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9화 (30/328)

29. 계약을 마무리 짓다

왁자지껄.

삼 층 건물로 된 악성객잔은 저녁이 늦어지며 오히려 불이 더 환하게 켜졌다.

흠.

인귀항은 인상을 썼다. 시끌벅적한 일 층 객잔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귀항은 일 층으로 내려가기 전, 백리희를 보며 물었다.

“부가주님, 객실에서 식사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에요. 무림을 다니려면 항상 객실에서 식사를 할 수 없잖아요.”

“알…… 겠습니다.”

인귀항은 수하들에게 눈길을 보냈다.

다다다-

수하 한 명이 빠르게 객잔으로 내려서면서 자리를 확보했다.

“오오…….”

백리희의 미모는 단번에 객잔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인귀항은 고개를 돌려 웅성거리는 객잔의 손님들을 노려보았다.

“흐음, 음!”

휙. 휙.

백리희를 훔쳐보던 사내들이 인귀항의 기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객잔을 울렸다.

“하하하! 머저리 같은 놈들. 사내가 꽃을 봤으면 향기라도 맡아봐야지. 벌에 쏘일까 싶어 도망을 치는 법이 어디에 있나?”

처억.

그때, 객잔 한편 자리에서 청의 사내가 일어났다.

그는 어깨를 좌우로 건들거리면서 백리희의 앞으로 걸어갔다.

“멈춰라!”

인귀항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들었다.

우르르르-

그러자 청의 사내 주변에 함께 있던 삼십 명 정도의 무사들이 떼거지로 몰려왔다.

“하하핫, 눈앞에 해어화(解語花)가 있거늘, 진정한 사내가 어찌 그냥 지나가리오?”

“지금 당장 물러가지 않는다면 죽을 수 있다.”

“후후후, 죽는다라…….”

청의 사내는 실실 웃으면서 허리에 메고 있던 검을 잡았다.

피식.

인귀항의 입가에 실소가 나왔다.

만약 백리세가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면 상대는 쉽게 덤비지 못했을 것이다.

“크흠…….”

날카로운 인귀항의 기세에 청의 사내는 검에서 손을 떼며 포권하듯 앞으로 올렸다.

“쩝, 천하의 미녀께 인사나 한 번 하려고 했건만…… 아쉽게 됐군.”

그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파앗.

청의 사내가 순간 소매에서 빠져나오는 단검을 잡으며 인귀항의 허리를 향해 휘둘렀다.

짧은 거리에서의 빠른 기습!

인귀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막을 수 없다……!’

휘릭.

순간, 백리희의 소맷자락이 길게 뻗어 나왔다.

차르르-

그러고는 인귀항의 허리를 감으며 청의 사내의 기습을 피해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스걱!

청의 사내의 단검이 인귀항의 허리를 스치듯 지나쳤다.

‘윽!’

인귀항은 가슴이 철렁거렸다.

“부가주님,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은가요?”

“……괜찮습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벽장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이미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난 청의 사내가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크크큭, 제법이군. 이걸 피하다니…….”

“이놈이……!”

“근데 이걸 어쩌나. 화를 내면 독이 더 빨리 퍼질 텐데?”

“뭐?”

쓰윽.

인귀항은 상의를 잡아당겨 허리에 난 상처를 보았다.

‘당했다.’

상처 부위가 점점 푸르게 짙어지고 있었다.

“크윽…….”

독 기운이 몸에 퍼지는지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큭큭, 살향지독에 중독되면 절대로 살아날 수 없지. 네놈은 이제, 커억?!”

덥석.

‘뭐야?!’

청의 사내는 뒷목덜미를 잡는 느낌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살향지독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보지?”

“안 놔? 이 새끼는 뭐야?!”

퍽!

남하림의 주먹이 청의 사내의 인중에 시원스레 박혔다.

“커억!”

청의 사내는 한마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다.

단 한 방에 쓰러진 수장.

청의 사내의 수하들은 공격해야 할지 도망가야 할지 망설였다.

“귀찮게 하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아니면 조용히 나가.”

스으으으-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움직였다.

그때, 그들 중에서 한 명이 달려 나오며 소리를 쳤다.

“저놈을 죽여……!”

스걱.

이휘연의 타구봉에서 빠져나온 검이 순식간에 그의 목을 스쳤다.

“컥.”

쿵!

사내는 말도 끝내지 못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객잔 바닥에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

슬금슬금.

상대의 실력을 알아차린 수하들은 그제야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명씩 객잔 밖으로 꽁무니를 뺐다.

그들의 수장은 아직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커어어억-!”

인귀항이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몸 내부에 퍼져 나간 독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무독, 어때?”

“살향지독 정도야 애들 장난이지. 빠르게 해독했으니 괜찮아.”

“수고했어.”

남하림은 당황한 백리희를 안심시켰다.

“인 대주는 괜찮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괜히 제가 여기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해서…….”

“원래 잡놈들은 앞뒤도 없고 내일도 없죠. 그대의 잘못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 네.”

백리희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남하림이 내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는 무심했지만, 이상하게도 걱정이 사라지는 힘이 있었다.

“끄으응, 고…… 맙소이다.”

인귀항은 정신을 차렸는지 남하림을 보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무슨 호위가 그리 쉽게 당합니까? 어디 불안해서 부가주가 밥이나 먹고 다니겠소?”

“……할 말이 없소이다.”

인귀항이 백리희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부가주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소신이 신중하지 못해 걱정을 끼쳤습니다.”

“아닙니다. 대주께서 일어나셔서 다행이에요.”

퍽퍽!

백리희와 인귀항은 갑자기 들려오는 찰진 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남하림이 정확히 사내의 눈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고 있었다.

‘…….’

거침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사내다웠다.

백리희는 절제된 짧은 움직임으로 청의 사내를 연이어 가격하는 남하림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렸으면 바로 일어나야지. 내가 모를 줄 아는 모양이지?”

“죄…… 소오옹…… 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해. 그런 의미로, 서너 대 더 맞고 시작하자.”

“아악! 악!”

연이어 터지는 비명 소리에 객잔은 고요 속에 잠겼다.

오직 남하림과 사내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름은?”

“기, 기무울…… 조 입…… 니다.”

“기물조?”

끄덕.

“네네, 맞습…… 니다.”

팽유도가 냉큼 옆으로 나왔다.

“무림잡범으로 무림공적 병급 사등급, 별호는 색주광입니다!”

“흠, 이름만 들어도 대충 죄질이 어떤 것인지 알겠군.”

“부장, 어떻게 할까요?”

“형유 분타에 인계해야지. 아! 그 전에 두 번 다시 그 짓거리 못하도록 손을 보는 게 좋겠어.”

“그럼, 자를까요?”

‘헉!’

덥석.

기물조는 남하림의 다리를 잡고 늘어지며 애원했다.

“하,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한 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떨어져, 인마. 네놈한테 당했던 사람들도 네놈에게 살려달라고 했겠지. 근데, 어떻게 했더라?”

“……저어…… 다시는…….”

“살려는 줄게. 대신, 네놈 물건은 영원히 사라져 줘야겠어.”

퍽! 퍽!

남하림은 연이어 그의 얼굴을 두 번 가격했다.

털썩.

기물조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유도, 기절했으니깐 끌고 가서 마무리 짓고 와. 하는 김에 내력도 완전히 지워.”

“알겠습니다!”

팽유도는 바닥에 쓰러진 그의 다리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당무독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으, 부장, 그래도 자르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독으로 전혀 못 쓰게 만들 수 있는데. 실습 삼아 해보고 싶어.”

“그것도 좋은 방법 같군. 다음에 또 저런 놈을 잡으면 넘기도록 할게.”

‘이거…… 참…….’

인귀항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몸이 부들 떨렸다.

잠시 후.

“아아아아아아아악!”

하늘을 찌르는 비명 소리가 객잔을 더욱더 고요하게 만들었다.

* * *

백리희는 식사를 하면서 건너편 자리에 앉은 남하림의 모습을 흘깃 보았다.

과한 면도 있는 것 같지만 단호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부가주님, 식사를 마쳤습니까?”

“많이 먹었어요.”

“객실에 올라가시겠습니까?”

“잠시만요.”

스윽.

그녀는 자리를 옮겨 남하림의 앞에 섰다.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차 한잔하시겠어요?”

“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녀는 찻잔을 들어 남하림이 따라주는 차를 받았다.

“그자의 뒤를 쫓던 본 방의 동문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워요. 본 가 때문에…….”

“이번 일이 사람이 죽을 정도의 일이라는 걸 몰랐던 건가요?”

“……그건.”

“동문을 죽인 자의 정체는 목사파 문주 지궁이 아닐까 의심 중입니다.”

화들짝.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인귀항이 깜짝 놀랐다.

“남 대협, 그게 정말이오?”

“살인자는 혈강도법을 펼친 것으로 보입니다.”

‘혈강도법…….’

인귀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무공에 비해 혈강도법의 사체에는 특이한 상처가 남아 쉽게 알 수 있었다.

남하림은 백리희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했다.

“목사파까지 이번 일에 관여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목사파가 백리세가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큰 세력인지 모르겠습니다.”

“목사파는 본 가 백리세가에 상대가 되지 않소.”

백리희 대신 인귀항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

백리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남하림의 말을 이해했다.

“인 대주, 그렇지요. 목사파는 백리세가의 상대가 안 됩니다. 그 사실을 과연 목사파도 몰랐을까요?”

“……그, 그건.”

“목사파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혼자서는 백리세가를 건드릴 수 없죠.”

인귀항의 얼굴이 붉어졌다.

‘실수했다. 함부로 나서는 게 아니었는데…….’

그는 백리희의 눈치를 살폈다.

“……미안하게 됐어요. 저희들이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남하림의 대답은 감정 없이 담담했다.

“본 방은 지금까지 그저 사람 하나 찾아주는 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목사파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의 세력이 관여된 것 같군요. 지금 이 시간 이후로, 본 방은 이 일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본래 계약대로 그자의 행방을 찾아주었으니 개방에서는 계약을 어긴 것도 아니지요.”

“…….”

백리희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남하림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인귀항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남 대협,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개방이 신의를 이렇게 내버릴 줄은 몰랐소이다!”

“지금 신의라 했습니까?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백리세가에서 따질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거짓말이라니…… 누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오?”

“좋소. 그럼 다시 물어보겠소. 백리세가에서 찾는 게 사람이오? 아니면 다른 것이오?”

남하림의 눈이 빛났다.

영중의 뒤를 쫓던 개방의 동료가 목사파 지궁에게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의구심이 밀려왔다.

백리세가에선 그를 왜 찾으려고 할까?

무림인이 아닌 그가 왜 목사파 문주를 만났을까?

더구나 목사파 그 이상의 세력이 연관된 상황이었다.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백리세가에서 찾는 목표가 영중이 아닌 다른 것이라면 정황이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인귀항은 말문을 닫았다.

‘무언이라.’

남하림의 시선이 백리희로 바뀌었다.

“부가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린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사람을 찾고 싶었을 뿐입니다.”

“흠…… 뭐, 그렇게 말을 한다면야.”

남하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개방에서 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본 가에서도 말릴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렇게 하죠. 웬만하면 그자를 잡아주는 것까진 하고 싶었지만, 잡는 거는 백리세가에서 처리하는 걸로 합시다.”

스윽.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서로 각자의 길로 가는 것으로 하겠소이다.”

냉정하게 들리는 목소리.

백리희는 정말 그가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내심 한 번 더 서로 조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남하림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무감한 모습.

“…….”

백리희는 객루를 나가는 남하림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인귀항은 그녀의 옆으로 바짝 붙어 섰다.

“부가주님, 개방에서 정말로 물러나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하는 수 없지요. 우리끼리 처리를 할 수밖에요.”

“그렇다면 개방과의 계약서는 무효가 되는 것입니까?”

“그건…… 어려울 것 같군요. 계약의 내용은 그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찾아주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맞습니다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찾아주는 게 아니라…….”

“아니, 됐어요. 지금부터서는 대주께서 이 일을 맡아서 처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청명당에 명을 내렸습니다. 그자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포위를 시켜놓았습니다.”

“잘하셨어요.”

백리희는 대답을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보았다.

“…….”

여느 때처럼 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어느새 잊히는 듯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안…… 되는데…….’

* * *

남하림은 객루 밖으로 나온 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 뒤로 네 사람이 바짝 붙어 거리를 유지했다.

허리에 타구봉을 꽂은 이휘연.

거의 말없이 하림을 따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부장, 정말로 이 일을 그만두려는가?”

“휘연 형은 관심이 있는 모양이에요?”

“관심이 있다기보다, 궁금하니까.”

“나도!”

“나도……!”

이휘연의 말에 곧바로 당무독과 성철각이 손을 들며 동의했다.

이제는 백리세가에서 찾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물건임을 알아냈다.

남하림은 네 명 모두 개방으로 가만히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잘 알았다.

“다들 정말 궁금한가 보네.”

“하림 형, 그만두는 건 아니지?”

팽유도가 바짝 다가서며 남하림의 표정을 살폈다.

“……그만두면 안 되겠지? 그들이 무엇을 찾는 것인지 나도 궁금하긴 해. 우리 동료가 죽었으니, 이대로 넘어갈 순 없지. 목사파까지 관련되어 있잖아. 하지만 굳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백리세가와 함께할 이유는 없어.”

“나도 목사파가 이번 일에서 튀어나올 줄 몰랐어요. 사람만 찾으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목사파가 끝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야. 더 파고들려면 우리도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거다.”

남하림의 말에 네 명이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히죽.

이미 다섯 명의 표정은 같았다.

개방 거지로서 오 년을 함께 보내고 정을 쌓으면서 이들은 이미 가족이 되어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백리세가의 부가주가 나설 정도면 어느 정도의 물건인지 짐작이 가겠지?”

“보통 물건이 아니겠지. 금은보화를 잃었다고 부가주가 나오겠어?”

“무독의 말이 맞아. 부가주가 움직일 만큼의 물건이라는 거지.”

“음…… 그게 대체 뭘까?”

“그건 알아봐야지. 유도는 걸비천하에 연락해서 백리세가에서 무슨 소문이 나오는지 알아내.”

“응. 알겠어요!”

“그리고, 우선 본 방에 현재의 상황을 보고한 뒤 기다리는 게 좋겠어. 우리끼리 말없이 움직이기에는 너무 큰일이 분명해.”

“알겠어.”

그들 모두 남하림의 결정에 따랐다.

“아, 하림 형! 객루에 남아 있는 저들은 어떡해요?”

“괜찮아.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백리세가 부가주가 설마 호위 열 명만 끌고 여기까지 왔겠어?”

“정말요?”

“보진 못했지만, 아마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거리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었을 거야.”

“난 또…… 괜히 걱정했네. 하긴 명색이 부가주인데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

“철각, 생각보다 순진하네.”

성철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옆에서 팽유도도 민망한 투로 말했다.

“아…… 하림 형, 나도 몰랐어요…….”

“그건 그렇고, 우리도 피곤한데 빨리 들어가서 자자.”

* * *

반 시진 뒤.

똑똑.

객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가주님, 지영작입니다.”

“들어오세요.”

지영작이 문을 열고 객실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마치 의자와 한 몸인 듯한 백리희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여기를 나간 뒤 개방 분타에 곧장 들렀습니다.”

“그렇군요. 개방 분타에서 자는 모양이네요. 더러운 것을 싫어하던데…….”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타에서 나온 후 황호성객루에 갔습니다.”

“그곳에 무슨 일로?”

“투숙을 한 듯합니다.”

“정말 황호성객루가 맞나요?”

황호성객루는 하룻밤 자는 숙박비만 금전으로 반 냥일 정도로 호화로운 곳이었다.

백리희가 놀란 이유가 있었다.

“네. 맞습니다.”

“허어…… 대단하네요.”

남하림의 모습이 생각났다.

더러움을 싫어하며 비단으로 지은 옷으로 입고 향긋한 향을 뿌리는 거지.

물건 하나하나 함부로 가질 수 없는 명품들만 가진 거지.

소문으로 그가 남천상국의 셋째 아들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하루 숙박비로 금전 반 냥을 쓴다는 말은 사실인 줄 알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모르는 게 있다면, 중원에 퍼져 있는 황호성객루의 원 주인이 사실 남천상국이라는 것이다.

‘정말 세상에 그보다 희한한 거지는 어디에도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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