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46화 (47/328)

46. 취구단을 만들어볼까

사부와 제자가 개방에서 가장 넓은 대야평(大野平) 끝자락에서 나란히 운기행공을 하고 있었다.

퍼어어엉!

남하림은 대야평 끝까지 펼치려는 듯 모든 내력을 쏟아냈다.

‘크으으!’

눈앞에 펼쳐진 광경,

내력에 의해 공중으로 치솟은 먼지들이 대야평을 자욱이 메웠다.

‘이, 이 무서븐 놈, 십 년도 안 된 놈이 벌써 혼원신공(混元神功)을 팔단무(八段武)까지 펼칠 수 있다니…….’

제자는 이미 장두철의 혼원신공 경지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었다.

‘구단무의 벽을 무너뜨린다면 조만간 십단무까지 일사천리다!’

장두철은 내심 흥분되었지만 남하림 앞에서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에잉, 얼마나 잘난 체를 할지.’

“사부님, 좀 더 센 내공심법은 없어요?”

“허어, 이 녀석이! 본 방에서 가장 강한 강심공을 익히는 놈이 욕심도 많다.”

“혹시 있을까 싶어서 그러죠…….”

“딴생각 말고, 힘들겠지만 팔단무에서 좀만 더 수련하면 금방 구단무에 올라설 게다. 네놈도 알겠지만 팔단무와 구단무의 차이는 엄청나다.”

“구단무로 올리는 게 힘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시간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제가 얼마나 바쁜지 아시면서.”

‘이 녀석이, 뛰기도 전에 날아다니려고? ……하긴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긴 하지.’

장두철은 남하림에게 무공을 가르치면서도 잘한다, 잘한다 띄워주지 않았다.

스스로를 굉장히 잘 알고 있는 놈인데, 자신까지 동참하면 더욱더 기고만장(氣高萬丈)할 게 눈에 선했다.

“허허, 내공의 우위는 내공심법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공은 얼마나 깊게, 심도 있게 내력을 운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건 잘 알죠.”

“제자도 잘 아시겠지만, 속성으로 급하게 익히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다. 내공을 수련하면서 가장 금해야 할 것이다.”

“하아아…….”

남하림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아, 그렇게 한숨을 쉬는 동안에 조금이라도 내공을 더 수련하겠다.”

“그게 아니라…… 상무우 사부에게 배웠던 걸 저번처럼 펼칠 수 있다면 내공은 문제가 없는데…… 청봉표국에서 그자와 싸울 때 어떻게 된 건지 도대체 모르겠단 말이죠.”

‘그 친구가 대체 이놈한테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구만.’

장두철이 보기에도 상무우는 기인 중 기인이었다.

남하림이 장두철을 찾아와 더 강한 내공을 찾는 이유는 하나.

청봉표국에서 악강과 벌였던 생사결 때문이었다.

오성창 악강은 산동악가의 절대고수다.

장두철도 그와 싸운다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못할 만큼 고수였다.

“그날 끝장을 보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 아, 좀 더 무공을 수련한 후에 그와 싸우면 안 되겠느냐?”

“안 돼요. 이번에 가서 무조건 이겨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공력을 확 끌어 올려야 하는데…….”

“없는 공력을 어떻게 올리느냐? 우리가 소림사도 아니고…….”

“소림사라…… 아, 맞다. 사부님, 본 방에는 소림사처럼 대환단 같은 영약이 없어요?”

“없다.”

“설마. 무당파엔 태극환이나 태청단이 있고 화산파에는 자소구나 매화단이 있잖아요. 또 청성파에는 청환단, 저 멀리 곤륜파에도 운룡정이 있다고 하는데 좀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도 구파일방의 일방인데.”

“쩝…… 그렇게까지 말하면…… 우리도 오래전에 취구단이라고 있긴 했는데…….”

“근데요?”

“백 년 전인가? 당시 취구단을 제조하시던 약방주께서 비명에 돌아가시면서 취구단의 맥이 끊어졌다고 했다. 그 뒤로 많은 약방주들이 취구단에 도전했는데 제조서 일부가 손실된 탓에 전부 실패했다고 하더구만.”

“제조서를 누가 손실했어요?”

“그건 모르지. 어쩌면 제조서가 완전하다고 해도 실패했을지 몰라.”

“제조서가 있으면 보고 만들면 되잖아요.”

“녀석아. 약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다고 해서 아무나 의원들처럼 약을 지을 수 있겠느냐?”

“…….”

“그것도 문제지만 취구단을 제조하는 데는 많은 영약들이 필요하다. 근데 거지가 무슨 돈이 있어 그런 비싼 재료들을 사겠느냐? 돈이 있다고 해서 모든 재료들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취구단이라…….’

“사부님, 그 제조법은 어디에 있나요?”

“글쎄다? 아마 버리지 않았다면 약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겠지. 설마 버리지는 않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취구단 제조서를 아무 곳에 버렸겠어요?”

“그렇겠지?”

“그럼요.”

사실, 아닐 것 같다 대답하면서도 남하림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사부님, 만일 취구단을 복용하면 소림사의 대환단처럼 내력에 도움이 될까요?”

“음…… 워낙 오래된 일이라서. 먹어봐야 알겠지.”

”어쨌든 있다면 도움은 되겠지요.”

“당연하지. 취구단이 있다면 본 방에도 큰 도움이 될 게다.”

“그럼, 우리도 한번 만들어보죠.”

“뭘…… 취구단을?”

“네. 제조서가 남아 있으면 보고 만들어보는 거죠. 제조서가 손실돼서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걸로.”

산동악가로 출발하기 전까지 최대한 실력을 올려야 했다.

“아, 그 혹시 인형삼이나 화정 같은 영약들은 내력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허허. 당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선 절정의 무인에겐 큰 도움보단 내력의 손실을 막아주는 정도일 게다. 뭐 그 정도만 해도 고수들간의 싸움에서는 큰 차이지만.”

“사부님, 그럼 소림사의 대환단과 비슷한 영약들도 고수들에게는 필요가 없나요?”

“그건 아니지. 화정이나 인형삼이 대단한 영약인 건 확실해. 하지만 소림사의 대환단을 제조하기 위해서 필요한 영약들만 해도 적게는 열 가지가 넘는다고 들었다. 그런 영약들의 좋은 기운들을 추출해서 만든 게 대환단이니 대단하지 않겠느냐?”

“아하, 이거 무조건 취구단을 만들어야겠네요.”

“뭐어어, 만들 수야 있다면…….”

남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구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제조법을 구해야 했다.

“사부님, 그럼 제자는 약방에 다녀오겠습니다.”

“진짜로 취구단을 만들 생각이냐?”

“한번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음…… 만들면 좋긴 한데…… 그 시간에 수련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제자님?”

“수련도 좋지만 취구단을 만들 수 있다면 본 방에도 좋은 일이잖아요. 그럼, 가서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휙!

남하림은 신형은 이미 장로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놈이…….”

장두철은 약방으로 가는 남하림을 끝까지 말리지 않았다.

물론 다른 짓을 한다면 당장에 말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취구단은 개방에서도 오랫동안 필요한 물건이었다.

구파 출신 후기지수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본 파에서 영약을 복용한 뒤 공력을 올려놓고 무림에 나갔다.

당연히 일반 후기지수들과는 처음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쓰읍, 취구단이라…… 인생은 모르는 일이니…… 그나저나 성공하면 나도 하나 얻을 수 있으려나?’

* * *

약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남하림과 당무독.

두 사람은 오래된 제조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남하림은 약방을 하루 종일 뒤진 뒤에야, 고서의 끝자락에서 취구단 제조서를 찾을 수 있었다.

취구단 제조서란 말에 당무독은 길을 가다 홀린 듯이 하림을 따라온 상태였다.

“이것만 보고 알아낼 수 있겠어?”

“글쎄. 중간중간 서너 장이 찢겨 있어서 이것만 보고 제대로 만들기는 힘들어.”

“아, 진짜. 제조서를 찢긴 왜 찢어?”

“그래도 중요한 부분은 있는 것 같아.”

“그건 다행이네. 괜찮겠어?”

“어렵지만 도전해 볼 만해. 어차피 독약 만드는 거나 영약 만드는 거나 비슷하지 않겠어? 대충 아무거나 섞어보면 제대로 걸릴 수도 있거든.”

“필요한 게 있으면 양 총관이 몽땅 구해줄 거야.”

“부장, 그럼 일단 이것들 먼저 준비해 줘.”

당무독이 재료가 적힌 종이를 남하림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좀 기다려. 개봉 집에 좀 다녀올게.”

* * *

우루루루-

남하림이 어깨에 메고 온 짐보따리를 풀었다.

“부탁했던 약재들이야.”

“우와아, 이게 다 뭐야.”

탁자 위에 귀한 약재들과 영약들이 가득했다.

“세상에, 부장이 이걸 전부 가지고 왔어?”

당무독은 준비한 재료들을 살피면서 입을 함지박하게 벌렸다.

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씩 고르며 분리했다.

‘요건 설삼이고, 어라, 옥봉까지. 이건 뭐냐? 헐, 복사의 보혈까지 찾아서 가지고 오다니!’

이 모두가 취구단의 재료들이었다.

재료들을 구해준다고 해서 적어주긴 했지만, 다 만만치 않은 재료뿐이라 이렇게 쉽게 준비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으흐흐, 이 재료들이라면 취구단이 아니라도 뭐든지 만들겠다!’

빠드득.

당무독은 양손을 서로 깍지 끼며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자, 그럼 난 제대로 만들러 갔다 올게.”

“아, 잠깐만.”

타악!

남하림이 재료들 사이로 천으로 싼 딱딱한 물건을 올려놓았다.

팽유도가 먼저 관심을 보였다.

“하림 형, 그건 뭐야?”

“이건 두 달 전에 양 총관한테 주문해 놓은 물건들이야. 혹시 우리들 내력에 도움 되는 것들이 있는지 따로 알아봐 달라 부탁을 했거든. 우리가 청봉표국 간 사이에 도착했나 봐.”

“으으으, 음, 기억이 나요.”

얼핏 지나가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남하림이 천을 풀자 흑단으로 된 나무상자가 나타났다.

딸각!

남하림이 상자를 열었다.

“오우…… 이건…….”

네 명은 돌아가며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구경했다.

스윽-

특히 팽유도는 상자 안에서 인형같이 생긴 삼을 하나 잡아 들었다.

강한 향이 풍겨져 나왔다.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게 진짜 그것인가?

“유도야, 그건 인형삼(人形蔘)이라고 하는 거야.”

“아…… 하. 그, 그렇구나. 잔가지 하나만 복용해도 병든 사람을 벌떡 일으키게 한다는 인형삼이 지금 내 손에 있구나.”

팽유도는 황제라도 구하기 힘들다는 인형삼이 눈앞에 나타나자 실감이 나지 않는 듯 그대로 굳었다.

‘음……?’

성철각도 상자에서 열기를 내는 내단을 하나 주워 들었다.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러웠다.

“이건 뭐야?”

“그건 화정(火晶)이야. 입에 넣으면 몸속을 항상 따뜻하게 해줘.”

“이게……? 이게 말로만 듣던 화정이라니…….”

성철각도 마찬가지로 화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윽.

이휘연은 손을 뻗어 차가운 느낌을 주는 작은 물건을 찾았다.

‘이것은 설마…….’

얼음 덩어리 같았다.

“휘연 형. 빙정(氷晶)이야.”

“…….”

자신이 생각한 게 맞았다.

늘 무심하던 그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이휘연은 남하림을 보았다.

“대체 이것들을 어디에서 가지고 온 거지?”

“양 총관을 통해 상국에 연락을 해놨거든. 내가 어릴 때 가끔 보금정에 들어가 보면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더라고. 아버지 몰래 챙겨 오라고 했으니 아무도 모를 거야.”

“…….”

남하림의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분명 농담이 아닐 거란 생각이 우수수 들었다.

“부장, 남천상국은…… 정말 대단한 곳이구나.”

성철각은 물론 다른 세 사람도 남천상국에 대해 단단히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았다.

“하림 형, 나 진짜로 한번 구경 가고 싶어요.”

“알았어. 나중에 시간이 되면 구경시켜 줄게.”

남하림은 팽유도가 한껏 조심스레 내려놓은 인형삼을 다시 그에게 주었다.

“요건 유도가 복용해. 강한 힘을 쏟아내기 위해서 필요할 거야. 내가 예전에 이걸 먹고 몸이 단단해졌거든.”

“혀어어엉!! 진짜 제가 복용해도 돼요?”

팽유도는 인형삼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스윽.

남하림은 이번엔 빙정과 화정을 들었다.

“뜨거운 건 철각이 가져. 사부님이 철각은 양기가 조금 부족하다고 했잖아. 힘을 모으는 데 괜찮을 거야.”

“어…… 고마워. 부장.”

성철각은 화정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양기가 부족한 탓에 무공을 펼칠 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휘연 형은 빙정이면 괜찮을까?”

남하림은 이번엔 빙정을 이휘연에게 내밀었다.

“당연하지.”

지금까지 스스로 욕심은 없다고 생각하던 이휘연이었지만, 빙정을 봤을 때 처음으로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살성을 차갑게 가라앉혀 줄 기운이 필요했던 참이니까.

이휘연에겐 내공을 증진시키는 영약보다 오히려 빙정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하림, 고맙다. 정말로 큰 도움을 받았어.”

“와아, 하하하! 휘연 형이 고맙다고 한 건 처음인데? 정말로 마음에 들었나 보네.”

남하림은 마지막으로 당무독을 보았다.

상자 안에는 두 개의 옥병이 놓여 있었다.

“무독은 아마 이게 필요할 거야.”

“어? 나도 있어?”

“당연하지.”

남하림이 검은 옥병을 내밀었다.

“조심해. 위험한 물건이야.”

“이게…… 뭔데?”

“심독유(沈毒油).”

독이 생소한 팽유도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하림 형, 심독유가 뭐야?”

그의 질문에 당무독이 바로 대답했다.

“독문(毒門)의 문헌에 보면 독에 면역성을 주는 최고의 독물이라고 해. 일반 사람들은 냄새만 맡아도 며칠 동안 기절할 만큼 강한 독이라고 적혀 있었어. 나도 처음 보는 독물이야.”

“허얼…… 겁나는 물건이구나.”

“맞아. 근데 이걸 하루에 한 번씩 죽지 않을 정도로 복용하면 어떠한 독에도 중독이 안 돼.”

“……냄새만 맡아도 죽을지 모르는데…… 그걸 먹는다고요?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 짓을 할 수 있…… 을까?”

“아하하, 이왕 생겼는데 한 번 도전해 봐도 좋지.”

심독유를 복용하겠다는 당무독의 말에 팽유도는 질린 눈빛이 나왔다.

‘독에 관해서라면 무독 형은 완전 미쳤어.’

남하림도 시기적절하게 당무독을 부추겼다.

“완전 무독한테 딱이네. 한번 해봐. 정말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한걸.”

“으흐흐, 알겠어. 근데 당문에서도 못 구한 심독유를 가지고 있다니, 너무 신기한데. 아무리 남천상국이라 해도 이런 것들이 몽땅 한곳에 있다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

“아, 흐, 예전부터 할아버지하고 아버지께서 이상한 것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으시거든.”

팽유도는 마지막 남은 옥병이 궁금했다.

“하림 형, 손에 들고 있는 그건 뭐야?”

스윽-

남하림은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옥병을 앞으로 내밀었다.

“별거 아니야. 공청석유(空淸石乳).”

“뭐어어어?”

“놀라기는…… 대단한 게 아니야. 그냥 진기를 보호하는 정도밖에 안 돼.”

“진짜? 공청석유를 마시면 만년 내공을 얻는다고 하던데?”

“웬 만년 내공. 잘하면 십년 내공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그냥 진기가 강해지는 느낌이야. 내가 상국에 있을 때 가끔 마셔봐서 알아.”

“아아…… 가끔…… 마셔봤구나.”

오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팽유도는 남하림이란 인물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가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세상이 참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림 형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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