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74화 (75/328)

74. 가출을 결심하다

호북성 제일세가는 제갈세가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호북성 제일의 사파 세가가 있었으니.

바로 신려세가.

‘내 나이 열다섯.’

동경 속에 비친 소녀의 얼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인상을 썼다.

타악!

그러고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동경을 세게 닫았다.

“엄마야!”

문 옆에 졸고 있던 시녀 홍화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가씨,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홍화야. 내가 이 꽃다운 나이에 늙은 아저씨에게 시집을 가야 하겠니?”

“그…… 그렇긴 하네요.”

“더구나 나이가 열다섯 살이나 많은 아저씨한테.”

“저어…… 아가씨. 근데 늙은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좀 젊지 않나요?”

“됐어. 그냥 내가 늙은 아저씨라고 부르면 늙은 아저씨야.”

“아…… 네. 알겠어요.”

“이럴 때가 아니지.”

벌떡.

신소소는 앉은 자리에서 다급하게 일어났다.

“헉! 아가씨! 어디를 가시려고?”

홍화가 기겁하고는 두 팔을 벌리며 문을 막아섰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아가씨, 가주님께서 아가씨가 방에서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요.”

“아버지가?”

“네, 네! 아가씨.”

“허어어…… 홍화 씨. 우리 한 가지 생각해 봐야 게 있어. 아버지가 오래 사시겠어? 아니면 내가 오래 살까? 둘 중 하나만 선택해.”

“그, 그거야…… 아가씨께서…… 오래 사시…… 겠죠.”

“그거야. 그러니깐 홍화 씨는 내 말을 따라야 해. 내가 아니면 누가 홍화 씨를 챙겨주겠어, 안 그래?”

홍화는 우물거리다 옆으로 물러났다.

“그럼, 빨리 돌아오셔야 합니다. 꼭이에요.”

“걱정 마. 주위에 졸졸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있잖아.”

* * *

우물우물.

십 대 중반의 미소년이 손에 당과를 들고 시장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시장은 시끄러운 소리들로 가득했다.

미소년으로 변장한 신소소는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며 시장을 구경했다.

‘히, 이게 사람 사는 맛이잖아.’

세가에서는 밥 먹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했다.

‘이 냄새는…….’

저절로 걸음을 멈추게 하는 맛있는 냄새.

신소소는 자석에 끌려가듯 후각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닭꼬치를 사 먹기 위해 모여들였다.

‘어디 나도…….’

신소소는 얼른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가 합류했다.

가게 안에서 닭꼬치와 함께 술잔을 나누는 사내들이 떠드는 소리가 울렸다.

“역시 걸협오성이지 않나?”

“또 무슨 사건이 터졌는가?”

“허허허, 네놈은 어디 산속에 처박혀 살았냐?”

“무슨 일인데? 빨리 이야기해 보게.”

스윽.

신소소의 몸이 옆으로 움직였다.

“이보슈, 똑바로 줄 서시오.”

“아, 네. 죄송합니다!”

그녀는 얼른 바로 섰지만, 귀는 여전히 가게 안으로 향했다.

“용병십군의 오왕군이 후개한테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고.”

“와우, 정말인가? 네놈이 워낙 뻥을 잘 치니깐 믿을 수가 없는데?”

“내가 언제 뻥을 잘 쳤다고 그래? 사기는 네놈이 잘 치잖아!”

“뭐라고? 이 자식이…… 요즘 간이 부은 모양이지?”

“어쭈. 박춘이 눈에 보이는 게 없지? 너 오랜만에 한 번 맞아봐라.”

투닥투닥.

가게 안은 순식간에 싸움판이 일어났다.

냠냠.

어느새 닭꼬치를 손에 넣은 신소소는 한쪽에 앉아 싸움 구경을 했다.

‘흐음…… 걸협오성이라…….’

최근에 이들보다 많은 소문이 들리는 인물은 없었다.

무림을 동경하던 그녀는 특히 후개 남하림에 대해선 하나도 빠짐없이 소식을 듣고 있었다.

“한 번만 만나보면 소원이 없겠다. 거지인데도 비단옷에 얼굴도 엄청 잘생겼대고. 무공도 오왕군을 한 방에 보낼 정도면 엄청 강하잖아! 바로 이런 사람이 내 결혼 이상형이지.”

그녀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얼마 전, 아버지 신명항이 찾아와서 혼처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상대는 사음문주의 둘째 공자.

곧장 그에 대한 소문을 모았다.

이름 완비연, 나이 삼십 세.

무공 수위는 절정에 이를 정도의 고수라 했지만 문제는 엄청 못생겼다고 했다.

그의 초상화가 생각났다.

‘에이…… 입맛 떨어졌어.’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손가락을 펼치며 구부리던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앗, 큰일이다. 며칠 안 남았잖아.’

혼사를 결정짓기 위해 사음문에서 오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는 굳이 싫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 번만 만나보고 결정짓자고 달랬다.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신소소는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그분을 한 번도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결혼할 수 없어.’

그녀는 강한 신념이 생겼다.

스윽.

주머니를 만져보았다.

혹시 몰라서 돈은 항상 여유 있게 가지고 다녔다.

“그냥…… 이대로 가출해 버려?”

신소소는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맞아. 내 인생을 아버지 뜻에 전부 맡길 순 없지. 한 번이라도 보고 결정을 내릴 거야.’

가출하려면 일단 우선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주위에서 미행하는 호위를 떼어놓는 것.

신소소는 고개를 돌리며 씨익 웃었다.

스윽-

그러고는 사람들이 많은 상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일각 뒤.

‘왜 안 나오시지?’

여인들의 속옷을 파는 가게 앞에서 신소소를 미행하던 호위가 초조하게 기다렸다.

‘헉, 설마……!’

어떤 가능성을 떠올린 호위가 하얗게 질린 채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아악!”

“변태다!!”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휙-

그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온 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큰일 났다. 아가씨가 사라졌다.’

* * *

무당산에서 내려온 걸협오성은 본 방에서 한 장의 전서를 받았다.

‘완전히 조종을 하는구나.’

남하림이 해탈한 얼굴로 전서를 펼쳤다.

방주 오종의 짧은 뜻이 적힌 서신.

#NAME?

이후, 걸협오성은 가장 가까운 개방의 균현분타를 시작으로 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 분타에 이틀씩.

분타주 소속의 개방도들은 찾아온 다섯 명의 걸협오성을 대환영했다.

중원 무림에 개방의 존재를 알린 게 얼마 만인지 그들도 몰랐다.

수많은 개방도들은 남하림을 후개로, 나머지 네 명을 당주급으로 공손하게 대했다.

모두가 언젠가는 개방에서 주요한 자리를 맡을 것임을 잘 알았으니까.

덥석.

장양분타주 하송은 헤어지기 아쉬운지 눈물을 흘리며 남하림을 세게 껴안았다.

‘하아…….’

개방도 남하림에게 적응했다면 남하림도 개방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남하림은 코만 찡그릴 뿐 얌전히 안긴 채 고개를 옆으로 힘없이 내밀었다.

“흑, 크흡, 후개, 다음에도 꼭 뵙도록 하겠소이다.”

장양분타에 들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방주 오종의 명에 모든 개방도들이 중원 무림 방방곡곡 후개에 대한 소문을 냈다는 사실.

‘……방주께 완전 뒤통수를 맞았네.’

중원 전체에 남하림이 후개라고 소문이 난 이상,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들 너무 환영해 주잖아…….

휙휙휙-!

남하림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사이, 성철각은 긴 팔로 배웅하는 장양분타 개방도들에게 인사했다.

“철각, 그만 가자.

“어…… 알겠어, 부장.”

성철각은 앞서가는 남하림의 뒤로 얼른 따라붙었다.

“유도야, 이젠 어디냐?”

“다음은 호북 총타로, 양양의 양주에 있어요. 여기서 동쪽으로 올라가면 돼요.”

“용병들이 쫓아다니는 판국에 우리는 분타를 찾아 돌아다니는구나.”

“헤헤, 하림 형,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동문들이 우리를 보면서 좋아하니 힘들어도 기분은 좋은걸요.”

“나도 좋아.”

성철각도 얼른 한마디 했다.

“다들 좋다고 하니 다행이네. 귀찮아할 줄 알았거든. 뭐, 본 방에 가도 특별히 할 일도 없는 것 같으니까 천천히 올라가 보지.”

“하림 형, 근데 무림맹 군사가 만나자는 연락을 했잖아요. 올라가는 길에 무림맹에 들를 건가요?”

“흠, 좀 더 생각해 보고.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고 무조건 오라 명령하듯 말하는 게 싫어.”

“그래도 무림맹인데…… 괜히 본 방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싶어서요.”

“우리한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못 들었다고 하면 돼.”

남하림은 어렴풋 무림 군사를 만난 기억이 났다.

그가 다섯인가, 여섯 살 정도의 나이였다.

문사건을 쓴 중년 사내.

눈빛이 투명할 정도로 맑았다.

‘이상하게 기분 나빴어. 내 모든 것을 꿰뚫어본 것 같았거든.’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남하림이 지금까지도 기억할 만큼, 군사의 눈빛은 특이하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알겠어요. 부장의 뜻이라면.”

양양에 들어선 걸협오성은 양주 총타로 가기 전 번성에 먼저 도착했다.

양양은 호북성에서 무한과 비슷할 정도의 큰 도시.

웅성웅성-

다각다각.

마을에는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과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어울려 있었다.

유행 때문에 다섯 명의 특이한 모습도 흔해 보이는지,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다.

“엄청 큰 마을인가 봐. 사람들을 보니 개봉보다 큰 것 같은데?”

“아마 더 클 거야…….”

마을로 들어서자 다섯 명 모두 구경하기 바빴다.

‘번성까지 왔는데 오랜만에 가볼까?’

호북 총타에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 잠깐 어디 들렀다 가자.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부장, 어디 가는데?”

“외갓집.”

“엥?”

남하림의 말에 네 명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표정들이 왜 그래? 난 외갓집이 있으면 안 돼?”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외가에 대한 말을 안 해서 없는 줄 알았어.”

“나도…….”

팽유도는 무림대사전을 빠르게 꺼내 들었다.

‘찾았다. 호북 양양 번성에 위치한 가문. 표강상국. 호북제일상국. 가주 표후.’

차르르-

팽유도의 손이 빨라졌다.

남천상국에 관해 적힌 부분.

손으로 주욱 짚어 내려오면서 남천상국주의 둘째 부인, 즉 남하림의 어머니 이름을 찾았다.

#NAME?

표강상국은 남하림의 외갓집이었다.

“혀어어엉- 진짜 어마어마하구나-!”

* * *

표강상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성이었다.

표강상국 정문 앞에 도착한 걸협오성이 작아 보일 정도.

상국으로 들어서는 성문은 삼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직계들이 드나드는 금문(金門), 상국의 주요 임원들과 큰 장사를 위한 사업가들을 위한 은문(銀門),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이 드나드는 동문(銅門)이었다.

은문과 동문에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하림은 줄을 서지 않은 채 주위를 보았다.

“이봐, 거지들! 어디에 서 있어? 얼른 뒤로 가서 줄 서지 못해?”

동문으로 들어서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다섯 명을 보며 소리쳤다.

“미안해요!”

남하림은 옆으로 물러났다.

다다다-

그때, 멀리서 정문의 지키던 위사가 얼른 뛰어왔다.

가끔 끼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큰 싸움이 일어나곤 해서, 표강상국의 위사들은 항상 주의하고 있었다.

“똑바로 줄을 서게. 큰일 난다네.”

“그러네요.”

“음…… 그나저나 자네들은 거지인가, 아닌가? 요즘엔 도통 다들 이상하게 옷을 입어서 모르겠단 말이야. 별 이상한 게 유행이라니깐. 하긴 이런 유행을 하림 공자님께서 만들었으니 뭐라 말도 못하겠네.”

“후후후, 그런가 보네요.”

“자네들도 빨리 줄을 서게.”

“네, 네. 알겠어요.”

남하림이 앞장을 섰다.

위사는 금문으로 가는 다섯 명을 보았다.

‘아니, 저들이……!’

“이. 이보게, 거긴 자네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니네.”

“괜찮아요.”

“큰 사달이 날 텐데…….”

금문을 지키는 인물은 자신들과 같은 위사가 아니었다.

“멈춰라.”

담웅은 앞에 멈춘 다섯 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왔느냐?”

“남하림.”

“방금 뭐라고 했지?”

“내가 남하림이라고요.”

“…….”

담웅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남하림 뒤에 선 네 명을 살폈다.

“여기 안 온 지 십 년이니 그동안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겠죠. 못 믿겠으면 빨리 가서 표후 외숙부를 모시고 오세요.”

“어…… 어…….”

담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멍해졌다.

남하림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청년이 진짜 남하림이라고?

“잠…… 깐만…… 기다리시오.”

담웅은 곧바로 금문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웅성웅성.

표강상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동요하며 소곤거렸다.

일각이 지났을 쯤.

천문 안에서 거의 얼굴을 보기 힘든 표강상국 국주 표후가 다급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하, 이런! 정말로 네놈이 왔구나.”

“외숙, 오랜만이에요. 무탈하셨습니까?”

“개방의 영웅, 후개인 내 조카가 왔구나!”

“에이, 영웅은 무슨…… 여기 제 동료들입니다.”

“오호, 이들이 그 유명한 걸협오성이구나.”

표후는 한 명씩 손을 잡았다.

“잘 왔소이다.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금문으로 들어가는 남하림을 보던 담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쫓아냈다면 큰 사달이 날 뻔했어…….’

* * *

나란히 앉은 두 사람.

표후는 싱긋 웃는 남하림을 보면서 마음이 졸였다.

마치 호랑이 앞에 강아지처럼.

“조카, 요즘 엄청나게 유명하더구나. 장사꾼은 안 해도 되겠어.”

“그래도 제 핏줄은 장사꾼이죠. 잠시 심심풀이로 무림에서 놀고 있어요.”

“허허허, 심심풀이로 놀고 있다는 게 이 정도면 제대로 해서 무림을 차지해도 되겠구만!”

“그렇지 않아도 한번 해볼까 생각은 했어요.”

타악!

표후는 앞에 놓인 상을 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아암. 우리 조카가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게 없지.”

“외숙부는 저를 너무 잘 아시네요.”

“당연한 말이 아닌가. 외숙인 내게 부탁할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을 하게. 무조건 도와주겠네.”

“지금은 굳이…… 필요하면 부탁드릴게요.”

“…….”

표후는 눈치를 보듯 차를 마셨다.

“아 참, 제가 그동안 개방에 있는다고 까먹은 게 있더라고요.”

덜컥.

찻잔을 든 두꺼운 손이 움찔거렸다.

“그게…… 뭔가?”

“제 나이 이십이 되는 날, 표강상국 중 표강표국과 호북상국을 받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잊었더라고요.”

“…….”

한때 호북성에서 중급 정도의 세를 지녔던 표강상국.

하지만 십 년 전 무리하게 벌인 사업의 대실패로, 모든 것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남후정은 표진희의 부탁으로 표강상국을 흡수하려고 했지만,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처남 표후에게, 상국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표강표국과 호북상국을 원했다.

어차피 두 사업체는 거의 재기할 가능성이 없던 업체였기에, 표 가문의 자손인 남하림이 이십 세가 되는 해 물려주기로 약조했던 것.

하지만 남후정은 앞날에 대한 사업수단 능력이 대단했다.

이후 십 년간 운영권을 맡으며, 표강상국을 망하기 전보다 더 크게 일으켜 세워 버린 것.

표강표국은 한때 표강상국의 주축이었으며, 호북상국은 하남상국을 위협할 만큼 지리적 조건이 좋았다.

결국 두 사업체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표강상국의 힘은 반 이상 줄어들 게 뻔했다.

인간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돌려주기 아까웠지만, 여전히 표강상국의 목줄은 남천상국이 잡고 있었다.

표후는 씁쓸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외숙, 조만간 사람을 보낼 테니 인수인계를 해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알겠네. 근데…… 그, 자네 모친도 이 사실을 아는가?”

“어머니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 같아서요. 저도 이제 성인입니다. 아, 혹시 제게 양도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아니, 아니…… 아닐세. 알겠네. 사람이 오면 곧바로 양도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이래서 전 외숙이 좋아요. 신의 있는 장사꾼의 표본이시니.”

표후는 남하림을 보면서 부러움이 밀려왔다.

돈과 사업에 관해 끊고 맺음이 확실했다.

‘완전 지 아비를 똑 닮았어. 사업엔 가족도 없는 매정한 남씨 놈들.’

자신에게도 아들 녀석이 있었다.

빈틈없는 남하림을 보니 자연스레 아들놈과 비교가 됐다.

“조카, 부탁이 있는데…… 호천을 좀 부탁하면 안 되겠는가?”

“……거지로 만들어달란 말씀이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사업을 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라든지, 정신머리 쪽으로 말일세. 워낙 철없는 망아지 같은 놈이라 뭐 하고 먹고살지 걱정이 많아…….”

“알겠습니다. 한번 만나보고 어떤 상태인지 볼게요.”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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