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0화 (21/328)

20. 증거를 확보하다

우다다다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가 주작남지의 땅을 울렸다.

“제자야!”

장두철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장로전으로 한 가지 소식이 전해져 왔다.

외조백단이 삼혈사랑을 잡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삼혈사랑을 잡는 과정에서 외조백단이 쌍사혈괴와 마주쳤다고 한다.

쌍사혈괴가 누구인가.

사파의 고수 중의 고수였다.

믿기지 않게도, 너무나 잘 아는 녀석들이 쌍사혈괴를 박살 낸 대사건이 벌어졌다.

함박웃음을 띤 장두철은 곧장 남하림을 만나기 위해 주작남지로 달려왔다.

휙-

장두철은 도착하기 무섭게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라.”

있어야 할 제자는 물론 나머지 네 명도 인기척이 없었다.

“이놈들이 또!”

아침 일찍 개방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지만 이제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기대감이라고 할까.

다섯 명이 함께 움직이면 생각지도 못한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후후후. 개방에 좋은 바람이 부는구나. 근데 나도 끼워주면 좋았을걸.”

* * *

남하림과 네 명은 일찍부터 나와 개봉에 있는 대저택으로 찾아왔다.

양삼이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도련님, 어제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고생은 무슨. 준 호위가 큰일을 했지.”

준극남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소인은 그저 공자님의 명을 받고 움직였을 뿐입니다.”

“여하튼 우리 예상이 맞아서 다행이야.”

황안촌 사건은 백의인이 삼혈사랑을 만나기 위해 북방상국 지부에서 나오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졌다.

양삼은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 말을 했다.

“도련님, 그자가 북방상국의 하북 삼지부에서 나왔다고 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촌장의 죽음에 속각이 연관되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양삼의 말이 맞았다.

북방상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꼬리를 자르면서 벗어났다.

“좋아.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난 달라.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도록 완벽하게 잡아야겠어.”

남하림은 준극남을 보며 물었다.

“황안촌에서 새로운 게 나왔어?”

“그렇지 않아도 어제 황안촌에서 마차 열 대가 빠져나갔습니다.”

“열 대씩이나?”

“네, 그렇습니다. 수하들의 보고에 의하면 연안으로 움직이는 듯합니다.”

“연안촌?”

남하림의 되물음에 준극남 대신 양삼이 나섰다.

“도련님, 연안에는 북방상국에서 운영 중인 배독표국이 있습니다.”

“아하, 물건들을 표국에서 운송하겠다는 뜻이군.”

“네. 그런 모양입니다.”

남하림은 다시 준극남을 보며 물었다.

“마차에 실은 물건들은 무엇인지 확인했어?”

“그건…… 삼엄하게 호위를 선 상태라 수하들이 접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흐음, 속각인 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지. 돌아가신 진부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속각이 전체 수확량에서 항상 조금씩 모자란다고 했다더군.”

당무독이 한마디 했다.

“누군가 마을에서 속각을 빼돌려 다른 곳에 넘긴 모양이네.”

“그렇다고 봐야지. 우선 준 호위는 내가 이야기한 대로 황안촌 일을 마무리해 줬으면 해.”

“네.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마차에 실은 물건이 배독표국으로 가는지 정확히 확인해야겠어.”

“하림, 어떻게 하려고? 연안으로 가면 개방에 오늘 중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텐데.”

“괜찮아. 이왕 시작한 일, 끝까지 가야 하지 않겠어?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은 손 들어봐.”

남하림은 이휘연부터 보았다.

“네 뜻을 따르겠다.”

“나도…….”

다음으로 당무독이 대답하자 나머지도 한마디씩 했다.

“당연 마무리를 지어야지.”

“하림 형. 이건 우리의 임무라니깐요. 무조건 해야죠!”

팽유도는 벌써부터 흥분된 표정이었다.

“좋았어. 모두 같은 뜻이니 연안촌으로 가자.”

“앗싸!”

* * *

숙항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쌍사혈괴가 관왕묘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다.

“숙 대주,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외다.”

“허어…….”

그는 두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쌍사혈괴가 혈명곡에서 직책은 없어도 어떤 인물인지 모두가 알았다.

“개방의 거지들이 그 정도로 강했단 말입니까?”

“…….”

사인괴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숙항에게 중요한 부분은 빼고 이야기를 한 탓이다.

“떼거리로 덤비는데 어쩔 수 없었소이다. 개방이 어떠한 곳인지 잘 알지 않소이까.”

“망할 놈의 거지 새끼들이…….”

숙항은 머리가 아파왔다.

삼혈사랑에게 살인 청부를 넣은 인물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노궁도 함께 잡혔소이까?”

“음…… 아마도…….”

쌍사혈괴는 기절한 상태여서 백의인였던 노궁의 생사를 보지 못했다.

“젠장…… 거지 놈들이 황안촌 사건에 본 곡이 끼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군.”

“곡주께는 본인들이 보고를 하겠소. 숙 대주의 잘못은 없지 않겠소이까.”

“…….”

누가 잘했고 잘못한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두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했다.

하나는 개방에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황안촌에서 더 이상 속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무림맹에서 혈명곡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요. 모든 것을 노궁에게 떠넘기는 수밖에 없소이다.”

“노궁을?”

“맞소이다. 노궁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삼혈사랑에게 청부를 한 사건이라 몰아가면 될 것이외다.”

혈명곡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

“좋소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숙항의 의견에 쌍사혈괴도 따르기로 했다.

“두 분께서는 그만 본 곡으로 돌아가시지요. 난 북방상국의 백 공자를 만난 뒤 넘어가겠소이다.”

“그렇게 하지요.”

* * *

번쩍.

백한묵은 눈이 갑자기 떠졌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백한묵은 원형 탁자에 앉아 있는 중년인을 보았다.

“늦은 시간에 오신 것을 보니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백 공자, 골치가 아픈 일이 생겼소. 황안촌의 일이 개방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소.”

“뭐라고요?!”

숙항의 말에 백한묵은 바로 인상이 굳어졌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삼혈사랑과 노궁이 개방에 잡힌 것 같소.”

“…….”

백한묵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열이 오르자 목이 굳어지면서 뻐근해졌다.

‘망할! 망할!’

이번에도 개방이 문제였다.

“노궁은 혈명곡과 본 상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이미 손을 썼으니 노궁의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그, 그렇군요.”

백한묵은 한시름 놓았다. 당장 손실은 볼 수 있겠지만, 노궁과 자신과의 연결 고리만 사라지면 다른 문제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금전적인 손실은 언제든지 메울 수 있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황안촌에서 구하던 속각을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망할 거지 놈들……!’

백한묵은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개방에서 그 일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건 본인도 파악을 하지 않았소. 쌍사혈괴의 말에 의하면 관왕묘에서 삼혈사랑을 죽이려고 할 때 갑자기 개방의 거지들이 쳐들어왔다고 했소.”

“그곳에서 그들이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군요. 휴우, 아쉽지만 황안촌은 손절해야겠습니다.”

개봉을 중심으로 북부 지역을 관리하려고 했던 백한묵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무엇이오?”

“이왕 정리한다면 황안촌의 일은 깨끗하게 정리했으면 합니다.”

“부촌장을 정리하자는 말이군. 알겠소이다.”

* * *

‘진부의 말이 맞군. 똑똑한 녀석이야.’

준극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둥진부는 황안촌에서 가장 수상한 인물로 부촌장을 가리켰다.

준극남은 작은 동굴 안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직접 물건을 확인하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았다.

그런 놈들은 항상 제 잇속만을 차리기 위해 엉뚱한 짓을 많이 해. 아마 다른 곳에 숨겨 놓은 게 있을 거야.

‘공자님의 말씀이 맞군.’

준극남은 횃불을 건네받은 뒤 쌓여 있는 물건들을 향해 던졌다.

화라락.

순식간에 모든 것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 * *

“불이야! 불이야!”

벌떡.

부촌장 순만은 잠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이라고?’

방 밖에서 하인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여편네가……!”

그는 옆에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내를 신경질적으로 밀어 내듯 찼다.

“아악!”

부촌장의 아내는 눈을 치켜뜨며 순만을 노려보았다.

“야, 비켜.”

순만은 손을 뻗어 그의 아내를 옆으로 밀어내며 밖으로 나왔다.

‘저기는…….’

하인들이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속각을 숨겨놓은 비밀 창고였다.

후다다닥.

순간 순만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갔다.

화르르르-

하인들이 물을 붓고 있었지만 창고 안에서 치솟는 불은 꺼질 기세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곳은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장소였다.

털썩.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게…… 얼마인데…….’

황금 수십 냥의 가치를 지닌 속각이 불에 타서 사라지고 있었다.

“대체…… 어떤 망할 놈이…….”

척.

“내가 그랬다.”

“…….”

순만은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누군지 보려고 했다.

휙.

퍼억!

그 순간 순만은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연안으로 들어선 십여 대의 마차가 마을 외곽으로 향했다.

배독표국.

북방상국에 속한 표국으로 하북 동북 지역에서 주로 표행을 했다.

“역시 양삼의 말이 맞았어. 배독표국으로 왔군.”

남하림은 마차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하림 형, 이제 계획은 뭐예요?”

“이번 일에 북방상국이 관여된 것이 확인되었으니 그들에게 황안촌장의 죽음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지.”

“아…… 하!”

“혹시 모르니 마지막으로 물건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떻게? 우리가 몰래 잠입을 해야 해요?”

팽유도는 확인을 해야 한다는 남하림의 말에 걱정이 되었다.

이휘연이 나섰다.

“내가 확인하겠다.”

다섯 명 중 신법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흐, 굳이 우리가 확인할 필요는 없어요.”

남하림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확인을 안 해도 된다는 게 무슨 말이지?”

“우리 대신에 누군가 해주겠죠. 일단 기다려 봐요.”

이휘연은 사악한 미소를 짓는 남하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득출은 허리를 펴며 배독표국 밖으로 나왔다.

그는 표국에서 일하는 잡일꾼이었다.

대장간에 볼일이 있어 연안 시장으로 나온 득출은 며칠 전 주문해 놓았던 쇠붙이 경첩을 찾으러 슬렁슬렁 걸어갔다.

까아아앙!

까아앙!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아저씨, 물건 찾으려 왔어요.”

“어, 득출이 왔는감. 반시진만 기다리게.”

“반시진이나요? 좀 빨리 안 되나요?”

“어허. 다른 데 가서 구경이나 하게. 요즘 주문이 많이 와서…… 우선 자네 물건부터 하고 있네.”

“알겠어요. 빨리 부탁해요.”

“알겠네. 잠시 놀다 오게.”

득출은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쳇.’

놀다 오라고 했지만 맨입으로 놀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번 달 삭료는 이미 바닥이 났다.

털썩.

득출은 시장 한편에 앉아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을 보았다.

꼬르륵.

‘…….’

배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가 계속해서 울렸다.

그때였다.

득출은 바로 옆에 누군가 앉는 기척을 느꼈다.

“배가 고픈가 보네요.”

“뭐야?”

처음에는 거지라고 여겼다.

근데…….

자세히 보니 거지처럼 보이지만 거지는 아닌 듯했다.

스윽.

남하림은 손바닥 위에 올린 은전 한 닢을 보여주었다가 접었다.

“줄까요?”

“……어?”

득출의 눈이 커지면서 남하림과 손바닥을 번갈아 보았다.

어릴 때부터 남의 밑에서 죽도록 일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살아남기 위해 눈치가 빨라졌다.

“제 부탁을 한 가지만 들어주면 방금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이 줄게요. 금 열 냥이면 어때요?”

‘헉!’

득출의 눈이 떨렸다.

금 열 냥이면 자신은 물론 어린 남동생 두 명까지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다.

남하림을 대하는 말투가 변했다.

“정…… 말…… 입니까?”

“거짓말처럼 보이나요?”

남하림의 눈빛을 보면서 득출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닙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에요. 오늘 표국으로 들어온 물건이 있죠?”

“마차에 실어온 물건을 말하는 것입니까?”

“맞아요. 마차에 실린 물건이 뭔지 알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요?”

“아…… 그것이면 됩니까?”

그렇지 않아도 표국으로 배달된 물건을 넣어둔 문의 경첩을 고쳐야 했다.

문을 수리하는 동안 조금 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면 되겠습니까?”

“많이 필요 없어요. 그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만 하면 되거든요. 정말로 표시가 나지 않을 만큼 있으면 돼요.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거예요.”

득출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적은 양이란 말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금 열 냥이라면 목숨도 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고마워요.”

남하림은 저녁에 득출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스윽.

그리고 득출의 손바닥에 자신을 손안에 든 은전 한 닢을 주었다.

“배가 고프신 모양인데, 요기나 하세요.”

“아…… 네네. 고맙습니다.”

득출은 사라지는 남하림을 보면서 손을 꽉 쥐었다.

일생일대의 기회.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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