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별관이 불타다
구천신품의 등장.
만통자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흐음.’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진실 여부를 떠나 모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웅성웅성.
가주전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는 산동악가에서도 몇 명밖에 알지 못하는 극비.
살기대주 악강의 투구 속 눈빛은 노기로 충천했다.
“이노오오오옴! 감히 어디서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냐?!”
악강은 장창을 잡아당긴 후 단 한 번의 보폭으로 달려 나왔다.
휘익!
남하림의 목을 향해 휘둘러지는 장창!
‘헉!’
‘살기대주가!!’
산동악가 어느 누구도 악강이 이렇게 경솔히 움직일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휙!
반면 팽유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남하림의 앞으로 나왔다.
“야앗!”
한 발 늦게 나왔지만 팽유도의 동작은 빨랐다.
스팟!
등에서 묵흑반도를 뽑은 그가 장창을 향해 반격했다.
까아아앙!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커다란 파동을 일으켰다.
‘크윽!’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악강의 손에서 장창이 떨어질 뻔했다.
가주전은 일순 고요함에 잠겼다.
누가 봐도 살기대주가 밀린 광경.
겨우 약관의 나이다.
그것도 완전한 도가 아닌 반도.
그런데도 악강의 장창이 힘으로 밀리다니?
좌중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팽유도와 악강을 번갈아 보았다.
등민은 얼굴이 붉어졌다.
노기 섞인 목소리가 악강을 향해 쏟아졌다.
“살기대주는 뒤로 물러나시지요!”
“군사! 저자는……!”
“물러나라 했소.”
“……쯧.”
어떠한 말들이 오고 가더라도 군사인 본인의 허락 없이는 나서지 마라.
‘분명 가주전을 나오기 전 자중하라 신신당부 했건만.’
산동악가의 인물들은 오로지 힘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멍청한 인간들이…… 대체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들을지.’
등민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허리를 숙였다.
“후개, 죄송하외다. 본 가의 살기대주가 조금 흥분했소이다.”
“청봉표국에서 만나봐서 알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분위기도 영 좋지 않고, 오늘은 대화를 더 이상 나눌 수 없겠군요.”
“본인은 괜찮소이다만…….”
“제가 좀 놀라서 말입니다. 내일 다시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정히 그렇다면.”
“귀인전에 돌아가 있을 테니, 분위기가 정리되거든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알겠소.”
그는 남하림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주도권을 빼앗겼어. 멍청한 녀석 때문에.’
지금까지는 의심만 할 뿐, 산동악가가 구천신품을 가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충분히 대화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그런데 악강의 돌발행동이 그들의 의심에 불을 붙였다.
악군악이 나서기엔 상황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가주님, 먼저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후개의 뜻대로 하시오.”
남하림은 그대로 돌아선 뒤 가주전을 나섰다.
‘허, 치고 빠지기가 능하군. 이번은 완전히 당했어.’
악군악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것들 봐라. 제법 탐이 나는 모양인데?’
구천신품이 어떠한 물건인지 모르는 인물은 중원에 없다 해도 무방.
가주전에 모인 산동악가 인물들의 표정들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느껴졌다.
‘이런 일이…….’
창수대주 악구정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만통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가주가 구천신품을 가지고 있다면…….’
‘만약 이 사실을 무림맹에서 알게 된다면……?’
산동악가가 강하다고 하나 무림맹과 비교할 순 없다.
제재를 당할 수밖에 없을 터.
아니면 모든 문파들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남하림을 떠올렸다.
‘단화걸. 단화걸이 산동악가의 맥을 이어줄 것이라…….’
* * *
휙휙-
허공을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
세 명의 흑의인들이 산동악가의 건물들 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목표로 정한 건물을 향해 움직였다.
[저곳이다.]
흑의인이 가리킨 건물.
산동악가의 가주전이다.
[정문에 이십. 후방에 이십, 좌우측으로 각각 이십 명이 있다.]
[일영, 건물 안엔 스무 명의 비밀 호위들이 숨어 있고 가주전 침실에는 특위가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더럽게 많군.]
흑의인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키지 않고 가주전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나 다행히 자신들의 임무는 가주 악군악을 제압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임무는 그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이다.]
[언제 움직이면 됩니까?]
[신호가 오면 그때 움직인다.]
흑의삼인은 숨을 죽인 채 가주전을 주시했다.
콰아아앙!
일각이 지날 무렵.
가주전 곁에 달린 별관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일어났다.
별관에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우두두두-
화르르르!
횃불이 하나둘 켜지고, 수십 명의 무인들이 손에 커다란 물통을 들고서 별관을 향해 달려갔다.
“불이다!”
“뭣들 하느냐?! 어서 불을 끄지 않고!”
두우우웅! 두우우웅!
커다란 북소리가 산동악가를 깨웠다.
[지금이다.]
휘릭.
흑의삼인은 별관으로 모여드는 산동악가의 인물들을 보며 움직였다.
북소리와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 불을 끄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 사이로 흑의삼인의 기척은 조용히 묻혔다.
타악!
가주전 외곽을 지키던 호위들은 별관에 정신이 팔렸는지 흑의삼인의 기를 놓쳤다.
가주전 아래에 내려선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일영, 비위들이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멈추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전방에서 숨어 있던 비밀 호위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저들을 단숨에 처리하고 가주실로 들어간다.]
채애앵!
흑의삼인은 양손에 두 자루의 검을 들었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섰느냐?”
비밀 호위장 곽순이 앞으로 달려오는 세 명의 흑의인을 보며 단창을 뽑아 들었다.
스팟!
핏핏핏!
일영은 쌍검을 휘두르며 곽순의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머리와 허리로 날카롭게 들어오는 두 자루의 검.
챙앵! 채애앵!
곽순도 찰나지간 단창을 두 자루로 나누며 쌍검을 막아냈다.
“좋은 한 수였다.”
일영은 신형을 띄운 그대로 두 명의 흑의인과 함께 비밀 호위대 뒤로 넘어왔다.
“침입자를 잡아라!”
휘익-
곽순의 명에 이십 명의 비밀 호위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흑의삼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데구루루루-
일영은 재빨리 품에서 광침구(光針球)를 꺼낸 뒤 굴렸다.
“헛, 벽력탄이다!”
곽순은 호신강기를 재빨리 일으키며 몸을 보호했다.
번쩍!
바닥을 굴러온 광침구가 비밀 호위들 앞에서 빛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벽력탄이 아니었다.
파파파팟!
광침구가 터지면서 단침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핏핏핏!
“아악!”
“욱.”
근접거리에서 쏟아진 단침에 비밀 호위들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일영은 비밀 호위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휙.
“그대로 가주실로 간다.”
“옛.”
일영은 쓰러진 이들을 뛰어넘으며 가주실로 달렸다.
‘가주실이다.’
덜컹!
문을 강하게 열어젖혔다.
‘악군악!’
산동악가의 가주가 흰색 옷을 입은 채 침상에 앉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놈!”
악군악은 노성을 터뜨렸다.
팟.
다섯 명의 특위가 흑의삼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내려섰다.
“하북소가에서 보낸 놈들이구나.”
흑의삼인의 손에 든 쌍검을 보며 악군악은 확신했다.
“저놈들을 사로잡아라.”
“존명.”
흑의삼인을 향해 다섯 개의 장창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영과 삼영은 이놈들을 맡아라.]
휘리릭!
일영은 장창을 피하며 악군악 앞으로 달렸다.
악군악이 미간에 힘을 주자 짙은 눈썹 끝이 붙었다.
“감히…… 하북소가가 선을 넘는구나!”
띠이잉!
그는 침상 옆에 세워져 있던 장창, 악성창을 발로 튕겼다.
부우웅-
악성창을 잡은 악군악은 일영의 목을 향해 창을 내리그었다.
스으윽-
일영은 허리를 뒤로 접는 동시에 쌍검을 좌우로 휘둘렸다.
“제법이군.”
휙!
악군악은 빠르게 악성창의 뒷부분으로 올려치며 쌍검을 막아냈다.
채애애앵!
‘쳇…… 빠르군.’
일영은 뒤로 튕겨져 나간 검을 곧바로 회수하고 악군악의 발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스걱-
악군악이 찰나지간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순간,
일영의 검에 침상의 다리가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쿠우웅!
무거운 소리를 내며 침상이 한쪽으로 무너졌다.
타앗!
오인의 특위는 흑의 이영과 삼영을 상대하며 침실 밖으로 밀어붙였다.
수하들이 사라지자 일영의 시선이 침실 옆 창문을 향했다.
스윽.
손을 펴자 소매 안에서 둥근 구슬이 빠져나왔다.
휙!
그러고는 흑구(黑球)를 던진 뒤 창문을 부수며 몸을 던졌다.
“이놈!”
악군악도 할 수 없이 그를 따라 몸을 피했다.
퍼어엉!
가주전 밖으로 몸을 던진 악군악은 곧바로 일어나 뒤를 확인했다.
창문을 통해 흰 연기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죽일 놈이…….’
가주전 주위는 화염과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별관에 불을 지르고 여기로 들어온 것을 보니 성동격서를 쓴 모양이군.’
“뭣들 하느냐? 이놈들을 잡아라!”
악군악에게 별관이 불에 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불을 끄던 산동악가의 무사들은 손에 든 물통을 던진 뒤 흑의삼인을 포위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하나 당황해야 할 삼인은 침착했다.
일영의 시선은 가주실로 향해 있었다.
[지금쯤이면…….]
* * *
슬금슬금.
연기가 가득한 가주실로 한 여인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일 년 전부터 가주전의 청소와 잡일을 하던 하녀.
‘여기에…….’
연기와 먼지가 가득했지만, 일 년 동안 일하면서 내부는 이미 구석구석 파악한 상황.
여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책장을 찾을 수 있었다.
덜컹.
책장을 밀자 안으로 비밀 문이 나타났다.
‘꽃병이라고 했지?’
비밀 문을 지나자 서너 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아…… 아…….’
생애 한 번도 보지 못한 금은보화들과 서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저거다.’
여인은 눈부신 금은보화들 사이에서 붉은색 꽃병을 집어 들었다.
스윽.
‘빨리!’
다른 것도 욕심이 났지만 시간이 없다.
그녀는 책장을 다시 돌려놓고, 연기가 가득한 방을 빠져나갔다.
‘됐어. 아무도 못 봤어. 이것만 그들에게 주면 우린 모두 잘살 수 있어!’
그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
* * *
일각 전.
남하림은 시끄러운 소리에 침상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거실로 나오자 이미 밖에 나갔던 팽유도가 소문을 알아낸 뒤였다.
“형, 가주전 별관에 불이 났다는데요?”
“쯔쯔. 항상 불을 조심해야 하거늘.”
만통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혀를 찼다.
산동악가에서 그 정도 불이 난 것은 얼마든지 보수할 수 있었다.
“누구 불구경 갈 사람 없어요?”
“…….”
휙.
다섯 명 모두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 진짜.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구경이 싸움 구경하고 불구경이라는데…….”
팽유도는 입을 쭉 내밀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히, 궁금해서 안 되겠다!’
귀인전을 나온 팽유도는 산동악가 인물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고요히 움직였다.
‘으흠, 여기가 잘 보이는군.’
그리고 가주전과 별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나무에 자리를 잡았다.
‘어라? 무슨 일이래?’
그런데 갑자기 가주전에서 흑의인들이 튀어나왔다.
‘뭐지? 저놈들은 또 누구야?’
곧바로 산동악가의 무인들이 흑의인들과 싸우는 모습이 한참 이어졌다.
그리고,
‘저건 또 뭐래?’
가주전 뒤편으로 몰래 움직이는 수상한 인영.
팽유도의 입꼬리가 재밌는 것을 발견한 듯 씨익 올라갔다.
* * *
헉헉.
숨이 끊어지는 듯했다.
그들과 약속을 했던 장소는 가주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하지만 그 짧은 거리를 가는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꽈아악.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여인은 품에 아이를 안듯 소중히 물건을 껴안으며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두리번두리번.
‘여기야.’
많은 고목들 중 유난히 나뭇가지가 무성한 고목에 멈춰 섰다.
팟팟팟.
여인은 주위를 살피면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 자 정도의 폭으로 된 구멍이 생겼다.
그녀는 품에 넣고 온 물건을 꺼내 고목 아래에 판 구멍에 조심스레 넣었다.
슥슥.
토닥토닥.
흔적을 지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다시 확인한 여인은 왔던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며 사라졌다.
스르르륵.
그리고 팽유도가 고목 아래에 내려섰다.
‘여기군.’
땅을 판 흔적을 지운다고 지웠건만, 팽유도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뭘 숨겼지?’
바닥을 파내자 그녀가 넣어두었던 물건이 나타났다.
천에 둘둘 싸여 있는 물건.
손끝에서 딱딱한 느낌이 났다.
‘도자기 같은데?’
당장 천을 풀어 보고 싶었지만 이내 참았다.
‘일단 먼저 돌아가서 확인을 해야겠지?’
팽유도는 다시 원래대로 구멍에 흙을 채워 놓았다.
“헤헤, 이 정도면 완벽 그 자체군.”
휘익.
팽유도의 신형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