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71화 (72/328)

71. 무당산을 오르다

무당산으로 움직이는 가장 빠른 길은 뱃길.

걸협오성은 중간중간 남천상국에서 운영하는 상선을 이용해서 빠르게 남하했다.

선미에 앉은 이휘연은 눈을 감은 채 마음을 다스렸다.

‘사부님, 제자가 갑니다. 조금만 힘을 내주십시오.’

오래전부터 사부 진양진인은 몸이 편찮으셨다.

개방에 지내는 동안 항상 걱정하던 부분이 사부의 병환.

이는 진양진인이 이휘연을 개방에 보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오래 살지 못한 것을 알기에.

이휘연 홀로 무당산에 남겨둘 수 없었다.

이휘연과 떨어진 곳에 앉은 네 사람은 조심스레 얘기를 나눴다.

“휘연 형한테 들었는데 그 정도로 많이 편찮으신 줄은 몰랐네.”

“진작 알았으면 좋은 약재라도 올려 보냈을 텐데…….”

남하림은 미안했다.

특외부의 부장이라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챙겼을 뿐.

정작 형제에겐 신경 쓰지 못한 셈이 아닌가.

‘앞으로 내가 좀 더 챙겨야겠어.’

스윽-

엷게 한숨을 쉰 남하림이 이휘연의 곁으로 다가섰다.

“휘연 형, 괜찮아?”

“고맙다. 신경을 많이 써줬어.”

“신경은 뭐…… 당연한 거잖아.”

“사부님껜 죄송할 뿐이다. 못난 제자 때문에 늘 무당파에서 얼굴을 펴지 못하셨거든.”

“형이 왜 못났어. 형이 지금 얼마나 대단한데. 중원에서 우릴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사부님도 형을 자랑하고 계실 거야.”

이휘연은 아주 엷게 미소를 지었다.

“그랬으면 좋겠군.”

* * *

“크하하핫!”

우우우우우-

용병왕 역위천의 대소에 산이 크게 울렸다.

구천마제에게조차 머리를 숙이지 않았던 그의 별호는 불사무혼(不死武魂).

실룩.

양쪽 볼에 깊은 검상(劍傷)이 꿈틀거렸다.

“크크큭. 후개라고 하지만 겨우 약관밖에 되지 않는 어린놈에게 오왕군이 당했어.”

그는 분노에 싸여 있지 않았다.

마치 어린 자식이 큰일을 한 부모처럼, 그의 눈빛엔 대견함마저 느껴졌다.

“나이는 숫자일 뿐. 특히 우리들같이 전쟁터에서 칼밥을 먹고 사는 놈들에겐 아무 쓸모가 없지!”

자신도 십오 세 어린 나이부터 검으로 밥을 먹고살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가만히 두면 무림이 용병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위천을 향해 고개 숙인 사내는 삼왕투군 미공서.

용병십군의 일군으로 역위천의 오래된 친우이기도 했다.

“그건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그건…….”

“이번 기회에 이름깨나 날리고 싶은 녀석들이 많을 테지. 용병단의 몸값은 명성을 얼마나 떨치는가에 따라 변하지 않는가.”

“하긴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용병단의 목적은 결국 돈이니까.

“하핫, 앞으로 재미있겠어. 후개가 얼마나 용병들을 상대할지 궁금하군.”

현재 중원에 퍼져 있는 용병들의 목표는 단 하나.

용병림을 무시한 걸협오성에게 복수하는 것.

이미 용병들은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하며 걸협오성의 행방을 뒤쫓기 시작했다.

* * *

포구에 내린 다섯 명.

긴 시간 배를 타고 온 탓에, 허기가 졌다.

포구 끝에 보이는 간이 객잔.

객잔이라고 하기에는 허름했지만, 천막 아래로 나무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허어.”

나무 의자에 앉아서 소면을 먹는 사내들을 본 팽유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의 복장이 자신들과 너무 비슷했던 것.

비단을 여러 갈래 기워 만든 옷을 입은 사내.

삼베로 만든 옷에 등에는 커다란 도를 메고 있는 사내.

이마가 툭 튀어나왔지만 깔끔하게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사내도 보였다.

“여기도?”

이제는 웃기지도 않았다.

팽유도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툭.

“뭐여?”

입에 한가득한 소면 그릇을 든 사내가 팽유도를 찌릿 노려보았다.

“미, 미안해요.”

후룩-

사내는 후루룩 소면을 넘긴 뒤 팽유도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짜식, 유행을 아는구만.”

“그, 그렇죠.”

대충 닦은 탁자에 앉은 다섯 명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결국 남하림의 웃음이 터졌다.

“푸핫! 걸협오성이 유명한가 봐.”

“그러게요.”

탁!

점소이가 수건을 어깨 뒤로 걸친 채 다가왔다.

얼굴 표정부터 짜증이 팍 보였다.

“선불이오. 열 냥.”

“열 냥이라니? 우리가 뭘 시킬 줄 알고?”

휙!

점소이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걸려 있는 주문판을 가리켰다.

한 가지 음식밖에 팔지 않았다.

#NAME?

“요즘 도망가는 거지들이 많아서요.”

“에이.”

팽유도가 열 냥을 꺼내주었다.

휙!

“천소오!”

돈을 받은 점소이가 주방으로 소리치더니 사라졌다.

성철각이 흥미가 돋았는지 옆자리를 보며 기웃댔다.

“천하제일소면이라……?”

“맛이 있을런지 감도 안 잡힌다.”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점소이가 쟁반에 다섯 그릇을 들고 나왔다.

탁.

“맛있게 드슈.”

탁자에 내려놓은 소면들.

허연 국물에 소면밖에 보이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면을 슬쩍 들어 올린 성철각이 투덜거렸다.

“천하제일은 개뿔…….”

“푸훕, 철각, 나중에 맛있는 거 먹자.”

“알겠어…….”

두 손으로 그릇을 잡고 소면 국물을 마실 때였다.

두두두두-

멀리서 한 무리들이 나타났다.

“또 용병들인가 보네요.”

팽유도는 슬쩍 그들을 본 후 다시 소면을 먹기 시작했다.

“워어어어어-”

객잔 앞에 용병들이 멈춰 섰다.

극멸단(極滅團) 소속의 용병, 판도부가 말 위에서 객잔을 살폈다.

거지 복장을 한 채 소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어휴, 어째 하나들같이 거지처럼 생겼냐?”

그들은 걸협오성이 무당산으로 움직인다는 소식을 들은 후 길목에서 찾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걸협오성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원 각지에서 그들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

이유는 간단했다.

걸협오성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복장을 따라하는 사기꾼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

하루에도 수십 건씩 가짜 걸협오성이 나타나는 통에, 용병들은 허탕을 치면서 열심히 헛물만 켜고 있었다.

후루룩.

휙.

고개를 돌리자 그릇째 국물을 마시고 있는 성철각이 보였다.

‘이런 놈들이 걸협오성일 리 없지만…….’

그래도 확인은 필요하다.

판도부는 가까운 놈부터 잡아 신분을 물어보기로 했다.

툭.

판도부가 건드린 인물은,

‘이런. 하필이면…….’

당무독이 슬쩍 눈길을 돌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휘연의 머리를 건드린 판도부다.

분위기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이봐, 거지. 넌 어디서 왔어?”

“조용히 가시오.”

“…….”

짜릿.

판도부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동시에 객잔 전체가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거지 놈이 미쳤나? 방금 뭐라고 했지?”

“……사부님을 위해서 살인을 참는 중이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이휘연은 무당으로 가는 동안, 사부님의 쾌유를 빌며 살인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마지막 경고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이휘연의 기세에 판도부는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죽을 수도 있다.’

그는 슬그머니 뒤로 움직였다.

열 명의 용병 수하들도 판도부의 움직임을 읽었다.

스스스스스슥-

그들은 왔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물러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를 끝낸 남하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다.”

“그러게…… 맛은 없지만…….”

간이 객잔에서 숨을 죽이던 손님들은 다섯 명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휴우…… 숨 막혀 죽을 뻔했군…….”

‘찾았다. 걸협오성, 저놈들이야.’

한편, 도망가던 판도부는 확신했다.

척.

그가 손을 들어 수하들을 멈췄다.

본래라면 수많은 가짜들 속에서 진짜를 찾은 것에 기뻐야 했지만,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잠깐 다들 모여봐.”

판도부의 손짓에 모인 열 명의 수하들.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네. 조장.”

“걸협오성의 후개가 용병십군이신 오왕군님을 한 방에 조졌다고 했어. 그 전에 투용단과 창세단도…… 게다가 단주인 두 분은 무림맹에 잡혀갔고.”

“맞습니다…….”

수하들의 목소리가 축 늘어졌다.

“그런 인물을 지금 이 인원으로 이길 수 있다고 보냐?”

“…….”

“사실 투용단과 창세단에 비해 우리가 강한 건 아니잖아? 맞지?”

“그렇…… 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 손들어.”

판도부의 말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린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알겠지?”

“옛. 알겠습니다.”

“사실 그들이 걸협오성인지 아닌지 안 물어봤잖아.”

“맞습니다요. 우린 모르는 일입니다.”

“좋아. 그럼 가짜 놈들만 본 거다. 알겠지?”

그들은 인생을 편하게 살기로 정했다.

* * *

도가의 성지.

도가 무학의 최고봉은 무당파다.

“저기 보이는 산이 무당산이구나.”

이휘연을 제외한 네 명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허허. 유운아, 이제 가면 너를 언제 보겠는가?”

이휘연의 머릿속에서 사부 진양진인의 마지막 말이 떠나가지 않았다.

‘사부님, 제자 유운이 왔습니다.’

이휘연은 천천히 무당산의 냄새를 맡으면서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산문을 지나 들어선 해검지(解劍池).

“여기가 해검지야. 간단하게 예를 취하면 된다.”

이휘연의 설명에 네 사람이 무당파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해검지의 뜻은 검을 풀어놓으라는 뜻이었지만, 사실 실제로 검을 내려놓고 무당산을 오르는 무인은 없었다.

그렇게 해검지를 지나가려고 할 때.

스윽.

세 명의 무당 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자배의 도인으로 무당파의 이대제자들.

“허허. 누군가 했더니 개방에 간 무당 거지였군.”

이휘연은 그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사이가 좋지 않군.’

남하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그들의 시선에서 이휘연을 막아섰다.

자신은 사고를 치더라도 이휘연과는 상관없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개방의 후개, 남하림이외다.”

“알고 있네. 우린 무당파 제자인 현인과 현당, 현유라 하네.”

척.

남하림은 세 도인을 향해 포권을 했다.

“반갑습니다. 우린 무당파에 볼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허허, 본 파에 개방 거지들이 올 정도로 큰일이 생겼는가?”

“글쎄. 난 처음 들어보네.”

남하림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거…… 참. 개방의 후개를 거지라 놀리면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현인 도인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 갔다.

“개방이 설마 무당파에서 무시당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크흠…….”

“아, 무당파 장문인을 만나뵙고 여쭤보면 되겠군요.”

순간 세 명의 도인은 깜짝 놀라 쪼그라들었다.

“하, 하하하, 후개. 농담이었네. 자네가 대범하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지.”

“죄송하지만 전 그렇게 군자가 아닙니다.”

“개방을 거, 거지라고 불러서 미안하네.”

더 이상 그들과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 올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휘연 형, 가시지요.”

남하림은 세 사람을 노려본 후 이휘연을 호위하듯 무당산으로 올라섰다.

휘이이잉-

걸협오성이 사라진 자리로 찬바람이 불어왔다.

무당파의 이대제자들은 곤란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실패했어.”

“음…… 우리가 먼저 검을 뽑았어야 했나?”

“어떻게 하지? 사형이 난리 칠 텐데…….”

“나도 몰라.”

“근데…… 유운의 기세를 느꼈어?”

현유는 이휘연의 신형에서 흐르는 기를 느끼고 살짝 몸을 떨었다.

‘개방에 가서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 * *

해검지를 지난 걸협오성은 무당산을 올랐다.

멀리 서하대가 보였다.

처억.

조금 더 올라가자 자소봉 아래, 무당파의 건물이 나타났다.

무당의 기.

현기가 느껴졌다.

‘대단하군.’

남하림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휘연은 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휘연 형, 괜찮아요?”

“……조금 떨리긴 하네.”

“오 년 만에 돌아온 거잖아요. 그리고 이젠 예전의 무당파 제자가 아닌 걸협오성이고요. 우리가 뒤에 있을게요.”

“고맙다, 부장.”

이휘연은 어깨를 폈다.

무당파 도인들은 자소궁을 들어서는 다섯 명의 청년들을 보며 소곤거렸다.

“오호…… 저 아이들이…….”

“걸협오성이라는 개방의 제자들이군.”

“저기 유운도 있지 않는가?”

“지금은 한심걸이라 부르지 않은가?

당연히 이휘연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점점 더 많은 무당파의 도인들이 자소궁으로 모여들었다.

우우우웅-

자소궁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압박은 개방의 기와는 또 달랐다.

남하림은 이휘연을 따라 장문인의 앞으로 다가섰다.

진한 갈색의 목재 의자.

대무당파의 장문인이 앉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검소했다.

검선(劍仙)으로 불린 진무진인.

그가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이었다.

이휘연은 공손하게 두 손을 올려 예를 취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후후후, 오랜만에 보는구나. 얼굴이 많이 좋아져서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장문인께서도 예전과 변함이 없으십니다.”

‘허허…… 오 년의 시간이 이 아이를 많이 변하게 했구나.’

예전 같았으면 말을 하면서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너를 어떻게 부르면 좋겠느냐?”

장문인의 물음에 이휘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대답했다.

“편하실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유운이라고 하지 않는구나.’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장문인의 얼굴에 내심 서운한 기색이 스치고 사라졌다.

이휘연의 신형에서 흐르는 내기.

오 년 전 거칠었던 천살성의 내기(內氣)는 잔잔한 대양처럼 평온해 보였다.

‘이 아이가 이 정도의 그릇을 지녔을 줄은 미처 몰랐군.’

본 파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천살성의 기운이 단전 아래 깊숙한 곳에서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깝도다. 무당의 눈이 이리도 어두울 줄이야.’

장문인 진무진인의 아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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