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47화 (48/328)

47. 취구단을 완성하다

슈우우욱-

천장 위로 솟구치던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사이에서 당무독은 눈을 번쩍이며 솥 안을 뚫어지도록 쳐다보았다.

특외부의 주방은 이틀 전부터 약재 냄새로 가득했다.

주방의 벽면에는 수십 장의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실패했던 제조법들이었다.

‘이게 마지막 재료들인데…….’

취구단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재료들을 혼합하고, 수십 번 공을 들였지만 항상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했다.

당무독은 솥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검은 물질을 퍼 올려 약탕기에 조심스럽게 넣기 시작했다.

스으윽. 스으윽.

그러고는 약탕기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뚝.

뚝.

뚝.

약탕기 끝에 달린 긴 대롱에서 투명한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흐으음…….’

액체가 떨어진 통에서 진한 향이 올라왔다.

‘일각이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시간은 정확히 일각.

취구단의 마지막 제조서에 보면 성공할 시 투명한 액체가 굳어 스스로 붉은빛을 낸다고 적혀 있었다.

만일 검은색의 고체로 변하면 실패였다.

남은 시간은 반각.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긴 시간이라고 생각될 만큼, 온 세상이 멈춘 듯했다.

당무독의 이마와 콧등에 땀이 맺히고 있었다.

‘제발……!’

이번 제조법도 실패한다면 자신의 능력 밖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스스스스-

투명한 액체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귀를 울릴 정도.

‘…….’

그리고,

투명한 빛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당무독의 눈이 커졌다.

“어, 어어……?”

콰아아앙!

그러고는 괴성을 지르며 문을 차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와아아아아! 성공했다! 성공했어!! 성공……!”

문이 부서지도록 열고 나왔건만.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 다들 어디 갔어?”

* * *

남하림은 붉은빛을 내는 말랑한 취구단을 보았다.

“요게 취구단이구나. 무독, 고생 많았어.”

“모든 게 부장 덕분이야. 부장이 없었다면 절대로 만들 수 없었을 거야.”

“내가 한 건 재료 전달밖에 없어.”

“아니. 부장 아니면 그 많은 영약들을 구할 수도 없잖아…….”

스윽.

당무독은 조심스럽게 취구단을 들어 남하림에게 내밀었다.

“자아. 한 번 복용해 봐.”

“내가? 하나밖에 없잖아. 이걸 만든 사람이 먼저 먹어야지.”

“난 됐어. 우리들 중에 제일 힘을 쓰는 사람은 부장이잖아.”

남하림은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팽유도와 성철각, 그리고 이휘연까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림 형이 우리 부장이잖아요. 제일 먼저 먹어야죠. 이제 취구단은 언제든지 제조할 수 있으니 우린 나중에 복용해도 돼요.”

“그럴까?”

“당연하지. 힘이 제일 필요한 사람이 부장이잖아.”

“그렇게 해라. 우리가 호위를 설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이휘연은 곧바로 남하림의 뒤로 물러났다.

스윽-

그를 따라 나머지 세 사람도 물러났다.

‘할 수 없군.’

남하림은 바닥에 앉으며 손에 쥔 취구단을 입에 넣었다.

꿀꺽.

입안에 넣고 맛을 느낄 순간도 없었다.

진한 액이 곧바로 퍼져 나가며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건…….’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취구단의 기.

‘기분이 좋아.’

꽤 많은 영약을 먹었지만, 취구단처럼 빨리 효과가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혈맥을 따라 흐르는 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당무독은 눈을 똑바로 뜨고 남하림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취구단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점점 목을 타고 두 팔로 나누어지며 몸까지 붉어졌다.

붉은 기운이 양쪽 발끝까지 내려온 뒤에야, 서서히 원래 본색으로 돌아왔다.

쉬이이익-

남하림이 숨을 내쉬자 코에서 붉은 연기가 뿜어졌다 허공으로 사라졌다.

[끝났나 보다.]

[그런 것 같아요.]

호위를 하며 지켜보던 이들은 마지막으로 편안하게 호흡하는 남하림을 보며 안심했다.

주화입마를 당할 위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영약이라도,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면 실패일 수밖에 없었다.

불끈.

“성공이다.”

당무독은 한 손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천천히 눈을 뜬 남하림은 잠시 그대로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단전에서 느껴지는 무게의 힘.

‘이 정도 힘이라면 충분히 구단무를 버틸 수 있겠어.’

스윽-

기의 흐름이 정리되자,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림 형, 어때? 내공이 강해졌어?”

“음…… 뭐랄까? 내공이 강해진 게 아니라 내공이 강해질 수 있도록 받쳐주는 내력이 강해진 것 같아.”

“에이, 난 또 엄청난 내공이 생길 줄 알았는데…….”

“유도야, 이것도 엄청난 거야. 내력이 강해지면 결국 내공도 강해질 수 있거든.”

남하림은 당무독을 보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 * *

저벅저벅.

남하림은 한 걸음 앞선 오종의 뒤에 바짝 붙은 채 조사전으로 들어섰다.

“…….”

조사전의 문은 세월의 흔적으로 색이 하얗게 바랬다.

그에 반해 바닥은 대리암으로 매끈하게 되어 있었다.

오 년 동안 개방에서 생활했지만 조사전은 처음이었다.

남하림은 조사위패 뒤로 세워져 있는 개방 조사의 초상화를 보았다.

“조사님이시다.”

스윽.

남하림은 공손하게 예를 취했다.

뒤이어 오종도 향을 올리며 절을 했다.

그리고 뒤돌아 남하림과 마주 섰다.

“원래는 간단하게 하지 않는다. 비록 약식이지만, 이 모든 게 개방의 예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종은 허리에서 붉은 줄을 끄집어 들었다.

여덟 개의 자루 매듭이 달려 있었다.

홍팔겹.

개방의 후개를 알리는 신분의 증표다.

“개방 제자 남하림은 무릎을 꿇고 후개의 위를 받아라.”

척.

남하림은 부복을 하며 두 손을 올렸다.

오종은 그의 손바닥 위에 홍팔겹을 놓았다.

“모월 모일 개방 제자 남하림을 대개방의 후개로 정하노니 목숨을 다하여 협과 의를 행하라.”

“개방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남하림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흐흐흐, 녀석…… 이젠 빼도 박도 못할 것이다. 네놈은 개방을 벗어나지 못해. 아니, 죽어도 개방에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지!’

오종은 남하림을 내려다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사전에서 나온 오종과 남하림은 함께 걸었다.

“후개가 된 소감이 어떠냐?”

“글쎄요. 특별히 소감까지는 없어요.”

“본 방의 젊은 제자가 가장 원하는 것이 후개의 자리이거늘. 최소한 기분이 좋다는 웃음이라도 지어야 하는 게 아니더냐?”

오종의 말처럼 후개는 개방의 후기지수라면 누구라도 원하는 자리였다.

“아하하, 알겠어요. 근데 어차피 이번 일 끝나면 내려놓을 텐데요.”

“맞다. 원한다면 내려놓아도 되지.”

오종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아 참. 청봉분타의 일은 나도 몰랐다.”

“청봉분타는 재심사가 들어가는 모양이더군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정당주가 장로회의에 요청을 해왔더구나. 저번 심사에서 중요한 게 빠졌다면서 똑바로 조사한 뒤 보고서를 올리겠다고 했다.”

“잘됐네요. 영 당주님이 일을 잘하시는군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단점이 있지 않느냐. 서로 품어줄 때는 품고 가는 것도 수장으로서 좋은 자질이지.”

오종은 걸으면서 슬쩍 옆을 보았다.

오 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항상 자신만 아는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다른 사람도 생각할 줄 아는군. 개방을 위해 취구단도 만든다고 하니…….’

오종도 특외부에서 취구단을 연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취구단은 잘 되어가는 중이더냐?”

“아, 오늘 성공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잊었네요.”

“만들었다고?!”

취구단 제조에 성공했다는 말에 오종이 급히 걸음을 멈췄다.

“정말이냐? 정말로 취구단을 제조했다는 말이더냐?”

“네. 마지막 재료에서 겨우 취구단 한 개를 만들었어요.”

“그건 어디에 있느냐?”

“그거요? 제가 먹었어요.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봐야 해서요. 지금까지 별 이상 없는 것을 보니 괜찮은가 봐요.”

“그럼…… 이제는 없는 것이냐?”

구천신품조차 하찮게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은 오종이건만, 어쩐지 취구단만은 마음이 가는 듯했다.

‘그걸 구경도 못해봤는데 홀랑 먹었다고?’

“방주님, 아쉬우세요?”

속마음을 들킨 오종이 얼른 정색했다.

“크흠, 그것은 절대 아니다.”

“무독이 약방에서 잃어버렸던 제조서를 완성했으니 걱정 마세요. 거기다가 우리도 소림사의 대환단과 소환단처럼, 취구단과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든 취구소단까지 제조하겠다고 했습니다.”

“오오! 그러냐? 하긴 취구단을 제조하려면 돈도 많이 들지만 귀한 영약들을 구할 수가 없지 않느냐? 취구소단을 쉽게 만들 수 있다면 본 방의 제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구나!”

오종의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이번 일이 끝나면 무독 녀석을 약방에 책임자로 겸임시켜야겠구만.’

* * *

“오우…… 멋있어.”

성철각은 연신 감탄하며 남하림의 허리에 묶여 있는 붉은 매듭을 바라보았다.

“부장, 그럼 다음 순서는 방주가 되는 거야?”

“…….”

긁적긁적.

남하림은 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임시방편이야. 이번 일만 해결하면 끝나는 거라고.”

“형, 진짜 갔다 와서 내려놓는 거예요? 내가 봤을 때 부장은 방주가 되면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유도야. 제발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말이 씨가 될 수 있어.”

“푸웁, 유도 말이 맞을 수 있지. 걱정 마. 부장이 방주가 되면 나도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니까.”

당무독이 낄낄 웃으며 남하림을 몰아갔다.

“야, 다들 그만. 내일 일찍 산동악가로 떠날 거니까 챙길 물건들이 있으면 미리 준비해 둬.”

“크크큭, 알겠어.”

“드디어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잡겠네!”

산동지호(山東之虎) 악군악.

팽유도의 말에 이휘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자는 호랑이가 아니다. 덩치만 큰 고양이일 뿐이지.”

“휘연 형 말이 맞아. 그자는 호랑이라고 할 수 없어. 썩은 고기를 먹는 호랑이는 없잖아.”

“음!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하하하.”

* * *

하남을 넘어 산동으로 들어선 지 사흘이 지났다.

“주문촌이라…….”

스윽-

팽유도는 허리에서 찬 가죽 가방 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산동성의 지도다.

“제대로 왔어요. 오늘은 주문촌에서 하루 보내고 가면 돼요.”

“그렇게 하자.”

“넵. 객잔을 잡을게요.”

팽유도는 지도를 다시 말아서 가방에 넣었다.

힐끔힐끔.

다섯 명이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이 마치 신기한 것을 다 본다는 듯, 몰래 쳐다보며 지나갔다.

멀리 떨어진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곤거렸다.

“산동성에선 우리가 누군지 잘 모르나 보다.”

“그러게. 하남에서는 우리 모습만 봐도 어느 정도 알아보는 것 같던데.”

“제법 중원에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푸흣, 좋아. 모두 유도 말처럼 열심히 하죠.”

웅성웅성.

그렇게 마을 중앙으로 들어서던 중, 전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뭐지?’

사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누군가를 잡는 듯했다.

“이놈의 사기꾼 영감탱이가 맞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건장한 사내의 손에 노인의 멱살이 잡혀 있었다.

“커억…….”

노인이 숨이 막힌 소리를 냈다.

휘익!

사내는 노인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던졌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노인은 사내를 보며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놈이 사람을 잡는구나!”

“망할 영감이, 다시 한 번 더 말해보지? 내가 오늘 거지 놈한테 얻어터지는 관상이라고?”

휘익-

씩씩거리던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뚝.

“아하? 여기 거지 놈이 있군.”

사내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남하림 앞으로 다가섰다.

“엉?”

사람들 사이에서 봤을 때는 거지처럼 보였었다.

“거지 맞아?”

“어디서 반말이야? 당신 나 알아?”

“이 새끼가?”

사내는 팔을 뻗어 남하림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퍽!

남하림이 먼저 손을 뻗어 사내의 코에 선방을 날렸다.

주룩.

사내의 코에서 단번에 코피가 흘렸다.

“이씨…….”

사내가 단검을 뽑기 위해 허리에 손을 뻗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손이 움직인다면 팔 하나가 부자연스러워질 거야.”

“거지 놈이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사내는 남하림의 말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사내가 허리에 꽂혀 있는 단검을 잡자,

“하아, 이런 놈들은 왜 맨날 말을 안 들지?”

휙!

남하림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뚝.

뚝! 소리가 나며 사내의 팔이 부러졌다.

“아아악!”

사내는 부러진 팔을 땅바닥으로 늘어뜨린 채 괴성을 질렀다.

“이봐. 다음부턴 거지님 말씀은 잘 들어야 해. 알겠지?”

“으…… 으…….”

퍽! 퍽!

사내의 얼굴에서 둔탁한 소리가 산뜻하게 터졌다.

“클클클.”

등에 나무상자를 고쳐 멘 노인이 다가왔다.

펄럭.

나무상자 위로 백색 깃발이 흔들렸다.

점(占).

노인은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내를 보며 웃었다.

“클클클. 내 점이 맞지 않느냐. 거지에게 터진다고 했잖아.”

“정말 노인장 점이 맞다고 생각하세요?”

스윽.

노인은 히죽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단화걸, 자네는 내가 했던 말을 듣고 일부러 저놈을 때려눕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만.”

“…….”

“클클클, 난 자네가 그렇게 할 줄 알고 있었다면 믿겠나?”

남하림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단번에 자신을 알아보았다.

“노인장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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