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65화 (66/328)

65. 결전의 시작

스스슥-

백리천기는 애송이에게 힘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어 겁을 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백리천기가 강하게 내력을 올렸음에도 살기를 받아내는 남하림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 정도의 인물이었나?’

백리천강은 내심 놀랐다.

서문호진과 함께 들어선 남하림의 첫인상은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으니까.

물론 후개가 될 정도의 후지기수이니, 어느 정도 적당히 강할 것이라 추측은 했다.

근데…….

생각 이상이지 않은가.

‘천기의 기가 사라졌다.’

당사자인 백리천기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당황했다.

‘욱…… 이놈이…….’

반대로 남하림의 기가 전신을 파고들며 백리천기의 훈혈(暈穴)을 누르기 시작했다.

백리천기는 내력을 밖으로 밀어내며 버텼지만,

남하림의 기는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밀…… 리지…… 않…….’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푹!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훈혈이 잡힌 백리천기가 고개를 숙이며 잠시 정신을 잃었다.

‘이런.’

슈우욱-

백리천강은 오른손을 뻗었다.

선수를 펼친 백리천기였지만, 가주의 입장에서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

독문장법 무월장(舞月掌)!

그의 장법은 달이 춤을 추는 듯 남하림을 가두었다.

‘어라, 이 아저씨들이.’

탁, 탁, 탁!

남하림은 재빨리 허리에서 타구봉을 꺼내 일장을 막아냈다.

‘강룡십팔장 한 방이면 끝나는데.’

곧바로 손속을 정리하던 그는 잠시 멈칫했다.

‘흐음, 그래도 가주를 한 번에 기절시키면 무림의 예에 어긋나겠지? 말이 많아지면 귀찮으니 한 번 봐준다.’

그사이, 백리천강이 연이어 무월장을 펼쳤다.

직전과 달리 더욱 빠르고 변화무쌍해진 공격!

위이이잉-

샤르르르-

‘후개라도 이것까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무림에 나온 약관의 애송이가 아닌가!

하지만 백리천강의 자신감은 금방 사라졌다.

당두봉갈(當頭捧喝).

사망타구(斜網打拘).

하림의 타구봉이 동시에 두들겨 대자, 백리천강의 무월장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타구봉도 꽤 쓸 만한걸.’

윙윙-

남하림은 타구봉을 한 손을 돌리면서 백리천강에게 말했다.

“그만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삼십육초 타구봉법을 제대로 익혔어. 역시 소문대로 후개가 확실하군.”

백리천강은 손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정신을 잃은 백리천기의 역혈을 가볍게 두드렸다.

“으으음-”

정신을 잃었던 백리천기가 깨어났다.

‘놀랄 일이군. 내기만으로 기절을 시킬 줄이야.’

내력이 상대방을 압도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후개, 장난이 심한 것 같네.”

“먼저 장난 친 사람에게 제가 죽으면 어떡할 생각이었는지 물으시는 게 순서지 않을까요?”

남하림의 질문에 백리천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왜 저에게 악의를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도 사실 본 방은 신경 쓸 일이 아니죠. 혹시나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 싶어 밝히는 것이지만, 개방을 건드리지 않는 한 구천신품에 관해서는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본 가에 왜 왔는가?”

“그러게요. 왜 왔을까요? 저도 백리세가로 보낸 무림맹 군사에게 묻고 싶군요. 근데 말을 안 해주니 원.”

벌떡.

남하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는 거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군요. 백리세가에서 용병림에 의뢰를 한 이상 무림맹과의 협상은 이미 끝난 것 아닙니까.”

스윽-

서문호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는 말이군. 이미 백리세가에서 결정을 내렸다면 무림맹은 그대들과 싸울 수밖에 없소.”

“청두사검. 무림맹은 구천신품 때문에 진정 본 가와 싸우겠다는 것이오?”

“그건 오히려 무림맹에서 물어야 되는 것이 아닌지. 전쟁은 백리세가에서 원하는 것이 아니외까.”

‘백리세가는 전혀 변함이 없군.’

“오늘은 그냥 돌아가겠소. 하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빈손으로 가지 않을 것이외다.”

덜컹.

수월전을 나가는 삼인.

백리세가는 스스로 결정을 내렸지만, 강하게 나오는 무림맹의 태도에 왠지 모를 걱정이 들었다.

“아버님, 무림맹과 척을 질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재고해 주십시오!”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이미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거늘!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번 일에서 빠지는 것이 좋겠다. 아니…… 부가주의 지위를 내려놓는 게 좋겠구나!”

백리천기가 백리희를 향해 화를 냈다.

그는 예전부터 부가주 백리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가주의 자식이라지만 세가에는 많은 청년들이 있다.

백리희만 없었다면 자신의 아들이 부가주에 충분히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천기,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부가주의 지위를 내려놓으라니!”

“가주 형님, 솔직히 한마디 하겠습니다. 사기꾼에게 눈이 멀어 구천신품을 잃어버렸을 때, 부가주가 형님의 딸이 아니었다면 가만히 두었겠습니까?”

“…….”

“알아서 스스로 내려올 것이라 모두 생각했습니다!”

백리천강은 조용히 있는 백리천중을 보았다.

“장로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

“천기 아우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백리천중은 장로전의 뜻을 사실대로 전했다.

‘하아, 이 아이가 부가주가 된 것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

백리천강은 오히려 담담한 백리희를 보며 걱정이 되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가주의 지위를 내려놓을 생각이었으니까요.”

백리희는 소매에서 신패를 꺼냈다.

“아버님,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제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군요.”

“희야…….”

“전 괜찮습니다. 부가주의 자리는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갔으면 합니다.”

백리희는 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뒤 수월전을 나섰다.

터억.

그녀는 밖으로 나온 뒤 잠시 문에 기대어 섰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으니까.’

* * *

백리세가 금관당.

수월전에서 돌아온 백리천기는 곧바로 한 명의 인물을 불렀다.

“아버지, 찾으셨습니까?”

“들어오너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십 대 후반의 청년.

길쭉한 얼굴형에 이마는 살짝 앞으로 튀어나왔다.

백리천기는 들어선 아들 백리조를 반갑게 맞이했다.

“앉도록 해라.”

두 부자는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백리천기의 광대가 꿈틀거렸다.

“후후후, 일이 잘되었다.”

“일이라면……?”

“그 계집이 드디어 내려왔다.”

“정말입니까?”

백리조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 같다.”

“캬. 그 잘난 년의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백리조는 어릴 때부터 백리희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세가의 모든 어른들은 그녀가 세가 최초로 여가주로서 이름을 날릴 것이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백리세가의 청년들 중에서도 특히 백리조는 그녀에게 가장 심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

“후후, 그놈이 처음부터 구천신품을 훔치러 온 것을 알았지. 기다렸다가 쉽게 훔쳐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맞습니다. 그놈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없었을 테죠. 천운은 아버지와 저에게 이어진 듯합니다.”

“하하하! 맞다. 무림맹의 일이 끝나는 동시에 부가주를 새롭게 선출하도록 만들어주마.”

“잘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가의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운수가 좋다고 하더니…… 정말이구나.”

세상을 가진 듯, 백리천기의 얼굴 가득 웃음이 피어났다.

* * *

하림 일행은 태원루로 거처를 옮겼다.

태원루는 특이하게도 양쪽으로 지어진 두 개의 건물로 연결된 객잔.

“오늘은 여기에서 하루 지내야겠다.”

백리세가가 결국 무림맹과의 결전을 결심했다.

어둠이 조만간 찾아올 시간이었지만, 수월전에서 나온 남하림은 곧바로 화소정에서 짐을 정리한 후 백리세가를 나왔다.

서문호진이 이끄는 무림맹도 곧바로 산서총부로 내려갔다.

협상이 결렬되었으니 무림맹과 함께할 이유도, 백리세가에 머물 이유도 없었다.

남하림은 백리세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태원루에서 저녁을 보낸 후 돌아갈 생각이었다.

태원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점소이가 빠르게 달려왔다.

그러더니 순간 멈칫거렸다.

스윽.

팽유도는 점소이가 한마디 하기 전에 손바닥을 쫙 폈다.

‘헉, 금전!’

“어, 어떻게……?”

“하루 지낼 방이 있는가?”

“헛! 네네, 네. 알겠습니다. 소, 소인을 따라 오시지요!”

금전을 받아 든 점소이는 빠르게 태세 전환하여 객실로 안내했다.

“여긴 기루도 같이 운영하는 곳인가?”

“네. 공자님. 생각 있으시면 방을 잡아놓을 수 있습니다만……!”

팽유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하림 형, 간단하게 한잔 마시면 좋지 않을까?”

“음…… 그래. 방을 하나 잡아주게.”

“네. 알겠습니다. 혹시 따로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지……?”

“우린 술만 있으면 되네. 거지가 무슨 옆에 기녀를 두고 술을 마시겠나.”

“아…… 예에.”

점소이는 금방 풀이 죽었다.

기녀 없이 술만 마시면 자신에게 떨어지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이봐, 이거 받아.”

휙.

점소이는 날아오는 누런 물건을 받았다.

‘헉……!’

“이 정도면 굳이 기녀를 안 불러도 되겠지? 좋은 방으로 부탁하네. 마음에 들면…… 무슨 말인지 알지?”

“넵, 알겠습니다. 최고급으로 모시겠습니다!”

드륵-

점소이는 객실 문을 공손하게 열었다.

“잠시 쉬고 계시면 준비가 되는 대로 부르겠습니다.”

반 시진 후.

점소이의 안내를 받은 하림 일행이 옆 건물로 건너갔다.

훤한 이마를 드러낸 삼십 대의 여인이 미소를 띠며 다섯 명의 손님을 받았다.

‘거지?’

최상급 손님이라 하기에 유명한 인물이거나 갑부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스쳐 지나가는 눈길로 다섯 명의 청년들을 파악했다.

‘무림인들…… 개방인가?’

“어서 오세요. 수화라고 합니다. 혹시 개방의 호걸님들이 아니신지요?”

“조용히 마시고 가겠소.”

‘조용히 마신다고? 무슨 개방의 거지들이 이렇게 점잖대?’

그녀는 신기해하며 기루로 일행을 안내했다.

‘흐음.’

객잔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기녀들의 향, 오소묘(五素描)가 기루 전체에 주향과 함께 섞여 있었다.

기루의 삼 층은 일이 층과는 달리 두 개의 방밖에 없었다.

일행은 삼 층으로 안내를 받으며 계단에 올라섰다.

“하하하하!”

삼 층으로 올라서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청월실에는 백리세가의 공자님들이 계십니다.”

‘팔자도 좋군.’

무림맹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마당에 기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남하림이 인상을 찌푸리며 청월실을 지나칠 때였다.

안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목소리.

“크크큭. 백리희, 그년이 부가주를 때려치웠다고 하더군.”

“조 형님, 그럼 형님께서 부가주에 오르는 것입니까? 사기꾼 놈이 구천신품을 훔칠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이 큰몫을 했습니다, 하하하.”

“어허, 조용히 해!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형님도 너무 걱정이 많으십니다. 여기서 누가 우리의 말을 듣겠습니까. 제가 내력으로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았습니다.”

“크큭,. 그런가? 여하튼 그년이 사라지니 기분이 너무 좋군. 머리가 뛰어나기는 개뿔. 구천신품을 내가 몰래 꺼내준 것도 몰라.”

남하림과 이휘연의 시선이 마주쳤다.

기감이 뛰어난 두 사람은 안에서 들려온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홍월실에 들어선 남하림은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와우……!”

팽유도와 당무독은 이미 차려진 술상을 보며 군침을 다셨다.

“혹시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무엇입니까?”

“건넌방에 있는 백리세가의 인물들이 누구인지 압니까?”

“제가 듣기로는 백리세가의 공자들입니다. 그중 한 명은 가주의 조카로 이름은 백리조라 하지요.”

“그렇군요.”

“저희 기루는 우선 술을 마시기 전에 반값이 선불입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되겠지요?”

남하림의 손에 금원보가 들려 있었다.

‘재신(財神)!’

그녀가 환한 미소를 띠며 방을 나섰다.

남하림은 생각에 잠겼다.

‘정말 머리가 좋긴 뭐가 좋다는 거야. 저런 놈들에게도 당하는 것을.’

* * *

태원기루에서 취기가 올라올 쯤, 하림 일행은 객실로 돌아왔다.

남하림은 침상에 걸터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부장.”

문밖에 이휘연이 찾아왔다.

“들어오세요.”

드륵.

이휘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럴 줄 알았다.”

잠자리에 들어선 옷차림이 아니었다.

그는 남하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본 부장에 대해서 말해볼까?”

“해보세요.”

“본인 것은 너무 챙겨.”

“흠…….”

“게다가 대체적으로 예의라고는 없는 편이지.”

“그렇긴 해요.”

“쉽게 남을 무시할 때가 있고.”

“휴우-”

“본뜻과 다르게 함부로 말을 하면서 사람 속을 잘 뒤집어놓지.”

느닷없이 들어와서 자신의 가슴을 쿡쿡 찌르다니.

어쨌든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못된 척하는데 착하지.”

“…….”

“게다가 정도 많고.”

“…….”

“사람을 대할 때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대하고.”

“…….”

“그래서 내가 부장으로 따르는 거다.”

“나도 형이 날 좋아하는 거 알아요. 물론 나도 모두를 좋아해요.”

“고맙다.”

오래전 무당파에서 자신을 개방에 보낸다고 했을 때.

이휘연을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가려고도 했었다.

만일 남하림이 없었다면?

현재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부장,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우리들처럼 대하면 문제없지 않을까.”

“우리들처럼?”

“마음에 걸린다면 이성적으로 참지 않아도 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도움을 주면 되는 것이니까.”

이휘연의 말처럼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다.

“착해도 괜찮아.”

툭툭.

이휘연은 더는 할 말이 없는지, 남하림의 어깨를 두드리며 방을 나섰다.

남하림은 백리희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그녀가 왠지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그녀에 대한 사실을 듣지 않았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객실에 올 때까지 불편했던 마음이 이휘연의 진심 어린 충고에 밝아졌다.

남하림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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