일살군의 살수들은 어이가 없었다.

딱딱딱딱딱딱딱딱!

점점 시간이 지나자,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타구봉 소리가 거슬렸다.

거지들이 무슨 무공을 하냐며 무시했던 개방.

하나 그들은 그 개방의 진법에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죽음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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