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투용단
다각.
다각.
주인을 잃은 말들이 주위를 서성거렸다.
오십 기의 용병단.
염진과 마찬가지로 창세단(昌世團)은 이각 만에 타작당했다.
눈 주위에는 피멍이 들고, 입은 불어터지고, 옷들은 걸레가 되었다.
또한 타구봉에 코피가 터지고 머리가 깨지면서 주위에는 피가 흥건했다.
“으윽-”
“끄으응.”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와아…… 고작 다섯 명으로…….’
광삼은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툭툭.
남하림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염진을 건드렸다.
“이놈들을 어떻게 할까?”
“가까운 무림맹 지부에 넘기면 될 거야.”
“무독, 무림맹에 넘기기 전에 단전을 모두 지워야겠지?”
“끌고 가려면 지우는 게 편할 거야. 이놈들 단전을 영원히 지울까? 아니면 일시적으로 지울까?”
“두 번 다시 무공을 펼칠 수 없도록 완전히 단전을 없애 버려.”
“그러지 뭐.”
당무독은 가방을 열고 옥병을 꺼냈다.
“그건 무슨 독이지?”
“멸단독이라고 하는데 물에 타서 마시게 하면 단전이 녹아서 두 번 다시 재생할 수 없어. 한 번 만들어봤는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이놈들에게 써보면 알겠지.”
“내가 만들었지만 궁금하긴 해.”
잠시 뒤 광삼이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왔다.
스윽.
휘적휘적.
당무독은 바가지에 약을 탄 뒤 잘 녹도록 저었다.
“부장, 됐어.”
“좋아, 그럼 이자부터 해볼까?”
쿡.
남하림은 손가락을 튕기며 염진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점혈했다.
몸이 마비가 된 염진이 소리쳤다.
“뭐…… 무슨 짓을…….”
“조용히 하시오. 아혈을 누르기 전에.”
꾸욱.
남하림은 그의 양쪽 볼을 눌러 입을 열었다.
뚝뚝.
멸단독을 탄 물이 한 방울씩 염진의 목구멍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커어억!”
억지로 뱉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몸 안으로 흡수가 된 뒤.
염진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단전은 이미 느껴지지 않았다.
‘어…… 어…… 단전이……!’
“후, 후개, 한 번만 살려주시오.”
우선 급한 것은 살아남는 것.
염진은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머리를 땅에 대고 부복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눈동자엔 살심이 피어올랐다.
“어허, 여전히 살기가 느껴지는군.”
“아, 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담부터서는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후, 그 말을 누가 믿을지 모르겠군.”
염진은 애원이 통하지 않자 악을 쓰며 협박을 시작했다.
“만일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용병왕께서 네놈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짓을 한 네놈들이 할 소리는 아니군.”
“…….”
“유도야, 어쩔 수 없다. 무림맹 지부에 이놈들을 끌고 가야겠다.”
“알겠어요.”
당무독은 창세단 용병들에게 차례대로 멸단독을 먹였다.
컥컥!
커어억-
여기저기서 독을 뱉어내려 몸부림쳤지만 이미 그들의 단전은 중독된 상태.
“백리 소저, 우린 이놈들을 끌고 무림맹 지부에 가야겠소.”
“아…… 알겠습니다.”
“그럼 건강하십시오.”
“남 대협께서도 건강하세요.”
백리희와 남하림은 서로 돌아서며 자신의 길로 향했다.
* * *
무림맹 산서총부 정문이 시끌벅적했다.
다섯 명의 젊은 사내들이 수십 명을 포박한 채 정문에 나타났다.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후다다닥!
정문 위사 조몽이 내원을 가로지르며 총부실로 내달렸다.
“조몽, 무슨 일이냐?”
“앗. 총관님.”
조몽이 정문의 상황을 설명하자 총관의 목소리가 커졌다.
“뭣이라? 알겠다. 내가 바로 총부께 알리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드륵-
총관 공손무는 문을 열고 다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양 총부님, 공손무입니다.”
“들어오시게.”
드륵.
안으로 들어선 공손무는 두 명의 무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백리세가에서 물러난 청두사검 서문호진과 산서총부의 수장 양주위.
“무슨 일인가?”
“두 분께서는 정문에 나가보셔야겠습니다.”
“정문에?”
“걸협오성이 도착했는데, 용병림 소속인 창세단을 전부 포박한 채로 끌고 왔습니다.”
“……!”
양주위와 서문호진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거 원, 무슨 말인지…….”
“양 총부, 한번 가봅시다.”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켜 정문으로 향했다.
‘저게 뭐냐?’
그러자 쉽게 볼 수 없는 황당한 광경이 나타났다.
미리 듣지 않았다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저들이 용병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터였다.
“어허, 이게 무슨 일이지?”
“양 총부, 저들 다섯 명이 걸협오성이외다. 용병단을 잡아온 모양이군요.”
서문호진이 가리킨 다섯 명의 개방 청년들.
‘겨우 다섯 명으로? 개방에 인물이 났다고 하더니 사실이었군.’
양주위는 남하림을 자세히 뜯어 보았다.
“개방 제자 남하림입니다.”
“산서 총부를 맡고 있네. 양주위라 하지.”
“만나봬서 반갑습니다. 여기는 제 동료들입니다.”
“걸협오성의 위명을 많이 들었네. 만나서 반갑네.”
양주위는 네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후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하림이 아무리 아니라고 떠들어도 중원인들에게 개방의 후개는 이미 그였다.
하림은 해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백리세가로 가던 이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더군요.”
“후후, 하필이면 자네들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운이 좋게도 무림공적부에 오를 정도로 나쁜 놈들이길래, 적당히 패서 끌고 왔습니다.”
“후개가 말하는 적당하다는 말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군.”
양주위는 고개를 숙인 염진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누군지 너무나 잘 알았다.
‘허참. 세상 잃은 표정이군.’
피식.
순간 웃음이 나왔다.
“네놈들이 언젠가는 제대로 임자를 만날 줄 알았다.”
양주위는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이놈들을 모두 옥에 처넣어라!”
“넵.”
총부 소속의 무인들이 달려와서 용병들을 끌고 갔다.
“하하하하!”
서문호진은 대소를 터뜨렸다.
“후개가 큰일을 했군. 무림맹을 위해 미리 용병 놈들을 때려잡았어.”
“뭐, 그렇죠.”
‘하하, 웃긴 녀석이야.’
물론 무림맹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서문호진도 알았다.
“자네도 결심을 선 모양이군.”
“뭘요?”
“저놈들을 건드린 이상 용병림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제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크하하하! 마음에 들었다.”
덥석.
서문호진은 손을 뻗어 남하림의 어깨를 감쌌다.
“모두 들어가세. 기분도 좋은데 한 잔하지.”
* * *
두두두두.
“개방의 거지 새끼들이 정말 미쳤군.”
흑색의 투구를 쓴 중년 사내가 콧김을 씩씩거리며 욕을 뱉어냈다.
용병림의 투용단(鬪勇團).
단장 동황의 눈에 노기가 가득했다.
두껍고 짧은 눈썹은 인상을 쓰자 더욱더 짧게 보였다.
한 시진 전, 창세단의 소문을 들었다.
그는 곧바로 투용단을 이끌고 산서총부를 향해 달렸다.
용병림 등급 중 갑용급의 투용단은 강한 무력을 지닌 곳이다.
“단장님, 언덕만 넘으면 무림맹의 산서총부입니다.”
“무림맹놈들이…… 감히 우리 용병림을 건드리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빠드득.
그는 이빨을 갈며 빠르게 말을 몰았다.
산서총부 앞.
총부에도 용병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온다는 보고가 들어갔다.
총부 소속 무인들과, 서문호진과 함께 온 주룡군 이갑대 무인들이 진을 치며 기다렸다.
“서문 대주, 저들은 투용단이라고 하더군요.”
“제법 이름깨나 있는 인물이 오는군. 문제없소이다.”
서문호진은 갑용급의 투용단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걸협오성이 창세단을 가볍게 제압했으니까.
‘창세단을 다섯 명으로 제압했다. 용병 놈들, 말만 떠들썩할 뿐 아무것도 아니군.’
“양 총부. 용병 놈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때려잡겠소이다.”
“후후후, 그렇게 하시지요.”
우우우웅-
전방에서 들려오는 기의 울음소리.
백여 명의 투용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오는군.”
서문호진이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무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놈들에게 무림맹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모두 나를 따르라!”
차앗-!
서문호진의 신형이 투용단을 향해 한 줄기 빛처럼 쏟아져 나갔다.
‘크큭. 무림맹 놈들이 정신이 나갔군. 용병단에 직접 싸움을 걸다니!’
동황 또한 양손에 철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하하하, 투용단의 용사들이여. 무림맹 놈들은 때려 부수자!”
위이이잉-
철퇴가 양쪽으로 교차하며 달려오는 무인들을 향해 내리쳐졌다.
무림맹 무인들이 속수무책으로 튕겨 나갔다.
“이놈……! 내 검을 받아라!”
까아아앙--!
동황의 철퇴를 향해 서문호진의 검이 부딪쳤다.
주르르륵-
“용병 놈이 제법이구나.”
철퇴의 힘에 뒤로 밀린 서문호진은 다시금 검을 치켜 올렸다.
슈우우웅-
서문의 검은 광검(光劍).
번쩍.
서문호진의 검에서 뿜어진 빛이 동황을 향해 쏟아졌다.
‘욱…….’
동황은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광천무.”
검광이 퍼져 나가면서 동황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핏핏핏!
두두두두-
동황은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검광을 밀어냈다.
‘외공이다!’
검광을 막아낸 철퇴가 움직인다.
부우우웅-!
서문호진의 머리를 단번에 부술 정도로 묵직한 철퇴가 떨어졌다.
‘이 정도는……!’
하지만, 너무 쉬웠던 것인가?
휘릭-
서문호진은 허리만 뒤로 뺐을 뿐.
스쳐 가야 할 철퇴가 서문호진의 얼굴 앞에서 깨지며 그대로 폭발했다.
퍼어어어어엉!
“아아악!”
서문호진의 신형이 뒤로 떨어졌다.
짧은 순간 호신강기를 일으켰지만.
털썩.
‘젠…… 장…… 방심을…….’
서문호진은 치명상은 면했지만 바로 일어날 수 없었다.
“서문 대주!”
“대주님!”
창을 휘두르며 달려오던 양주위와 호광은 용병단에 의해 앞이 가로막혔다.
“크하하! 청두사검. 오늘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부우우웅-!
동황은 왼손에 들린 철퇴를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서문호진을 향해 내리쳤다.
휘익-!
그때,
순식간에 서문호진의 뒤로 다가온 팽유도가 묵혈반도를 뽑아 들었다.
슈우우욱-!
떨어지는 철퇴를 가로막는 반도!
까아앙!
“헉!”
동황의 얼굴을 향해 철퇴가 튕겨 날아갔다.
휘익!
동황이 허리를 뒤로 숙이며 철퇴를 피한 사이,
팽유도는 서문호진을 부축하며 일으켰다.
“고맙네.”
철퇴가 폭발하면서 생각보다 깊은 부상을 입었다.
‘제기랄, 너무 우습게 봤어.’
스윽.
서문호진의 곁으로 남하림이 다가섰다.
“몸을 다스리세요.”
“후…… 개.”
싸우고 싶지만 몸은 마음과는 달랐다.
“아악!”
무림맹의 무인들이 점점 밀리고 있었다.
그들만으로는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 투용단 용병들이 펼치는 기세를 멈출 수 없었다.
‘일단 두목부터…….’
남하림은 내력을 급속히 올렸다.
구우우우우웅-
“강룡파세.”
십 성의 내력으로 강룡십팔장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앙!
‘뭐, 뭐야. 하늘이 무너지는가?’
덜덜덜덜.
얼마나 큰 위력이었는지 땅이 여운을 이기지 못하고 한동안 흔들거렸다.
‘이놈은…… 대체…….’
동황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 수의 공격으로, 전장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남하림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들은 투용단이라 들었소.”
“그렇다. 본인이 투용단 동황이다. 그대가 창세단을 끌고 간 후개인가?”
“창세단을 박살 낸 건 맞는데, 후개는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지 모르겠네.”
“우리는 개방과 상관이 없거늘! 감히 그런 짓을 한 이유가 있는가?”
“있지. 무림공적부에 올라가 있을 정도로 나쁜 짓을 많이 했더군요.”
동황은 숨을 가다듬었다.
“창세단주를 풀어놓아라.”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그를 풀어주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못하는 게 아니라 무림공적인 그자를 풀어줄 이유가 없소. 아, 혹시 당신도?”
팽유도가 얼른 대답했다.
“부장, 이자는 무림공적부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관심 대상입니다.”
‘……!’
관심대상에 올랐다는 말에 동황은 움찔했다.
무림맹에서 작성된 무림공적부는 관심 대상까지 적혀 있지 않았다.
팽유도가 작성한 무림공적부는 개방의 정보력에 더해 더 많은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무림공적이라서 잡은 것이오?”
“그럼 무슨 이유겠습니까? 그저 푼돈이나 벌어보고자 한 일입니다.”
‘미친…….’
아닌 걸 안다.
비단옷을 입고 다니는 거지.
말만 거지이지, 세상에 그보다 부자는 열 손가락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했다.
“용병림과 척을 질 모양이지?”
“어쩔 수 없다면.”
“후개, 이번 일이 용병왕께 알려진다면 결코 개방에 좋지 않을 것이다.”
“…….”
“개방이 대문파라 하더라도 용병림은 이길 수 없다. 물러나지 않는다면, 개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번쩍!
순간,
동황의 앞에서 빛이 터졌다.
‘어……?’
빛 속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기.
퍼어어어어억!
남하림의 일격에 동황의 턱이 돌아갔다.
콰다아앙!
동황의 몸이 바닥을 튕기며 쓰러졌다.
팍! 팍! 팍!
당무독은 동황을 밟고 있는 남하림을 보며 중얼거렸다.
“……부장이 완전 화가 났는걸.”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본 방을 꺼내서 맞을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하림 형이 저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네요.”
스걱.
동황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던 투용단 부단주 약청의 가슴에 붉은 선혈이 솟구쳤다.
“아아악!”
약청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파앗!
이휘연은 투용단 앞으로 태극흑검을 겨누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목을 벨 것이다.”
싸늘한 죽음의 기.
천살성이 폭발했다.
이휘연 단 한 명으로 투용단 전체가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