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43화 (44/328)

43. 산동악가 나타나다

화르르-

솟구치는 화염.

청봉표국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히이이잉!

정문을 막아선 홍색 투구의 기마철갑대.

그들은 청봉표국 안으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게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당신들이 왜…….”

손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청봉표국의 표두와 표사들뿐만 아니라, 쟁자수와 모든 하인들까지 정문 밖으로 끌려 나와 불에 타는 청봉표국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엉…… 어엉…….”

“흐흑…… 흑.”

화염에 점점 타들어가는 청봉표국 앞에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표두와 표사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며 표국 안으로 들어가고 했지만, 홍투구의 기마철갑대에 의해 중경상을 입고 목숨까지 잃었다.

‘욱.’

상처를 입은 허리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손도는 기마철갑대를 향해 다시 한 번 더 달려들 기회를 엿봤다.

‘산동악가. 이놈들……!’

꽉!

손도는 죽기를 각오했다.

삼 장 정도 떨어진 바닥에 검이 보였다.

데구루루-

그는 재빨리 몸을 구르며 널브러져 있는 검을 잡았다.

타앗!

그리고 신형을 날려 홍투구를 쓴 기마철갑대를 향해 튀어 올랐다.

“가만히 있었으면 목숨은 건질 텐데.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놈이군.”

홍투구 속의 눈동자는 가소롭다는 듯 손도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스르르르.

사내가 붉은 반원을 그리며 말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던 장창을 손도의 머리를 향해 떨어뜨렸다.

부우우웅-

장창의 속도는 느린 듯 보였으나 손도가 치켜 올린 검보다 빨랐다.

“으아아아악!”

손도는 장창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뻗었다.

차아앙!

찌지직.

힘과 무게의 차이.

내리치는 장창을 밀어내지 못한 채 손도의 검이 부러졌다.

털썩.

손도는 그대로 힘에 밀려 바닥에 쓰러졌다.

“후후후, 함부로 날뛴 대가는 죽음이다.”

장창의 날카로운 끝이 번쩍거렸다.

‘으으윽.’

손도는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했다.

그때,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던 기마철갑대원의 눈동자가 별안간 옆으로 돌아갔다.

‘무슨?!’

동시에,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일격이 이어졌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홍투구를 쓴 기마철갑대원이 말 위에서 떠올라 날아갔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그는 단숨에 정신을 잃었다.

손도가 고개를 돌렸다.

“단…… 화걸님!”

남하림이 정문을 막고 있는 기마철갑대 앞에 서서 그들을 매섭게 바라봤다.

‘아…… 아…….’

당당하게 선 단화걸의 모습.

그의 모습에서 광채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손도의 눈엔 세상 그 어떤 모습보다 장엄한 모습이었다.

“손 표사, 괜찮아요?”

고개를 돌리며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마치 천상신이 내는 목소리와 같았다.

손도는 넋이 나간 듯 입을 떡 벌리고 하림을 바라보았다.

“손 표사.”

“헉! 네, 넵. 감사합니다, 단화걸님.”

손도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남하림의 손을 잡고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불에 타고 있는 청봉표국을 가리켰다.

“단화걸님, 저 안에 국주님께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각다각.

남하림은 홍투구를 쓴 기마철갑대 앞으로 걸어갔다.

한 방에 동료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에 긴장했는지, 모두가 내력을 끌어 올리고 남하림을 향해 살기를 뿜었다.

스윽-

팽유도가 남하림의 뒤에 바짝 붙었다.

“부장. 이들은 산동악가에서 살인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살기대입니다.”

“유도야, 이놈들 좀 치워줄래?”

“넵. 알겠습니다.”

스으으윽.

팽유도가 기운을 끌어 올리며 반도를 두 손으로 잡았다.

반도에 흐르는 기가 강해지면서 흑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부장이 이놈들을 치우랍니다!”

“부장이 치우라면 치워야지.”

타앗!

팽유도는 반도를 치켜 올리며 기마철갑 살기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휘익-

타앗!

핏! 핏! 핏!

그와 동시에 이휘연과 성철각, 당무독이 뒤를 이어 움직였다.

콰아아앙!

팽유도의 반도는 정면에 있는 기마철갑 살기대원을 향해 떨어졌다.

기마철갑 살기대 악조가 장창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허억!’

겨우 석 자도 안 되는 반도였다.

히이잉!

하지만 팽유도의 반도에서 쏟아지는 순간적인 힘에, 말이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반도에서 이런 힘이라니……!’

온전한 도가 아닌 짧은 반도인데도, 가해지는 충격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악조는 몰랐지만, 이 반도는 중원십대장인 전기(全技)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인 단결흑철(單結黑鐵)로 만든 반도였다.

“살기대도 별거 아니군.”

휘리리릭-

팽유도는 반도를 회전시키며 말에서 내린 악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번쩍!

스걱-

이휘연의 흑검이 번쩍거리며 홍투구의 눈앞을 지나갔다.

흑검 또한 이휘연을 위해 전기가 만들어낸 작품.

가볍게 스친 듯했지만, 흑검의 날카로움을 이길 수 없었다.

“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

쩌어억!

반으로 갈린 홍투구가 떨어지면서 나타난 사내의 얼굴에 일자의 선혈이 생겼다.

기마철갑 살기대들은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앞에서 비검들이 쏟아져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챙! 챙! 챙!

장창으로 비검들을 쳐내며 겨우 막아내도, 흑색의 철각반을 찬 성철각의 걸선일각이 곧바로 뒤를 이었다.

철썩-!

철각반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아무리 장창을 세워도, 긴 채찍처럼 감아서 날아오는 일각에 그들의 목이 돌아갔다.

“크아아악!”

기마철갑 살기대는 괴음의 고통 소리를 내며 하나둘씩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우와…….’

한 발 늦게 달려온 도랑은 산동악가의 기마철갑 살기대를 상대하는 걸협오성의 모습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역시…… 걸협오성님이시다!’

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뭣들 하느냐?! 개방의 제자들은 저놈들을 때려잡아라!”

“와아아!!”

부우웅-

도랑의 명이 떨어지자 함께 달려온 청봉분타의 개방도들이 타구봉을 들고 바닥에 떨어진 기마철갑 살기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퍽! 퍽퍽!

딱딱딱!

타구봉이 여기저기서 인정사정없이 움직였다.

‘허얼…….’

이를 모두 지켜보던 손도는 진정 개 패듯이 때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이해할 수 있었다.

* * *

“으으으-”

고통에 찬 신음 소리.

번손의 가슴에 창끝이 박혀 있었다.

살기로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봐, 번 국주. 그 사실을 또 누가 알고 있지?”

“으으윽, 내…… 가 말을 할 것 같으냐?”

“한 번 더 묻겠다. 하북소가에 알린 놈이 누구지?”

“윽! 모…… 르는…… 일이다!”

쑤욱-

홍투구의 사내는 손에 힘을 주며 창을 조금 더 밀어 넣었다.

“아악!”

“큭, 언제까지 말을 안 하는지 볼까?”

“우욱, 정파…… 라는 놈들이…….”

“살고 싶다면 빨리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청봉표국과 관련된 모든 자들이 죽는다.”

“어…… 차피 네놈들은 모두…… 죽일…… 게 아니더냐…….”

“…….”

“분명…… 내가 말…… 했다. 내게…… 손을…… 대면…… 중원에…… 소문이…….”

쿡.

사내는 손에 힘을 주어 창을 다시 밀어 넣었다.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군. 네놈 말대로 소문이 난다고 해도, 중원 무림에서 누가 십장혈의 말을 믿어줄까? 확인하고 싶어도 네놈이 죽고 사라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겠지.”

“크크…… 큭, 이번…… 표행의…… 일도…… 네놈들 짓…… 이더냐?”

“궁금하면 저승에 가서 알아보든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면 죽어라.”

살기대주 악강이 장창을 깊숙이 밀어 넣으려던 찰나,

“그만 멈추지 못해?”

슈우우욱!

그를 향해 큰 목소리와 함께 권기가 쏟아졌다.

“욱……! 웬 놈이냐?”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바람 속에서 강룡이 휘몰아쳤다.

‘강룡…… 십팔장?’

꽈악!

악강은 장창을 두 손으로 잡고 힘을 주었다.

우우우웅!

앞으로 세운 장창에 내력을 끌어 올리자,

콰아아앙!

두 개의 기운이 부딪치며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주위를 불태우던 불꽃이 한순간 꺼졌다.

타악!

악강은 장창을 앞으로 겨누며, 다가오는 남하림을 보았다.

“개방의 제자?”

그는 천천히 남하림의 아래위를 살폈다.

‘이 녀석은……!’

그러고는 이내 남하림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비단옷으로 거지 복장을 만들어 입고 다닌다는 개방의 후기지수.

“네놈이…… 단화걸이란 놈이냐?”

“이 아저씨가 언제 봤다고 놈이야?”

거침없는 남하림의 말에 홍투구가 꿈틀거렸다.

단화걸은 바닥에 쓰러진 번손의 상태를 살폈다.

호흡이 거칠었다.

“국주님.”

“단…… 화걸…….”

스윽.

번손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누군지 알아보고 힘들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 하지만…… 우리…… 사람들을…… 보살펴…… 주시…… 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보살피겠습니다.”

“고…… 맙…… 소이…… 다.”

털썩.

번손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남하림은 죽은 번손의 얼굴을 보았다.

표국업을 하며 많은 사기를 친 인물이지만, 몇몇 인물들을 제외한 표국 사람들은 이곳의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듯했다.

남하림이 그의 마지막 말을 허락한 이유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이런 짓을 스스럼없이 하는 게 정파인가?’

타앗!

남하림은 단숨에 신형을 튕기며 악강의 앞에 다가섰다.

‘헉, 이놈이!’

슈우욱.

남하림은 준비 동작도 없이 그대로 일장을 펼쳤다.

퍼어어엉!

“커억!”

하나 악강도 보통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살기대의 대주이자 산동악가 오성창(五星槍)의 일인.

파아앗!

그는 강한 내력으로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기습에 가까운 남하림의 일장을 막아냈다.

주르르르룩-

동시에 서로의 신형이 일 장씩 뒤로 밀려났다.

“개방이…… 왜 나서는 것이냐?”

“그럼 산동악가는 왜?”

“이놈들이 십장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파의 무림인으로서……!”

“개소리 집어치워. 정파의 시답잖은 변명은 네놈들끼리 해라.”

“어디서 함부로 말을 하느냐! 네놈의 방주가 그렇게 가르치던가?”

“가만히 계시는 방주는 왜 찾아? 방주께선 개보다도 못한 놈들한테는 더 심한 말을 해도 좋다고 하셨다.”

“…….”

악강은 어이가 없었다.

“요즘 무림에서 이름깨나 날린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마!”

부우우웅-

악강은 전력을 쏟은 내력으로 장창을 휘돌렸다.

악무창강(岳武槍强),

산동악가 비전의 창 무공!

“야압!”

장창을 펼치며 만들어낸 거센 돌풍이 남하림의 정면을 향해 쏟아졌다.

우우우웅-

남하림은 피할 수 있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사부 장두철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거지가 되면 젤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건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게야.”

“세상에 가진 게 없는데 잃을 게 무엇이 있느냐? 거지는 그냥 밀고 나가면 될 뿐.”

“네가 익힌 무공도 마찬가지다.”

“물러서지 않고 두려움도 없이, 오로지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게 개방의 제자이며 개방의 무공이니라.”

남하림은 양손에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내력을 담았다.

그리고 장창이 만들어낸 돌풍의 중심을 향해 강룡십팔장을 쏟아냈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강룡이 남하림의 신형에서 쏟아져 나와 돌풍 속을 뚫고 들어갔다.

두두두두-

강렬한 공방이 두 사람 사이에서 격렬하게 부딪혔다.

‘크으…… 이놈은…… 대체…….’

악강은 믿을 수 없는 남하림의 무공에 경악했다.

약관의 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조금만 더 공력이 강해진다면 자신이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원인 모를 두려움마저 생겨났다.

‘무조건 여기에서 꺾어야 한다. 이놈이 하늘로 날아오르게 해서는 절대 안 돼!’

악강은 끝장을 내기 위해 원기까지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으으윽-”

남하림은 상대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내력을 완전히 끌어 올린 상태이기에, 대항하기 위해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었다.

‘망할……!’

순간, 평소 내공 수련에 큰 관심이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남하림은 점점 악강의 힘에 밀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비웃고 있는 악강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크윽, 재수 없는 상판……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날까 보냐!’

온몸에 남아 있는 내력을 한 곳으로 끌어당겼지만, 점점 힘이 빠져갔다.

“크하하, 개방의 거지 놈아! 마지막이다!”

어느새 남하림의 머리 위까지 접근한 악강의 장창.

남하림은 온 힘을 다해 괴성을 질렀다.

“아아아악!”

얼마나 세게 질렀는지, 남하림도 시야가 멀어지며 귀가 멍해질 정도였다.

그때, 오래전 일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열 살 어린 시절.

눈앞에 서 있던 노인.

‘상무우 사부?’

이놈아. 힘은 그렇게 쓰는 법이 아니다. 이 사부가 몇 번이나 말했더냐. 사람은 천지인이라 하여 하늘의 천기와 땅의 정기를 이어받는 존재라 했거늘.

진정한 금강의 힘이란 땅의 정기를 받고, 하늘의 천기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함이다.

다시 해보아라.

번쩍!

남하림의 눈동자에서 빛이 쏟아졌다.

츄아아아악-

마보를 취하는 동시에, 발바닥을 바닥에 강하게 문질렀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금강수체(金剛修體)의 자세!

덜덜덜덜-

바닥에서 올라온 기가 단전의 내력과 함께 반응을 보이자, 몸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

온몸으로 땅의 정기가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 어……!’

악강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아직도 이런 힘이……!”

남하림의 기에 그가 밀려나고 있었다.

남하림은 마지막 기합을 내질렀다.

“야아아아아압!”

장창은 힘을 잃은 채 뒤로 밀려났고, 계속되는 돌풍 속으로 마지막 일장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아앙!

강대한 기의 폭발.

순식간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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